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러시아 복음으로 녹이는 선교사부부
본보 사장 고무송목사는 지난 11월 14일부터 20일까지 모스크바장로회신학대학교 객원교수 로 초빙을 받아 선교학을 특강했으며 교회개척현장을 답사 취재했다.
“제가 이곳 모스크바에 선교사로 파송 받은 지도 어느새 8년이 되어갑니다. 러시아 하늘 아래 아는 이 한사람 없이 오직 하나님께만 매달려 기도하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각고 끝에 세워진 모스크바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박창환, 이사장:이흥래)는 성령의 역사하심과 한국교회의 도우심으로 놀랍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지원해 주시는 고국의 교회와 성도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흥래선교사의 중심사역으로 러시아 복음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모스크바장 신대는 러시아 문교부의 정식 인가를 받아 현재 신학대학교 안에 신학부, 신대원, 목사계속 교육원, 군선교신학원, 대학원까지 골고루 갖춰져 있어 9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1백70명의 학생이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광활한 러시아 땅에 흩어진 15개 공화국에 서 온 학생들로서 기숙사까지도 제공받고 있다.
“러시아정부가 정식으로 허가해 준 신학교는 두 개 뿐입니다. 하나는 물론 러시아정교신학 교이고, 또 하나가 바로 저희 신학교입니다. 그러니까 저희 신학교는 개신교 신학교로서 유 일한 정식 신학교입니다.” 모스크바장신대 창설자이며 이사장으로서 실제적인 운영을 맡고 있는 이흥래선교사. 학교 이야기를 할라치면 그는 으레 목이 메인다. 이 복음의 터전은 그의 땀과 눈물과 기도의 결정체(結晶體)이며 분신(分身)이기 때문. 러시아 종교법에 준하여 98년 3월 30일자로 러시아장로교 교단으로 인정받아 이 학교의 정관이나 교리, 부동산, 재산권등 이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 98년 5월 28일에는 러시아장로회 모스크바노회를 창립, 지금까지 21명에게 목사안수, 장로 7명을 장립하기도 했다. 신학교가 소유한 부동산으로는 신학교 건 물 대지 1천2백평(건평 4백50평), 구 신학교 건물 대지 5백8평(건평2백40평), 기숙사 1백20평 (5층 건물 가운데 1층을 매입)이 학교재단 명의로 합법적으로 등록돼 있으며, 물론 노회유지 재단에 편입돼 있고 본인이나 가족 명의로 돼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아예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고향의 전답과 집까지도 처분, 신학교에 헌납한 실정.
지난날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이 땅, 그러나 선교적인 차원에서 준비된 것이 많은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훌륭한 건물들이다. 물론 낡았고, 그래서 싼 값에 매입, 수리해서 사용할 수 있다. 아울러 놀라운 사실은 모든 건물의 난방을 정부가 책임지고 있는 것. 집집마다 건 물건물마다 후끈후끈하다. 더운 물을 공급받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의 풍부한 천연가스 덕 분이겠지만, 아무튼 공산체제가 물려준 유산 아닐까. 두껍게 눈에 덮인 건물들, 그러나 강의 실도 기숙사도 따뜻하기만 하다. 얼어붙은 땅에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런가.
박창환총장과 스탭들
필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또 하나 감사한 일, 그것은 신학교 스탭들이다. 쟁쟁한 멤 버들로 구성돼 있다. 총장 박창환목사. 필자는 여러 해 전, 은사이시며 학장을 지낸 그가 이 순(耳順)의 연치(年齒) 막바지에 러시아선교사로 부름받아 떠날 때, 본보의 편집국장으로서 그와 인터뷰 한 일을 기억하게 된다. 사지(死地)로 떠나는 노전사(老戰士) 같다는 느낌이었 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는 이흥래선교사와 함께 이 학교의 기틀을 단단히 다져놓고 있는 것 이다.
