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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기후위기보고서]① ‘추석 과일에 무슨 일이?’
김민경입력 2023. 9. 22. 08:00수정 2023. 9. 2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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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추석을 앞두고 KBS 기후위기대응팀은 '밥상으로 보는 기후위기보고서'라는 제목의 연속 보도를 이어갑니다. 밥상 위 추석 과일 가격에서 시작해 기후 위기가 촉발한 국제적인 식량 안보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과학적인 분석자료와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보겠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선물용 사과와 배를 사러 나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과일값 때문인데요, 특히 사과는 선뜻 사기 어려울만큼 비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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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추석 사과'로 알려진 ‘홍로’는 소비자가 마트 등에서 구매하는 소매가격으로 봤을 때, 어제(21일) 10개에 평균 3만 4000원 정도였습니다. 평년 이맘때 가격보다 만 원 정도나 비쌌습니다.
9월 평균치로 봤을 때도 3만 원 가까이 치솟아 9월 사과값으론 집계 이후 최고를 기록했던 지난 2020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입니다. 하지만 20년 당시에도 평균가격이 3만 900원 남짓이었으니까 역대 최고 수준에 가깝게 치솟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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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가격은 정부와 유통업계가 보조해 낮아진 가격이고, 실제 도매시장에서 상인들에게 거래되는 도매가격을 보면 그야말로 '금사과'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아래는 가락시장 도매가격(좌)과 반입량(우)을 분석한 자료인데요, 파란 선으로 표시된 것이 올해(23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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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점프한 도매가격이 보이시나요, 도매가격은 끝도 없이 치솟는데 반입된 양은 턱없이 적죠. 10kg짜리 사과(홍로) 가격이 8만원을 넘어섰으니까 초록색으로 표시된 평년 이맘때 가격의 두 배 이상 치솟은 셈입니다. 배 역시 사과 정도는 아니지만, 평년보단 비쌉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추석 성수기 때 예상한 도매가격은 4만 원 안팎으로 지난해는 물론 평년 가격보다 만 원 가까이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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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책임져야 할 과일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 봄철부터 켜진 비상등, 결국 '생산량 급감'으로
일단 생산량 자체가 줄었습니다. 현지에서도 "팔 사과가 없다"고 호소할 정돕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일찌감치 예견됐습니다. 보통 사과나무에선 4월이면 꽃을 피우는데요, 이후 꽃 핀 자리마다 작은 사과 열매가 달립니다. 5월부턴 이 열매들을 솎아내 선별하는 작업을 거치는데, 이후 나무에 남아있는 과일 수를 '착과수'라고 합니다. 이 착과가 자라면 이후 실제로 생산되는 과일의 수가 되기 때문에 봄철 '착과수'는 그해 생산량의 주요한 지표가 됩니다.
그런데 올 봄철, 이 '착과수'단계부터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지난 6월 발표된 자료를 볼까요,
자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6월 농업관측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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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6월 농업관측정보)
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와 비교해 배의 봉지수는 19%, 사과의 착과수는 16%까지 급감했다는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이미 봄철부터 생산량이 적을 가능성을 크게 봤다는 얘기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과가 한창 붉게 익어가는 여름철, 주산지인 경북지역에선 설상가상 사과가 썩어들어가는 '탄저병'까지 크게 번졌습니다.
자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9월 농업관측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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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9월 농업관측정보)
결국 실제로 이달, 추석 전 2주 정도를 일컫는 추석 성수기 출하될 양을 전망한 자료엔 사과는 지난해보다 14%, 배는 8% 나 적게 나올 거란 분석이 담겼습니다. 가뜩이나 과일을 찾는 시기인데 가격이 급등할 수밖에 없겠죠.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유난스러웠던 날씨'를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 '금(金)사과' 원인 ① 관측 이후 가장 더운 초봄 '얼어붙은 사과꽃'
가장 피해가 컸던 사과의 사례로 볼까요. 사과는 전체 재배면적의 절반 이상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경북지역입니다. 안동과 영주 등 유명한 사과 주산지도 경북지역에 몰려 있는데요, 재배면적으로 따졌을 때 경북지역이 전체 사과의 60% 정도, 경남이 10% 정도 됩니다.
실제로 사과 주산지 경북지역의 지난 봄과 여름철 날씨가 어땠는지 분석해봤더니 특징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먼저 봄철부터 나타난 이례적인 고온현상입니다. 대구지방기상청이 분석한 경북지역의 관측자료를 보면, 지난 봄은 역대급 '따뜻한 봄'이었습니다. 특히나 봄철 석 달 중에서도 초봄인 3월은 이례적인 수준이었는데요, 평년 수준을 3.6도나 넘어서서 기상관측 이후 1위를 기록할 정도였습니다.
