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광활한 대지와 파미르 고원의 초입을 지나,
서역의 더 깊은 심장부로 향하는 길은 매 순간이 지구가 처음 태어났을 때의 거친 숨결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카스에서 출발해 타스쿠르간으로 향하는 카라코람 하이웨이(KKH)의 험준한 산세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인류의 손길이 채 닿지 않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기이한 땅을 마주하게 된다.
현지인들이 '행성의 뒷골목'이라 부르는 곳, 바로 무지 화산구(木吉火山群, Muji Volcano Crater) 풍경구다.
행정구역상 아크토(Akto) 현 무지 향,
중국과 타지키스탄의 국경이 맞닿은 해발 약 3,500미터의 고공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지질학적 경이의 결정체다.
차 문을 열고 대지에 발을 내딛는 순간, 파미르 고원은 자신이 허락한 자만이
이 비경을 볼 수 있다는 듯 매서운 텃세를 부려왔다.
해발 3,000미터 고개를 넘어오며 조금씩 묵직해지던 머리는
이곳에 이르자 마치 날카로운 송곳으로 관자놀이를 찌르듯 지끈거렸고,
폐부 깊숙이 들이쉬는 숨은 어쩐지 허공을 헛도는 것처럼 가쁘기만 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래 주머니를 찬 듯 무거워지는 다리와 알싸한 어지러움.
고산지대가 여행자에게 공평하게 내리는 형벌이자 의식인 고산증(高山症)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희박한 공기 속에서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겨우 고개를 들었을 때,
사방을 압도하는 풍경에 호흡은 이내 다른 이유로 멎어버렸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인간의 상상력 너머에 존재하는, 완전히 낯설고 이국적인 잿빛과 붉은빛의 대지였다.
고산증으로 인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몸의 감각들은 오히려 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로 더 선명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무지 화산구는 흔히 '파미르의 눈(冰산之眼)'이라 불린다.
이 독특한 지형은 약 1,500년 전인 6세기경,
인류 역사로는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마지막으로 분출한 빙하 연안의 화산군이다.
지질학적으로는 인도 대륙판과 유라시아 대륙판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파미르 고원을 들어 올릴 때,
짓눌린 대지의 틈새로 지하 깊은 곳의 마그마가 뿜어져 나오며 형성되었다.
탐방로를 따라 느릿느릿,
고산의 리듬에 맞춰 걸으며 마주한 수십 개의 화산구들은 여전히 생생한 상흔처럼 남아 있었다.
마그마가 분출한 후 중심부가 붕괴하며 생긴 둥근 칼데라와 분화구들은,
마치 거대한 대륙이 하늘을 향해 깜빡이지 않는 눈을 뜨고 있는 듯 기묘한 영험함을 뿜어냈다.
이 기이한 '대지의 눈'을 바라보며 이곳의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대지의 격동을 신화의 언어로 풀어내어 전해왔다.
특히 화산구 뒤편으로 아스라이 늘어선,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서른여섯 개의 봉우리 중 유독 눈에 띄는 열여덟 개의
거대한 설산 봉우리를 두고 사람들은 ‘십팔나한 설산(十八罗汉雪山)’이라 불렀다.
불교 전설에 따르면, 옛날
이 땅 밑 깊은 곳에서
거대한 화산 폭발이 일어나 뜨거운 용암과 유황 불길이 서역 대지를 삼키려 했다고 한다.
세상이 온통 잿빛 불바다로 변할 위기에 처하자,
부처님의 제자인 열여덟 명의 나한(羅漢)들이 중생을 구하기 위해 파미르 고원의 가장 높은 이곳으로 내려왔다.
나한들은 끓어오르는 화산구 앞에 나란히 서서 가사 장삼을 휘날리며 밤낮으로 신통력의 기도를 올렸다.
나한들의 깊은 염원이 마침내 하늘에 닿자, 사방에서 얼음 바람이 불어와 화산의 뜨거운 불길을 잠재우기 시작했다.
격렬했던 불과 얼음의 전쟁이 끝나고 대지에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을 때,
다한 열여덟 명의 나한들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대로 거대한 하얀 설산 봉우리로 화(化)하여 대지를 영원히 지키는 파수꾼이 되었다.
대지가 흘린 눈물인 '무지 화산구'를,
만년설 옷을 입은 '십팔나한 설산'이 자비로운 눈빛으로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는 풍경의 이면에는
이러한 숭고한 서사가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전설의 서사처럼 이곳의 지질학적 아름다움은 거친 화산 지형과
십팔나한 설산의 백색 만년설이 이루는 극적인 대비에 있다.
고개를 들면 저 멀리 나한들의 굳건한 등뼈처럼 이어진 하얀 만년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데,
그 순백의 산맥을 배경으로 발밑에는 붉은색(철 성분), 황토색(황 성분), 검은색(현무암질 용암재)
광물이 켜켜이 쌓인 지질학적 모자이크가 대지에 수놓아져 있다.
뜨거운 불이 지나간 자리를 차가운 얼음의 성자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이 상반된 풍경은,
지구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수백만 년 동안 써 내려간 가장 격렬하고도 아름다운 서사시 같았다.
두통을 가라앉히려 연신 심호흡을 하며 걷다 보니
화산구 주변 습지에는 드문드문 맑은 샘물이 고여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또한 평범한 물이 아니었다. 지하의 화산 가스와 광물이 녹아 흐르는 천연 광천수로,
유황과 탄산 성분 때문에 물빛이 묘한 청록빛과 붉은빛을 동시에 띠며 보글보글 기포를 뿜어내고 있었다.
격정을 끝내고 침묵으로 돌아온 대지,
그 고요함 속에서 솟아오르는 차가운 탄산 샘물을 바라보며 묘한 평온함이 밀려왔다.
신기하게도 대지의 깊은 침묵을 마주하자,
나를 괴롭히던 고산의 통증도 서서히 풍경의 일부로 동화되며 가라앉는 듯했다.
길 위에서 마주했던 이민국의 엄격한 통제나 사막공로의 매서운 모래바람이 인간 사회와 자연의 장벽을 보여주었다면,
이곳 무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크기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들었다.
고산증으로 겪은 육체의 고통은 어쩌면 이 거대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부리는 알량한 오만을 버리라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수만 년의 지질학적 시간이 빚어낸 거대한 분화구와
그 뒤를 지키는 십팔나한의 성스러운 실루엣 앞에서 내가 걸어온 수백 킬로미터의 여정도,
삶에서 겪어낸 소란스러운 감정들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 한 자락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이 거친 고원을 목숨을 걸고 넘었던 실크로드의 순례자들과 상인들도
나와 같은 고산의 고통을 겪으며 이 붉은 화산 지대를 지났으리라.
그들 역시 저 하얗게 빛나는 십팔나한 설산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무사 안녕을 빌었을 것이다.
황량함 속에 깃든 이 장엄한 기운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이방인의 거친 숨결을 조용히 다독여 준다.
마실정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