최척전 스토리텔링
매실 따는 노래와 최척의 나라 사랑이야기
윤 샘
온 가족이 상봉한 이듬해 봄이었다. 최척은 천신만고 끝에 중국에서 옥영과 재회한 뒤에 남원에서 온 가족을 만났다. 사람들은 천지신명이 돕고 부처님이 도왔다고 너나없이 말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원에 돌아온 최척은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만감이 교차했다. 간악 포악한 왜적도 이순신 장군의 서슬파란 충정어린 칼 아래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일부 겨우 살아남은 자들은 제 살길을 찾아 혼비백산 도망가고 없었다. 전쟁은 끝이 났고 강토는 다시 평화를 찾았다. 남원에도 봄이 왔다.
최 척은 말을 타고 섬진강 매화 마을로 가고 있었다. 삼십 여 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홍매화, 청매화, 그리고 흰매화가 온 산에 꽃 대궐을 차려놓고 있었다. 섬진강 맑은 수면에는 또 하나의 매화 꽃 세상이 거울처럼 마주보고 있었다. 거기서는 하늘이 따로 없었고, 땅이 홀로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천지가 꽃 세상이었다. 최척이 강 구비를 돌아서자 꽃보라가 몰아쳐 왔다. 북풍한설 눈보라가 따로 없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이 자욱하여 앞이 안 보일정도였지만 삼십 여 년 만에 맞은 꽃바람은 그저 온 몸으로 맞아도 좋았다. 얼굴을 때리는 감촉은 부드러웠고, 코끝을 스치는 매화 꽃잎 향은 후각을 별세계로 이끌었다. 최척을 태운 말도 고개를 연신 흔들어댔지만 매화 꽃 폭풍이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겨운 산하이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그 경계를 넘나들었다. 이때 그의 나이 지천명을 넘어섰고, 넓은 세상에서 파란만장한 삶의 벼랑 끝에서 얻은 혜안이 가슴과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최척은 자신의 파란 많은 지난 삶을 되돌아 볼 때마다 집을 나서 섬진강 매화 마을을 자주 찾았다. 소리 없이 때로는 소리 내어 흐르는 섬진강의 구비 구비마다 우여곡절이 많은 최척의 삶을 되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실이 익어갈 무렵 최척은 다시 그 길을 가고 있었다. 예전과 다름없이 섬진강 줄기를 타고 오는 남풍은 강변 산야에 튼실한 매실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흔들고 있었다. 잔설에 핀 매화꽃은 섬진강변 지리산을 물들인 것이 어제 같았는데, 벌써 훈풍에 초록매실세상으로 영글었다. 매실 밭에서는 매실을 따서 대바구니에 담는 아가씨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문득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귓전에 정겹게 와 닿았다. 삼십 여 년 전에 옥영과의 삼세 인연의 첫 단추가 바로 매실 따는 시구에서 시작되었음을 그는 떠올렸다.
“매실을 따는데 일곱 개가 남았네요.
나에게 장가들기 원하는 그대여,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매실을 따는데, 세 개가 남았네요,
나에게 장가들기 원하는 그대여,
서둘러 이때를 놓치지 마세요.
매실을 따는데 한 개가 남았네요,
나에게 장가들기 원하는 그대여,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마세요.
매실을 다 따서, 대바구니에 담고 있네요,
나에게 장가들기 원하는 그대여,
어서 서두리세요.
때 지나면 남는 건 후회뿐이잖아요.
최척은 꽃 중에서 유독 매화를 좋아했다. 그의 집 뒤뜰에는 매화나무가 세 그루가 있었다. 해마다 봄소식을 전하는 매화가 사랑스러웠고, 탐스럽게 열리는 청매실을 좋아했다. 그는 해마다 매실을 따서 깨끗이 씻은 다음 매실주를 담갔다. 그는 그 매실주를 청사랑주라 부르곤 했다.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푸르고 싱그러운 청춘사랑을 떠올리기에 좋고, 첫사랑의 소리울림과도 맞아떨어진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또 최척이 지천명의 세상살이를 하고 모질고 세찬 세상 풍파를 겪다보니 세상에 사랑만큼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쟁의 와중에 세상을 떠나고 없는 모친의 사랑이 떠오를 때마다, 어렸을 적 받은 부모의 사랑이 눈앞에 아른 거릴 때마다 그는 사랑에 목말라했고, 그때마다 청사랑주를 벗 삼았다. 또 전쟁 중에는 간악한 왜적의 폭악무도한 악행 소식이 남쪽에서 전해 질 때마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그들의 잔인한 악행을 목도할 때마다 최척은 나라 사랑을 생각하며 목 놓아 울곤 했었다. 울분을 토한 그를 위로해주는 것도 청사랑주였다.
