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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실학교에서, 역사와 놀다
하나. 밥은 직접 해 먹는 게 어때!
오십을 넘기면서 왠지 모를 무기력증에 시달린다. 하고 있는 일은 여전한데 도무지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열정과 희열이 없었다. 2012년을 시작하면서 하고 있는 일을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무기력증은 바쁜 일상의 연속에 원인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평화센터 역사기행단 단장직을 맞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강상원 소장과 저녁밥을 먹으며 2012년 역사기행단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순간의 기분에 내가 맡겠노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대신 2011년처럼 8번의 답사를 하기보다, 토요답사는 4회로 제한하고 여름방학에 역사캠프를 열자고 제안했다. 기행단원을 초등학교 5, 6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30명만 선발하자는 요구도 관철시켰다.
지난 4월과 5월에는 서울 북촌과 전라도 동학농민전쟁 유적을 답사하였다. 학년과 인원을 제한해서인지 기행단의 분위기가 좋았다. 모둠을 나눠 오래되고 맞 있는 식당 찾기 미션수행도 재밌게 진행하였다. 여름캠프의 장소섭외는 강소장의 주도로 결정되었다. 진보단체에게는 익히 알려진 전북 장수 논실학교의 사무국장이 강소장의 대학교 후배라는 사실이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내 몫이었다. 나는 이번 역사캠프에서 그동안 교육대상자이기만 했던 아이들이 답사의 주체가 되어 몸 체험을 하기를 바랐다. 그런 취지에서 본다면 첫날 논실학교까지 가는 과정과 둘째 날 모둠 별 답사가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역사캠프를 처음 주최하는 평화센터의 입장을 달랐다. 대부분 나의 뜻을 수용했지만 첫날부터 논실학교까지 모둠 별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였다.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여 첫날 미션은 기차여행으로 대체하고, 나머지 일정은 별밤 영화방, 숲 해설사와 함께 하는 숲과 하천체험활동, 모둠 별 답사, 물놀이, 그리고 두 끼의 저녁식사는 복불복 게임을 하여 모둠 별로 해먹기로 결정했다. 식재료 준비는 강미샘과 이명희샘이 맡았다. 두 분 선생님은 아이들이 먹을 음식이므로 가능하면 좋은 재료를 준비하자면서 거의 모든 것을 생협에서 유기농으로 구입하는 억척을 보였다.
둘. 이름까지도 정겨운 장수 ‘논실학교’
수요일 아침, 진헌이와 함께 평택역으로 나갔다. 반신반의 하였지만 아이들은 집합시간을 모두 지켰다. 기차역에서 모둠 별로 앉아 필요한 사항을 함께 나눴다. 9시 50분, 기차에 올랐다. 남원까지는 3시간 10분 거리다. 기차여행은 아이들을 위해서도 역새캠프를 위해서도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되었다. 열린 공동체는 열린 공간에서 가능하다는 장소의 중요성이랄까.
남원역은 내가 예상했던 곳이 아니었다. 승무원들 말로는 5, 6년 전 시 외곽으로 이전하였다고 했다. 그러면 내가 5, 6년 동안 한 번도 남원을 오지 않았다는 말인가! 지리산 등산을 위해 수 없이 오갔던 시절이 그리웠다. 남원역에서부터는 모둠 별로 ‘논실마을까지 가기’ 서바이벌이다. 우리 모둠은 택시를 타고 남원 시내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대충 계산 해봐도 버스비나 택시비나 그게 그것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날씨는 무척이나 더웠다.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내려 우선 점심 먹을 식당을 찾았다. 택시기사님은 남원의 맛집으로는 추어탕과 냉면집이 있는데 터미널에서 먼 것이 단점이라고 하였다. 아이들은 덥다며 냉면파와 백반파로 나뉘어 입씨름을 하고, 태양은 강렬한 빛을 내리 쏟고. 처음 찾아간 중국집은 문이 닫혀 있었다. 다시 터벅터벅 걸어 근처 ‘남원 밥집’이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냉면과 밥을 함께 주문했다. 백반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냉면은 물에다 메밀을 말아 놓은 것 같은 맹맹함. 에궁, 여기가 전라도 땅은 맞는 겨.
