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노년의 향기/수원교구 고등동성당 윤석철 안또니오
사도 바오로의 열정을 사는 사람
이경숙 아네스 수원 Re. 명예기자
5월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날, 코로나19로 인해 신자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할 때 고등동성당(주임신부 박희훈 레오)에서 윤석철 안또니오(77세) 형제를 만났다.
고등동성당에 가서 그를 찾을 때 그를 모르는 사람은 그 본당 신자가 아니거나 외부 손님이란다. 신자가 되기 전부터 고등동에서 터줏대감처럼 살아온 그가 세례를 받은 이후의 삶은 열정 그 자체다.
세례식이 있는 날 부친의 환갑으로 세례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본당 사정으로 세례식이 한 주간 늦춰지는 바람에 1983년 5월7일 극적으로 세례를 받았다. 10일 후에 레지오(순교자들의 모후 Pr.)에 입단한 그는 그 후 1년 동안 20명을 입교시킬 정도로 선교의 열정을 갖고 살았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 입교자들을 교리반에 참석시키기 위해 오토바이에 태워 데려다주는 일은 다반사였는데, 그가 이렇게 입교시킨 사람이 37년간 60명이 넘는다고 한다.
세례받기 전의 그를 기억한다면, 예수님을 믿으라고 그의 사업장을 들르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냉대를 받으며 쫓겨나기 십상이었다고 한다. 말만 앞세운 그 예수쟁이들보다는 내가 훨씬 더 잘살고 있다며 박해했단다. 그런 그에게 절친이 다가와 성당에 함께 가자했을 때도 어김없이 냉대했다. 그럼에도 계속 권유하는 친구에게 조금씩 마음이 열리기 시작해 마침내 그해의 마지막 날 입교 결심을 하였다. 새해 초이튿날 온 가족 6명이 입교식에 참석하고, 교리공부를 마쳐 세례를 받았다.
열정적으로 선교활동을 하는 그를 신부님과 꾸리아 단장님이 그냥 놔두지 않으시고 본당 선교차장으로 발탁하셨고, 본당 사목회 부회장, 사목회 회장, 고등동 요셉노인대학 학장을, 레지오에서는 85년 6월에 Pr. 회계를, 88년 9월에는 분단하는 Pr.(창조주의 어머니)의 부단장, 레지아 직속 은총의 어머니 꾸리아 부단장, 레지아 회계․부단장을 거쳐 2003년 6월부터 레지아 단장을 역임했다. 수원교구에서는 평단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많은 일에 주님의 도구로서 쓰임을 감사하며 소임을 다했다.
37년간 60여 명 입교시키며 선교 열정 불태워
이러한 일들은 성령의 도우심과 그가 매일 같이 읽는 성경 말씀 중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오 5,16)를 좌우명으로 여기고 매일을 반추하며 살았기 때문이란다. 남들 앞에 나서다 보면 많은 시련과 걸림돌에 마음 아파하는 일이 많아지는데 위의 말씀과 그 누구보다 신부님 수녀님들의 삶을 보며 신앙생활을 이어왔다고 했다.
그는 또한 영세 후 10년쯤 되었을 무렵 성찬의 전례(거양성체) 때 성체 신비체험을 한 이후 그 사랑에 사로잡혀 오늘에 이르렀다.
“죽는 순간까지 성모님의 도구로 레지오인으로 살다가 그 부르심을 받은 것에 대한 예의를 드리며 욕되지 않은 삶으로 이 세상을 마감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양심이 망가지지 않는 삶을 살도록,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깨어 살아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청원하며 기도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환희․빛․고통․영광의 신비 묵주기도로 그는 일과를 시작한다. 매일 미사 봉헌의 달콤함은 빼놓을 수 없는 것. 수원 시내 중앙에 우뚝 솟은 팔달산 둘레길 산책을 하는 그 손에는 묵주 알이 돌려진다. 요즈음 코로나19로 70세 이상 신자는 평일미사 참례를 하지 말라는 지침에 따라 미사 봉헌을 못 한다. 팔다리 튼튼하고 건강하니까 괜찮지 않겠냐고 항변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생각하여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지침에 협조한다.
쁘레또리움 단원(순교자들의 모후Pr. 단원 11명)으로서 미사 봉헌도 주회도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보고 원칙주의자라 한다. 모임에서 신앙인에 어긋나는 행동과 언어가 나올 때는 그 즉시 그의 타이름과 꾸짖음을 듣지 않을 수가 없다. 반박할 여지가 없는 당연한 말씀이기에 꼼짝도 못한다. 남들이 꺼린다 하더라도 담대히 말한다.
그는 아무도 없는 곳이라도 건널목이 아닌 곳에서는 길을 건너지 않는다. 누가 있든지 없든지 규율이나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신앙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앙인은 표양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알리는 것이 선교의 지름길
“요즘처럼 가정방문하며 선교하기가 어려운 시대에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리는 것이 답입니다. 한 번의 만남에서 성공하기는 극히 어렵고 이슬비에 옷 젖는다고 잦은 만남을 통해 주님 자랑만 하
윤공희 대주교님 방문(2012)
면 됩니다. 일 년에 1명 이상 입교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더 많으면 하느님이 주시는 덤입니다.”
철물점에 물건을 사러 갔다 오다가다 들러 인사하고, 물건 살 것이 있으면 굳이 그 상점으로 가서 사, 이제는 반갑게 맞아주는 단계까지 갔다. 스치는 사람에게도 하느님 씨 뿌리기는 계속된다. 얼마 전 수술대기실에서 만난 고통과 불안이 가득한 젊은이에게 본인의 수술받기 전 심정을 이야기해주고, 지금은 하느님을 모르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보라며 함께 기도해 주겠다는 그의 말에 젊은이의 얼굴이 점차 안정을 찾았다.
요즘 신자들이 이탈하며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신앙은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 순수로 되돌아가면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단원들에게 하실 말씀을 물으니“지금 레지오 단원들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기본교육이 많이 이루어져야 하고, 단원으로서의 사명감을 깊게 새길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라고 강조한다. 기본에 충실 하라는 것이다.
그의 계획은 인생살이 마무리 잘 하고 끝맺기, 주님 증거 마침표 잘 찍기, 이탈하지 않기다.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성령님의 도움이 있기에 그는 희망하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