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는 나의 사랑이시니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나는 주님을 의지한다. 나에게 두려움 없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다." 너희가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을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또 이렇게 찬송할 것이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리며, 그의 높은 이름을 선포하여라.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송하여라. 이것을 온 세계에 알려라. 시온의 주민아! 소리를 높여서 노래하여라. 너희 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사 12:2-6, 새번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4: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신앙이란 명상이나 이해가 아니라 경험입니다. 영원한 '생수'와 '신앙'은 객관적 이론이 아니라 주관적 경험인 것입니다. 사람은 떡을 먹어야 살 수 있는데, 육신을 위한 떡과 영혼을 위한 떡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육신을 위해 마시는 물이 있고, 영혼을 위해 마시는 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예수님을 마시는 일입니다. 에수님께서느 제자들에게 떡을 주시면서 먹으라고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먹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 의해 이해되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먹고 마셔야 이해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게서 우리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살과 피가 되며, 그것이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목말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하나의 대상으로 이해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는 해마다 절기 때면 소나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는 예수님께서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제를 드리셨기 때문에 다시는 제사를 드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단번에 모든 것을 이루셨고 목마름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는 계속 솟아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3).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는 사람들을 영생으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중에서) ********************************************************************************************************** 성도의 감사와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만 의뢰한다. 우리는 이 세상도, 우리 자신의 현재와 미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죄 가운데 방황하던 시간들을 끝내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주 여호와는 우리의 힘, 우리의 노래, 우리의 구원이시다. 옛날 영어성경(KJV)은 ‘여호와’라는 원어를 ‘주’(the Lord)라는 말로 번역하였으나 본절을 포함하여 네 곳에서는 ‘여호와’(Jehovah)라는 말로 그대로 번역하였다(출 6:3; 시 83:18; 사 12:2; 26:4). 죄는 하나님의 징벌로 우리에게 고통과 두려움을 가져왔으나, 죄사함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평안과 위로, 힘과 기쁨과 노래를 가져다 주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또 성도의 감사와 찬송의 기쁨을 표현한다. 그는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라고 말한다. 그는 구원을 우물들에 비유한다. 우물은 물 저장고와 다르다. 물 저장고는 물을 다 쓰면 물이 없지만, 우물은 계속 물이 나오는 곳이다. 우물은 물이 풍성하다. 그 물은 목마름을 해소시킬 만한 시원한 물이며 우리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줄 만한 깨끗한 물이다. 그 물은 물맛도 매우 좋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생명이다. 주 예수께서는 구원을 생수에다 비유하셨다. 그는 수가성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4:13-14). 또 그는 초막절 끝날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그를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리켰다(요 7:37-39). 성도의 감사와 찬송은 기쁨의 감사와 찬송이다. 성도는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긷는다. 성도는 기쁘게 하나님을 찬송한다. 선지자 스바냐는 그 기쁨의 노래를 예언하기를,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다(습 3:14-15). 선지자 이사야는 또 메시아 시대에 성도들이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이름을 만방에 선포하며 전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는 말하기를,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메시아 시대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할 것이다. 찬송은 일종의 전도가 될 것이다. 성도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극히 아름다운 일을 찬송할 것이다. ‘극히 아름다운 일’이라는 원어(게우스)는 ‘뛰어나신 일들’(KJV, NASB), 혹은 ‘엄위하신 일들’ (BDB)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구원의 일을 가리킨다. 구원은 역사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이루어진 사건들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말하였다(고전 15:3-4). 복음의 내용은 놀랍고 엄위하신 일들이다. 그러나 구원은 또한 개인적으로는 구주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건이다. 우리 같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얻게 되었는지, 참으로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구원은 단지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또 하나님께서 지금도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은 구주이시다(딤전 1:1; 딛 1:3). 우리의 성화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하였다(고전 3:7). 본장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 시대에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릴 것을 예언하였다.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쳤고 그의 위로하심이 임하였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과 힘과 노래가 되신다는 것이다. 또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긷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들의 구원의 기쁨은 다함이 없을 것이다. 또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은 온 세계에 전파될 것이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구원의 일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의 일들, 또 우리 속에 주신 구원의 일들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이 예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루어졌다. 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삼일 만에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었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쳤고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위로가 넘쳤다. 구원의 생명수는 우리의 심령에 넘쳐 흐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고 찬송하며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만방에 전파하고 알리자. (김효성 목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