자료: 대구지방기상청 (대구·경북지역 봄철 평균기온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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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대구지방기상청 (대구·경북지역 봄철 평균기온 분석)
위 그림에서 길게 난 선보다 위에 있는 붉은색은 평년보다 높은 기간, 파란색은 낮은 기간입니다. 언뜻 보기에도 3월 고온현상이 눈에 띄죠, 초봄부터 평균기온이 10도를 넘어서는 날이 절반이나 됩니다. 4월 평년 기온이 평균 12도 정도라는 걸 고려하면, 3월부터 벌써 4월에나 나타날 법한 고온현상이 길게 이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때 시기를 착각한 사과꽃이 우후죽순 꽃망울을 터트렸던 것이 발단입니다.
"보통 사과꽃은 4월 이후에나 피는데 올해 3월 기온이 높다 보니까 1주일 이상 빨리 폈어요. 그런데 4, 5월에 꽃샘추위라고 하잖아요. 꽃이 많이 피고 빨리 핀 상태에서 또 갑자기 너무 추워지니까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과꽃이 얼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난 거죠."
-김형진 박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그나마 살아남은 사과도 온전히 여름을 나진 못했습니다.
■'금사과' 원인② 길고 강력한 장맛비에 '탄저병'까지
지난 여름 경북지역 평균강수량은 관측 이후 두 번째로 많았습니다. 특히나 하루 강수량이 80mm 이상 강한 비가 내린 날의 수는 평균 2.9일로 관측 이후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비도 비지만, 강한 비가 내린 날이 유난히 많았다는 뜻입니다.
자료: 대구지방기상청 (대구·경북지역 여름철 강수량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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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대구지방기상청 (대구·경북지역 여름철 강수량 분석)
게다가 7월 중순엔 정체전선이 경북 북부지역에서부터 충청에 이르기까지 길게 걸쳐진 상태로 장기간 오르내렸는데, 당시 불과 엿새간 내린 비의 양이 평균 231mm로 경북지역 연평균 강수량의 20%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길고 강한 장맛비가 이어지면서 사과 농가에선 '탄저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탄저병은 습하고 더울 때 주로 발생하는데 빗물을 타고 급격히 확산 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빗물을 막는 시설만 해줘도 방제 효과가 크다고 할 정돕니다.
KBS 뉴스 보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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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뉴스 보도화면
이례적인 진로로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 '카눈'도 태풍 진행 방향의 오른쪽인 경북지역에서 비바람이 거셌습니다. 이 시기 낙과 피해까지 더해졌습니다.
■ 기후의 경고 "극단적인 날씨 심해질 것"
문제는 이렇게 '이례적인', '관측 사상 최고' 등의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극단적인 날씨는 이제 기후변화를 빼놓고는 설명이 힘들어졌단 겁니다.
"이젠 모든 자연적인 기후 현상이 인간이 개입된 기후변화의 맥락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세계적으로 기온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극단적인 날씨나 기후는 더욱 심해지고 계절적인 폭우와 기온변화 경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WMO (세계기상기구)
앞으로는 이런 상황이 더 자주, 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 농산물의 생산량과 가격문제는 단지 기후변화만의 문제도, 올해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생산비 상승과 정부의 시장정책도 짚어봐야 합니다.
다만 생산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기후변화 요소에선 매년 분명한 경고가 감지되고 있다는 겁니다.
■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것인데…" 기존 농법을 벗어난 기후변화
특히나 농업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건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 할 만큼 날씨가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파종기, 개화기, 성장기, 수확기까지의 기온, 비가 내리는 기간과 비의 양, 일조시간 변화 하나하나가 농작물의 품질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기상조건의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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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이 농사 관련 기상자료를 집계한 자료를 보면, 최근 30년간 막대그래프로 표시된 평균기온은 계속 오르고, 파란 선으로 나타낸 강수량도 크게 늘었습니다. 반면 붉은 선의 일조시간은 다소 줄었는데요, 그야말로 이전과는 날씨가 달라졌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홍수나 이상고온, 한파, 가뭄처럼 기존 농사의 해법을 벗어난 극단적인 날씨로 나타나기 때문에 농업 분야에서 유난히 재해가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기존의 우리나라 기후에 잘 맞던 작물 재배작법이 좀처럼 통하질 않는 시기로 접어든 겁니다.
■ 추석 과일에서 출발한 기후변화보고서… 해법은?
이제는 우리의 추석 과일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몇 년 내, 더는 재배가 불가능해 좋은 상태로는 맛보기 힘든 채소도 여럿 나오고, 나아가선 해외에서조차 들여오지 못해 파동을 겪는 물품도 생기겠지요. 실생활에서 체감할 정도는 아니지만 실제로 그간 몇 차례 위기를 지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먼저 우리의 농민과 농사지을 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기후에 맞는 작물을 개발하고 재배하도록 지원하는 것도 함께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최악의 식량난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비상상황에 대비해 우리 땅에서 다시 농산물이 자라날 때까지만이라도 급하게 사 올 수 있는 다른 나라들, 즉 식량 수입국을 사전에 최대한 다양하게 지정해두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나라, 먼 훗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장 우리가 먹는 사과 한 알, 배 한 개의 이야기, 내일 먹을 반찬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미 위기는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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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기자 (minkyu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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