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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재~파계봉~팔공산서봉~비로봉~하늘정원~동산리
경북 칠곡군 동명면과 군위군 부계면를 잇는 79번 도로가 힘겹게 오르내리는 고개 한티재는
팔공지맥의 네번 째 구간이 되는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며,고개를 넘어 부계면 쪽으로 이십 릿
쯤 발걸음을 더 보태면 제2석굴암이라고 불리는 군위 삼존석굴도 만날 수가 있다.이 삼존석굴
은 신라 소지왕15년(AD493년)에 극달화상이 창건한 자연석굴사원이며,경주석굴암의 선행(先
行)양식으로 국보 제109호로 지정된 보물이다.경주석굴암보다 250년이 앞선 양식의 이 삼존
석굴은 거대한 자연암벽과 자연굴속에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 그리고 관음보살이 안치되어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그러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의 답사객들이 끊임없이 넘나드는 고갯
마루의 쉼터 한티휴게소는 문을 닫아 걸었다.내부시설중인지 영업을 이미 작파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기실 산객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호랑이 사냥꾼에게는 토끼가 보이지 않듯이
산객에게는 멧덩이만 보이는 까닭이다.
오늘의 산행 들머리는 진행과정상 지난 번의 하산지점인 동산계곡 상류지점의 주차장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이 거꾸로의 역산행이 된 것이다.그 이유는 이어타기 종주산행의 특성상
날머리의 주변상황과 산행의 난이도에 따른 선택이 역산행을 하게 되는 주요 이유일 터이다.
오늘의 역산행은 전자의 경우가 된다.한티재 고갯마루에 자리하고 있는 팔각지붕의 한티휴게소
앞 널찍한 주차장 맞은 편에는 컨테이너 반토막짜리 크기와 모양의 흑갈색 팔공산탐방지원센타
가 자리하고 있는데, 산길은 그 옆으로 난 흑갈색의 데크계단으로부터 시작이 된다.파계재를
2.0km 앞두고 있는 지점이라고 산행안내 이정표가 귀띔한다.서너 시간 동안의 답답한 버스
속을 벗어난 산객들이 꽃 본 나비처럼,물 만난 기러기처럼 코를 벌름거리며 진초록의 숲으로
기어든다(10시).
요즈음 보기드물게 날씨는 꽤나 시원하다.파란 하늘을 막아놓은 희끄무레한 구름은 높직하고
우울한 기색이지만 짙은 녹음의 숲은 선선한 기운이 가득하고 숲향은 그윽하기만 하다.산길은
도립공원답게 여느 지맥의 산길에 비하면 고속도로나 진배가 없다.도립공원관리소에서 세워
놓은 긴급구조신고처의 전화번호와 현재위치번호가 적혀있는 1미터 높이의 긴급구조 말뚝이
200~300미터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다.신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 숲이 이어지는가 하면
어느 틈에 꺽다리 소나무 숲으로 행색이 바뀌기도 하는 숲길이다.꺽다리 소나무 숲을 지나고
마치 연마석으로 부드럽고 매끈하게 연마를 해서 겉면이 둥글둥글한 모양의 바위들이 옹기
종기 자리하고 있는 곳을 지난다.
산길 좌측으로 '願堂封山(원당봉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해묵은 빗돌 하나가 서있다.
이 빗돌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1.5km쯤 떨어진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파계사에서 수백 년
전에 세워놓은 오래 된 빗돌인데,원당봉산은 '원당(願堂)'과 '봉산(封山)'이란 두 단어를 조합
한 것으로,원당은 왕실의 안녕이나 명복을 빌던 장소를 뜻하며,봉산은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게 금지한 산을 의미한다.따라서 이 표석은 원당으로 지정된 사찰의 나무를 함부로 벌목
하지 못하게 하고 주변 산림도 보호하고자 세운 것이다. 1806년 작성된 '파계사원당사적'에
따르면 파계사는 1696년(조선 숙종22년) 세자(영조)의 탄신을 기원하기 위해 왕실의 원당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1696년 이후 파계사가 원당으로 지정되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한티재에서 1.6km쯤의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대구문화유산이다.
