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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수 엄마
원작 김 용 만
극본 조 영 훈
연출 임 종 성
나 오 는 사 람 들
기 용 박사장(50대)
능수 엄마 사 내(50대)
아 내 남 자(60초반)
허마두 여 자(60초반)
홍대성(40중반) 해 설
부 인(40중반)
M 시그널
아 내 춘성옥이 올림픽 지정업소로 선정도 됐는데 우리도 이제 새로운 경영전략이라도 세워야 되는 거 아녜요.
기 용 경영전략?
아 내 거창하게 전략이랄 것까지는 없고 직원들 의견이라도 들어보는 게 어떨까 하구요.
기 용 그러지 뭐. 이따가 쉬는 시간에 휴게실에 다과라도 준비해. 내가 허마두, 능수엄마, 미스강 데리고 갈 테니까.
M 코드
E 도란거리는 소리...멈추고
아 내 그래서 하는 얘긴데...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데 구태의연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린 그 동안 내용적인 면에만 치 중해 왔지 외형적인 면에는 소홀했잖아요.
기 용 그렇지. 뒤늦은 감은 없지만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 어.
아 내 화장실만 해도 그래요. 그 동안 화장실이라는 고정 관념에만 얽매 어 있어 개량에 게을리 하고 있었는데 뭔가 변혁이나 변모가 필 요하지 않나 싶어요.
능수엄마 화장실 얘기라면 지도 의견이 하나 있는데예.
아 내 말해 봐요, 능수엄마.
능수엄마 지는예. 화장실도 가꾸고 꾸미는 게 어떨까 싶어예. 꽃병도 놔두 고 촛불도 켜두고...그라믄 분위기가 훨씬 달라지지 않겠능교.
허마두 바로 그기야. 혹시 가정집이라면 몰라도 화장실에 꽃병을 놓거나 촛불을 켜둔 업소는 서울 시내에서 어디에도 없을 테니께니. 능수 엄마레 발상이 대단하외다. 아주 천잽네다.
아 내 진짜 좋은 생각이야. 기발하구.
기 용 미룰 거 뭐 있어. 당장에 화장실 공사부터 시작하자구. 그래서 능 수엄마가 말한 대로 분위기 있게 한번 꾸며 보자구...
M 브릿지
E 까치소리
아 내 당신 오늘 명륜동 간다고 했죠. 홍대성씨 가게 한다는 데요.
기 용 한번 가 본다, 가 본다 한 게 언젠데 도저히 틈을 못냈잖아. 모처 럼 오늘 우리 가게 쉬는 날이니 어떻게 하고 사는지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 하구.
아 내 나도 같이 갔으면 좋은데 선약이 있어서 아쉽네. 지난달에 한 약 속이라 깨기도 그렇구.
기 용 오늘만 날인가. 당신은 담에 가지 뭐. 이제 어디 사는 줄 알았으 니 계속 보고 살 텐데 뭘.
M 코드
해 설 홍대성이 그려준 약도를 찾아 가자 뒷골목에 <명륜동삼겹살>이란 간판이 보였다.
E 천천히 발소리
해 설 안으로 들어서니 이십여 평 되는 자그마한 식당인데 삼겹살 전문 집처럼 써 붙은 간판과는 달리 메뉴판에는 된장찌개, 김치찌개, 순두부, 동태찌개, 매운탕 등 기본 식사 메뉴도 붙어 있었다. 그들 부부 말고도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 하나를 두고 있는데 몸이 굼떠보였다.
기 용 (마음 속)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손님이 하나도 없네. 특징도 없고 분위기도 어설퍼. 손님은 식당에 들어섰을 때 그 업 소에서 풍기는 활달한 분위기....일테면 생기가 넘치고 푸짐하고 덜퍽진 분위기가 느껴져야지, 썰렁한 기분이 느껴지면 발길을 돌 리게 마련인데 말이야.
해 설 홍대성씨 부부와 이야기 하는 동안 한 쌍의 60대 손님이 들어왔 다.
기 용 가만. 저 손님 내가 받아볼게.
E 걸어서 멈추고
E 식탁에 물 컵 놓고 컵에 물 따르면
남 자 삼겹살 2인분 하고 밥 주세요.
기 용 네, 알았습니다.(크게, 외치는) 여기 삼겹살 둘이요.
소리(여) (OFF) 네.
기 용 벌써 봄기운이 느껴지죠?
남 자 그렇네요. 세월 빠르지요.
