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
동국여지승람의 강릉대도호부편에 강릉부 동현 10리, 대천이
바다로 임하는 입구에 견조도(堅造島)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
대산록 곤신봉에서 면면이 이어져 강릉시의 아름다운 뒷동산 화
부산(花浮山)을 이루고 창해에 이르러 땅의 기를 모아 해발 37m의
바위 봉우리 산이 견조도이다.
이 견조도에서 바다의 흐름을 보노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고 견조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죽도봉(竹島峰)이라고 부른
다. 죽도봉과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어촌이 안목이다. 이곳에
강릉항이 축조되었다.
옛날 강릉 남대천이 강문(江門)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던 것이
수로 변경으로 지금과 같이 됨으로 한 마을인 남항진과는 갈라져
다른 마을이 되고, 견조도는 섬이 아닌 육지, 안목이 되었다. 안
목이란 이름은 견고하고도 안전한 길목이란 듯이 포함되어 있다.
강릉에서 안목을 젠주라고도 한다. 젠주는 전주라는 말의 방언
으로 죽도봉이 전라도 전주에서 떨어져 왔다고 하며, 전주에서
매년 땅 도지를 받으러 왔다는 말이 있다. 어린 소년이 죽도봉을
칡으로 얽어 놓고 도지 받으러 온 사람에게 좁은 땅에 산이 있어
귀찮으니 끌고 가라고 하여, 다시는 전주에서 자기들의 봉우리라
고 주장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그 재치 있는 말이 더 아름답다.
안목은 내가 일제 식민지 시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형 따
라 해수욕을 왔던 곳이다. 안목을 도보로 찾아오는 길은 옛 한송
사(寒松寺)가 있던 송림지대 옆을 지나게 된다. 한송사에 구전되는
내용은 문수, 보현 두 보살이 인도에서 건너와 한국의 동해안을
따라 여행하다가 푸른 동해바다를 앞에 둔 송림이 우거진 작은
언덕 절경을 발견하고 가람을 세운 것이 한송사라고 한다. 그 후
문수보살은 남아 있고, 보현보살은 떠나 지금의 성산면 보광리의
보현사로 옮겼다고 한다. 그래서 보살의 이름 따라 문수사와 보
현사가 되었다고 한다.
고려조의 이곡의 동우기에 문수, 보현 두 개의 돌부처가 출토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푸른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울창한 송림
속에 옛날 술랑, 남안, 영랑, 안상랑의 네 신선이 노닐던 한송정
이 있었다. 또 네 신선이 놀던 곳이라고 사선비(四仙碑)도 있었으
나, 이를 호종조(胡宗朝) 때 물에 버렸다고 한다.
고려시대 호종은 없다. 몽고 침략 후 그들이 침략군으로 정사
에 관여하였을 때를 호종이라고 한다면 내륙 사막의 군졸들이 한
송사 명승지에서 저지른 행패를 참을 길 없어 비석도 돌부처도
물에 넣고 땅에 묻었을 것이다.
강릉에 ʻ한송정을 어느 날 호랑이가 잡아 갈까-寒松何日 虎將
去, 한송하일 호장거-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명승지를 찾아온 점
령군의 행패를 하소연하는 말일 것이다.
이곳에 매장되었다가 출토된 두 개의 고려시대 석조보살상은
민족사와 같은 수난을 당했다. 석조보살좌상은 일본으로 1912년
반출되었다가 한일협정으로 1966년 반환되어 국보 124호로 국립
중앙박물관에 보존되었다.
얼굴 없이 발견된 석불상은 보물 81호로 지정되어 강릉시립박
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한송사와 한송정은 지금은 입으로만 전하
는 옛일이 되었다. 석탑 귀부가 소나무 우거진 작은 언덕에 있는
흔적을 찾아 복원하길 바란다.
안목의 남쪽에 있는 한송정은 안목의 북쪽에 잇는 경포대와 같
이 아름다운 가사로 중국에 전해졌다. 신라 말 고려 초기 장진공
이 한문으로 번역하여 ʻ한송정 달 밝은 밤에 경포대 물결 찬 데!
-月白寒松夜 波安鏡浦秋- 월백한송야 파안경포추-ʼ란 가사와 수많은
시문에 한송정 달밤과 경포호수의 잔잔한 물결이 같이 등장한다.
조상의 숨결이 배어 있는 아름다운 안목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동해의 해돋이다. 겨울철에는 죽도봉이나 안목항 방파제에
서, 여름에는 넓고 맑은 백사장 해수욕장에서 망망한 푸른 동해
바다를 가슴에 안고 티 없이 맑고 고운 해돋이를 마음껏 환호하
며 즐길 수 있다.
광명의 빛! 황홀한 영채!
띠구름 안고 밝음으로 아침을 여는 해!
황금색 구름에 감싸인 희망의 빛 아침 해!
같은 해가 수평선에 떠오르지만 구름의 조화로 항상 새롭고 곱
게 형형색색으로 변하여 희망의 빛을 발하고 있다. 돋는 해를 두
팔을 들어 마음껏 맞이하다가 돌아서서 저 멀리 우릴 감싸주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면 또한 장관이다. 하늘이 내려준 천사의 옷을
드리운 눈 덮인 은령을 수평선에 쏟은 햇볕이 곱게 어루만져 준
다. 여름에는 싱싱한 푸름의 골짜기와 능선과의 거리를 당겨주어
손을 뻗치면 만져질 듯하다. 영마루 마루턱에 드리운 옅은 흰 구
름이 열여덟 아가씨의 볼 마냥 담홍색으로 변하면 해는 수평선
위에서 활짝 웃는다.
신라 이사부는 하슬라(강릉) 군주를 하면서 행상왕국 우산국을
정벌할 때, 사자상을 배에 싣고 가 싸움 없이 복속시켜 화합의 한
나라가 되었다. 이사부의 출정은 안인진 수군으로 했겠지만 출발
은 안목에서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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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수필가
강원 강릉 출생.
전 경찰 총경, 경찰서장, 강원도 경우회장 역임.
1996년 한국수필 천료.
한국아동문학연구회 상임위원.
한국수필 작가회 회원.
강원문협 회원.
상훈: 새한국 문학상, 강원한국수필 문학상.
현) 철기 이범석 장군 기념사업회 운영이사.
저서 순라꾼의 넋두리, 직승기가 구한 인생,
사계절 꽃피는 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