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밭의 여름나기 추억
글쓴이 정 길 환
금년 여름은 다른 해에 비해 무척 더웠다. 10년 만에 찾아온 최고의 폭염이라니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보통 35도C를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숨쉬기조
차 힘들다. 특히 한 낮에 아스팔트를 거닐다 보면 땀을 닦아내기 바쁘다. 더위에
지쳐 죽은 사람도 속출했다.
심지어 나무그늘에 피해 더위를 식히려고 해도 도심의 빌딩 숲에서 토해내는 열
기 덕분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이쯤 되니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을 찬물에 담
가 두었다가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껍질까지 갉아먹었던 어린 시절이 새삼 그
리워지곤 한다.
지금이야 냉장고가 있어서 사시사철 시원하게 과일을 먹을 수 있지만, 까마득 냉
장고가 없던 1960년대엔 샘물을 뜬 다라에 수박이나 참외 등 과일을 담가서 먹는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가끔씩 장사꾼의 옆구리에 네모난 아이스박스를 메고 다
니는 아이스깨끼를 사먹는 것이 그당시엔 최고의 기쁨이었다.
한 여름에 시원한 얼음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맛이 입안에서 달
콤하게 사르르 녹아 어린 우리들을 미치도록 유혹할 정도이니 얼마나 먹고싶은
기호식품인지 상상해 보라? 그 당시의 그 맛에 끌려 아내와 함께 저녁 때 산보하
다가 슈퍼마켙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어 보지만 그 때의 그 맛을 느끼지 못
한다.
이 찌는 듯한 무더위에는 동네 앞에 드리운 시원한 정자나무를 찾거나, 가까운 냇
가로 나가서 고작 목욕하는 게 유일한 낙(樂)이었다. 해수욕장 가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한 그 시절엔 돗자리 깔아 놓고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장기를 두거나, 옥
수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여름을 즐기는 피서방법이었다.
그리고 동네 앞 먼발치에 떨어진 원두막은 아이들 여름풍경 그림으로 빼놓을 수
없는 피서지로 통한다. 하얀 모시옷을 입고서 원두막을 지키는 어르신이 윗도리
를 홀랑 벗어 던지고는 크나큰 부채를 흔들어 대다가 가끔씩 헛기침을 하는 등
수박밭을 지킨다. 사리를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이른 바, 요즘 말로 보안요
원인 셈이다.
어르신의 눈초리는 이리저리 돌려가며 오가는 사람을 주시한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여름밤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밤하늘의 별들이 수놓기 시작한다.
어쩌다 자리를 비우게 되면 걱정이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사리를 막기 위
해서 그렇다.
지레 짐작에 원두막을 지키는 동안 잠이라도 들 수 있으련만 어르신은 꼼짝달
싹도 않은 체로 주위를 살핀다. 어르신의 성품은 동네의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에 어린 우리들은 딴 생각을 할 엄두도 못 낸다.
그도 그럴 것이 수박이 너무 익어 물러 터져도 "놔두거라. 수박밭에 거름된다.."
며 수박 하나라도 건드리지 못하게 할 정도로 동네노랑이로 통하니 어르신께서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처럼 무더운 여름 한 철을 시골에서 보낸 나의 어린 시절은 많은 추억을 되살
리게 할 정도로 얘깃거리가 풍부한 게 사실이다. 지금도 가끔씩 그 원두막에 얽
힌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질 땐 어느새 입가에 미소를 자아내곤 한다.
한번은 고등학교 다닐 때 다른 동네 친구 세 명과 수박 사리를 했는데 온 동네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우리는 며칠 전부터 사리하기를 결심하고 나름대로
치밀한 방법을 세웠다. 가급적 달빛이 없는 그믐으로 선택했다. 달빛의 그림자
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술시(戌時) 이후로 잡았
다.
드디어 우리는 어르신의 눈에 띠지 않기 위해 위장을 했다. 검은 색 모자에 풀을
달고 샤츠와 바지도 검은 색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얼굴엔 숯 덩어리로 검게
칠 하고서 살금살금 매복을 하기 시작했다. 군대에서의 훈련과정을 실습이라도
하 듯 숨을 죽이며 수박밭을 향했다.
이윽고 수박밭에 엉금엉금 기어 들어가 큰 덩어리를 찾고 있는데 한 친구의 손에
물컹한 뱀을 만져 깜짝 놀라는 바람에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즉, 비상사태
가 발생한 것이다. 드디어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진다. 사리하는 자와 지키는 자
의 결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리를 하는 우리들의 반대쪽에 위치한 원두막에 계신 수박밭 주인 어르신이 사
람소리를 어슴푸레 듣고서 후레쉬를 켜들고 사방을 비춘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불빛에 놀라 수박밭의 풀 속에 신속하고도 최대한 납작하게 엎드린다. 그렇지만
어르신은 사람 낌새를 느꼈는지 계속해서 불빛을 비추며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
한다.
