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리성지 야유회
5월 중순 성당 레지오 단원들이 충남 신리 성지로 야유회를 다녀왔다. 야유회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행사로 코로나 기간에는 가지 못했다. 우리 본당에는 2개의 꾸리아가 있는데 합쳐 200여 명이 활동 중이다. 소규모로 나눠 매주 한 시간 정도의 회합(기도)과 활동보고를 한다. 주로 레지오는 선교활동과 봉사를 하고 있는데 상당히 조직적으로 잘 짜여 있다. 그리스도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레지오 단원들이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활동을 통해 빛과 희망을 전파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주는 일에 쓰임을 받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더욱 빛나도록 성모님을 도와 사랑과 순종으로 실천하며 활동중이다.
45인승 버스 2대로 71명이 탑승한 가운데 1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성지에 도착했다. 아침에 출발해 그곳에서 미사를 드리고 점심 식사 후 자유시간을 갖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오면서 합덕 성당을 잠깐 들리는 일정이다. 간식부터 물까지 꾸리아 간부들이 간식을 준비해 주기 때문에 참석만 하면 된다. 우리 팀 단원은 현재 8명이다. 그런데 개인 사정으로 인해 못 가는 분들이 있어 5명이 신청했다. 탑승할 차가 도착하지 않아 꾸리아에서 준비한 간식을 나눠 주었다. 차가 도착하고 8시 50분쯤 인원을 점검하고 신리 성지로 출발했다.
신리성지 2호차
1호차와 2호차에 배정된 대로 탑승했다. 우리는 2호차에 타서 커피와 떡, 컵과일을 먹으면서 갔다. 어느 정도 간식을 먹은 후 2호차는 꾸리아 부단장의 주송으로 묵주 기도를 바쳤다. 레지오 단원은 행사때 시작 기도, 묵주기도와 까떼나 그리고 마침기도는 필수로 바쳐야 한다. 묵주기도가 시작되고 기도를 바쳤다. 이후 신리 성지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신리 성지는 프랑스 선교사들의 기착지로 제5대 다블뤼 주교가 머무르며 사목 활동을 한 곳이다. 또한 내포 교회의 초기 공소가 있었던 곳으로 조선시대 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조선교회의 카타콤바. 라 불렸다. 그리고 다블뤼 주교가 성사를 베풀고 수많은 저술 작업을 했던 곳으로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2010년도에 양곡창고를 매입하여 쉼터. 미술관. 카페의 기능을 가진 '치타누오바' 즉 새로운 도시란 이름으로 개관을 하였다.
신리 성지
신리성지의 미사, 미술관
기도를 마치고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옆사람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한다. 중간에 휴게소에 한 번 들르고 나서 신리성지에 도착했다. 안내사항 듣고 단체 사진을 찍고 미사를 드리러 성당으로 이동했다. 성지가 워낙에 부지가 넓어 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갔다. 나무는 별로 없었고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다. 그날 우리 성당에서 온 두 대의 차외에도 3대의 차가 더 왔다. 5대의 차에서 내린 신자들이 모두 성당에 들어가니 자리가 꽉 찼다. 용암동 본당 꾸리아 단장과 부단장이 미사 해설과 독서를 맡아서 했다. 신리 성지 신부님과 본당 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셨다. 강론말씀은 신리성지 신부님께 하셨는데 우리 본당 신부님과 대전신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한다. 말씀을 아주 잘하셨다.
신리성지 미사
미사 후 점심식사 후에는 신리성지의 미술관을 신부님께서 직접 소개해 주기로 하셨다. 강론 말씀을 듣고 미사가 끝나갈 무렵의 성지 소개로 미사는 거의 12시가 다 돼서 끝났다. 다시 차에서 내린 곳 부근에 있는 식당으로 단원들과 함께 갔다.
