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넘어져서 며칠있으면 낫겠지하고 한달동안 못움직이시던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니 평생 누워지내야하는 중병이란다. 하지만 몇년전에 새로 개발된 주사요법(주사액으로 뼈를 콘크리트화하는수술법)으로 수술하면 당일 수술.퇴원이 가능하단다.
공연준비땜에 집안소식을 못듣다가 끝나고서야 집엘 들르니 그 모양이더라.
가족에 대한 무관심....
답답함을 누르고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찰. 입원시켜드리고 서울로... 합평회를 마치고 애프터를 마치고 다시 대전으로..
병원에 계신 어머님을 보고...형수님을 부르고.... 전남 구례구로 향하다.
서대전역을 떠나 구례구에 도착 구례버스터미날로 가니 4시10분 노고단 성삼재주차장행 버스가 있었고....
주차장에서 배낭을 메고 2.7Km를 걸으니 노고단 산장이 보이다.
몇년만인가..
새로운 불행한 사실..
야영금지. 야간 산행금지...산장의 인터넷예약...칠선계곡 산행금지..
오기전에 사놓은 2-3인용 텐트가 무색해지고 그 순간부터 애물단지가 되다.
겨우 온갖 아양을 떨어 산장주인에게 텐트를 맡기고 비예약손님으로 숙소를 잡다. 그리고 경화에게 연락...
3:00출발로는 백무동 입산 불가능하고 더군다나 숙소의 인테넷예약 불가능..
순간 기지로 노고단으로 방향선회.
종주계획 무산될 뻔하다가 텐트맡기고 다음날 종주강행키로..
섬진강 줄기를 한 시야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다가오는 붉은 빛 황혼...
이게 노고단의 낙조로구나....
온 세상이 붉은 빛으로 물들고 내 마음도 붉게 물들어 갈즈음 단맛나는 저녁과 함께 젖어노는 피곤함... 아, 어제로부터 지금까지 한숨도 자질 못했었구나...
산장의 낭만이 어제로부터 오늘로 이어지지않는 한 그래도 지나온 시간이 땡겨지는 건 인지상정이라든가?
그래도 예전엔 산사람을 아는 산장주인이었기에 예의 그 정겨운 미소 가득담은 얼굴로 모두 좌우로 밀착합시다. 사람부터 살려야 않겠습니까?
미안한 마음에 소주한잔씩 돌려주며 한판 댕기는 그런 낭만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무뚝뚝하고 험상궂은 얼굴로 벌금입니다. 예의 무서운 규칙을 잘잘 외고 대는 그런 공무원들만 즐비한 산이 되버렸다. 군인막사...
그래도 그냥 오늘은 즐겁기만하다.
몇년만에 맡아보는 정겨운 냄새인가.
몇년만에 눈에 묻혀보는 그런 그리움인가.
몇년만에 들어보는 그런 바람소리며 바위소리며 산소리인가.
오늘은 정녕 온 밤하늘을 가득메운 은하수를 이불삼아 산사람들의 코골이를 자장가삼아 노고단을 베고 고즈넉이 잠을 청한다.
아참 그리고 오늘은 김하늘을 봤다.
어제 이정재와 송승헌이 왔다갔댄다. 영화찍었댄다.
뭐라더라? 뭔 비? 이쁘더라... 근데 왜 그리 조막만하지?
이튿 날
오늘은 장장 25Km를 걸어야한다.
오늘의 목표는 노고단에서 임걸령-노루목(반야봉)-삼도봉-화개재(뱀사골)-토끼봉-연하천산장-형제봉-벽소령산장-선비샘-영신봉-세석산장-연화봉-장터목산장까지다.
천왕봉을 바라보는 밑(장터목)에서 1박을 해야한다.
그래야 낼 제석봉-통천문-천왕봉을 거쳐 어느 계곡으로 내려와서 구례로 귀환. 성삼재주차장으로 그래서 노고단을 다시와야 극단무리 봉우리산악회 회원들을 만날수 있다.
오늘이 고비다.
