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일이 바른대로 돌아가는 실례를 보다
소태산대종사와 조합원들이 방언공사에 착수하자
근방 외인들은 냉소하며 성공치 못할 것을 단언했다.
주민들은 술자리에 모여 앉으면 조합원들을 손가락질하며 빈정대었다.
어떤 사람은 "만일 그 사람들이 언을 완성하여 그 해면에 완전한 곡물이 서게 된다면
나는 손가락에 불을 써 가지고 하늘에 올라가지"라고 까지 했다.
또 비웃음을 노래 형식으로 지어 부르며 야유하는 사람도 있었다.
'옥녀봉에 박을 심고 촛대봉에 대를 심세
바다 막다 가패신망 저 불쌍한 조합꾼들
옥녀봉의 박을 따다 박작 차고 빌어먹게
촛대봉의 대를 끊어 지팽 짚고 빌어먹게.'
길룡리와 인근 주민들이 방언조합의 간척사업에 대해 성공하지 못할 것을 장담한 이유는
조합원의 가산 정도가 빈한하여 공사 중 자금이 모자랄 시는 금전 판출할 능력이 없고,
당시 조합이라는 합자기관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데다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드는 공사를 처음 보게 된 것이며,
또한 조합장인 소태산대종사가 3년 전까지만 해도 자기 가정 하나도 다스리지 못하는 폐인이었고, 남의 사업을 보기 싫어하는 시기 등 이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그 비평 여하에 조금도 끌리지 않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며
예상외로 방조제공사가 잘 진행되어 가는 것을 보고 인근 주민들은 서로 품을 팔러 오기도 했다.
이 무렵 이웃 마을에 힘이 센 장사 한 사람이
"방언공사장에 가서 그 미친 사람들 한 번 혼쭐을 내 주겠다" 며
친구들 몇 명을 데리고 공사장에 나타나
계획대로 흙짐을 소태산대종사가 지정하는 곳에 붓지 않고 일부러 엉뚱한 곳에 부었다.
야단하면 싸움을 걸 생각이었던 것이다.
소태산대종사는 몇 번이나 지켜보기만 하다가
갑자기 막대기로 장사의 바지게를 후려치면서 벼락같은 소리를 하자
장사는 갑자기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사지가 뻗뻗이 굳어져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겨우 차리고 말했다.
"내가 지금 죽었소? 살았소? 여기가 어디여?"
이런 일이 있은 후로 공사장에 와서 괜히 시비를 걸려는 사람도 없어졌다.
방조제공사가 잘 진행되자 불원간 길룡리 바닥에도 옥답이 생긴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났다.
이때에 여러 차례 방언조합에 돈을 빌려준 적이 있는 이웃 마을에 사는 김 주사가
"네놈들이 서서 언을 막으면 나는 앉아서 막겠다"며 자기의 권세와 금력을 믿고 욕심을 냈다.
아직 방언조합에도 개척허가권이 나오지 않은 때라
그는 언답을 빼앗으려 대부원서를 관계 당국에 제출하고 도청으로 경찰서로 다니며 교섭했다.
그 소문을 들은 이웃 사람들은 조합원들을 향하여
"세력있는 김 주사가 운동을 하는 판에 저 사람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을 터인데
공연히 헛수고만 한다"고 조소했다.
조합원들이 이 소식을 듣고 소태산대종사에게 호소하자 말했다.
"공사 중에 이러한 분쟁이 생긴 것은 하늘이 우리의 정성을 시험하려 하심 인듯하니
그대들은 조금도 거기에 끌리지 말고 또는 저 사람을 원망하지도 말라.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오는 것이 이치의 당연함이니라."
조합원들은 소태산대종사의 말씀을 듣고
더욱 감탄심을 내어 공사를 여전히 진행하여 마침내 언답을 완성했다.
그런데 그 부호는 의외로 병이 들어 급사하고,
또 부호 밑에서 모사(謀事)하던 사람도 어떤 사건에 혐의를 받아 경찰에 체포됐다.
그리고 간석지 대부허가서가 방조제 준공 5개월 뒤인 1919년 9월16일자로
김성섭(광선) 외 8인의 명의로 〈전라남도 국유지 미간지 허가대장〉에 제161호로 등록되어 나왔다.
사진; 영산성지 정관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