원당봉산의 빗돌을 뒤로하면 헬기장을 가로지르게 되고 아름드리 해묵은 노송 두어 그루가
자리하고 있는 언덕 같은 봉우리를 넘어서면 말안장 같은 안부 사거리에 이르게 된다.파계재
다.좌측은 제2석굴암 방면으로의 등하행 산길이고 우측은 파계사 쪽으로의 등하행 산길이다.
맞은 쪽의 산길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동봉과 갯바위를 이르고 있다.다갈색의 솔가리와 가랑잎
이 수많은 입산객들의 자취로 다져진 산길은 울창하게 우거진 활엽수의 터널숲길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울멍줄멍 줄을 잇기도 하고 옹기종기 더미를 이루어 있기도 하다.치받이
오르막 산길은 그들 사이를 미로처럼 꼬리를 좇기도 하고 그들을 곧장 타고 넘기도 한다.
그런 뒤에 오르게 되는 봉우리가 해발991.2m의 파계봉이다.바위봉이기도 한 정수리 한복판
에는 대구공산산악회에서 세워놓은 검은색 빗돌이 세워져 있으며 1978년에 재설된 삼각점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바위들이 사뭇 늘어난 산길이 꼬리를 물고 아름드리 소나무들도 이따금씩 끌밋한 허우대를
과시하는 산길이다.울창한 신록의 그늘은 깊숙하고 그윽하다.팔공산학생야영장(우측1.6km)
으로의 등하행 산길이 나 있는 삼거리를 지나고 서너 평 남짓한 공터의 붕긋한 멧부리를 넘어
서면 산길 우측으로 '출입금지'라고 써있는 작으마한 입간판이 걸려있는 금줄이 산객의 눈길을
끈다.주능선 우측은 급경사의 험로의 산사면이기 때문이다.산길은 다시 헬기장으로 꼬리를
잇는다.
헬기장 건너 편 저멀리 톱니처럼 들쭉날쭉한 팔공산의 바위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정상 부근
이 운무에 싸인 서봉이 아스라하다.한구석에는 비상구급함까지 마련이 되어 있는 헬기장을
뒤로하면 머지않아 삼거리 갈림길을 또 만나게 된다.'대구올레'라고 써있는 앙징맞은 화살문양
의 이정표가 대구올렛길을 안내하고 있는 삼거리 안부 마당재다.
바위능선 뒤로 서봉
마당재를 뒤로하는 산길은 온통 바윗길이다.울창하게 우거진 신록의 그늘은 온통 바위들
천지인데 바위들은 하나 같이 겉면은 날카로운 구석이 없이 거개가 둥글둥글 부드러운 면을
띠고 있다. 가파른 바위비탈에는 실배암 같은 고정로프가 산객을 기다리고 있다.고정로프의
도움으로 바위비탈을 올라서면 너럭바위 전망대가 산객의 시선과 발길을 사로 잡는다.미로
처럼 꼬리를 잇는 바윗길은 굴곡이 심하고 뒤틀림도 잦다.대개의 경우 이러한 행색의 능선을
톱니능선이라고도 하고 공룡능선이라고 일컫기도 하는 능선이다.맞은 쪽으로 정상부위가
희뿌연 운무로 싸인 서봉이 시나브로 다가온다.일렁이는 바람이 좀체로 기동을 안 하고 있으
니 비교적 시원한 날씨라고는 하지만 팥죽땀은 연신 줄줄 흐른다.
곤두박질 할 것만 같은 바위벼랑을 실배암 같은 고정로프의 도움으로 내려서면 바윗길은
주능선 좌측의 북쪽바위사면으로 어렵사리 꼬리를 잇는다.바위능선의 날등을 잇지 못하고
좌측의 바위사면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불쑥 날등으로 올려칠 때면 너럭바위 전망대가 산객을
기다린다.전망대 주변을 함께 지키고 있는, 바위에 뿌리를 담대하게 묻고 있는 소나무들이
장하다.10여 미터쯤 길이의 너럭바위가 전망대 노릇을 하고 있는 해발 1054m의 가마바위봉을
뒤로하는 미로 같은 급경사 내리막을 고정로프의 도움으로 내려선다.연신 흐르는 팥죽땀을
훔쳐가며 기신기신 바위벼랑을 내려서면 타이어매트가 깔려있는 데크계단이 산객을 기다린다.