나이 오십이 넘고 보니 세상이 제대로 굴러 가려면 세상의 모든 통치자 임금부터 시작해서 저 미관말직 공복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그들이 필요한 최고의 덕목은 제 목숨을 아끼듯 남을 사랑하는 것이라 데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그러나 최척은 자신이 그렇게 세상을 다스릴만한 위치에 있지 않음을 가슴아파했다. 또 그렇게 세상이 다스려지지 않음도 애석해 했다. 그렇다고 그가 벼슬길에 나서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 처지였다. 조선 천지에 그 만큼 견문이 넓고, 조선과 명나라, 후금을 삶의 영역으로 삼아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각이 깊어진 이가 많지 않았지만, 현실은 그 이상의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자신과 같은 삶의 고통과 슬픔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최척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다. 그렇게 그해가 갔고, 새해가 밝았다.
새해 정초에 최척에게 어둠 속 한 줄기 빛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남원 주포 요천강 변에 조위한이 한양에서 가족을 데리고 이사를 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위한라면 조선의 정치무대에서 활동한 이요, 홍길동전을 쓴 허균과는 절친한 벗이자, 당대의 문장가가 아니던가. 또 그는 무거운 세금으로 고통을 당하고, 폭정에 핍박을 당하는 백성들의 삶과 정치의 부패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의 한탄'(유민탄)이라는 노래를 지어 백성의 울분을 달래고, 고통과 아픔을 위로한 이가 아니던가! 개인적으로는 임진왜란 때 피난 생활을 하다가 유일한 혈육이던 어린 딸을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잃고 길가에 가매장해야만 했던 가슴 아픈 슬픔을 가진 아버지요, 정유재란 때는 여름에 부인과도 사별을 한 남편이었고, 그 후 그가 그토록 아끼던 첫 아들을 까지 병으로 세상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가슴 아픈 가장이 아니던가! 그의 슬픔이 얼마나 컸으며, 그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깊고, 그 절망의 넓이가 얼마나 넓었는가를 보통사람들은 알 길이 없었다.
최척은 생각을 했다. 그런 그라면 자신이 삼십 여 년 간 겪은 고통스런 삶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충분히 이해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또 자신이 걸어온 길을 있는 그대로 글로 남겨 줄 수 있는 인물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최척은 자신의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삶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후세에 전해지기를 바라고 바랐다. 그것이 역사와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위해서 작지만 그가 베풀 수 있는 사랑이라고 그는 굳게 믿었다. 역사를 망각하면 개인이나 나라의 삶이 망하기 쉽다는 것을 최척이 온 몸으로 깨달은 까닭이었다. 그 깨달음의 시간들이 삼 십 여년을 넘어서고 있었느니 신뢰하기에 부족한 시간은 아니었다. 운이 좋다면 조한위 같은 정치가가 임금을 잘 도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세상이 바르게 통치되고, 나라가 나라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하기를 그는 바랐다. 외적의 침략으로 그는 더 이상 가족과의 생이별이나 사별이 없는 세상을 그는 꿈꾸었다. 물릴 줄 모르는 사리사욕과 그칠 줄 모르는 탐욕에 빠져 위선의 탈을 쓴 채 세상을 어지럽히는 정치가나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타락한 공복이 없는 세상을 그는 염원했다. 다시는 나라의 혼란으로 인해서 생기는 슬픔과 고통과 가슴 아픈 일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 최척은 갈망했다.
다른 사람을 갈취하는 힘 있는 자나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돈 있는 자가 없는 세상을 그는 원하고 바랐다. 그들은 다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자들이자 가정을 도탄에 빠뜨린 주범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교활하고 사악한 무리였다. 좋은 세상은 먼데 있지 않았다. 그들이 없는 세상이 곧 좋은 세상이었다. 딱따구리가 나무의 좀 벌레를 꼭 쪼아 삼키듯, 하늘나라에 산다는 거대한 딱따구리 신선이 세상을 좀먹는 그런 악의 무리들을 꼭꼭 찍어 삼켜버리기를 최척은 소원했다. 이 강토에 해마다 매실 따는 노래와 사랑의 노래가 평화롭게 울러 퍼지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사가 후세에 전해져서 언제나 거울처럼 세상의 이치를 누구에게나 밝게 밝혀주기를 원했다. 그렇다면 오랜 기간 고통스럽게 자신이 겪은 삶의 흔적도 가치가 있을 거라 믿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삶의 희망이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세상을 위해서 조그마한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최척은 가슴이 뛰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최척은 중국에서 가져온 털모자를 찾아 깊이 놀러 썼다. 그는 두툼한 솜옷위에 중국에서 추위를 견딜 때 입었던 털가죽 옷을 걸쳐 입고서 길을 나섰다. 남원 요천 강변에는 겨울 찬바람을 타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최척이 살고 있는 남원 만복사 동녘 동네에서 삼십 여리의 눈길이었지만, 조위한이 살고 있는 남원 주생면 요천 강변 주포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워 보였다.
- 더 좋은 세상을 꿈 꾸시거든 눈 내리는 주포 요천 강변을 거늘어 보시라.
20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