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cent van Gogh, Red Vineyard
The Oil on canvas, 75.0 x 93.0 cm, Arles: November, 1888, Moscow: Pushkin Museum.
빈센트 반 고흐의 "붉은 포도밭"
캔버스에 유채, 75×93cm, 아를:1888년 11월. 러시아 푸슈킨 미술관 소장.
미술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누구나 "고흐"의 삶과 그림에 대해서는 조금씩 알고 있을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에서 출생하였다.
젊은 시절 한때 그는 목회자의 길을 가려고 하였으나, 후에 삶의 방향을 화가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에는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였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엄청난 열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로 인해 그의 육체와 정신은 심각하게 손상받아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였다.
현재는 그의 재능을 높이 사고 있지만 생존 당시에는 아무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는 늘 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야 했다.
물감등을 살 돈이 없어 동생 "테오"에게 항상 손을 벌려야만 했다.
그의 작품활동은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텨나갔다.
모델을 살 돈도 없어 자신의 자화상을 무려 35편이나 그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궁핍과 자신의 그림에 대한 냉대는 그가 죽기 전에 그렸던
'까마귀가 나는 밀밭'과 같은 그림에서 느낄 수 있듯이 더는 견디기 어려운 벼랑 끝까지 그를 몰고 갔다.
1890년 그의 나이 37세 때 스스로 권총으로 자신을 쏴 총상을 입게 되었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죽기 10년 남짓한 기간에 무려 900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고, 일생 동안 1,500여 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인정받지 못하고 팔리지도 않았다.
그가 죽고 나서 10여 년이 지나서야 그의 그림은 팔리기 시작했다.
죽은 후에 화가로서의 명성 또한 끝없이 오르기 시작하여,
오늘 날 "고흐"의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붉은 포도밭"이란 작품명의 이 그림은 1888년 11월 프랑스 남부 "아를"(Arles)에서 그렸다.
과감하고 힘찬 색조와 미적 균형감, 그리고 그의 상징인 짧은 붓질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그의 작품 중에 그가 살아 있을 때 유일하게 다른 사람에게 팔렸던 그림이다.
1890년 3월 "브류셀"의 "20인전"에 출품하여 비평가들로부터 "고흐의 색채는 야만적"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받은 이 그림은
그가 죽기 넉 달 전에 "20인전"의 회원이자 인상파 화가인 "안나 보흐"(Anna Boch)에게 단돈 4백 프랑(현재 화폐가치로 대략 100만 원 정도)에 팔렸다고 한다.
"고흐"는 살아서 그림으로 단돈 4백 프랑을 벌었지만, 오늘날에는 가장 사랑받는 위대한 화가로 우뚝 서 있다.
해질녘의 불타는 듯한 포도밭 풍경을 그린 이 그림을 "안나 보슈"(Anna Boch)라는 여류화가가 400프랑에 샀는데
이것은 그의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팔린 그림이다.
"안나 보슈"(Anna Boch)는 당시 벨기에의 화가였으며 그의 남동생 "외젠 보슈"(Eugene Boch)는 "고흐"의 친구였다.
16년후인 1906년에 이 그림은 1만 프랑에 "갈레리 베르네이"를 거쳐 최종적으로 러시아 사업가 "세르게이 쉬추킨"에 넘어간다
그 후 러시아 혁명기를 거치면서 현재 모스크바 "푸쉬킨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미술계에서는 이런 배경과 예술성을 고려해 보험가액이 약 8000만달러(약 9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어쨌던, 이 그림의 첫 소장자였던 "안나 보쉬"의 구입및 처분동기가 궁금하다.
구입동기로는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서,
또는 "고흐"가 불쌍해서("고흐"는 남동생 "외젠 보쉬"의 친구) 등 다양한 해석이 있으나,
후자가 맞는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라고 한다.
그 그림의 처분은 그림이 너무 강렬하여 자기 작품활동에 방해되어서 매각했다고 한다.
그림은 "고흐" 스스로의 설명대로
'"비가 내린 뒤 석양이 땅을 보라색으로 바꾸고 포도잎을 와인처럼 붉게 물들일 때 그린 것" 이라 한다.
"고흐"는 이 작품을 그릴 때 자외선에 노출되면 색이 변하는 "크롬산 납" 페인트를 일부 사용했다.
두껍게 물감을 바르는 특유의 화법도 사용했다.
이런 특성 탓에 작품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과 세계대전 등을 거치는 동안
이리저리 옮겨지는 과정에서 페인트 변색과 균열로 손상됐다.
러시아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은 1948년 이 작품을 처음 전시한 이후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번도 미술관 외부로 반출하지 않았다.
작품은 2021년 8월부터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21년 말 마무리되는 복원작업에는 우리나라의 LG전자가 필요장비와 비용을 후원했다.
복원팀은 작업 과정에서 이 작품에 다른 작품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고흐"가 그림을 완성한 뒤 완전히 건조되기 전에 다른 작품과 완전히 분리하지 않고
동생 "테오 반 고흐"에게 함께 보내면서 남은 흔적이라고 한다.
그림 오른쪽 길가에 있는 남성이 처음에는 여성으로 그려졌다가 수정된 사실도 확인됐다.
"고흐"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가 실내로 옮겨 완성하는 과정에서
작품 전면에 바구니를 들고 있는 여성을 추가했다. 미술사에 새로 기록될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