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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을 열어야 됩니까?(2364.2026.4.26)
시24:7-10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렸을 때 시골에 살면서 문을 열어놓고 살아도 되는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정말 옛날에는 문을 열어놓고 살 수 있는 사회였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사회는 문을 열어 놓고 살 수 없습니다. 앞집, 뒷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농촌에도 문을 열어놓고 다녀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순수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늘을 바라보고 살기 때문에 이웃집이 문을 열어 놓고 외출해도 그 집에 들어가서 값진 것을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남의 것에 대한 욕심이 없고 마음이 대체로 깨끗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믿고 삽니다. 신뢰가 쌓여있기 때문에 문을 열어 놓고 다녀도 별반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문을 걸어 잠궈도 훔쳐갑니다. 한해동안 땀흘려 농사지은 것도 움쳐간다는 뉴스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열어야 할 문이 많이 있습니다. 하루에서 수 차례 문을 열어야 합니다. 집 구조 자체가 문이 있어서 문을 열어야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문을 닫아 놓는다는 것은 주변 환경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문을 열어놓으면 도둑이 들어와서 돈이 될만한 것을 가져가기 때문에 불안해서 열어놓을 수 없습니다. 문을 단단히 잠구어도 교묘하게 문을 따고 들어가 가져가는 시대입니다. 도시에는 각종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서로 경쟁하며 살아갑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살만큼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웃에 사는 사람도 갓 이사를 왔기 때문에 아직은 믿을만한 처지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웃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깊은 신뢰가 쌓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어놓고 살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 사람이 열쇠를 여러 개 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자동차 열쇠, 대문 열쇠, 방문 열쇠, 책상 서랍 열쇠 등등 보통은 몇 개의 열쇠를 가지고 다니면서 열어야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문을 열지 않으면 불편해서 살 수 없는 형편입니다. 반드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도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도 제가 출근하여 퇴근 할 때 까지는 문을 잠그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들어오면 만나려고 문을 잠그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와달라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어떤 때는 무섭기도 합니다. 감리교 어느 목사님과 사모님이 오래전에 칼로 무참하게 찔러서 죽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후임목사님이 오셔서 건축을 하고, 또 다른 후임을 위해서 사택을 건축하고 교회 임지를 옮겼다는 간증도 듣기도 하고, 혼자 기도하고 있는 사모를 성폭행하는 일도 일어나서 교회를 풍지박살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도 집사람 철야하고 기도할 때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하나님이 지켜주시리라고 믿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불안하기도 합니다. 제가 사무실에 출근해서는 낮에는 문 열어놓고, 없을 때와 저녁에 퇴근 하면서 교회문을 잠그고 갑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뒤에 비빌번호를 알기 때문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들이 문을 잠그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들어와서 교회를 더럽히기도 하고 교회 물건을 가져가기 때문에 낮에도 문을 잠그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음대로 교회 문을 열어놓고 누구든지 들어와서 기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할텐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가슴아플 뿐입니다.
그러면 상주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여러분이 열어야 할 문은 어떤 문입니까? 신앙인들은 열어야 할 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열어야 할 문을 열면 복을 받게 됩니다. 문이 닫히면 엄청난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열어야 할 문은 반드시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나의 복으로 바꾸기 위해서라도 문을 반드시 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계3:7에서 말씀하시기를 자신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문을 닫으면 열 사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축복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 생활을 함에 있어서 우리 자신이 열어야 할 문은 어떤 문입니까?