갈지자를 짓는 계단을 두 차례쯤 거치면 울멍줄멍 줄을 잇는 바위들의 산길이 꼬리를 잇는다.
아직도 서봉은 저만치에서 산객을 지그시 굽어보고 있다.거북이처럼 사지를 꼼지락거리며
바위능선을 오르고 내려서기를 거듭한다.그런 뒤에 한 차례 가파른 치받잇길을 올려치면
'팔공산자연공원안내도'가 담겨있는 큼지막한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멧부리에 오르게 되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20여 미터쯤 바윗길을 거치면 바위봉이 두엇 불툭 솟구쳐 있는데 이 암봉이
해발1150m의 팔공산 서봉(西峰)이다.
암봉덩어리 서봉 정수리 한복판에는 네모진 두어 자 높이의 검은 빗돌이 세워져 있는데 삼각점
노릇을 겸하고 있는 빗돌이다.사각기둥의 윗면에 방위각이 새겨져 있다.삼각점 노릇을 함께
하고 있는 정상 빗돌 뒤편으로 높이가 어금지금한 암봉이 하나 더 솟구쳐 있는데 그 암봉 정수리
한복판에는 삼성봉이라고 새겨진 빗돌이 하나 더 세워져 있다. 빗돌 옆면을 보니 '서봉의 옛이름'
이라고 새겨놓았다.예전에는 서봉을 삼성봉이라고 일컬었던 모양이다.
갓바위는 8.4km를 남겨두고 있으며 동봉은 불과 1.1km를 남겨두고 있는,통신중계철탑이
여럿 서있는 비로봉이 손에 잡힐 듯한 서봉을 뒤로하면 헬기장을 가로지르게 되고 헬기장을
지나면 타이어매트가 깔려있는 데크계단이 내리받잇길을 안내한다.데크계단을 다 내려서면
수태골주차장(2.9km)으로의 등하행 산길이 나 있는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게 되고 삼거리 갈림
길을 지나서 완만한 비탈을 오르면 산길 우측으로 샛길이 하나 보이는데 그 샛길로 들어서면
곧바로 좌측의 바위절벽에 돋을새김한 마애약사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다.이 약사여래좌상의
축조 연대는 8세기 무렵으로 추정이 되는 시기이니 통일신라의 중반기와 후삼국시대가 도래
하기 시작할 무렵 사이의 시기일 것이다.
이다.보통 왼손에는 약병을 가지고, 오른 손으로 시무외(施無畏;중생에게 위해를 주지 않고
두려움이 생기지 않게 함)의 인(印)을 맺고 있다.이곳의 약사여래좌상은 콧대와 턱선으로
이어지는 선이 힘차고 부드럽다.약병을 받쳐 든 왼손은 조심스럽게 배꼽 주변에 두었으며
왼쪽 어깨와 절반의 가슴을 드러낸 얇은 옷은 사부대중 앞에 선 보살의 제례복처럼 얌전하고
가지런하다.
약사여래의 둥근 광배는 당초무늬를 새겼으며 바깥은 불꽃무늬를 새겨놓았다.섬세하고
화려함은 약사여래가 앉아있는 대좌에서 더욱 뚜렷하다.연화석은 연꽃잎을 아래와 위로
향하도록 새겼으며 그 아래로는 입을 벌리고 짐짓 눈을 부라린 두 마리의 용이 좌우에서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이 마애약사여래좌상의 대체적인 감흥은 그 시대의 특징이
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함과 부드러운 질감 그리고 섬세함이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한 대구의 문화유산이다.
마애약사여래좌상을 뒤로하고 주능선으로 들어서 비로봉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가시철망
울타리가 앞을 막아서는데 입산객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울타리가 그만큼 제껴져 있다.울타리
를 넘어 숲을 빠져 나오면 하늘을 찌를 것처럼 우뚝우뚝한 통신중계철탑이 자리하고 있는
비로봉 정상의 발치가 된다.비탈길을 따르면 '팔공산천제단' 빗돌을 만나게 되고 내처 발걸음
을 더하면 오르게 되는 멧부리가 해발1193m의 팔공산 비로봉이다.비로봉 꼭대기에서의 조망
은 통신중계철탑 등의 시설물들로 인해 다소 퇴색이 된 측면이 있다.그래도 비로봉에서의
조망은 만만치 않으니 이러한 시설물들이 없고 그 자리에 본래의 숲을 간직한 멧덩이가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그 조망은 과연 어떠했을까.