모스크바장신대에는 박총장을 중심, 단단한 스탭들로 포진하고 있다. 동시통역사 정뽈리나교 수, 그녀는 이 학교의 꽃이다. 모든 강의가 그녀를 통해 통역된다. 모스크바대학 화공과 출 신. 천하에 제아무리 명강의로 소문난 강사라 할지라도 이곳에선 어쩔수 없이 그녀를 통해 걸러지게 마련. 행정을 관장하는 김다찌아나 장로. 그녀는 모스크바대학 지질학과 교수 출신 으로 92년 이흥래선교사를 만나 예수를 믿고 이 학교의 설립인가등 법적인 문제등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공산당 출신이기에 효과적으로 사역을 감당하기도. 박철주 행정과장. 사무실 을 홀로 지키며 학사문제에서 홍보에 이르기까지 제반 업무를 꼼꼼히 챙기는 살림꾼. 이곳 을 찾는 모든 이들의 가이드를 맡고 있는 최로자 집사. 그녀는 모스크바 사범대 러시아문학 전공으로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데, 역사 풍속 문학 등 다방면에 탁월한 식견과 경험으로 가 이드, 1박2일 레닌 그라드 답사 코스는 가히 환상적. 이밖에 박마리나(영양사), 제나이더(회 계사), 유정선(통역보조), 세르게이(법무사), 게나(변호사), 그리고 기사로 봉사하는 빅토르, 세르게이, 니콜라이, 기숙사와 살림을 도맡아 관리! 하고 있는 이성실 등등. 이들은 기쁨으로 맡은 일을 감당, 한결같이 밝은 미소로 얼어붙은 신학생들의 마음을 녹여주고 있다.
학사운영에 있어 급선무는 전임 교수진을 확보하는 일이라 여겨진다. 객원교수 제도를 활용, 국내외 저명 교수들과 목회자들을 초빙하고 있는데, 경비도 그렇거니와 체계적인 커리큘럼 을 위해 전임 사역자가 요청된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미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동역하고 자 하는 교수님들이 몇분 계셔서 새학기부터는 모실 수 있는 형편입니다” 이선교사는 러시 아 선교에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교수 요원을 간절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흥래선교사의 선교 전략은 러시아인들을 신학교에 모아들여 훈련시켜가지고 그들로 하여 금 러시아 전역에 흩어져 교회를 개척하도록 하고 한국교회와 연결을 시켜줌으로써 교회건 축에 지원을 받도록 하고 있다. 벌써 66개 교회가 개척됐다. 필자는 개척교회 현장을 답사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이선교사가 직접 통역과 운전기사를 대동, 현장을 찾아 나섰다. 역시 동토(凍土)의 땅은 넓고도 황량했다. 광활한 대지 위에 지극히 제한된 지역을 답사할 수밖 에. 아침 일찍 나섰지만 눈 덮인 길인지라 첫 교회를 찾았을 땐 황혼이었다. 빨간 벽돌 교회 당이 눈 속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불라가야 베스찌 교회(담임 안드레예프스키 미하일목 사). 목사와 교인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시멘트 안벽 공사중이었다. 서울염산교회(오신주목 사)에서 1억2천만원을 헌금, 외부공사를 마쳤고 내년 부활절에 완공, 10월초 오신주목사가 내방해서 인도하는 부흥성회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러시아 전역에 67개 교회 개척
우리는 눈 덮인 밤길을 재촉했다. 수요기도회를 함께 드리기로 약속한 교회를 찾아야 했기 때문. 쇼낀 스카야 교회(멜리니꼬브 쎄르게이 목사). 그러나 예배가 끝나 60여명 교인들은 흩어졌고 젊은 목사내외가 눈밭에서 3시간 동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구평현교회(김상해목 사)에서 1만4천달러를 헌금, 교회당 개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앞으로 1만달러 정도 더 들이 면 헌당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 밤으로 우리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자정 무렵에 도착한 곳은 무젠스키. 인구 12만명의 작 은 도시. 그곳에 대구노원교회(박태동목사)가 후원하고 있는 쩨르꼬비 보쥐야 교회(고를라쵸 브 유리 목사)를 찾은 것이다. 자동차학원으로 쓰이던 낡은 건물을 매입, 어느새 십자가를 올려 놓았다. 십자가를 보면 반드시 성호를 긋고 가는 러시아 사람들의 눈에 뜨이도록 한 배려. 5천만원 가량 지원받았고 2백50명 교인들이 자체로 1천5백만원 가량 헌금, 교회건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필자는 이 교회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깜짝 놀랐다. 사방으로 러시아정교회가 둘러싸여 있는 것 아닌가. 공산체제가 무너지면서 그동안 문이 닫혀있던 정교회가 다시 소 생하고 있는데, 급성장하는 한국교회 지원 장로교회를 보면서 시샘하는 통에 선교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러시아정교회라는 것.