본 시편은 기럇여야림의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의 집에 머물러 있던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면서 지은 시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해서 묘사되었고 장차 임하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시1-24편까지는, 차례로 고난당하는 과거의 그리스도, 목자처럼 인도하시는 현재의 그리스도, 승천하시어 재림하실 미래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메시야 예언시입니다. 아울러 본시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충만한 영광을 이해하고 찬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이 법궤를 새로운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 불렀던 노래로, 메시야의 부활과 승천과 영광을 기념하는 암시적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본시의 내용은 하나님의 우주적 주권의 찬양과(1-2절), 하나님의 성산에 오를 자의 자격과(3굴절), 영광의 왕의 입성에 대한 찬양(7-10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7절‘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문은 열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광을 받을 자들의 수를 정하셨기에 좁은 문(門)들이라고 하신 것인데 (눅13:24,25) 먼저는 택하사 구원하시고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주신 그 복음이 믿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10:9절 예수님께서 ‘내가 양의 문이라’ 하신 뜻은 복음은 아무나 믿어지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환경으로 심령을 가난하게 하신 자 (마5:3) 또 마리아같이 주의 발 앞에 앉은 자들을 믿어지게 하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문’이라고 하는 것은 열어 주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행16:14절에 아직도 복음이 긴가 민가 하는 분들은 루디아처럼 하나님이여 내 마음의 문을 열으사 사도바울로 주신 저 복음 나도 믿어지게 해주옵소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를 하나요? 마6:31절에 육신에 속해서 가정 평안이나 구하고 육신 잘되게만 해 달라고 그런 자들의 기도는 이방인들의 기도요 구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6:31) 오늘도 영광 받을 자들의 수를 채우시려 문들을 두드리고 계시는데 계3:20절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하셨는데 그 수가 차기까지 문을 두드린다 하신 것입니다. ‘문들아 너의 머리를 들지어다’열었으면 이제 머리를 들어 그 영광을 보라는 것입니다. 영적 성장입니다. 그래야 ‘영광의 왕이 들어가신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왕이 들어오신다는 것은 영광의 하나님이 믿어지고 영광의 하나님이 내 아버지구나 예수님이 내 신랑이구나 성령은 나를 첫째 부활로 인도하시는구나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문들아 너의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첫 번째 문은 영적 성장이요 영원한 문은 영원한 세계까지 확실히 보는 믿음의 단계 곧 주님의 신부감들을 단장케 하시는 역사를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내 영은 창세 전에 택한 영이요 잠깐 보내신 영이요 이제는 그 영광에 들어가게 하실 영원한 문들인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문이 열릴 때 우리에게는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열어야 할 문이 더러 있습니다. 열어야만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문을 열어야 됩니까?
여러분 ‘밥퍼 목사’로 잘 알려진 최일도 목사님의 어머니가 최 목사님이 초등학생 시절에 아들에게 낸 유머 퀴즈입니다. 산길을 가던 순례자가 호랑이를 만나자 무서워 기도를 했단다. ‘하나님, 제발 저를 살려 주세요’순례자의 기도를 들은 호랑이는 이렇게 기도를 했지.‘하나님,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아!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어 주었을까? 궁금한 최 목사님은 어머니에게 답을 가르쳐 달라 조르고 졸라도 빙긋이 미소만 짓던 어머니가 사흘 후에야 답을 알려 주셨습니다. ‘호랑이가 순례자를 맛있게 잡수셨단다’ 깜짝 놀란 아들에게 어머니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일도야! 하나님은 ‘청원기도’보다 ‘감사기도’를 먼저 들으신단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입이 감사하는 입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아름다운 입술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한 글자로 하면? ‘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두 글자로 말하면? ‘또 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세 글자로 하면? ‘역시 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네 글자로 말하면? ‘그래도 나’, 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입술을 열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입술의 문을 연다는 것은 이 입에서 예수를 전하라는 것이고, 그러기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이고, 말씀에 아멘하라는 것입니다. 입술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기도도, 아멘도, 전도도 못합니다. 말을 잘 못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제사장 사가랴가 말문이 막혀 벙어리가 된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자기 아내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잉태하여 순산할 것을 알려주었을 때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가랴의 입술을 봉하여 말을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세례요한을 순산한 후에 말문이 열려 말하게 된 것입니다.
