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혜암 신경철
하얀 종이 위 백설 공주 흑단 눈동자처럼 단아하게
내 이름 석 자를 품고 있는 너를 갖고 싶었어
학비 걱정을 하느라 늘 마음이 무거웠던 어머니 아버지가
주변에 은근하게 자랑을 하며 심드렁한 표정 채 감추지 못하는
멋쩍은 얼굴을 보고 싶었어
아니,
든든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그 자랑 질은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거야
아무생각 없이 회사 일 열심히 하며 사는 것이
내 운명처럼 느껴졌어
이름 앞에 달려지는 직급이 점점 높아지면서
내 자만심도 하늘 위 구름을 타고 고삐 풀린 손오공이 되었지
그 때는 몰랐던 거야
구름은 비가 되어 땅 위로 스러질 운명이라는 걸 말야
널 지키려고 30년을 다람쥐로 살았어
쳇바퀴를 타다 보면
마라톤 우승자에게만 씌워지는 월계관이 내 것이 될 거라 믿었어
무엇을 좋아라 하는지, 꿈은 무엇인지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곳도 모르는 채
홋줄이 풀린 쪽배에 실려 가고 있었어
내가,
언제나 함께였던 너와 이제 이별을 해야 해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이 정확하게 뭔지도 모르지만
약간 어색하지만 혼자 떠나볼꺼야
책상 서랍 구석에 소중히 넣어두고 가끔 물어볼게
무엇을 위해 틀에 갇혀 있었는지
나도 모르는 나를, 너만 알고 있는 나를
새롭게 찾아야 하는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