서봉에서 바라본 비로봉
유봉지맥의 분깃점이자 팔공지맥의 맹주인 팔공산의 정상 비로봉에서 팔공지맥의 산길은
비로봉 정수리에서 발길을 되돌려 50미터쯤 내려서면 우측으로 낡은 창고 건물이 보이는데
그 낡은 창고를 우측으로 끼고 돌면 양회임도를 만나게 되는데 지맥의 산길은 그 임도와 함께
하며 꼬리를 잇는다.양회임도를 따르면 머지않아 임도 우측으로 멧덩이 하나가 올려다 보이는
데,해발1213m봉의 꼭대기 주변에는 철조망이 높직하게 쳐져 있다.울타리 너머는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그 봉우리에서 철조망을 따라 우측으로 이동을 하는 지맥의 산길이
위험스럽고 허섭하다고 한다.군부대에서 제발 이쪽으로는 발걸음을 하지 마시라고 접근을
절대사절하고 철조망 등으로 이동을 더욱 어렵게 하고있는 구간이 아닌가.
그 쪽으로 발걸음을 하려다가 중동무이하고 양회임도를 곧장 따른다.양회임도는 군부대
정문으로 이어지고 정문 좌측으로 데크계단길이 나 있다.데크계단길은 군위군에서 조성해
놓은 하늘정원으로 이어지는 길이다.하늘정원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는 산상의 정원에는
'軍威하늘亭(군위하늘정)'이라는 현판의 육각정이 자리하고 있다.엷은 운무 속의 하늘정원
은 조성해 놓은지가 일천한지 다소 썰렁하다.거개의 정원이나 공원에는 해묵은 수목들이
듬직하고 넉넉한 품세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어야 운취도 있고 분위기도 아늑하기 마련인데
그런 점이 아쉽다.엷은 운무가 시야를 가로막은 탓에 군위 쪽으로 열려 있는 조망은 기대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하늘정원의 정자
하늘정원을 뒤로하고 군부대의 담 옆으로 난 임도를 따르면 하늘정원 탐방로를 따라 청운대
를 올라본다.널찍한 너럭바위 전망대가 노송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청운대는 절경의 조망을
산객에게 안겨 줄텐데 운무가 농간을 부리고 있다.조망의 문이 닫혀 있으니 절경의 전망대는
여느 이름없는 전망대만도 못하지 않은가.그곳을 돌아나와 오도암 쪽으로 나 있는 가파른
내리받잇길이 나오는데 가파른 내리받잇길은 데크계단이 안내를 하고 있다.그러나 명색이
지맥을 타기로 한 마당에 '원효구도의 길'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는 오도암 가는 길로 들어
설 수는 없는 일이다.오도암 가는 길목에서 반대 방면으로 발걸음을 하면 다시 임도를 만나게
되는데 이 임도를 줄곧 따르다가 지맥의 산줄기로 붙게 되는 삼거리 길목에서 우측의 완만한
비탈로 접어들면 지맥으로 붙을 수가 있다.
그러면 산성터의 흔적이 남아있는 해발1009m봉을 오르게 되고 1009m봉을 넘어서 완만한
비탈을 따르면 헬기장에 닿게 된다.그러면 오늘 지맥 산행의 날머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산객을 비롯한 동료들은 그냥 아스콘 포장도로를 따르기로 한다.우측 저만치의 나지
막한 지맥의 산길을 따르거나 이렇게 포장도로를 따르거나 지맥의 언저리를 따르는 것으로
만족을 할 참인 게다.군부대의 악착 같은 저지와 이런저런 핑게로 1213m봉과 1009m봉의
1.5km쯤의 지맥을 고지식하게 잇지 못하고, 그 곁을 따르는 작전도로를 따르는 것으로 만족
을 하며 오늘의 구간 산행을 마무리 한다(14시). 비교적 후덥지 않은 날씨 탓인 모양이다.
준비한 식수는 절반이상이 그대로 남았으며 행동식도 거지반 손도 안댄 채 그대로 남아있는 게
아닌가. (2018,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