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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1:16-23,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22.3.30, 박홍섭 목사
이스라엘은 하솔 왕 야빈이 중심이 된 가나안 북부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대부분 정복하는 쾌거를 이룩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개괄적인 요약입니다. 16절에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네겝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 산지와 평지를 점령하였으니”로 시작해서 23절에는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을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로 끝이 납니다.
13장에는 아직 다 정복하지 못한 지역을 정복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실제로는 가나안 전 지역이 아직 다 정복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직 차지해야 할 땅이 남아 있었습니다. 수 13:1-7을 보십시오. 아직 정복해야 할 지역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왜 11장에서는 온 땅을 정복했다고 합니까? 하나님 나라의 ‘이미’와 ‘아직’의 측면입니다. 실제적으로는 아직 정복이 완료되지 않았지만 이미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정복이 완성되었다는 신학적인 선언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그렇습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구원의 완성은 주님 다시 오시는 마지막 날 영광스럽게 완성됩니다. 그날까지 여전히 우리 안의 죄 성과 우리 밖의 죄와의 싸움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는 이렇게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구원을 얻었다고 선언합니다. 왜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끝까지 이루어내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근거해서 말하는 신학적인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그러합니다. 예수님의 통치로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해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있고 누리고 있는 주의 백성들은 여전히 공중권세 잡은 자가 만들어놓은 이 땅의 가치관과 싸워서 우리의 일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나라가 임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왜 이 사실이 중요합니까? 여호수아서는 약속하신 땅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시고 시내 산에서 언약의 율법을 주심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삼았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영토, 땅이 있어야 합니다. 11장에서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는 선언은 그 땅이 마련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 수 있는 땅이 마련됨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 되는 완벽한 요건이 갖추어졌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이 땅에서 언약의 말씀을 따라 빛과 소금으로, 열방의 제사장 나라로 사는 일입니다. 남은 가나안의 지역도 그렇게 믿음으로 순종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삶으로 정복해나가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이미 주셨다고 선언하신 그 땅을 계속 믿음으로 정복해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17:12입니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결심하고 가나안이 거주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이 계속 성화를 이루어가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데 그 싸움을 믿음으로 잘 싸우지 않으면, 우리의 삶에 죄의 원리들이 결심하고 자리를 잡고 거주하게 됩니다. 혹시 우리 안에 그런 모습은 없습니까?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믿음으로 욕심을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하면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의 원리들과 세력들이 쫓아 내어집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죄의 원리와 세력들이 결심하고 거주하지 못하도록 남은 죄와의 전쟁을 잘 수행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다음, 오늘 가나안 정복 개괄의 내용 안에 특별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19-20입니다. “기브온 주민 히위 족속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이스라엘 자손이 싸워서 다 점령하였으니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을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을 진멸하여 바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멸하게 하심이었더라.” 가나안 정복을 말하면서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살아남은 기브온 주민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가나안 주민들이 다 멸망 당한 이유를 그들의 마음이 완악해서 이스라엘과 대적하여 싸우러 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설명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무작정 그 땅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완악해서 이스라엘을 대적해서 싸우려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지 않고 그들을 진멸했다고 하십니다.
왜 이런 설명이 필요합니까? 가나안이 하나님 앞에 진멸당하는 이유가 그들의 완악함 때문임을 부각시키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그냥 망하지 않습니다. 완악해서 망합니다. 기브온은 왜 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완악함으로 내 버려두지 않고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다 마음이 완악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출 9:12, 10:1, 27, 11:10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원래 완악하지 않았는데 완악하게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고 완악한 마음을 내 버려두셔서 더 완고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출 7:13-14, 22, 8:15입니다. 바로의 마음은 원래 완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악함에 내버려 두신 결과 점점 더 완고해져서 끝까지 뻔뻔하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외면하고 심판을 자초합니다.