밥맛이 없으면 입맛으로 먹으라고 했다. 대충 점심을 때우고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했다. 매표소 직원에게 장수군 논실마을로 가는 버스가 있냐고 물었다. 직원은 30분 쯤 후에 있는 직행버스를 타면 그곳까지 갈 거라고 말했다. 매표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또 덥다며 아이스크림을 사줄 수 없냐고 매달렸다. 이를 어쩐다. 내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요구하고 매달리는 아이들이 마뜩찮기도 했지만, 얼마나 더우면 저러랴 생각되기도 해서 잽싸게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나눠주었다.
아이크림을 먹고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미심쩍어서 버스기사에게 다시 한 번 길을 물었다. 버스기사는 직행버스는 논실학교에는 서질 않으니 길 건너편에 가서 시내버스를 타라고 일러주었다. 불끈 화가나서 매표소 직원에게 따지며 환불을 받았다.
셋. 남성 차별의 공동체
강미샘 모둠, 이봉녀샘 모둠과 함께 논실학교 입구에서 내렸다. 논실학교가 있는 논곡리는 지명처럼 산이 높고 들도 넓어 경관이 수려했다. 마을 안 느티나무는 어찌나 늠름하고 넉넉한지. 학교 안에는 우리 보다 먼저 도착한 강소장 일행과 이상규 운영위원장 일행이 반갑게 맞았다.
논실학교는 제법 널찍하였다. 전성기 때는 논곡리 일대의 아이들이 몰려들어 한 학년에 두 학급씩 2부제 수업을 하였다고 한다. 한 번에 한 팀씩만 받는 논실학교의 원칙(?) 덕분에 우리는 널따란 방과 거실, 잔디가 드문드문 나 있는 운동장을 모두 사용하게 되었다. 모둠 별 방 배정을 해 놓고 방문 앞에 명단까지 붙여 놓는 강소장 덕분에 우리는 손쉽게 짐을 풀 수 있었다.
첫날 저녁 우리가 소화할 프로그램은 번암면과 논곡리 소개, 일정소개, 저녁꺼리 차지하기 복불복게임, 별밤 노래방이다. 아이들을 강당에 모이게 한 뒤 마을 주민을 모셔서 마을이야기를 들었다. 40살이 될까 말까한 마을 청년은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라는 말에 어찌나 준비를 철저히 했는지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하지만 강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열심을 내면 지루해지는 법. 몸을 비비 꼬는 아이들이 많아질 무렵 주민이야기가 끝났다.
복불복 게임은 생각보다 재밌게 진행되었다. 1박 2일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사전 학습된 아이들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열심을 내었다. 내가 준비한 복불복 게임은 모두 네 가지. 첫 번째 게임은 구슬을 구멍에 넣기였다. 어릴 때 구슬치기를 해 본 사람에게는 익숙한 게임이었지만 아이들은 쉽게 성공을 하지 못한다. 두 번째는 바가지에 물을 담아 이고 릴레이를 하는 게임이었고, 세 번째는 제기 멀리차기, 네 번째는 선생님을 세워 놓고 훌라후프 던져서 넣기였다. 1등에게는 먹고도 남을 만큼의 삼겹살과 찌개꺼리가 주어졌지만 꼴찌를 한 모둠은 달랑 고추장뿐이다. 헌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게임을 마치고 모둠 별로 나뉘어 저녁밥을 지었는데 이상하게도 1등한 팀이나 꼴찌한 팀의 메뉴가 별반 차이가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1등한 팀에서 삼겹살을 골고루 나눠준 것. 기특한 놈들, 그 나이에 나눔의 미학을 깨닫다니.