해 설 남자가 기용씨의 말을 받았다. 한마디가 아니고 세월이 빠르다는 말까지 보탠 것으로 보아 자신의 말을 귀찮아하는 것 같지는 않 다는 생각을 했다.
기 용 저는 고향이 시골이라 봄에 대한 느낌이 유별난 편입니다. 어린 시절 따스한 뒷산 골짜기가 생각나며 거기서 몰래 피우다 콜록대 며 기침하던 추억이 먼저 떠오르곤 하지요.
남 자 어린 시절이라면 몇 살 땐데요.
기 용 초등학교 5학년쯤 됐을 거예요.
여 자 어머, 초등학교 학생 때요? 요즘말로 문제아네요.(조금 웃음)
기 용 철없는 저보다 동네 형들이 문제였죠. 어린 아이에게 담배를 피우 게 하다니요. 그 형들 중에는 제 사촌 형도 끼어 있었죠. 하기야 그 시절엔 담배가 해롭다는 인식이 없었으니까....
M 브릿지
기 용 야, 여기 좀 앉아봐.
홍대성 뭘 트집 잡을라구. 왜 우리가 뭘 잘못했어?
기 용 제수씨도 앉아보세요.
부 인 (앉으며) 겁나네요. 작정하시고 오신 것 같아서요.
기 용 불판을 보고 손님한테 민망해서 혼났습니다. 반질반질하게 닦여져 있어야 할 텐데 때가 껴서 얼굴이 다 화끈거렸어요.
부 인 ....
기 용 제 말이 듣기 싫으시다면 입 다물겠습니다.
부 인 아녜요.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말씀만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 겠는데요. 오신 김에 많이 가르쳐주세요.
기 용 아까 제가 손님에게 취하는 태도를 보셨죠? 손님에게 썰렁한 분 위기를 보이면 안돼요. 손님이 없어도 바쁜 것처럼 보여야죠.
홍대성 옳은 말이야.
기 용 너는 입 다물어. 지금 제수씨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야. 너는 장사 폼부터 익혀야 해. 맨날 술에나 빠져 사니까 장사 폼이 잡히 겠어?
부 인 어쩌면 이렇게 제 속을 알아주시는지...
기 용 네 놈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제수씨도 흥이 나고 직원도 태 도가 달라져. 장사는 그냥저냥 하는 게 아니잖아. 네놈이 세상 원리를 몰라서 그래. 왕년에 재산 날려먹은 얘기나 노닥거리지 말 고...이젠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라구. 실패없는 성공 봤냐. 너는 나 보다 몇 배 행운아야. 지금 이것도 작은 밑천이 아니라구.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덤벼 봐.
홍대성 ....
부 인 고마워요. 저도 달라지겠어요.
기 용 주방도 저게 뭐니. 주방이 더러우면 밥맛이 잘도 나겠다. 네 밥상 이 저렇게 지저분하면 밥이 넘어가겠어?
부 인 제 탓이에요. 변명 같지만...이렇게 살다 보니 저도 나태해지고... 희망도 없고...
기 용 그런 정신인데 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일가족이 아예 지구라 도 떠나지 않구요....깔끔한 손님들은 저 꼴 하나만 봐도 이 집의 음식 맛과 위생상태를 다 알아버린다구요.
홍대성 면목 없다.
기 용 메뉴만 해도 그래. 메뉴가 아홉 가지나 되는데 일단 메뉴로 올려 놨으면 책임을 져야 해. 너 아홉 가지를 모두 자신 있게 맛 낼 수 있어?
홍대성 그야...
기 용 예를 들어 순두부가 자신 없는데 손님이 순두부를 시켰어. 어떡할 거야? 된장찌개라면 자신이 있는데 순두부 때문에 이미지가 나빠 지는 걸 고스란히 감수해야 할 처지야. 또 메뉴가 많으면 마진도 줄어. 단일 메뉴는 준비가 간단하잖니. 원가 절감이 가능해서 가 격 경쟁력도 높아진다구.
해 설 말과 함께 기용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시설을 둘러보았다. 시 설이나 도구의 능률적인 활용 등 개선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 가 아니었다.
E 걸으며(걷다가 서고 다시 걷기 반복)...(두 사람도 뒤 따르고)
기 용 여기 그릇이나 메뉴에 필요한 도구들만 해도 그래. 어느 위치에 어떤 식으로 두느냐에 따라 손놀림이 빨라지고 음식 제조 시간이 절약돼서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구. 또 일이 능률적이어서 노동력을 줄이고 인건비까지도 줄일 수 있어.