가나안의 저항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완악함으로 내 버려두셨습니다.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 구원과 멸망의 소식을 듣고도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기로 결심하고 힘을 모아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음의 완악함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완악함을 은혜로 간섭하지 않고 은혜를 거두어 내 버려두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 완악함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당했습니다. 진멸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여호수아는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 9:4-5을 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가나안 정복은 이스라엘의 공의로움과 정직함으로 말미암음이 아닙니다. 그들의 완악함 때문입니다. 그들의 완악함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지키신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과 맹세가 무엇입니까? 창 15:16입니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지금은 아직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차지 않아서 심판할 수 없으니 사대가 지난 후 그들의 죄악이 가득 차면 그때 그들의 완악함을 심판하고 가나안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것이 가나안 정복 전쟁입니다.
그럼 생각해보십시오. 멸망 당한 가나안과 그들을 정복한 이스라엘의 차이가 있습니까? 가나안은 완악해서 멸망 당했다면 이스라엘은 왜 멸망 당하지 않았습니까? 완악하지 않아서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도 가나안과 똑같이 완악합니다. 그 완악함대로 내 버려두면 이스라엘도 멸망 당해 마땅합니다. 하나님 앞에 영원한 저주와 형벌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왠 은혜인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완악함 가운데 내 버려두지 않으시고 간섭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보십시오. 그들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광야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얼마나 강퍅하고 완악했습니까? 무엇이 은혜입니까? 이들을 그 완악함 가운데 내 버려두지 않고 계속 마음을 부드럽게 기경하고, 책망하시고 교훈하시고 바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간섭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 마음의 완악함 그대로 내 버려둠을 당하여 더 완고하고 강퍅하게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 땅에서 아무리 잘 먹고 잘살아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 마지막이 영원한 진노와 심판과 형벌로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완악한 인생인데 어떤 사람은 내 버려두지 않고 하나님의 간섭을 받는 인생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 뜻대로 안 됩니다. 욕심의 길을 가면 막히고 더럽고 부끄럽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삶을 살면 징계를 당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간섭으로 교정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에서 하나님께 화친을 요청하는 회개와 믿음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복중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며 은혜 위에 은혜를 입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가진 소유의 양과 눈에 보이는 힘이 유무가 아닙니다. 내 마음이 완악한지 아닌지를 보셔야 합니다. 팔 복을 보십시오. 마 5:1-12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복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결단의 촉구가 아닙니다. 이런 자가 복이 있다는 선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들은 앞으로 이런 자가 되어야 한다는 도전이 아니라 지금 이런 마음의 상태, 영혼의 상태가 된 사람이 복이 있다는 선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자연인은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로 태어난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입니다. 모태로부터 죄 중에 잉태되어 모두 완악한 죄인으로 태어나 완악한 마음으로 삽니다. 그런데 그중에 가난한 마음이 되고 애통하는 마음이 되고 온유한 마음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이런 사람이 됩니까?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완악한 마음으로 살지 못하도록 간섭을 받고 교훈과 책망을 받고 가르침과 설득을 받고 징계와 연단을 거쳐 완악함에서 돌이켜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복 있는 자가 된 그리스도인이 그 내적 상태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살 때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라고 하십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가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십니다. 그런 복된 상태인 그리스도인은 이미 세상의 빛이고 세상의 소금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러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땅도 주셨습니다. 이제 그 빛을 숨기지 말고 그 맛을 잃지 말고 살면 됩니다. 그것이 가나안의 남은 땅을 정복하는 이스라엘의 사명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하여 완악함 때문에 망한 가나안의 모습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백성들의 마음을 완악함에 내 버려두지 않고 기경하고 있는 하나님의 손길과 간섭을 느끼고 계십니까? 우리의 마음이 높아지지 않고 교만해지지 못하도록, 헛된 세상 욕심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가르치시고 책망하시고 양심을 찌르시고 설득하시고 교훈하시고 양육하시고 계시는 그 음성을 듣고 계시고 그 손길을 받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의 몸 된 교회에 은혜의 방편들을 주셔서 그렇게 자기 백성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 양육을 잘 받고 계십니까? 완악한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묵은 땅이 되지 않도록 계속 은혜의 방편들을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땅만 받아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 땅에서 가난한 심령과 애통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어진 온유한 마음과 이익에 주린 자가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살아가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청결한 마음과 화평케 하는 마음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그 독특한 주의 백성들의 맛과 삶의 향기를 숨기지 말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때 가나안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