그리고는 주인이 소리를 지른다. “걸리면 죽여, 걸리면 죽여” 그래도 양이 안 찼
던지 깡통소리와 함께 돌멩이를 이리저리 던지는 것이다. 주먹만한 돌멩이가 우
리들 머리맡에 툭툭 떨어질 때면 까딱 잘 못하면 돌멩이에 맞아 머리가 박살 날
수도 있다. 그 순간 우리들의 가슴이 콩 알만 해질 정도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가 조용해지기를 바랬다.
이 때 풀 속에 엎드려 있는 동안 모기가 몰려들어 우리들의 살을 물어뜯어도 소
리를 내지 못하고 모든 걸 모기의 양심에 맡기는 처량한 신세가 되기도 한다. 이
윽고 원두막에서 인기척을 느꼈던지 원두막에서 주인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수습될 기미가 안 보이자 삼십육계 뛰기를 작정하고 도망을
쳤다. 모두들 100m를 20초 이내에 뛰는 친구들이라 제아무리 어르신의 동작이
빠르더라도 잡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동작이 느리고 몸집이 큰 나로서는 큰 문제
였다. 자칫 주인 손에 잡힐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워낙 급했던지 네 명의 친구들 중에서 내가 2등으로
도망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상을 초월한 달리기 선수로써 내 자신의
또 다른 면을 확인하는 것 같아 그저 웃음만 자아낼 뿐이다.
다른 친구들이야 붙잡혀도 안면을 모르니까 용서를 구할 수도 있지만 위아래 집
에 사는 나의 처지는 확연히 다르다. 만에 하나 내가 잡히는 날엔 부모님의 얼굴
에 먹칠을 하는 것은 물론, 나에 대한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추락하여 걷잡을 수
없다.
그런 위기상황에 직면한 나는 죽기살기로 위기를 모면해야 하는 그야말로, 초스
피드의 초월적 에너지를 발산했던 것 같다. 참으로 다시금 재생할 수 없는 무한
한 초능력자가 된 것이다.
위기를 모면한 우리는 무더운 여름 살얼음판을 걷기라도 하듯 콩알만한 가슴을
읖조리는 추운 겨울을 맞는 듯 했다. 2km쯤 떨어진 방죽에 가서 얼굴에 뭍은 위
장술을 지우고 더럽게 흙탕물이 뭍은 옷도 빨아 입으면서 한숨을 크게 쉬며 안
도의 얘기를 나누었다. 만약 그 때 우리들이 잡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도
생각해 보면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편안하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얘기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그 날 이후 나는 그 어르신 보기가 껄끄러웠다. 그리고 내가 결혼해서 어른이 되
어 우연히 내가 살던 고향에 갔을 때 그 어른을 뵙고서 그 사실을 고백했는데 그
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계셨다.
내 말을 듣고 난 그 어르신은 나에게 “먹고 싶으면 그 때 말하지 그랬어” 오히려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어렸을 때 느꼈던 그 어르신의 품격이 아니었
다. 그 당시 어르신께 왜 그런 말을 못했는지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저 부끄
러울 뿐이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수박 한 두덩이 못 줄 어르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
르신은 수박밭의 수박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수박밭을 밟아버릴 경우에 수박이
뭉그러뜨려 수박농사를 망칠까봐 원두막에서 수박사리를 지켰을 것으로 생각된
다. 분명히 어린 우리가 어르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착오이다.
먹거리가 귀하던 그 시절엔 수박이나 참외 등의 사리를 통해서 어릴 때 알지 못
했던 사실을 어른이 돼서야 이렇게 알고 보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그것은 수박
을 몇 덩이 잃어버린 것보다도 대부분 철없는 아이들이 넝쿨을 짓밟을 경우에
수박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우려가 들기 때문이다.
30여 년 전에 동네 강변과 들판이 너른 곳에는 어김없이 수박을 많이 심었다. 그
래서 원두막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수박을 몰래 따먹으려는 젊은 사람과 이를
지키려는 주인간에 얽힌 추억은 그 시절을 풍미해 온 우리들 세대인 특히 중, 장
년층이라면 모두다 한번쯤 공감할 내용이다. 먹고 난 수박껍질로 모자를 만들어
쓰며 온 동네를 다닌 어린 시절의 여름나기 추억이 그리워지곤 한다.
(2004. 8. 20)
첫댓글 아~~수박서리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우리 촌놈들의 유일한 여름밤 놀이 아니던가요?
지기님의 글을 접하다 보면 어릴적 추억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가는구려. 잠시 향수에 빠지게 하는 글 감사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