저녁을 물리고 민요배우기를 해야 하는데 설거지와 정리정돈을 하고 났더니 시계가 9시를 가리킨다. 앞부분을 생략하고 ‘별밤 영화관’만 진행하고 아이들을 재우기로 하였다. 이번 캠프에서 우리가 선택한 영화는 ‘기적을 만드는 인 빅터스’라는 작품이다.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 대통령에 당선된 뒤 흑백 간의 인종적 갈등을 해소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 용서와 화해를 통한 하나됨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럭비라는 스포츠를 통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스포츠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풀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잘 먹힐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피곤한 아이들은 빨리 씻고 재잘거리며 쉬고 싶어 하는 눈치다.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강소장과 강미 샘이 다가오더니, 샤워장이 마땅치 않으니 일부 아이들을 먼저 씻기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고 했더니 뒷자리에서 떠들던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간다.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피곤하면 누워서 봐도 좋다고 했더니 누워서 뒹굴거리다 금세 쿨쿨 코를 골며 잠이 든다. 그래도 끝까지 영화 상영을 하였지만 오늘 영화 선택은 아무래도 잘 못 한 것 같다.
넷. 그래도 믿을 것은 아이들뿐
잠을 자는 것도 부익부 빈익빈이다. 밥과 설거지도 마찬가지다. 여자아이들은 1층 시원하고 아늑한 방에 배정되었는데 비해 남자 아이들의 숙소는 밤이 되어도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는 2층 강당이다. 그나마 남교사들의 숙소는 아예 없다. 아이들 틈에 끼어 자고 싶으면 자고 말고 싶으면 말라는 거다. 하루가 지나고, 저녁 프로그램이 끝나도 2층 방은 후텁지근하다. 창문을 열어도 마찬가지다.
화장실도 건물 내의 남녀 화장실을 여자들이 모두 사용해야 하니 남자들은 야외 화장실을 사용하란다. 야외 화장실은 퍼세식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오가는 길이 풀섶이다. 여름 날 풀섶에는 뱀이 나올 수도 있다. 뱀이라는 놈이 소심해서 도망가기라도 하면 다행이겠지만 신변의 위협을 느껴 달려들기라도 하면 곤욕이다. 아이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대답은 남자답게 하였지만 좀처럼 밖으로 나가려들지 않는다. 덕분에 건물 동편 으슥한 고추밭은 우리의 간이 화장실이 되었다.
좀처럼 잠들 줄 몰랐던 아이들이 잠잠해질 무렵 나도 작은 강당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눕기 전 남자 아이들의 상태가 걱정되어 숙소를 한 바퀴 돌았다. 배를 내놓고 자는 아이, 구부려 자는 아이, 코를 고는 아이, 침을 흘리는 아이.... 참 다양한 군상들이다. 이불이 부족했는지 어떤 아이는 맨 바닥에 누워 이불을 덮었고, 어떤 아이는 이불을 깔고 아무 것도 덮지 않은 채 누웠다. 눈길이 진헌이 쪽으로 갔다. 진헌이는 캠프에서 친해진 원이와 함께 이불 한쪽은 깔고 다른 쪽은 덮은 채 잠들어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강소장이 잠들어 있었다. 이불도 없이 맨 몸이다. 다행히 배게는 베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진헌이 것을 강탈한 것이다. 저렇게 자면 감기 걸릴 텐데, 중얼거리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아이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불 한 채가 숨겨져 있다. 그것을 가져다 덮어주었더니 마음이 놓인다.
밥 짓는 일은 여자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하고, 나와 이상규 운영위원장 등은 식당 보조를 하였다. 아이들이 많다보니 밥짓는 것도 힘들었지만 설거지는 정말 어려웠다. 캠프의 살림꾼은 이봉녀 샘. 대전 근교의 시골마을 출신이어서인지 참 수더분하고 심성 고운 선생님은 설거지 뒤의 수많은 뒤치다꺼리를 대부분 혼자 해치웠다. 이명희 샘의 노고도 만만치 않았다. 느티나무공동체, 성미산학교 등 공동체 생활을 많이 경험한 노하우와 성실함이 움직이는 곳곳에서 묻어난다.