점심식사
식사는 뷔페로 여러 가지 반찬과 국이 있어서 둥근 접시에 담았다. 맛은 다 괜찮아서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에 단원들과 사진을 찍었다. 다른 단원들과도 같이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신리성지 지하 미술관
신리성지 미술관
시간이 돼서 미술관 지하로 갔다. 신리성지 주임 신부님께서 먼저 오셔서 기다리고 계셨다. 5만 원짜리 지폐의 그림을 그린 일랑 이종상 화백의 재능기부를 통해 봉헌된 다섯 성인의 영정화와 13점의 순교 기록화가 전시되어 있다. 선조들의 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힘들 때 더욱 신앙심이 생겨나는 듯했다. 박해 때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굳건히 지켰던 분들 덕분에 이렇게 우리가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니 감사했다. 주임 신부님은 여러 그림들을 돌아가며 모두 설명해 주셨다.
우리는 휴식과 담소를 나누기 위해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용암동 교우들이 몇 팀이 와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며 보니 아메리카노가 6000원이었다.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성지 기금 포함인가 보다 했다. 그래도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 오신 단원분께서 커피값을 주셔서 그것으로 지불했다. 우리 단원들이 다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다블뤼 주교관
바깥으로 나와 사진을 찍고 이동하면서 제5대 주교장이신 성 다블뤼 주교관을 들렸다. 내포 초기 공소가 있었던 곳으로 병인 박해때 다블뤼주교, 오메트르 신부, 위엥 신부,황석두 등이 체포되어 순교한 곳으로 손자손을 비롯한 천주교 성인 5명이 관련된 유적이다. 다블뤼 주교는 제5대 조선교구장으로 신리공소는 원래 손자손의 생가였다고 한다. 보수공사때 확인된 겅축연대는 1815년으로 밝혀졌고, 1964년 새롭게 복원 되었다고 전한다. 옛모습 그대로 초가지붕에 들마루가 있는 마당에는 잔디 빛깔이 초록빛으로 예뻤다. 강렬한 주황빛의 잠바를 입고 온 마리아 형님께서 잔디밭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셨다. 포즈에 셔터를 눌렀다. 빛깔이 고울수록 사진이 선명하니 좋다.
다블리 주교관
합덕 성당에서 내려 잠시
우리는 점심을 먹었던 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화장실에 들려 볼일을 보고 차에 올랐다. 항상 차를 타기 전에는 화장실을 들리는 것은 필수이다. 인원수를 파악한 후에 차가 출발했다. 어느 정도 지나서 합덕성지에 도착해서 1시간 정도 자유 시간을 주었다. 합덕성당은 당진에 있는 것으로 시작은 1890년 양촌 성당으로 설립이 되었다. 1899년 초대본당 주임이었던 다블뤼에 신부가 현 위치를 매입하며 성당 건물을 건축하고 합덕 성당으로 개칭되었다. 외벽은 붉은 벽돌로, 창둘레와 종탑의 모서리는 회색벽돌로 쌓았다. 합덕성지는 조금 높은 곳에 있어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성당 안에 들려 조배후에 주변을 둘러봤다. 뒤쪽에는 성인들의 무덤이 있어 몇 사람이 모여 기도했다. 그리고 성물방에 들려 보았다. 전 같았으면 묵주팔찌는 기본으로 샀을 텐데 눈으로만 훑어 보고 돌아 나왔다.
합덕 성당에서
즐겁고 감사한 시간
합덕 성당 마당에서 꾸리아 사간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앞쪽으로 오니 신부님, 수녀님도 계시고 다른 분들 몇 분이 있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래쪽으로 걸어와 차에 탑승했다. 신부님, 수녀님께서 2호차로 오셔서 같이 타셨다. 2호차를 탄 레지오 단원들을 배려하신 것이다. 올 때는 다들 피곤한지 말들이 별로 없었다. 어느 정도 도착할 때가 되자 부단장이 마침 기도를 바쳤고 신부님께서 잘 다녀온 것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성당에 도착해서 신부님 강복과 말씀을 듣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코로나 이후 모처럼 야유회를 갔고 즐겁고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본당에 돌아와서 신부님 강복
첫댓글 미카엘라 자매님 감사합니다.
성당출발부터 성지소개, 현지순례미사, 미술관관람, 합덕성당순례, 마침까지 자세한 소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