계단을 올라서니 노고단이 보인다. 실제 노고단은 저만치 올려다보이는 곳에 있건만 맞은편에 쬐메네하게 가짜 노고단을 올려놓았다. 사진찍으라고....
노고단 탐방 예약 사무실 옆에난 길로 드뎌 천왕봉길을 내딛다.
옆의 나무 난간이 꼭 유럽의 목장같은 느낌.
산죽(조릿대)이 양옆으로 나를 길게 맞이한다.
약 1시간 30분정도 좁은 산길 꼭 터널같은 숲길이 이어진다.
보존이 잘되온터라 그런지 사람이 그 터널같은 길에 묻힌다.
거기서부터 난 자동카메라를 들고(무거워서 큰 카메란 포기) 꽃을 찾는다. 지리산 가을 꽃 특히 능선길 꽃이다.
물론 극단에도 꽃은 많지만... 좀 다른 게 있다.
임걸령까지 산죽길을 걷다가 나무로 뒤덮인 나무터널을 지나다보면 어느새 앞이 하얗게 변한다. 탁 트인 공터가 나오고 짧은 햇살이 날 반긴다. 거기서 산의 전모를 본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터널...그렇게 약 1시간 30분쯤을 반복한다.
언덕길이 있고 내리막길이 있고 돌길이 있고 나무계단이 있고 흙길이 있다.....
임걸령 비스름한 곳으로 오니 작은 Sound of music이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아이들과 알프스를 놀러갔을때 점심을 먹고 놀던 그 곳이다.
부드러운 갈대와 푸른 융단이 어루러진 그리고 구름이 어렵게 고개를 넘나들고 있다.
하긴 구름이래도 1500m가 넘는 고갯길을 그냥 넘지 못하겠지...
안개같은 구름이 지나가면 산은 온통 수채화다.
계속 걸어가니 진짜 임걸령이 나온다. 옆으로 작은 샘이 있다.
도착하니 옛 호걸의 자취가 보인다.
임걸이란 호걸의 이름을 딴 고개...
임걸령을 지나니 피아골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피아골은 직전단풍이라고 10월중순 단풍계곡으로 유명한 곳이다.
시절이 안맞으니 그냥 지나가야 한다.
물론 노고단에서도 노고운해와 섬진청류를 볼수 있다.
지리10경 중의 3경을 지나고 있다.
약간의 언덕길을 따라가면 노루목이 나온다.
반야봉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에 있는 바윈데 노고단을 바라보고 튀어나온 모양새가 노루같아서 지어진 이름이랜다.
그 바위에 올라서니 지리산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 노고운해가 장관이다. 사진에 담았다.
산봉우리만 빼고는 전부 구름이다. 마치 하얀바다위에 떠있는 섬들 모양이다.
차가운 바람이 등뒤에 물처럼 드려진 땀방울을 씻어낸다.
유난히 땀이 많은 내게 그것은 전율이다.
한동안 넋을 잃고 앉아 있으니 좀 자리를 내달랜다. 일어나야지.... 아쉽고...
반야봉을 가려면 1시간 30분을 소비해야한다. 동쪽에 가장 높은 봉우리며 지리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봉우리지만 종주시간 아니 내일 접선시간을 맞추려면 무리다. 조용히 피해간다.
반야봉에서 볼 수 있는 건 낙조다. 지리제4경인 반야낙조를 그냥 지나간다. 낮이라서..
여기서부턴 높낮이가 반복되는 능선길이다.
빨치산의 무덤이라고 얘기되는 말그대로 지도명 무덤을 지나면 삼도봉이 나온다. 이 지면은 말그대로 전북.전남.경남 삼도를 잇는 봉우리다. 이곳을 지나니
이전에는 없었던 나무계단이 나온다. 무지막지하게 내려온다. 죽어라고 올라갔구만.... 무려 계단이 550개란다. 그 계단이 끝나면 화개재가 나온다. 여기가 그 유명한 화개장터의 화개 그 산쪽지명이다.
즉 전남과 경남의 도경계지역을 말한다. 산에서도 경계가 있다.
여기서 뱀사골 산장으로 내려가는 좌측길이 있다.
뱀사골..
