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외래어 바로알기
출처 : EBS교육방송
당구는 요즘 남여노소 모두가 즐기는 레포츠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당구장에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당혹스러워진다. 당구장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대부분이 일본어 일색(一色)이어서 혹 여기가 일본 땅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는 당구장에서 사용하는 일본어 가운데 기술과 관련된 용어들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순화어들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마와시[まわし(廻し)] → 돌리기
다음 예는 당구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당구 기술과 관련된 일본어들이다.
가라쿠, 갸쿠, 나메(나미), 니주마와시, 마와시, 오마와시, 오시, 우라마와시, 하코마와시, 히네리, 히키, 힛카케(시카키)
위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당구 용어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일본어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당구 기술과 관련된 용어는 거의 100%가 일본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가운데 ‘마와시[まわし(廻し)]’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4구 경기가 인기가 있다. 4구 경기는 흰 공, 빨간 공 각각 두 개씩 총 4개의 공으로 하는 경기로, 흰 공[白球=手球]으로 두 개의 빨간 공[赤球=的球]을 연달아 맞추면 점수를 얻게 된다. 그런데 ‘마와시’는 흰 공으로 첫 번째 빨간 공을 맞춘 후, 근거리에 있는 두 번째 빨간 공을 직접 맞추지 않고 반대쪽으로 돌려 맞추는 것을 가리킨다. 즉, ‘돌리기’ 기술을 말한다.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집”(1995, 문화체육부)에서는 이를 ‘돌리기’로 순화하였다. 이러한 돌리기 기술에는 ‘니주마와시[にじゅうまわし(二重廻し)]’,
‘오마와시[おおまわし(大廻し)]’, ‘우라마와시[うらまわし(裏廻し)]’, ‘하코마와시[はこまわし(箱廻し)]’ 등이 있다. 이들은 ‘마와시’를 생략한 채 ‘니주’, ‘우라’, ‘하코’라 하기도 한다. “국어순화용어자료집”(1997, 문화체육부)에서는 이들을 각각 ‘이중돌리기’, ‘크게돌리기’, ‘뒤돌리기’, ‘귀돌리기’로 순화한 바 있다.
가라쿠[から(空)+cushion] → 민쿠션치기
당구 기술 용어 가운데에는 ‘가라쿠’는 특이하게 조어된 말이다. 일본어의 ‘가라[から(空)]’에 영어 cushion의 첫 음절 cu-을 결합하여 만든 말이다. 이 말은 ‘가락’으로 줄여 말하기도 한다. ‘가라쿠’는 3구(three cushion)에서 흰 공으로 3회 이상 쿠션에 부딪치게 한 후, 두 개의 빨간 공을 연달아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3구는 흰 공으로 첫 번째 빨간 공을 맞춘 다음 3회 이상 쿠션에 부딪치게 한 다음 두 번째 빨간 공을 맞추게 되어 있다. 즉 흰 공으로 첫 번째 빨간 공을 직접 맞추지 않고 쿠션부터 부딪치게 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3구에서 첫 번째 과정이 빠진다. 이로 인해 “국어순화용어자료집”(1997, 문화체육부)에서는 이를 ‘민쿠션치기’로 순화하였다. 국어에서 ‘민-’은 일부 명사 앞에 붙어 ‘그것이 없음’, 또는 ‘그것이 없는 것’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이다. 일본어의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가라’를 ‘민-’으로 대신한 것이다. 결국 접두사 ‘민-’과 ‘쿠션치기’를 결합하여 새로운 신어를 만들어 내었다.
이 밖에 당구 기술 용어로는 ‘갸쿠[ぎゃく(逆)]’, ‘나메(나미)[なめ(嘗め)]’, ‘오시[おし(押し)]’, ‘히네리[ひねり(捻り)]’, ‘히키[ひき(引き)]’, ‘힛카케(시카키)[ひっかけ(引掛け)]’, ‘리쿠(니쿠)[りく(陸)]’ 등이 있는데 이들은 각각 ‘반대치기’, ‘얇게치기’, ‘밀어치기’, ‘틀어치기’, ‘끌어치기’, ‘걸어치기’, ‘겹쳐밀기’로 바꿔 쓸 수 있다.