홍대성 순 주먹구구식이지. 내가 생각해두...
기 용 이래 가지고 밥 굶지 않고 산 것만도 다행이다. 도대체 너라는 인 간은 어떤 인간이냐.
홍대성 면목 없다.
기 용 너 매일 구석구석 윤나게 닦아. 그거 못하겠으면 진짜 지구를 떠 나던지. 네가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초라하게 사니?
홍대성 충고 고맙다. 진짜야.
기 용 입에 발린 소리 그만 하고 진짜 정신 차려.
홍대성 정신 차릴 거라니까. 진짜.
기 용 우선 삼겹살 맛을 더 낼 수 있도록 굽는 시설이나 파무침 같은 서비스 품목에 신경을 쓰라구. 삼겹살로 여러 가지 상품을 만들어 봐. 예를 들자면 와인삼겹, 녹차삼겹, 허브삼겹 같은 걸 연구해 보 라구. 간판도 삼겹살이니까 전문적으로 키워봐. 누구도 알지 못하 는 노하우가 있을 테니 그걸 찾아내. 그릇도 바꿔보구. 비싸지 않 으면서 신선한 이미지를 풍기는 제품으로...
홍대성 알았어.
기 용 또 하나 중요한 게 있어. 너한테 다른 어떤 것보다 급한 게 말투 와 친절미야. 손님을 끌 수 있는 말을 늘 염두에 두라구. 힘들겠 지만 변신해봐.
홍대성 변신...좋은 얘기야.
기 용 나도 처음엔 입이 안떨어져 손님을 맞아들이기는커녕 피하기만 했어. 그러다 일에 미치다보니까 문리가 터지더구나.
E 자리에 앉으며
기 용 이제 술 가져와. 한잔 하자.
홍대성 (반색) 좋아. 이제야 오붓한 시간이구나.
기 용 오붓한 시간? 그럼 나 안 마셔. 새로운 각오를 축하하자는 의미 로 마시자는 거지, 네놈 주벽에 공헌하자고 마시자는 거 아냐.
홍대성 누가 아니래니. 나도 마찬가지야. 각오를 다지자는 의미로 마시자 는 거지 술탐이 나서 좋아한 거 아냐.
기 용 정말야?
홍대성 그래.
기 용 넌 이제 술도 계산해서 마셔. 뭔 소리냐 하면...한 잔이든 두 잔이 든 술탐 때문에 마시는 게 아니고, 손님의 흥을 돋아주거나...아니 면 어떤 장삿속 때문에 마시라는 말야. 그러니 취하면 절대 안 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홍대성 알아. 음주도 수익성을 높이는 도구로 써라...이 얘기 아냐.
기 용 그리고 너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홍대성 뭔데.
기 용 일류 사기꾼이 되라... 이 얘기야. 사기를 치라는 말이 아니라 사 기가 뭔지 알라는 말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100명이라구 쳐. 그 중에서 두세 명만 사기꾼이면 그들에게 나머지는 먹힐 수밖에 없어. 그러니 백 명 모두 사기꾼이 돼야 한다구. 그래서 너도 사 기꾼이 되라는 거야. 우리 같은 경찰 출신은 법을 다뤄 봤으면서 도 아주 쑥맥이거든. 바보란 말이다. 사회에 나와 보니 우리 같은 바보들도 없더라구.
홍대성 방에 들어가 편안히 한잔 하자.
기 용 여기 홀에서 마셔.
홍대성 방이 편하잖아.
기 용 우리가 손님처럼 보이게 해야지. 홀이 텅 비어 있으면 들어오려던 손님도 발길을 돌려.
홍대성 그건 알지만...
기 용 알면 뭐해. 실천을 해야지.
홍대성 그나저나 너 같은 샌님 타입이 언제 그렇게 변했니.
기 용 너도 죽자사자 덤벼 봐. 확 달라지게 돼 있으니까. 우리 학교 다 닐 때 진화론 배웠잖아.
홍대성 맞아. 진화론. 다윈 선생한테.
기 용 그럼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하겠다. 절대 자리 뜨지 마. 손님은 주인이 있어야 그 업소에 믿음이 간다구. 명심해. 알았지?
M 브릿지
E 발소리
기 용 응, 왜 불이 켜 있지?
