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하는 마음으로 일대사 참구
<10> 증시랑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답장 ①-1
[본문] 보내온 편지는 잘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로부터 벼슬살이를 하기까지 여러 큰 종장(宗匠)들을 참례하다가 중간에 과거시험을 보기도 하고 결혼도 하여 벼슬살이를 하는데 시달린 바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악각(惡覺)과 악습(惡習)에 끌려 다니느라고 능히 순일하게 공부하지 못한 것을 큰 죄로 여기고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또 무상한 세상이 가지가지가 다 허망하여 한 가지도 즐거울 것이 없음을 통렬히 생각해서 오로지 하는 마음으로 이 일단대사인연(一段大事因緣)을 참구하고자 한다고 하시니 이 병든 중의 마음에 심히 흡족합니다.
[강설] 비로소 대혜선사의 답장이 시작되었다. 이 서장이라는 간화선 공부의 지침서는 모두가 대혜선사가 참선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질문에 답장을 써서 보낸 것을 시자가 낱낱이 기록하여 두었다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글들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이 편지중의 몇 장은 아직도 일본 모 대학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기도 하다. 앞에서 증시랑이 보낸 편지를 받고 격려하는 내용을 담았다. 악각(惡覺)과 악습(惡習)에 끌려 다녔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악한 일을 많이 저질렀다는 의미가 아니다.
텅 빈 마음으로 무심히 공부에만 열중하지 못하고 세속적인 온갖 일에 골몰하여 살았다는 뜻이다. 그것이 큰 죄라고 생각하였다. 일단대사인연(一段大事因緣)이란 “한 가지 큰 일”이다. 선가에서 굳어진 말로 일단대사인연이라고 쓴다.
선불교에서 말하는 이 “한 가지 큰일”이란 무엇일까? 생사를 초월하는 큰 깨달음이다. 범부를 고쳐서 성인이 되는 일이다. 중생이 부처가 되는 일이다. 이 일에 목숨을 걸고 천신만고 끝에 깨달음을 이루었던 대혜선사에게는 누군가가 또 이와 같은 일에 인생을 걸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더 이상 기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병든 중의 마음에 심히 흡족합니다”라고 한 것이다.
대혜선사, 재가수행자인
증시랑을 높게 평가한 글
[본문] 그러나 이미 벼슬하는 사람인지라 녹을 받아서 생활을 삼으니 과거를 보고 결혼하고 벼슬사리를 하는 것은 세간에서는 능히 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한 공의 죄가 아닌데 작은 죄로 크게 두려워하니 이것은 끝없이 광대한 겁 동안 참다운 선지식을 받들어 섬겨서 반야의 종지를 깊이 훈습하지 않았다면 어찌 능히 이와 같겠습니까.
[강설] 이 세상에 몸을 담고 사는 사람치고 누구나 다 의식주가 필요하다. 또 그 의식주를 위해서 무엇인가 직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결혼도 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 당연한 일을 죄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종교적으로 지극히 선량한 사람이다. 증시랑은 이와 같이 당연한 일을 자신의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대혜선사는 “공(公)의 생각이 그렇다면 공은 과거 한량없는 오랜 세월 이전부터 참다운 선지식을 받들어 섬겼으며 반야지혜를 깊이 훈습한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 이런 사람은 선천적으로 종교성이 남다른 사람이다. 타고나면서부터 종교성이 뛰어나야 종교생활이 순탄하다. 잠깐의 인연과 작은 신심으로 종교생활을, 그것도 출가수행자의 생활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다만 사찰생활에 인연이 조금 있어서 절에서 살뿐이다. 부처님이나 불교와는 거리가 멀다. 그와 같은 사실을 대혜스님은 잘 알고 있기에 증시랑을 극구 찬탄한 것이다.
[출처 : 불교신문 201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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