몇년전에 김영삼인가가 대통령일때 뱀사골 밑에서 발치산들의 영령을 위해 합동제사를 지난적이 있었다.
얼큰하게 막걸리를 마시고 점심을 거른 채 취중 호기로 몇사람이 뱀사골을 오른 적이 있다. 노고단으로 가서 호연지기를 논하기로하고...
웬 호연....
산 중간에 엄청난 급경사를 호기롭게 올라서다 탈진하여 아마도 10시간쯤 기어간것 같다. 대충 5-6시간이면 가는 길인데...
기어가면서 물이며 음식이며 온갖 동정과 동냥을 다받아가며 호연지기했다..
노고단에 올라 호연은 커녕 물만 한바께츠 먹은 것 같다. 어디로 들어간건지...
얼른 고개위로 올라섰다.
여기서부터가 그 유명한 마의 토끼봉이다.
해발고도가 약 150m정도 되는 거리를 올라가는 것인데 급경사와 쉼없는 오르막길로 종주를 발목잡는 첫번째 난관이다.
약 40분정도를 고집스럽게 올라가서 뒤를 보니 온몸에 물이다.
몇년전에도 여기를 오를 때 몇번이고 누군가를 한없이 원망했던 곳이다.
그 땀을 식히며 한참을 내려가면 연하천 산장이다.
아직은 고풍스런 모습이 그대로다.
예전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극단 산맥단원들과 함께 지리산 종주를 했을 때 태풍이 지리산을 덮쳐 남자단원 5명중 2명탈진 한명(나) 무릎부상 또한명 자상 한명만으로 짐과 여자들을 데리고 벽소령을 끝내 통과 못하고(엄청난 바람과 부상자,탈진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패잔병으로 군사도로로 내려왔던 기억이 있었다. 거기다가 온통 비까지 맞고는 많은 시간을 들여 거의 아사, 빈사, 동사상태로 연하천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또 한번의 지리산에서의 탈진 기억이다.
여기선 맥주를 판다.
한명이 광고에 나오는 폼으로 나무의자에 올라가 온 몸을 뻗으며 손을 높이 들고 011과 016을 비교한다. 그런데 016이 터진다. 한바탕 웃음...
여기서 라면을 끓여 먹는다. 그리고 커피 한잔...
아침 7:30분에 출발해서 어찌어찌 12:30분에 도착했다.배가 무지 고팠다.
예정보다 1시간 늦었다. 벌써 필름한통을 다썻다.
꽃 사진만 20여장이나 된다.
꽃말과 꽃이름을 뒤에 적어놔야겠다. 잘 나와야 할텐데...
야생화... 한국의 야생화.... 자세히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아름답다는 말보단 수려함이다. 우리 꽃들은 대개 수줍게 핀다. 그리고 작다.
그리고 그곳에서만큼은 대부분 순수한 우리말이며 절대로 체면차리는 말들이 없다. 그저 밸꼴리는대로 생긴대로 역할대로 붙인 이름들이다.
지리터리 애기똥 엉겅퀴 질경이 며느리오줌 .....
살가운 이름들이다. 이름대로 작고 귀엽다.
산은 모든 것이 조화된 곳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연극과 어느 면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모든 것까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산은 나무와 풀 그리고 바위와 물, 흙과 바람 그리곤 하늘과 구름 비와 눈, 빛과 어둠 그리고 동물과 사람이 하나된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게 간직되지 않을 것이 없다.
우린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복의 개념으로 산을 타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산은 절대로 정복당하지 않을 뿐더러 정복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같이 하려고 있을 뿐이다. 같이하면 된다.
우리의 눈은 앞만 보기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초식동물과 같이 약한 동물처럼 자기를 공격하는 동물을 먼저 보기위해 눈이 옆으로 있거나 육식동물처럼 공격목표의 거리를 재기위해 눈이 앞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을 정복을 위한 대상으로만 파악한다면 그것 역시 불행한 사람일 뿐이다. 직업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곤 말이다.
산에 있는 모든 것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발견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자연 그대로어우러져보기위해 산을 가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가 그곳에 어울리지못한다는 것 자체가 불행한 것이다.
