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에 묻혀 모닥불처럼 사위어가는 희미한 기억속에 잠재된 그 날의 설레임이 가슴으로 밀려든다. 시내 모처에 자리잡은 현대식 건물안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꼭꼭 숨어있는 민속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화려한 조명아래 진열되 있는 갖가지 상품들은 하나같이 옛 선조들의 유례나 한국적인 멋스러움이 묻어나지 않았다. 고도로 발달되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뒤안길로 밀려나는 옛 흔적은 아쉬움을 더할 뿐이었다.
민속박물관이라면 적어도 선사시대 유물들이 진열된 우리것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마음과 눈길이 차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 세삼스럽게 깨달았다.최고급 고단가 외제품으로만 진열된 상품은 어느 것 하나 고풍스럽거나 정겨움이란 느낄 수 없고 겉보기에 화려한 치장을 했을뿐,옛 전통의 진가나 진미의 아름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속에는 전통혼례식장도 있었고 입구가 어디며 출구가 어딘지 분간이 안되는 미로같은 식장을 찾아 친구아들 혼인잔치에 갔었다.문득 37년전 남편과 전통혼례식을 치렀던 그날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비록 때와 장소는 달랐지만 아련한 추억속에 빛바랜 필름처럼 겹쳐 돌아가는 장면안에 나 자신도 동화되어 잠시 잊혀진 남편의 모습과 흔적을 더듬고 있었다.
어느 시골집 안마당에 멍석을 깔고 초래상을 차리고 친지들과 이웃사람 몇명이 둘러선 초라한 혼례식이었지만 다홍치마에 초록색 저고리를 바쳐입고 족두리를 쓴 다소곳한 신부와 사모관대를 쓰고 정장차림에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마주선 신랑과 백년 가약을 맺던 그때 그 순간은 행복했으리라.
화려한 조명은 없었고 흥을 돋구어주는 풍악은 울리지 않았어도 가슴부푼 젊음의 날개를 한껏 펼치며 아름다운 인생을 꿈꾸고 미래를 약속했던 그날이 바로 오늘 같은데,인생의 덧없음은 세월의 부피만큼 쌓여가는 가파른 노을길을 누가 피해갈 수 있을까!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다.
여기 만인의 축복과 아울러 흥겨운 풍악에 맞쳐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등장하는 오늘의 주인공 신랑신부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한쌍의 꽃과 나비다. 주례사의 엄숙한 식순에 혼례식이 거행되고 아들 딸 열 둘을 낳아서 행복하게 잘 살라는 당부에 새로운 인생출발을 다짐하는 서약앞에 두 젊은 청춘남녀의 미소띈 얼굴은 천사처럼 행복 해 보였다. 아침 햇살처럼밝은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빌면서.
황금물결이 파도치는 들녘에 핀 가을꽃은 화사한 웃음과 진한 향기를 더해주고 색동 옷 곱게 단장한 수목은 한창 절정을 이룬 단풍으로 노을빛 처럼 불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