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갇혀 있는
난민 스물 아홉 분에게
알트루사 모람들이 마련한 성탄 카드와 전화카드를 전하러 24일 오전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면회하는 이에게는 제가 보호소에 카드를 접수하고
포이에마예수교회에서 선물한 다른 카드까지 포함해서 나머지 카드는 이 주에 한 번씩 면회를 하고 있는 시민모임 '마중' 분들에게 나눠주어 전달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작은 방에서 창살과 유리 벽으로 막힌 채로
수화기를 들고
7년 넘게 알트루사 '난민과함께살기' 모임에서 만나고 있는 청년을 면회했습니다.
그는 두어 달 전 난민심사를 이틀 남겨두고
작은 접촉사고 때문에 미등록외국인임이 밝혀져
그 자리에서 바로 보호소로 끌려갔습니다.
원래는 유학생이었는데
고국의 정치상황으로 부모님의 신분이 급변한 탓에 비자연장이 되지 않아
이미 외국인보호소에 2년 간 갇힌 바 있었지요.
보호소 안에서 알트루사 성탄 카드를 받고 서로 알게 된 청년입니다.
공부하던 청년이 갑자기 갇혀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인데요...
보호소에서 나와
열심히 일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는데도,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그를 받아주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미등록 외국인입니다.
이런 식이니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매우 낮습니다.
1-3%니까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난민심사를 앞두고 알트루사 모람들이 썼던 탄원서 이야기에 그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도 못했다며 울었습니다.
젊은 청년은 할 일만큼이나 이런 저런 관계를 배워가기 위해
고민을 나눌 이웃도, 어른도 절실한데
연고가 없던 그에게 여러 난관이 계속해서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는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보증금이 없어 보호일시해제를 받지 못하는 처지에
무너지지 말자고, 꼭 기도하겠노라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처럼 저녁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면회를 하던 그 시각에
한 친구가 보증금을 내서 오후에 보호소에서 나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기적이 일어난 듯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그를 기다리던 아내와 아이에게
난방을 돕고, 성탄을 축하하는 자그만한 선물도 보냈습니다만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 이웃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서로 이야기 나누는 이웃으로
마음을 나누는 이웃으로
서로 북돋으며 살아고자 합니다.
모든 이들과 함께 이 곡을 듣습니다.
1212년부터 활동해온 소년합창단이 함께 하는 연주라서 더 놀랍습니다만
이천 년 전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를 생각하며 복잡하고도 특별한 마음으로 함께 듣습니다.
(* 사족 : 법무부에서는 한국어로는 보호소라고 하고 영문으로는 Detention Center 라고 쓰고 있습니다. 구금 시설이라고요. 두 번째 이곳을 찾은 한 수녀 님이 보호소라고 해서 쉼터 같은 곳인 줄 알았는데 사무소에 들어와 벽에 걸린 영문을 보고는 너무 놀랐다고 하더군요. 그들은 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