다섯. 역사는 놀고 즐기는 것
공동체생활을 하다보면 평소 발견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요즘 아이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청음(聽音)’과 ‘정리정돈’이 매우 부족하였다. 지도자나 다른 사람이 말할 때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청음(聽音)은 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잘 들어야 역할수행을 잘 할 수 있는 법. 하지만 많은 수의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조잘대거나 불평불만은 토해내는 것은 잘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각자의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는 매우 미숙하였다. 그런 태도 때문에 중1 여자아이들과 트러블도 생겼다. 정리정돈도 때문에 혼을 내기도 했다. 도무지 여자아이들은 개념 없이 어질러놓고는 도무지 치우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버리지 않은 것은 절대 주우려 하지 않는 점도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이들과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화를 내기보다 서로 토론하여 얻은 결론으로 스스로 변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면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라는 자책이 든다.
둘째 날 오전에는 남원시 숲해설사 선생님들과 냇가와 숲에서 체험활동을 하고, 오후에는 모둠 별 답사를 실시하였다. 모둠 별 답사는 1박 2일같은 서바이벌 게임의 분위기를 내려고 준비하였다. 먼저 다섯 모둠에게 스스로 계획을 짜서 남원 일대의 유적지 가운데 한 두 곳을 다녀오도록 미션을 부여하였다. 동행하는 지도교사는 안전과 조언만 할 뿐 전체 일정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포인트였다. 이와 같은 방식은 그동안 우리의 답사가 과정은 없고 결과에만 집착했다는 자기반성 속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걷고, 지나가는 차량을 얻어 타고, 맛집을 찾아 끼니를 해결하는 모든 과정이 답사일 일부라는 파단에서 시작한 모둠별 답사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짭짤한 소득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가장 먼 거리였던 ‘남원 운봉의 국악의 성지 다녀오기’ 미션을 수행한 강상원 소장 모둠은 답사는 물론 판소리 체험까지 하고 와서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늦은 저녁에는 캠프파이어를 한 뒤 ‘달빛 산책’을 하였다. 캠프파이어 때는 아이들의 소원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불속에 던져 기원하는 행사를 하였다. 행사의 힌트는 마을제를 지낼 때 거행하는 소지올리기에서 얻었다. 달빛 산책은 논실학교에서 개울 옆으로 난 둑방을 따라 들판 가운데의 둥구나무까지 다녀오는 프로그램이었다. 일반적으로 하는 담력훈련과는 다른, 자연과 달밤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과 교감하는 감성프로그램이었다. 아이들이 가슴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논실에 대한 학습이 필요했다. 그래서 논실마을의 역사이야기, 도깨비이야기도 해주었고, 둥구나무가 본래 당집이었는데 서러움에 복받친 처녀가 자살했다는 으스스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 둘씩 출발시키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괜찮다며 강행하였다. 아이들은 우려와는 달리 주어진 과제를 무척 잘 해냈다. 사전 답사가 미비하여 둥구나무로 가는 길이 막혀 있는 것도 모르고 출발시키는 우를 범했지만 누구 하나 불평 없이 즐겁게 산책을 끝냈다. 셋째 날 느즈막히 일어나 산책과 체조를 하고 냇가에 나가 물놀이를 한 뒤 모든 일정을 마쳤다.
비빔국수로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할 때쯤 우리 다음으로 캠프를 하는 평택 흥사단이 도착하였다. 새차가 왔으면 똥차는 물러나야 하는 법. 우리는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평택시청 버스를 타고 3일 동안 정든 논실학교와 논곡마을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 아이들에게 지난 3일 동안의 체험을 글로 쓰도록 부탁하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기억을 잊지 않으려면 ‘기록’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2012.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