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6:16-19,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 19.12.4, 박홍섭 목사
신명기 4장부터 계속해서 가나안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주신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6장도 그렇게 시작되어 너만 아니라 네 자손들에까지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고 이어집니다. 왜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을 이렇게 반복해서 강조할까요? 이 법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특별한 언약의 법, 사랑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 사랑을 무엇으로 드러내고 나타낼까요? 그분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지키는 것입니다. 6:5-6절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게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라고 말씀합니다. 네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라고 합니다.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과 은혜 속에 살아가는 표시가 그분의 말씀을 새기고 그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그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아래 있는 표이며 동시에 그 은혜와 평강을 받으며 사는 자의 복된 책임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복해서 그 말씀을 지키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6:1-3절을 보십시오.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24절도 동일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을 받은 자체가 복이며 은혜며 생명과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복된 율법을 힘든 짐으로 여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언제 그렇게 될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때입니다. 내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앞으로도 그 은혜가 나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생명의 말씀이 무거운 짐과 속박으로 여겨져서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게 됩니다. 그게 10-15절의 경고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어서 은혜를 잊게 되면 여호와를 시험하는 자리까지 가게 되니 제발 그 자리까지 가지 말고 복 받을 마음과 삶의 태도를 가지라는 모세의 당부입니다. 모세는 이 당부를 40년 전 므리바 사건과 연관시켜서 합니다. 16절이죠.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맛사사건이 무엇입니까? 출17:1-7절을 보겠습니다.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자 이스라엘이 물을 달라고 불평하면서 모세와 다툽니다(2-3절). 그냥 원망하고 불평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여기서 죽게 되었다고 모세를 향해서 분노를 쏟아내었습니다. 이때 분위기가 얼마나 험악했는지 4절에 모세가 얼마 있지 않으면 이들이 돌로 쳐서 자신을 죽일 지경이라고 했죠. 이들은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이스라엘이 단순히 지도자에게 불평한 정도가 아니라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공급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지 않고 심지어 그런 하나님의 인도를 능멸한 것으로 여겨 모세와 다툰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합니다.
7절 보십시오.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기적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르비딤에 이르러 또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2절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고 했죠. 이미 물과 관련해서 그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배웠고 또 지금도 매일 만나를 공급받으면서 그것을 체험하고 있는데도 당장 물이 없는 상황이 되자 다시 불신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다면 지금 당장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고 모세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책망합니다.
순간순간 이렇게 죄 성을 드러내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존재가 저와 여러분입니다. 모세가 이런 이스라엘이 도저히 감당이 안 되니까 하나님께 아뢰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지팡이를 가지고 호렙 산 반석으로 가서 그 반석을 치라고 하십니다(6절). 나일 강을 치던 지팡이는 애굽을 심판하셨던 지팡이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심판한 그 지팡이로 이스라엘을 칠 수 있습니다. 아니 쳐야 마땅합니다. “야, 이스라엘, 너희들 안 되겠다. 더 이상 눈뜨고 볼 수가 없구나. 해도 해도 너무한다. 너희들이 그렇게 애굽을 바란다면 좋다. 애굽처럼 너희들도 심판하겠다.” 이렇게 해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은 그 지팡이로 죽어 마땅한 이스라엘이 아니라 반석을 치게 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 반석에서 모두를 살리는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그 가축들이 살 수 있는 생수가 나온 것입니다.
6절에 하나님이 거기 반석 위에 서 계신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계신 그 반석을 치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은 자기를 치셔서 물을 내신 것입니다. 신약 성경 고린도전서 10:1-4절은 이 반석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지팡이로 깨뜨림을 받으신 사건입니다. 정작 죽어야 하고, 진노의 지팡이에 맞아 깨어져야 할 대상은 매일 은혜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우리들인데, 주님께서 그 자리를 대신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반석을 쳤더니 물이 강처럼 흘러나와 모든 백성을 먹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모세가 40년 전의 맛사 사건을 회고하면서 들려줄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때 출애굽 2세대도 언제든지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렇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은 애굽과 달라서가 아닙니다. 이들이 구원받은 것은 이들이 애굽보다 고급하고 선하고 더 나은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틈만 나면 애굽을 그리워하는데 애굽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들은 애굽과 똑 같습니다. 오히려 더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들이 구원받은 것은 오직 그의 기쁘신 뜻대로 이들을 택하셨다고 하는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매일 그런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면서도 그 은혜가 자신들의 기대와 생각과 다르게 나타나면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묻는 마음은 조금도 없고 자신의 생각과 머리대로 판단해서 조금만 어려워지고 조금만 힘들어지면 왜 애굽에서 건져내었냐고 불평하면서 모세에게 대들고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내가 반석 위에 서 있을 테니, 너는 반석을 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물을 내어 마시게 하십니다. 죽어 마땅한 나를 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쳐서 나를 살리십니다. 십자가 은혜는 구원받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필요한 은혜입니다.
이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하나님의 율법이 무거운 짐으로 여겨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밀어내고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시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 안에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할 수 있을까요? 은혜를 잊지 않을 때입니다. 은혜를 알 때입니다. 자기방식의 은혜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모든 순간과 사건과 오늘을 다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믿고 인정할 때입니다. 매일 은혜를 받고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맛사와 같이 마실 물이 없는 환경에서도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기다리고 바랄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 안에서 정직하고 선량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은혜의 힘입니다.
오늘 우리의 심령에 이 은혜가 넘치고 있는지요? 혹 우리의 상황과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해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못하고 의심이 들지는 않습니까? 이래라 저래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꿀처럼 달지 않고 듣기 싫지는 않는지요? 그렇다면 십자가 밑에 나아가 이런 나를 위해 깨트려지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묵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나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지 않으면 여호와를 시험하게 되고 복 받는 자리 생명의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가 정직함과 선량한 일을 행하는 자리와 멀어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오늘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어 이 은혜에서 멀어지지 않고 늘 은혜에 젖어 어떤 형편, 어떤 환경에 있든지 내 생각, 내 기분, 내 감정대로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는 주의 백성들 다 되게 해 달라고 이 저녁에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