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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里長)과 파부균분(破釜均分)
십여 년 전, 고향 친구들의 도움으로 초등학교 동창 창립총회를 마무리하고 직장으로 돌아와 근무하는 중 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동창회 때 자신의 돈으로 나무젓가락 몇 통을 샀는데 모임이 끝났는데도 아무런 금전적 보전이 없어 섭섭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고향 이장(里長)이고 나름 지역 유지인데, 지역 유지를 이렇게 홀대하면 되겠느냐?”는 항의 전화를 받고 적잖이 실소한 사실이 있다.
그런 요즘 저승사자 위에 ‘농촌 이장(里長)’이라는 말이 있다. 몇 해 전 한 신문에서 충남에 소재한 마을 주민들이 “통행료 500만 원을 내라”며 장의차를 막고 유족을 협박, 수백만 원을 갈취한 사건을 보도하면서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한 어촌에서는 어촌에 살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에게 가구당 1억을 요구했는가 하면, 경기도 한 농촌에서는 마을 대책위원회에서는 귀농하는 사람에게 “100억 원을 내놓으라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몇 년 전 한 어촌에서 태풍이 발생하자. 마을 사람들끼리 작당하여 어장의 태풍 피해를 부풀려 피해 보상금을 받은 후 나누어 가져 한마을 주민 20여 명이 한꺼번에 전과자가 된 일이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아는 시골에 석산(石山)이 하나 있는데, 명절이면 석산 인근 마을에 한 가구당 수백에서 수천만 원씩 총 수억 원씩을 30여 년간 검은돈을 나눠 주어야 해서 정작 명절이면 직원들에게는 보너스조차 주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석산(石山) 사주는 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으로 법인자금을 유출하고 있으며, 유출된 자금을 이용 석산 인근 마을의 땅과 주택을 모조리 사재기하는 바람에 시골의 땅값이나 빈집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등 부동산 과열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야 사주나 마을 주민들 또한, 검은돈에 맛 들여 있어 조용하지만, 한쪽 몫이 줄어들거나 탈세나 인허로 문제가 되어 사정 기관의 수사로 이루어지면, 사업주는 물론 시골 마을 주민 전체가 전과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물론 언론 보도의 이면이나 풍문을 액면 그대로 믿을 것은 아니다. 또 일정 부분은 농·어촌에서도 그럴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기존 거주한 사람들은 시골에 도로를 정비하고 정수장 시설 등 농어촌 기반 시설을 설치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귀어(歸漁)나 귀농·귀촌자들이 아무런 배상 혹은 보전금 없이 무작정 시골이나 어촌에 들어와 산다는 것도 염치없는 짓이다. 따라서 귀어나 귀촌자들 또한 기존 시설을 이용하려 하다면 발전기금 형식으로 일정 금액의 비용을 지불한 것이 꼭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지나친 욕심이 문제다. 마치 어촌이나 농촌에 들어와 정착하려는 사람들이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시골 기반 시설을 이용하는데 마치 호구인 양 이들에게 무리한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 행위이다. 최근 들어 농촌에 이러한 시설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앞으로 이런 일은 더욱 사회적 문제화가 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돈에 미친 이장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으나 중앙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한다.” 비유가 조금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파부균분(破釜均分)’ 즉 ‘가마솥을 부숴 반쪽 나눠 준다’라는 말로 즉 ‘작은 이익에 목숨을 거는 세상’과 같은 것이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인사부(人事部)에 나온 이야기에 의하면, 세조 때 전라 감사 함우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감사로 갔을 때, 지역의 명문가의 형제가 서로 큰 가마솥을 차지하려고 싸우다가 관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함우치는 크게 노해 아전을 시켜 작은 가마솥 두 개를 급히 가져와 때려 부숴서 근량으로 달아 정확하게 똑같이 나눠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형제가 정신을 번쩍 들어 소송을 즉각 취하했다. 깨진 솥의 쇳조각을 다 가져봤자 작은 가마솥만 못했기 때문이다. 작은 이익에 천륜을 등지고 싸움질이니 이는 옛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중국 명나라 때 일이다. 한 사람이 비단을 팔러 시장에 갔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자 얼른 비단을 머리에 얹어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는 나그네가 뛰어들더니 자기도 비를 피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비단장수는 자신의 비단 한 끝을 그 나그네 내주었다. 잠시 후 비가 그치자 비단을 정리하는데, 비를 피하게 해달라던 나그네가 갑자기 태도를 싹 바꿔 비단이 원래 자기 것이니 내놓으라고 우기기 시작한 것이다. 비단장수는 기가 막힌 것은 당연한 일, 마침내 둘은 길가에서 서로 엉겨 싸움이 되었다.
그때 시장을 지나가는 태수 설선(薛瑄 1389~1464)이 두 사람을 불렀다. 둘은 태수 앞에서도 좀처럼 양보하지 않고 자기 비단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그러자 태수가 관리를 시켜 비단을 절반으로 잘라 반씩 나눠 주었다. 비를 피했던 나그네는 “나리 은혜입니다.”하고 고마워했다. 그러자 설선은 고맙다고 말한 자를 끌어다가 매섭게 고문을 하여 실토를 받고 내고 죽여 버렸다. 비단은 하나뿐이라 둘 중 하나는 거짓말쟁이다. 비를 피하게 해준 은공도 잊고 남의 비단을 가로채려 한 자는 절반을 그저 얻는 것이 기뻐 저도 몰래 나리 은혜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이런 이야기기 고금에만 있겠는가? 현대에도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진 재벌가에서 가끔 '형제의 난'이니 ‘부자(父子)의 난’ 등 크고 적은 재산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가히 인간의 탐욕은 하늘에서 황금비가 쏟아져도 만족할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큰 욕심 없이 살아왔고 남은 생도 지리산 아래 작은 山房하나 지어놓고 날마다 文香, 石香, 蘭香, 茶香 취해 허줄레기 춤이나 추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