위에 제시한 당구 기술과 관련된 용어들은 어느 정도 정부 차원에서 순화하여 고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당구장에서는 여전히 일본어들이 더 널리 쓰이고 있다. 몇몇 당구장에서는 당구 용어를 자체적으로 순화하여 홍보하는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나 순화된 용어가 각기 달라 혼선을 빚는 경우가 없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 마련한 순화어가 제대로 홍보되지 못한 채 사장(死藏)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당구를 치러 갈 때마다 일본어 대신 순화된 용어를 하나씩 바꿔서 사용하는 노력을 한다면 당구장에서 일본어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도
그리 멀지는 않을 것이다
당구 분야의 일본어
이 자리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당구 분야의 일본어를 살펴보기로 한다. 지난 호에서는 당구 기술과 관련된 용어만을 살펴보았는데 이번 호에서는 당구 기술 용어를 제외하고, 자주 쓰이는 몇 가지 예를 선정하여 이에 대한 순화어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사가리(픽사리)[さがり(下がり)] → 헛치기
우리가 당구장에 들어가서 비교적 쉽게 들을 수 있는 일본어가 ‘픽사리’이다. ‘픽사리’는 흰 공[白球=手球]으로 빨간 공[赤球=的球]을 맞추기 위해 당구봉(=큐)으로 흰 공을 칠 때, 당구봉을 잘못 조절하여 헛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픽사리’를 하게 되면 점수를 잃는다. ‘픽사리’의 원래 말은 일본어 ‘사가리[さがり(下がり)]’로 점수를 잃어 점수가 내려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사가리’의 첫 음절을 ‘픽’으로 바꾸어 ‘픽사리’라 한다. 이때의 ‘픽’은 당구봉으로 흰 공을 헛칠 때 나는 소리를 나타낸 것일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의 대부분은 ‘픽사리’가 ‘점수가 내려 가는 것’이 아닌 ‘당구봉으로 흰 공을 헛치는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어순화용어자료집”(1997)에서는 이 점을 고려하여 ‘사가리(픽사리)’를 ‘헛치기’로 순화하였다.
시로(히로)[しろ(白)] → 흰공맞기
당구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예는 ‘히로’이다. ‘히로’는 당구봉으로 친 흰 공이 빨간 공을 맞추지 않고 또 다른 흰 공을 잘못 맞추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히로’는 원래 일본어 ‘시로[しろ(白)]’에서 온 말인데 ‘시로’는 ‘색이 흰 것’ 즉 당구에서 흰 공을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흰 공’보다는 ‘흰 공을 맞추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시로’도 ‘히로’로 바뀌었는데 일본어의 ‘시로’가 ‘히로’로 바뀐 것은 역구개음화 현상에 따른 것이다. 국어의 일부 방언에서 ‘형님’이 ‘성님’으로 바뀌는
것(지난 호에 다루었던 ‘히네리’, ‘힛카케’가 ‘시네리’, ‘시카키’로 소리나는 것도 마찬가지임.)을 구개음화라 하는데 이러한 구개음화 현상이 반대 방향으로 일어나는 것을 역구개음화 현상이라 한다. ‘시로(히로)’의 순화어는 ‘흰공맞기’이다.
기레이[きれい(奇麗)] → 좋아
이 밖에 당구 전문 용어라 할 수는 없지만 당구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로 ‘기레이’가 있다. 이는 상대가 공을 잘 쳤을 때 감탄하는 말로, 일본어 ‘きれい(奇麗)’에서 온 것이다. ‘솜씨나 기술 따위가 훌륭하고 멋짐’을 뜻한다. 이는 순화어인 ‘좋아’로 대신하여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출처 : 국립국어원, 박용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