해 설 춘성옥 홀에 불이 켜져 있다. 쉬는 날인데 이상하다. 안에 들어가 보니 허마두, 아내, 능수엄마 셋이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다.
허마두 (조금 취했다) 어, 어서 오라우. 사장 선생. 우리 한잔 하고 있다 이. 내레 한잔 하고 싶어서 제수씨하고 능수엄마 안 불러냈나. 너 두 와서 한잔 하라우.
기 용 잘했다. 나도 가볍게 한잔 하고 오는 길이다.
허마두 이보라우. 기런데 말이야.
기 용 (자리에 앉으며) 응, 왜.
허마두 네놈이 6.3비상계엄 때 나한티 한 말 기억나네?
기 용 무슨 소리야. 이십 몇 년 전에 네가 한 말을 무슨 수로 내가 기억 해. 네놈 유언장이라면 몰라도.
허마두 그때 내레 이런 말 했디? 서울은 바빠 개디구 네놈 만나기 힘드 니께니 차라리 시골로 가라구 말이야. 네깐놈은 공돈 챙길 재간도 없구...반골기질이라 출세하기도 글렀구 기러니께니 산골 지서에 가서 촌색시 델구 연애나 하는 거이 딱 맞다구 말이야. 기케 하라 구.
기 용 그래. 그렇게만 살았으면 얼마나 행복했겠니.
아 내 (비아냥)지금도 안 늦었어요. 가서 그렇게 한번 살아봐요.
기 용 그러고 보니 네놈이 우리 마누라 꼬시고 있었구나. 그래 그럼 두 남자가 한 여자하고 살지 뭐.
허마두 기거이 정말이네? 니도 많이 개화했다야. 기럼 기러지 머. 제수 씨. 괜찮갔시요?
아 내 내 팔자가 늘어졌네요. 하루는 이 남자...하루는 저 남자...
능수엄마 지는 와 빼능교. 지도 꼬셨는데예.
기 용 뭐야, 능수 엄마까지? 그러고 보니 너 카사노바야?
허마두 뭬야, 카사노바?
M 브릿지
사 내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가서 묻는 건데...춘성옥과 원수져서 네가 얻 는 이득이 뭐냐?
해 설 모금정 박사장에게 그의 친구가 물었다. 친구는 전에 춘성옥에 나 타나 담배꽁초 사건을 일으킨 바로 그 장본인이었다.
박사장 그냥 그래. 그냥 기분이 찝찝해서 그래. 물론 춘성옥과는 메뉴가 다르니까 신경을 끌 수도 있지. 우리는 등심, 안심, 갈비, 차돌백 이, 육회 같은 쇠고기만 다루니까 춘성옥과는 부딪칠 게 없지만 그냥 기분이 안 좋아. 나빠.
사 내 그런 막연한 말이 어딨어.
박사장 네 질문이 쉬운 질문이 아니니 내 대답이 막연할 수밖에...
사 내 내 질문이 회의적이다, 그 말야?
박사장 ....
사 내 나는 네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어서 물은 건데 말이야. 네 말에 무조건 맞장구만 칠 게 아니라 네 생각을 검토해보자 이거지. 내 가 그걸 확실히 인식해야 적극성을 띨 거 아냐.
박사장 네가 장삿셈이 뭔지를 몰라서 그래. 잘되는 집 그늘에 가려지는 심정...그걸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르지. 검토도 필요 없어. 오로지 패자와 승자...간단한 그 결과만 있을 뿐이라구.
사 내 이웃간의 경쟁업체가 오히려 그 경쟁을 가물치로 여기는 경우도 있어.
박사장 가물치?
사 내 그래.
박사장 가물치라니.
사 내 민물고기 가물치 있잖아. 그 가물치. 민물고기 장사가 흔히 쓰는 요령이라고 해. 예를 들어 붕어를 함지박 두 개에 나누어 놓고 판 다면...거기에 놓고 파는 붕어보다 가물치를 함께 넣어둔 함지박의 붕어가 더 오래 산다는 거야. 왜냐하면 그 붕어들은 잡혀먹히지 않으려고 긴장하니까...
박사장 스트레스가 보약이 된 셈이군.
사 내 그렇지.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니까 오래 산 거지. 그러니 춘성옥 잘하는 것만 골라서 보약으로 써 먹으라 이 얘기야.
박사장 경쟁업체 둘이 서로 가물치 역할을 한다는 말이군. 요즘 말로 윈 윈 작전이라 그거지?
M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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