왜 우리가 입술의 문을 열어야 합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기도하고, 아멘하고, 전도하기 위하여 입술의 문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10:14절‘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전하지 않고서 어찌 믿는 사람이 생기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입술을 봉하고 말하지 아니하면 다른 사람들이 생명이 들어 있는 진리에 대하여 듣지 못하게 됩니다. 구원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듣고서 예수를 믿고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전도하면 끈질기게 복음을 전파하면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부모 형제나 친척을 위하여 얼마나 전도했습니까? 몇 번이나 권면을 했습니까? 여러분들의 친한 친구나 이웃에게 얼마나 많이 권면하며 예수의 대하여 이야기했습니까? 시편 126편에 있는 말씀처럼 울면서 씨를 뿌릴 수 있는 마음이 있으면 예수에 대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기도하기 위하여 입술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의 사정을 말해야 합니다. 많은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말하지 못하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가 혼자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면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겠지만 그러나 매사가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은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 먼저 기도로 보고하고 추진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하는 입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자들은 빨리 입술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해야 할 때 입술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입술이 됩시다. 흔히들 귀찮다는 생각에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거나 아예 입술을 닫아버린다면 누가 이 세상에서 진실을 말하겠습니까? 만약 진실이 이 땅에서 사라지거나 숨어버리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반드시 진실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라도 말하여져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의 입술을 통하여 말하여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진실은 영원히 진실 그 자체입니다. 언제인가는 진실은 밝혀지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입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여러분은 태평양처럼 넓은 바다같은 마음의 문을 열으시길르 바랍니다. 사람들은 마음문을 꽉 닫아서 열지 않을려고 합니다. 왜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까? 마음문을 열어야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갖다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내 마음문이 열려 허락을 해야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오늘도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은 마음문을 활짝 열고 은혜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행16장에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마음 문을 열고 예수를 영접하게 되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였는데 그 날 밤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다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중죄인이 탈옥하면 그 날 담당 간수가 대신 처벌을 받기 때문에 이 간수는 그 처벌이 두려워 칼을 빼 자살을 기도하려고 했습니다.
이 때 바울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행16:28절‘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간수가 등불을 가지고 뛰어들어가 보았더니 과연 바울과 실라가 도망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을 본 간수는 감동을 받아 바울과 실과 앞에 부복하고 저희들을 데리고 나가서 말하기를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보는 순간 마음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간수의 마음 문이 열렸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이 날 간수는 마음문을 열고 그의 가족이 모두 다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음 문을 열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마음 문을 닫아버린 사람은 폐쇄적인 사람이 됩니다. 우울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우울증은 감자기 마음이 우울해지기도 하고, 나는 살고 싶지 않아, 죽었으면 좋겠어라며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고 감정의 변화가 나타나면 우줄증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치료하지 않으면 폐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마음 문을 닫아버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않습니다. 자기 주관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도 잘 하지 않으려고 하고 오직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 혼자만을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시는 여러분들은 언제나 마음문을 열고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하며 사랑으로 감싸주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에 감사가 넘치게 되고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라는 믿음을 갖고 항상 밝은면만 바라보려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행복합니다. 인생을 유쾌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과의 올바른 교제를 위해서도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내가 마음을 열어야 이웃과 대화가 됩니다. 세상을 사는데는 건전한 이웃, 믿을 수 있는 이웃이 필요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귀며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을 만들기 위해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이웃을 사귀시기 바랍니다. 예수 영접하고 좋은 이웃을 사귀면 우리 생활에 큰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문을 먼저 활짝 열수 있기를 바랍니다.
3.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교회 문을 열어야 합니다.
문을 자주 열어서 복이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문을 자주 열면 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 퇴폐적인 장소의 문을 자주 열면 망하게 되지만 교회 문은 자주 열면 복을 받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이 사모해야 할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전인 교회입니다. 교회를 사모하면 자주 오게 됩니다. 교회에 오면 교회 문을 여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성전을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만 출입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출입하면서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자기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성전이기에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큰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누구든지 성전에 들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마27:51절‘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갈라진 것은 누구든지 성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성전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성전 문을 자주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일주일 단 한번만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신자입니까? 여러분들은 일주일에 한번만 성전 문을 연 사람입니다. 왜 오후에는 성전 문을 열지 않습니까? 또 수요일에 왜 성전 문을 열지 않습니까? 수요예배에도 참석해서 성전 문을 열어야 됩니다.
