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은 고대 전쟁사 담은 寶庫… 치열했던 역사 그대로 보여”
한반도의 산성은 성 안에서 왕과 함께 나라의 운명을 같이 하기로 작정한 국민들의 운명공동체라는 인식하에 조성된 동이족의 독특한 공간적 개념이라고 역사학자이자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설명했다. 결코 도피용이 아니고 한반도의 지형을 100% 활용한 유리한 지형에서 전투를 하려는 지혜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산성은 전형적인 방어용 시설이다. 평소에는 최소한의 인원이 시설과 군량미를 지키고 있다가 전시 때 읍성이 함락되면 산성으로 옮겨 적이 지칠 때까지 저항한다. 이는 조선시대의 지방방어체제인 진관체제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진관체제는 6개 진관으로 나누어 방어했으며, 각 도에는 병영과 수영을 두어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로 하여금 지휘토록 했다. 한 곳이 뚫리면 다른 곳이 막을 수 있도록 시스템으로 구축한 것이다.
병자호란 때 거란의 공격을 견디다 식량이 떨어져 스스로 문을 열고 항복했던 남한산성 모습.
그리고 산성도 종합적 유기적으로 봐야 한다. 하나의 산성만 보면 폐쇄적이고 도피용으로 보일지 모르나 전체적으로 보면 1차 방어선, 2차 방어선과 계속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그래서 수․당이나 몽골 등도 고구려나 고려를 결국 함락시킬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고조선에서 시작된 우리의 산성은 고구려․백제와 신라, 고려, 조선시대로 내려오면서 조금씩 차이를 보입니다. 물론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점은 똑 같으나 백제는 토성이 더 발달했고, 고구려는 석축성이 더 많이 보입니다. 반면 신라는 지역에 따라 석성과 토성이 혼재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대체적으로 초기의 산성은 토성, 후기는 석성으로 된 형태가 많이 보입니다. 이러한 특징을 조금만 파악하고 있어도 이야기꺼리는 매우 풍부해집니다. 어떤 산성에 토성의 형태를 띠다가 석성이 보이면 신라와 백제, 혹은 고구려와 백제가 치열한 공방을 벌였고, 처음엔 누가 점령했고, 나중엔 누가 지배한 흔적까지 추정할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산성을 복원하는 작업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고, 당시 상황에 맞게 조성하면 현대인들에게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제공하고 가슴에 와 닿을 것입니다.”
이덕일씨가 한국 역사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산성에 한 국가의 역사가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쉽게도 역사적 의미를 모르고, 더더욱 사실관계조차 찾지 못한 상태에서 복원하고 있어 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떤 산성은 복원 안한 것만큼 못할 정도로 마구잡이 복원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역사에 대한, 산성에 대한 구체적 연구가 없으니, 복원작업도 중구난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증 없이 복원된 산성은 차라리 흩어진 형태로 그대로 두는 게 오히려 역사연구에 더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김병기씨가 산성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산성을 보고 있으면 애잔한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축성했던 시대상황, 축성 인부들의 노고의 흔적, 외침으로부터 항거하기 위해 피땀 흘린 흔적, 점령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흔적 등등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갑니다. 산성의 돌은 그냥 있는 돌이 아닙니다. 쌓인 돌무더기를 통해 역사를 조명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슬프죠. 거기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살아 있습니까? 산성에는 무궁무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산성은 우리 고대 전쟁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보고(寶庫) 입니다.”
길게 늘어선 산성이 우리나라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사실을 아는 듯 최근 산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산성답사 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그 소중한 역사인 산성에 대한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소장은 산성에 대한 기록은 각 고을에 남아 있는 ‘읍지’를 면밀히 살펴보면 그나마 산성에 대한 개략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산성에 대한 찬사는 계속됐다.
“만리장성은 인공적인 반면 우리 산성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자연 그대로의 미(美)를 살려 방어하도록 한 시설입니다. 다녀보면 정말 감탄할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지금 한국을 찾는 많은 외국 관광객들에게, 특히 중국과 일본인들에게 제대로 보존됐거나 복원된 시대별 산성 몇 개만 보여주면 그들 역사와의 차이성이나 연계성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소장은 문화재청에서 산성에 대한 장기 플랜을 세워 지역별 시대별로 특징적인 산성을 몇 개만이라도 제대로 복원해서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면 그게 바로 ‘한국의 살아있는 역사’가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산성복원이야말로 현 정부에서 강조하는 ‘창조경제’라는 거다.
북한산성길을 등산객들이 걷고 있다.
“지금 정부에서 창조경제를 말하는데,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창조경제를 실천할 계획입니다. 큰 틀에서는 식민사관이나 노론사관을 극복하고 타파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차 자료를 확보해야 하고, 역사원서를 정확히 많이 읽어야겠죠. 그리고 개별 저서를 통해 대중화 작업도 소홀히 않을 작정입니다. 최종 목표는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우리 후손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연구하고 토론할 수 있는 풍토를 갖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현재 주류 사학계는 정부 돈을 받아서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비주류 사학계는 자비로 전국으로 해외로 답사 다니며 1차 자료를 수집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정상적이지는 않죠. 아마 사학계 풍토가 제대로 잡히면 고쳐지리라 믿습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김병기 공동대표가 주류사학계의 문제점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1997년 이후 이 소장이 낸 책은 30여권에 달한다. 1년에 2~3권 가량 내지만 그 때마다 화제와 반향을 일으켰다. <이덕일의 여인열전> <오국사기>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내면서 전국 최고의 역사평론가와 역사작가가 됐다. 출판사에서는 그의 이름만으로도 5만부 정도 나가는 것으로 잡고 있을 정도다. 그가 여태 펴낸 책은 <조선왕 독살사건>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오국사기> <교양 한국사> 등 무수히 많다. 이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책들이다. <조선왕 독살사건>과 <조선 최대 갑부 역관>은 두 책이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산성만 모아도 엄청난 양이 됩니다. 그 산성에 누가 관심을 가진 학자가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문헌에 나오는 산성만이라도 모으고 제대로 복원해서 한국의 역사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나아가 전국의 산성을 연결하면 산성순례길이 되면서 자연 옛길도 복원됩니다. 올레길이나 둘레길은 그냥 걷지만 산성순례길은 우리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며 조상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정감어린 길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한국사 교육이고, 살아 있는 역사인 것입니다.”
자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