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엔들 생각했으랴.’ 서울발 KTX가 2시간만에 진주에 도착하다니! 들뜨고 설렌 마음 추스르며 차창 너머 세상을 본다. 푸른 산과 넉넉한 들, 풍요로운 강은 언제나 우릴 반긴다. 어두운 터널을 뚫으니 눈부신 빛을 토해낸다. 지루할 새도 없이 금세 천년 도시 진주에 도착했다.
- 남부내륙고속철도 개통을 가상한 기사입니다. -
고속열차 타니 천리길 반나절 쾌적 여행
2028년! 새벽부터 서둘러 떠나는 여행은 고속열차 앞에선 맥을 못춘다. 반나절이면 도착해 알짜 1일차 여행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2시간 만에 마주한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새 역사는 천년의 향기를 품어낸다. 경전선 복선 전철화로 2012년 말 외곽 가좌동으로 이전한 신진주역은 남부내륙고속철도 개통으로 활기가 넘친다.
진주를 대표하는 진주성을 찾았다. 성문에 들어서자 촉석루(矗石樓)가 턱 버티고 섰다. 남강(南江)을 둘러친 벼랑 위, 단층 팔작(八作) 누각에 올라서니 남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도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진주성대첩이 새겨져 있다.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이다. 김시민 장군이 3800여 명의 군사로 2만 왜군을 격파한 장소다.
촉석루와 의암, 충절 그루터기 역사현장
그 밑 강물을 감싸고 도는 의암(義巖)은 의미가 더욱 깊다. 의기(義妓) 논개(論介)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곳이기 때문이다. 역사탐방을 나온 청소년에게 “논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란 질문에 단번에 의로운 일을 했다고 답한다. 불현듯 변영로 시인의 ‘논개’ 시구가 떠오른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경건한 자세로 합장 묵념을 올린다.
진주성 깊숙한 곳에 자리한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과 이 지역의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있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이 진주성의 숨결을 공유하는 사이 우리도 곁에서 동참한다. 성을 나서면서 산책 나온 노부부를 만났다. “어르신, 진주성에 어쩐 일이십니까?”란 말에 “내가 살던 곳이고 역사와 충절이 어렸기에 종종 찾는다”라고 하신다. 충절의 고장 그루터기로 거듭나고 있는 현장 이다.
진주비빔밥 곁들인 막걸리 사발에 포만감
여행은 발품을 들인 만큼 알차다. 마음이 찰 때쯤 허기가 진다. 전통시장에서 맛보는 ‘진주비빔밥’ 생각에 침이 괸다. 시내에 있는 진주중앙유등시장 한가운데 샛길로 들어서니 장터 음식이 한가득하다. 육회비빔밥이 입에 살살 녹는다. 친구와 막걸리 사발을 주고받으니 포만감이 밀려온다. 이번엔 눈이 황홀하다. 숙박지 진양호반에 걸린 저녁놀이 시나브로 호수를 붉게 물들인다.
진양호공원은 남강댐 일원에 조성된 유원지다. 1969년 남강 다목적댐이 완공됐고, 물문화관은 1997년에 문을 열었다. 이른 아침, 물안개 자욱한 호반을 거니니 신비한 기운이 감돈다. 간밤 아늑한 잠자리 덕에 발걸음이 한층 가볍다. 호수를 배경 삼은 언덕배기 야외예식장에선 결혼식 준비로 분주하다. 백년가약을 맺을 장소로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싶다.
생명수 물문화관 견학, 교통안전 체험 보람
진양호는 서부경남의 젖줄이자 ‘물 반 고기 반’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만큼 깨끗하다는 방증이다. 맑은 물을 공급받는 지역민이 부러워진다. 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물문화관’ 입구에 서니 육지 속의 넓은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1층 상설전시관과 2층 주민친화공간으로 꾸몄다. ‘물길 따라 만나는 남강의 삶 이야기’를 주제로 물의 고마움과 소중함이 파노라마처럼 엮여 있다.
물문화관에서 남강댐 아래로 10분쯤 걸으니, 기슭에 ‘어린이교통 청소년모험공원’이 눈에 띈다. ‘저곳에 들러 보자’란 제의에 동행한 친구도 선뜻 응한다. 교통안전은 어른들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유치원생들이 진지한 모습으로 교통사고 예방 체험을 하는 광경을 보노라니 마음 한구석에서 부끄러움이 묻어난다. ‘어린이 10대 교통사고’ 유형을 새기면서 ‘어린이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다’는 걸 깨닫는다. 교통안전 준수 결의를 하게 되니 보람차다.
남강변 자전거길 달리는 기분 ‘룰루랄라’
한낮의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강바람에 더위를 식힐 요량으로 남강 둔치 자전거 무료 대여소에서 내달릴 채비를 갖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강변을 ‘룰루랄라’ 달려본다. 어제 본 촉석루가 위용을 뽐낸다. 아름다운 누각 아래 의암이 물살을 가르고, 논개 가락지를 상징하는 진주교 교각이 눈에 스친다.
강변 산책길과 자전거길 곳곳 쉼터는 찾는 이들의 에너지 충전소로 다가선다. 뒤벼리길 맞은편 경남문화예술회관이 그중 한 곳이다. 전시관 미술 관람으로 여유로움을 즐긴다.
점심 메뉴로 ‘진주냉면’을 후루룩 삼킨다. 쫄깃한 면발과 부드러운 고명, 살얼음 국물에 폐부가 다 서늘하다. 강을 만끽하니, 숲이 그리워진다. 대자연과 벗하는 경남수목원은 여름날 인기 만점이다.
꽃나무 천지 ‘경남수목원’ 도심 허파 자처
수목원에 들어서자마자 꽃나무의 향연이 펼쳐진다. 싱그럽다. 1시간에서 4시간 걸리는 코스가 따로 마련돼 있다. 우리는 산림박물관~열대식물원~화목원으로 이어지는 1시간 1코스를 택했다. 무궁화홍보관을 둘러본 것은 의외의 수확이다. 숲속 의자에서 먹는 김밥은 꿀맛이다. 맑은 공기는 덤으로 주어진다.
지역 균형발전의 선두주자 진주혁신도시의 발전상은 어떨까. 상평동과 혁신도시(충무공동)를 가로지르는 김시민대교를 지나니 산뜻한 기분이 든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비롯해 11개의 공공기관이 날갯짓을 하고 있다. 시립 이성자미술관이 문을 열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생동감이 넘쳐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한때 전국적인 이목을 집중시킨 ‘진주 운석’도 볼거리다. 자석에 달라붙는 까만 돌은 신기 그 자체였다. 지난 2014년 별에서 온 그대 ‘운석’에 지역민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다시 찾고픈 진주여행 ‘꿈엔들 잊힐리야’
짧은 2박3일의 여정이 알차게 꾸려진 것은 시간 단축과 안락한 여행을 제공한 고속철도 덕분이었다. 넉넉하고 편안한 관광을 가능케 한 남부내륙고속열차로 또다시 진주를 방문하고 싶다. 해마다 10월에 열리는 글로벌 진주남강유등축제 때 말이다. 남강변 일원을 화려하게 수놓는 ‘물·불·빛’ 잔치에 휩싸이고 싶다. ‘꿈엔들 잊힐리야, 진주여행!’
글·사진 허 훈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