성도가 성전 문을 한번만 열어서는 안됩니다. 직분을 가진 자가 칠일 동안에 주일 낮에 단 한번만 교회 문을 열어서 되겠습니까? 성전 문을 여는데 그렇게도 힘듭니까?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장애물이 많습니까? 과감하게 정리하고 교회에 자주 출입을 해야 우리 신앙이 깊어지고 은혜가 충만한 생활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죽으신 대가로 자유롭게 성전을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주님이 죽으신 덕분에 우리가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게 되었는데도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교인은 주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은 자주 성전 문을 열고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헛되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일주일에 몇 번씩이고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와서 예배에 참석하여 은혜를 충만히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축원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완공한 후에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만일 주의 백성들이 세상에 나가서 죄를 범한 후에 이 전에 들어와서 용서를 구하면 하늘에서 들으시고 용서하여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후에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빌면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이 기도를 분석하면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바라보고 기도를 해도 응답을 해 주시며 나아가서는 성전에 들어와서 용서를 구하면 틀림이 없이 응답해주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 문을 자주 열고 들어와서 기도하고 찬송 하여 인생의 문제를 빨리 해결 받고 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하늘 문을 열어야 합니다.
하늘 문을 열어야 재물의 복을 받습니다. 사람마다 복 받기를 좋아합니다. 복을 받아야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복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건강의 복, 재물의 복, 자녀의 복을 받으면 더욱 행복하겠지요? 일생동안 아프지 않고 별 탈 없이 지내면 복이고, 재물이 넉넉하여 어려움이 없이 지낸다면 이것도 복이며, 자녀들이 바르게 잘 자라서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면 이것도 또한 복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런 복을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하늘 문을 열어야 합니다. 하늘 문을 열면 복을 받습니다. 하늘의 문, 축복의 문을 열기 바랍니다. 축복의 문이 열리기만 하면 틀림없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빌4:19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풍성하게 채워주시면 복이 됩니다. 이것은 주로 재물에 관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되게 하셨고 이삭에게도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도 복을 넘치게 주셔서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들 모두에게 축복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에게도 축복의 문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해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하늘 문이 열리는가? 이는 하나님이 주셔야 하는데 말3:10절 이하에 보면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 창고에 넣을 때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은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황충을 금하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시고 포도나무의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셔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복되다’라고 말하게 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 십일조를 하나님의 창고에 들여서 축복의 문을 활짝 여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의 축복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축복의 문을 열지 못하면 창피한 노릇입니다. 축복의 문을 여십시오. 상주감리교히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은 반드시 하늘문을 열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면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시는 축복을 받으시기 축원합니다. 예수를 믿고 복 받은 사람이 어디 한둘입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하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늘 문을 열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천국 문은 우리가 마지막에 열어야 할 문입니다. 이 문을 반드시 열어야 합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천국 문은 돈으로도 열 수 있습니다. 권력을 가지고도 이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지혜가 충만해서 지혜로도 이 문을 열지 못합니다. 오로지 믿음으로만 이 문을 열 수 있습니다. 눅16:19이하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사로는 세상에 살 동안 거지로 고생을 했지만 그러나 마지막에는 천국 문을 열고 아브라함 품에 안겼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마지막에 천국 문을 열지 못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도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천국 문을 열지 못하면 불구덩이에 들어가서 걸걸 거리며 후회한다고 합니다.
천국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사람은 천국 문을 열 수 있는 믿음의 열쇠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깨어 준비합시다. 기도하면서 성령의 기름을 준비합시다. 그래서 이 세상살이를 끝내고 하나님이 부르실 때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갑시다. 스데반은 천국 문을 열고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복 있는 사람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은 항상 깨어있어서 준비하십시오. 확신 없는 믿음, 엉터리같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천국 문을 열지 못하면 불꽃가운데로 들어가게 됩니다. 좁은 길로 가되 깨어 기도하면서 신앙생활을 합시다. 그래서 천국 문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갑시다.
천국은 내 집입니다. 남의 집이 아닙니다. 여러분들과 나의 집입니다. 우리 다같이 손에 손잡고 천국 문을 열고 의기 양양하게 들어갑시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열어야 할 문 입술의 문을 열어 복음을 전하며 마음 문을 열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온전한 이웃을 사귀어야 하고 성전 문을 자주 열어서 믿음을 키워나가도록 합시다. 그리고 십일조를 드려 축복의 문을 열어서 물질의 축복을 여시고 마지막에 천국 문을 열어서 우리 모두 천국까지 같이 갈 수 있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