산속에서의 어색함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 산행의 관건이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의 모든것에 익숙해져야하고 내가 산의 일부가 되어야한다.
그것은 자신의 방식대로 이루어지리라....노력한다면...
한시간 뒤에 연하천산장을 떠났다.
앞서 간 한무리의 사람들 중 한사람이 생각난다.
4인 중 여자2인과 남자2인이다.
한사람이 산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같은데 그것을 드러내길 좋아하는 것 같다.
결국 나보다 뒤처졌지만 내가 잘타서가 아니라 산을 타는 것은 집단의 평균이 아니라 가장 늦는 사람을 기준으로한다는 것을 잊은 탓일 거다.
그런 사람들은 혼자타는 것이 좋다. 아니면 전문가들과 함께 하던가.
삼도봉에서 만난 사람은 그 바위 꼭대기에서 서울로 전화를 하더라.
"제가 그 팀의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오늘 아무얘기 않고 지리산을 왔습니다. 서울가면 사표를 낼 것 같습니다. 그동안 고마왔습니다."
그 말을 끝내고 물을 나누는 그 사람의 표정은 그냥 덤덤했다.
산은 그런 사연들을 말없이 보듬는다.
수많은 인생의 단편들이 산에서 묻힌다. 그저 산은 그걸보고 미소만 지을 뿐...
두개의 바윗돌이 서있다해서 형제봉을 지나 형제봉을 지나니 벽소령이다. 이미 3시다. 너무 시간을 지체한 듯하다
아침부터 보던 사람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계속 얼굴을 마주한다.
벽소령의 기억은 저녁에 도착해서 고개를 넘어가는 구름들 사이로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이다. 너무 커서 몸이 뒤집어질 뻔했던 기억이다. 맞은편 봉우리로 올라가면 잡아올 수 있을 만한 거리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안개처럼 온 몸을 휘감아 오는 구름사이로 달을 쳐다보는 내 모습은 한마디로 신선의 모습 그것이다.
벽소야월- 지리십경중 5경을 또 지난다. 밤이 아닌 관계로...
벽소령에 올쯤 양말에 문제가 생긴 듯하다.
까닥하면 물집이 생길 것 같은 느낌에 도착하자마자 양말을 벗고 발을 식힌다. 물집이 잡히면 끝이다.
벽소령은 많이 변한 것 같다. 예전엔 조그만 토굴처럼 움막집이었는데 지금은 초현대식 건물이 들어섰다. 물도 없었지만 펌프로 끌어 올린 저수탱크에서 물을 댄다. 암굴에서 따뜻한 차를 내어주던 하얀 수염이 멋있는 할아버지가 안계신다.
신을 다시 신고 쵸코파이 한개를 사들고 벽소령을 출발했다.
한시간 쯤 지나서 선비샘에 도착했다.
산골에 사는 화전민 노부부가 그렇게도 선비가 되고 싶어하다 죽었다해서 그 자리에서 뽀골뽀골 올라오는 물에다 선비이름을 붙여줬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런지 물은 쫄쫄쫄이다.
여기서 두시간을 더가야한다.
현재시각 4시가 지나고 있다.
마주보이는 먼곳 영신봉쪽으로 비구름이 지난다.
산을 온통 뒤덮고 있다. 얘기론 낼 비가 온단다.
여기서부터 약 2시간 거리동안 어둠과 비구름과 바람을 안고 세석을 향해 나간다. 지리산의 또다른 모습이다. 사실 난 이 분위기를 좋아한다.
여름엔 주체할 수 없는 땀때문에 겨울을 좋아한다.
특히 눈을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음산함과 격정스러움 그런 것이 재밌다.
벽소령을 지나면서부터 삼도에 걸친 큰 산인 지리산의 특징이 나타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면서 벽소령을 중간으로해서(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전라도사투리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바뀐다.) 말이 바뀐다. 그게 참 재미있다.
식물의 식생도 바뀌고 있다.
서쪽에 많이 피어오른 난같은 풀(아직 이름을 모른다.)이 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사라지면서 용담이 주류를 이룬다.그리고 가을 꽃들의 대부분이 보라색 계통의 색깔이다.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
보라색은 정서불안을 야기하는 우범색깔로 분류되지만 귀족스런색깔이다.