“현재 66개 교회가 한국교회의 지원을 받아 개척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13개 교회가 교회 당을 완공했고 8개 교회가 건축중이며 4개 교회는 대지를 구입해서 건축을 준비하고 있습니 다” 이흥래선교사는 세워지는 교회들을 바라보며 후원교회에 감사하는 마음이었으며 더 많 은 한국교회가 복음의 불모지인 이 동토의 땅을 위해 선교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귀 로에 우리는 오룔이라는 작은 도시를 찾았다. 창동염광교회(최기석목사)가 후원하는 쥐보이 이스뜨치니끄 교회(에로쉬킨 뽀트르 목사)의 건축 현장이 그곳에 있었다. 비록 얼어붙긴 했 으나 아름다운 강변교회였다. 1억원 가량 후원을 받았고, 1백50명 교인들이 자체적으로 2천 만원 가량 헌금, 3백50석 가량의 3층 교회 건물을 2000년 10월 헌당 목표로 작업에 매진하 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도시엔 건축이 중단돼 있는 안타까운 교회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비파 니야 교회(이바노프 알렉세이 목사). 95년 개척해서 1백50명 가량 모이고 있는데, 대구지역 모 교회가 성전건축을 지원하다가 중단하는 통에 채 지붕을 올리지 못하고 쏟아지는 눈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 다행히 순천천보교회(이길수목사)가 후원을 약속, 눈속에서 대들보를 올리며 한국교회에 대한 감사가 넘치고 있었다.
필자는 개척교회 건축 현장에서 두손을 모았다. “주여, 조국을 축복해 주옵소서. 부강한 나 라가 세계선교를 감당했던 지난날의 역사가 한국교회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축복해 주 옵소서” 누구라서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가. 필자 역시 그동안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왔다. 물론 선교에 있어 돈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님에 틀 림 없다. 그러나 필요조건임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는가. 러시아 선교현장에서 부국선교론 (富國宣敎論)을 실감케 되는 것이다. 고무송 / 본보 사장
◆ 모스크바장신대 '트로이카'
“모스크바장신대는 세개의 축(軸)에 의해 운행되고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태동시킨 러시아 선교회(회장:곽연주목사), 둘째는 선교사를 파송한 남선교회전국연합회(회장:정승준장로), 셋 째는 체제를 유지 관리하고 있는 이사회(이사장:이흥래선교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말하자 면 트로이카 체제입니다” 오랫동안 이사회 서기로 봉사하고 있는 박위근목사(염천교회)의 코멘트.
“총회가 파송하고 남선교회전국연합회가 지원하고 있는 평신도 선교사 이흥래장로가 풍성 한 선교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을 기뻐하며 지원해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최근 군선교신학과를 개설, 러시아 군장교 30명이 야간신학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군복음화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모스크바에 1천명 규모의 중심교회를 건립하고자 합니다. 기도와 협조를 바랍니다.” 남선교회전국연합회 회장 정승준장로의 간곡한 당부.
“러시아선교회는 처음 세사람의 기도로 시작됐습니다. 순천노회에 제시했을 때 24명이 호 응했고 이어 전국적으로 확산됐습니다. 러시아선교가 순천에서 시작된 것은 지정학적인 이 유가 있습니다. 이곳을 집중 선교했던 미국남장로교 선교부의 활동, 그리고 이른바 여수순천 반란사건의 아픔 인하여 공산권 선교에 일찍 눈을 뜬 것입니다.” 산파역을 맡았던 김동운 목사(순천성광교회)의 속내 깊은 이야기.
