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7:1-23, 아히도벨의 계략을 막아주신 하나님, 26.6.3, 박홍섭 목사
다윗은 지금 인생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는 아들 압살롬이 백성의 마음을 도둑질하여 일으킨 반역으로 급하게 예루살렘을 맨발로 떠나야만 했습니다. 더군다나 당대 최고의 지략가이자 자신의 참모였던 아히도벨마저 압살롬의 편으로 돌아서서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압살롬에게 다윗의 후궁을 공개적으로 욕보이도록 계략을 주어서 다윗의 힘을 조롱하게 했고, 이번에는 또 다른 지략으로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1-4을 보십시오.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나로 하여금 사람 일만 이천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따라 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한즉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 죽이고 모든 백성으로 왕께 돌아오게 하리니 무리의 돌아오기는 왕의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하니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 지금 자신에게 병사 만 이천만 주면 바로 다윗을 추격해서 다윗을 죽이겠다고 합니다. 다윗 한 사람만 죽이면 왕권을 완전하게 가져오기 위한 피해는 최소화하고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의 제안은 신속하고, 정확하며, 목표가 분명한 거의 완벽한 전략이어서 압살롬도 좋아했고 이스라엘 장로들도 다 좋게 여겼습니다.
이 전략이 실행되면 다윗은 꼼짝없이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압살롬이 갑자기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후새의 의견도 들어보자고 합니다. 후새는 다윗이 압살롬의 정보를 얻기 위해 예루살렘에 남겨 놓은 첩자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압살롬은 그런 후새를 불러 아히도벨의 계획을 이야기해 주고 그의 생각이 어떤지 묻습니다. 5-13입니다. “압살롬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세도 부르라. 우리가 이제 그의 말도 듣자 하니라.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매 압살롬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히도벨이 이러이러하게 말하니 우리가 그 말대로 행하랴 그렇지 아니하거든 너는 말하라 하니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번에는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이 좋지 아니하리이다 하고 또 후새가 말하되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그들은 들에 있는 곰의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인즉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지금 그가 어느 굴에나 어느 곳에 숨어 있으리니 혹 무리 중에 몇이 먼저 엎드러지면 그 소문을 듣는 자 가운데에서 폐함을 당하였다 할지라. 비록 그가 사자 같은 마음을 가진 용사의 아들일지라도 낙심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무리가 왕의 아버지는 영웅이요 그의 추종자들도 용사인 줄 앎이니이다.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우리가 그 만날만한 곳에서 그를 기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같이 우리가 그의 위에 덮여 그와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ㅇ르 하나도 남겨두지 아니할 것이요 또 만일 그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 곳에 작은 돌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게 할 것이니이다 하매”
후새가 압살롬에게 아히도벨의 계략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대로 하면 다윗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후새는 다윗에게 피할 시간을 주기 위해 아히도벨의 계획이 좋지 않다고 적극적으로 반대합니다. 그리고 다윗과 다윗을 따르는 군사들이 숫자는 적지만 만만치 않음을 강조합니다. 이들은 모두 전쟁에 능한 용사이며, 지금 현재 새끼를 빼앗긴 암곰처럼 매우 흥분하고 화가 난 상태이므로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아히도벨의 기습 전략은 득보다 실이 훨씬 많으니 오히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군사들을 모아 압살롬이 직접 이들을 데리고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해야 압살롬의 위상이 온 이스라엘 가운데 높아진다고 말합니다.
압살롬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14절입니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계획보다 후새의 계획을 더 따르게 됩니다. 지금까지 아히도벨의 말은 여호와께 신탁을 받은 것처럼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16:23). 그런데 어떻게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말을 따르지 않고 후새의 견해를 따르게 되었을까요? 본문은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아히도벨의 분석은 정확했습니다. 그의 계략은 좋았습니다. 압살롬과 장로들 모두가 좋은 계략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압살롬의 마음과 온 이스라엘 장로들의 마음을 간섭하사 후새의 계략이 더 낫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압살롬을 심판하고 다윗을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아니면 설명이 불가한 선택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그 좋은 계략을 선택하지 않고 후새의 계략을 선택하도록 간섭하셨습니다. 물론 이 선택은 압살롬의 전적인 의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의지를 사용하사 다윗을 보호하시고 압살롬을 심판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본문은 더 적극적으로 명령하셨다고 표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압살롬의 마음을 움직이사 다윗을 보호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을 때에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주를 통치하고 있고 자기 백성의 삶을 주관하고 있으며 역사를 다스리면서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간섭이 보이지 않고, 모든 상황이 나를 힘들게 하는 그때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15:31을 보십시오.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다윗은 아히도벨이 자기를 배신하고 압살롬의 편에 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지금 압살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히도벨의 계략이 아니라 후새의 계략을 선택한 것은 이 기도의 응답입니다. 다윗의 기도에 어떤 기적적인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역사하사 다윗을 보호하고 아히도벨과 압살롬을 막고 계십니다.
그 결과 후새는 압살롬에게 들었던 아히도벨의 계략을 즉시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그 내용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밤 안으로 광야 나루를 건너지 않으면 전부 몰살할 수 있다고 사태의 위급성을 알립니다. 두 청년이 이 전갈을 전하던 과정에 발각될 뻔한 위기를 겪지만, 한 여인의 도움으로 그 위기를 넘기고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다윗의 일행 모두 강을 건넙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던 다윗의 기도에 하나님은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한 자가 없더라”라는 구원의 현실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는다면, “알아서 하시겠지” 하면서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는 우리의 기도를 무력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당신의 작정과 섭리를 이루는 수단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를 믿는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아히도벨의 최후를 보십시오. 23절입니다. 자기 모략이 채택되지 않은 것을 본 아히도벨은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고향으로 돌아가, 집을 정리한 뒤 스스로 목매어 죽습니다. 그 시대의 지혜를 대표하던 사람의 마지막이 이러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편에 선 지혜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는 자연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지혜는 결국 자기 자신을 멸망으로 이끕니다. 아무리 뛰어난 계획도 하나님을 떠나면 어리석은 것이 되고, 아무리 약해 보이는 길도 하나님이 함께하면 구원의 길이 됩니다. 다윗을 죽이려는 아히도벨의 모략을 오히려 다윗을 구원하는 통로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 했던 인간의 모든 악한 모의와 모략을 우리를 구원하는 십자가의 지혜로 사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그 지혜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