그만큼 충동적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들국화의 색깔도 보라색이다.
예전 어느 땐가 종주했을 때 가을철 세석에서 연화봉우리를 내려가는 길목의 고개에 피어 있는 보라색 들국화의 무리는 저녁무렵의 어스름한 보라빛과 어울려 환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 황홀한 기억이란.....
그만큼 보라빛은 고귀한 빛깔이다.
한시간쯤 갔을까?
종주코스의 두번째 복병 영신봉이다. 그 가파름과 끝없는 오르막이란....
많이 지쳤다. 약 200m를 오르는 것이다. 해발고도상으로...
멀리 세석이 보일 듯한데 아직 멀었다.
한신계곡에서 세석으로 오를 때 그 힘든 고갯길을 올라 언덕을 넘어섰을 때 그 광활한 세석평전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약 100여동 이상의) 텐트와 반디불같은 수많은 불빛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 느낌을 다시 보기위해 세석을 찾았건만 증축공사가 한창인 현대식 건물만이 날 맞이하고 있다.
또 실망이다.
일단 예전 숙소를 개조한 취사장에서 밥을 준비하고 장터목으로 갈 준비를 하던 중 6시가 지나는 것을 보았다.
현재 몸의 상태... 어두움... 비가 솔솔 오기시작하다...
아무래도 무리다.... 방 예약을 하고 저녁을 먹었다.
이미 예정은 깨졌다. 낼 일은 낼 생각하자.
세석의 철쭉도 지리10경중 하나다.
이글의 지리6경에 해당한다.
이것도 4월이 아닌 관계로 또 지나간다.
저녁에 취사실에 있던 사람들기리 분위기가 붙었다.
간만에 소주를 4잔이나 들이켰다.
조금있으니까 두부부가 한조인 팀에서 고기를 나눠준다.
햇반을 먹는 나보고 금방 지어낸 밥을 권한다. 집에서 담궈온 김치도 꺼낸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모두 방을 들어가지않는다.
각자 지내온 인생이야기.. 산에관한 이야기들...
그 두 부부는 여자들이 초행길인 모양으로 한신계곡을 올라올 때 무척힘들었는 모양이다. 하긴 한신계곡의 막바지부분은 살인적인 오르막이다.
낼 비가 온다고 하니까 이견이 생긴 것이다.
대부분 하산을 권한다. 나도 거들었던 것 같다.
산을 무시하면 안된다. 산에서는 겸손이 필수다.
소주잔을 돌리던 사람은 자유업으로 지리산 근처를 지날때마다 차를 밑에 세워놓고 계곡을 탄단다. 매번 1박 2일로...
한사람은 노인네 16명을 데리고 왔다. 계모임이다.
노고단산장에서 본 팀이다. 너무도 시끄럽던 할아버지팀이었는데....
그래도 세석까지 왔다.
22Km가 넘는 거리다.
여기선 전화가 터지지않는다. 공중전화도 없다.
경화에게 연락을 포기하고 오랜만의 장기행군 후 단잠을 자러 산장으로 올랐다.
하필 내게 가장 친절해던 그 사람이 정말 살인적인 코골이였다.
그것도 옆에서... 나도 모르게 깬 12시... 겨우 3시간도 못잤는데...
밤새 뒤척거리다가 띄엄띄엄 잤나보다. 눈을 뜨니 7시반이다.
옆사람도 씨팔시팔하며 같이 일어났다.
어제 늦게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이다.
삼신봉코스가 지리산의 모든 봉우리를 다 볼수 있는 고급등산로코스다란걸 알려준건데.... 그 사람도 코고는 것 땜에 그리고 4시 새벽산행하는 사람들의 더드는 소리와 뒤척거림 때문에 잠을 못잤댄다.
아침에 같이 밥을 먹고 8시에 먼저 떠났다.
차를 성삼재 뱀사골 방향밑으로 세워놔서 오늘 성삼재까지 버스타고 가야한댄다. 잘하면 이다가 구례버스터미널에서 다시만날것 같다고 하면서....