◆ 동토의 땅서 헌신하는 선교가족
“우리 교단의 해외선교에 있어 러시아 파송 이흥래선교사의 선교 전략을 깊이 연구할 필요 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지인에 의한, 현지인을 위한 선 교 전략은 그곳에서 괄목할 만한 열매를 거두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 5월 모스크바 장로회신학대학을 방문, 학위 수여식과 목사 안수식에 참석했던 총회장 이규호목사의 이선 교사 사역에 대한 의미 깊은 코멘트.
이흥래, 그는 누구인가? 전남 보성출신. 대대로 예수 믿는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 스물세살 에 부인 이시청과 결혼, 딸 다섯을 두었다. “5만명을 전도하라”는 소명을 받고 순천노회성 서신학원에서 수학, 거문도에서 전도사로 교회를 섬겼다. 입대와 함께 그는 생각을 고쳐 먹 는다. 교회 사역자로선 도무지 5만명 전도를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기독실업가가 되 어 많은 목회자들을 지원, 보다 효율적인 전도를 할 수 있도록 후원한다는 것. 카투사로 군 복무하는 동안 사업준비를 다졌다. 순천노회 지역 만명의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 자신 의 포부를 알리는 편지를 발송했다.
제대와 함께 아내와 더불어 사업을 시작했다. 스테인리스 그릇장사였다. 떼돈을 벌었다. 번 들번들하는 새그릇을 놋그릇과 바꾸는 것이 유행이었던 시절. 비싼 놋그릇을 처분해서 곱쟁 이 장사를 했다. “신앙생활도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남편은 시무장로로, 아내는 권사로 교 회의 궂은 일을 도맡아 감당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았고, 집념이 강했습니다. 무엇 보다 복음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아울러 부인 이시청권사는 장부였습니다. 여전도회 장을 무려 8년동안이나 연임했습니다.” 이흥래장로와 함께 순천세광교회을 섬긴 손세진목 사의 언급.
이흥래장로는 장신대 단기과를 마쳤고, 목사고시에도 합격했다. 그러나 그는 목사안수를 받 지 않았다. 평신도 선교사로 헌신하겠다는 것이었다.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면서 러시아가 문호를 개방할 때 그는 러시아를 방문, 그곳에서 비로소 “5만명 전 도”의 오랜 숙원을 이룰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된다. 현지인을 모아 목회자를 양성해서 현 지에 교회를 개척하면 10억 러시아인을 구원받게 할 수 있다는 전략이었다. 카투사 군복무 할 때 귀에 익혔던 영어실력이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될줄이야.
그러나 그것으론 안되는 일이었다. 우리 말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는 조선족을 찾아나섰다. 넓고도 넓은 러시아 땅에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는가.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사람 들이 지금 그의 동역자가 됐다. 할렐루야! 그의 간증은 끝이 없다. 감동거편(感動巨篇)이 다.
그 감동의 절정에 그의 아내와 권속들이 있다. 지금 온 식구가 모스크바신학교에 매달려 있 다. 어떤 이는 족벌체제 운운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순명(順命)하고 있는 그 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으리. 그 누구라서 저토록 해낼 수 있을 것이런가. 특별히 11년째 풍을 맞아 왼쪽 수족이 온전치 못함에도 현장에서 큰 몫을 담당하 고 있는 아내 이시청권사의 모습. 당당한 총회파송 선교사 아니던가.
엄마와 함께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장녀 이성실. 그녀는 조선대 성악과 출신. 부모의 선교사역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 오히려 남편을 호남신대에 유학시켜 내일을 준하고 있는 형편. 둘째 이주미는 M.Div과정에 있고 그녀의 남편은 조선대 경제학과 출신, 현재 행정과 장으로 학사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보배 같은 사람들이다. 이흥래선교사의 간절한 소망을 들 어본다.
“그동안 협조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오며 저희들의 간절한 기도제목은 러시 아 장교를 복음으로 잘 무장시키는 일과 모스크바에 1천여명이 예배드릴 수 있는 중심 교회 를 세워 러시아 광활한 대지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의 모범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기도와 협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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