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 느닷없는 왕의 행차가 요란합니다. 왕비와 내관, 그리고 상궁, 나인에 호위군사까지 거느리고 말입니다.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실시하고 있는 ‘왕가의 산책’이랍니다. 세종 대의 왕의 산책을 거의 그대로 재현했다고 합니다. 주로 연기자들이 나서는 데 일반인도 체험할 수 있다고 하네요. 며칠 전 언론에 보도된 아래 사진을 자세히 보세요. 왕과 주위 사람들이 모두 외국인들이군요.^^

그런데, 사진을 더 자세히 보세요. 왕의 좌우를 칼 든 사람이 두 명이 보이지요. 그들이 들고 있는 칼은 손잡이가 무척이나 길고요. 이들은 누구일까요? 감히 임금 옆에서 무장을 하고 있다니, 놀랍지 않나요.
이들이 바로 운검입니다. 구름 운(雲), 검 검(劍). 임금을 최측근에서 호위하는 무인이지요. 나라에 큰 잔치나 행사가 열릴 때 임금이 가장 믿는 사람을 골라서 임명하였다고 합니다. 운검은 이처럼 왕을 호위하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고, 그 사람이 든 칼도 운검이라고 하였습니다. 운검을 별운검(別雲劍)이라고 했고요. 원래 이 칼의 이름은 칼집과 칼자루에 그려진 구름 모양의 장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구름무늬는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용, 곧 왕을 호위하는 상징성의 표현이고요.
세종실록 오례군례서례(五禮軍禮序禮)에는 운검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운검은 칼집은 사어피(沙魚皮. 상어나 가오리 가죽)로 싸고, 주홍색 칠을 한다. 장식은 백은(白銀)을 사용하며, 홍조수아(紅絛穗兒. 붉은 술)를 드리우고, 띠는 가죽을 사용한다.”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정조세자책봉의례도(正租世子冊封儀禮圖)>나 여타의 반차도 등을 보면 국왕의 호위무사인 운검들은 일반 환도에 비하여 훨씬 긴 칼을 등이나 어깨에 메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의 경호를 위해 목적도 있겠지만, 왕권의 상징 즉 의장용으로도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운검 이야기에 사육신 중의 한 명이었던 성상문이 빠져선 안되겠지요.
단종을 내쫓고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 명나라에서 사신이 옵니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이들은 명 사신의 송별연회를 거사 시점으로 정합니다. 이날 운검으로는 당시 도총관으로 있던 성승(성삼문의 아버지)과 유응부(사육신 중 한 명)가 내정되어 있었지요. 세조의 가장 근접거리에 칼을 품고 두 사람이 서 있게되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습니다. 그러나 연회 당일, 세조는 갑자기 자리가 좁으니 운검은 그만두라고 지시합니다. 유응부는 거사를 그대로 진행하려고 했지만 성삼문이 극구 말려서 후일을 기다리기로 하였답니다. 이에 일이 틀어지고 성상문 등은 멸족을 당하게 되지요.
이러한 운검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말기까지 줄곧 왕의 최근접거리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래는 효명세자의 연희장면입니다. 역시 왕의 의자 좌우로 각각 1명씩 운검을 등에 메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효명세자는 순조의 아들로 대리청정 4년만에 단명한 분이지요. 그의 아들이 헌종에 오릅니다. 임금의 용상을 그릴 수 없기 때문에 의자는 비어 있군요.

아, 검(양날검)이라고 부르면서 왜 도(刀)처럼 생겼냐고요? 고대엔 검과 도의 구분이 확실했지만, 후대에 올수록 검 대신 도를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검과 도를 구분없이 혼용해서 부르기도 했지요.
육군박물관과 고려대 박물관에 운검과 별운검이 소장되어 있는데, 일반적인 환도와 구별이 없습니다. 이들이 왜 운검이라는 명칭을 붙였는지는 아무런 설명이 없지요. 아래는 육군박물관 소장의 운검. 감상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