난 8:50분에 출발했다.
많은 고민속에서 그 사람이 가는 삼신봉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세석에서 천왕봉코스는 많이 가본 코스고 칠선계곡을 못탈거면 굳이 시간상으로도 갈 필요는 없었다.
딱히 다른 코스는 맘에 들지않았다.
지리산 전경을 찍어가자. 그래서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실 앞으로의 길에 지리십경이 존재한다.
대성골끝자락에 존재하는 불일폭포- 불일현폭이라고 한다.
그리고 장터목으로 가는 길의 연화봉- 연화선경이라고 한다.
천왕봉의 일출-천왕일출이라고 한다.
그리고 칠선계곡 그래서 지리10경이 완성된다.
내려가는 길은 거림골코스로 내려가다가 대성골쪽으로 방향을 튼 후 좌측으로 빠져야한다.
한참을 내려가던 중 아차 싶었다.
대성골 표지판을 놓친 것 같다. 시간상으로 20분정도에 나타나야하는데 벌써 40분이 넘게 내려왔다. 꽃사진에 미쳐서 지나친 것 같다.
이것도 하늘의 듯이리라 생각하며 그냥 내려왔다.
시간도 남는다. 12시쯤이면 거림골 버스정류장에 도착할 것 같다.
내려가다보니 예전에 거쳤던 계곡이다. 생각이 많이 난다. 물이 무척 많았던 계곡....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바위위에 누워서 하늘을 보고...단풍이 부분적으로 빨개지면서 빨강과 초록의 조화가 흰구름과 푸른하늘 그리고 붉은 햇살과 맞물려 장관이다.
계곡을 다 내려오니 12:30분이다.
매표관리원한테 물어보니 청천벽력!!!!
버스는 하루에 4대 앞으로 3시에 차가온단다.
진주까지 45분 거기서 한시간 걸려 하동으로 거기서 40분 구례로 거기서 45분 성삼재로... 그러면 오늘 버스로 성삼재에 못오른다.
그러던 중 한 지프가 오나. 사람을 내려주고 나가는 것 같다. 천운으로 히치하이킹에 성공! 진주까지 갈 수 있었다. 소방대원이란다. 119에 대해 침이마르도록 이야기.... 죽은 사람 건지는 이야기... 사명감없이 못해낼 직업이란 이야기.. 어느던 버스터미널이다. 그저 고마움에 어쩔줄 모르는 날 뒤로한채 아스라히 사라지고 있다.
하동으로 한시간...글고 구례로 40분 도착하니 3:50분이다.역시!
그 사람이 와있었다. 밑에 도착한건 나하고 비슷한 시간.. 역시 히치하이킹으로 하동까지... 나보다 30분 전 차를 탔었나보다. 같이 올라가고 있었다. 성삼재로..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면서 성삼재에서 헤어졌다.
노고단에 도착해서 예약상황을 보니 예약이 안되어있다. 뭔가의 착오다.
안면을 튼 관계로 7명 자리를 꿰어 찼다.
다음으론 도착시간이 문제가 되었다.
8시까지 도착이 안되면 벌금을 물리겠단다.
전화로 공포감을 주니 엄청 달렸나보다. 뒤에 얘기가...
몇번 더 얘기해서 8:30분가지 타협을 봤다. 그때까지 오면 각서한장으로 때우기로.. 한 30분 뒤에 9시까지로 더 연장했다. 하지만 전달하진 않았다.
8:00쯤에 성삼재에서 올라오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계단길(지름길)을 모를 것 같아 내려가 보니 저 멀리서 불빛이 요동하고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 도착하니 8:35분이다. 서회가 원흉이었으므로 서회보러 각서를 쓰게하고 저녁을 준비한다.
이게 끝이다.
다음날엔 노고단에서 노루목까지 노루복에서 후퇴하여 피아골로 내려왔다.
소백산을 기원하며 귀향길을 택한다.
낼 어머님 수술이다.
며칠 뒤를 생각하며 오늘을 보낸다.
어째튼 무사한 산행을 축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