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 시론 : 문재인 대통령님 전 19이석용 의병장군이야기
이석용 장군이야기
문재인 대통령님 임실에 독립운동을 했던 이석용 의병장의 이야기를 알고 있나요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 독립운동을 하는데 알려지지 않던 인사들을 위하여 그 분들을 추모하는 사당을 건립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당을 건립하는데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이후에 조선 각지에서는 조선 독립운동을 하는 젊은이들을 모아서 일본 순사들에게 타격을 주었던 일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석용 장군을 추대하여 깊은 산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석용 장군 부대에는 사미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상이암에 사미 스님이었는데 덕홍 봉수 기화 사미스님 이었습니다. 사미 스님들도 이석용 장군 부대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던 사미 스님 이었습니다.
僧 덕홍(德弘)·僧 봉수(鳳洙) 봉수와 덕홍은 임실군 성수면 소재 상이암(上耳庵)의 승려(僧侶)라고 추측한다. 이석용 의병장이 거의(擧義)하자 상이암 승려들도 모두 의병에 가담하였다. 이석용 의병대장이 의병활동을 하는 동안 상이암에 자주 들려 군사를 머물게 한 주둔지가 되었다. 물론 머물러야 하룻밤이지만 큰 산을 근거지로 삼고 활동하는 의병들에게는 상이암이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이들 승려들은 유리한 몸차림으로 의병단의 중요한 기밀연락을 맡아왔다. 그러다가 1908년(융희 2년 戊申) 3월 21일 성수면 운현 싸움에서 그들 봉수, 덕홍도 다른 15의병(義兵)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그들의 의 영혼은 지주골(蜘蛛谷) 합동묘지에 모셔져 있다가 현재는 소충사 28의사 묘역(墓域)에 안장되어 잠들어 있다.註 : 《全北義兵史》 下券 664面
일본군들은 이석용 장군 부대를 일망타진하려는 전투가 일어났는데 역부족이어서 이석용 장군은 체포되고 죽고 대원들은 마을 앞에 있는 바위 굴 속에 개와 같이 숨었답니다. 개도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과 같이 굴속에 들어갔습니다.
개도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위하여 일본군을 보면 굴속에서 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개도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과 같이 일본군을 알아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2019년 3월 1일은 100주년이라고 하여 거창한 행사를 하고 있는데 정말로 조선 독립운동을 하였던 후손들에게는 아무런 역할도 없고 관련이 없는 이들이 운동을 한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의 후손들에게는 먼 산에 구름 같은 모습입니다.
이석용 의병장은 1914년 4월4일 정오 대구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국했습니다. 이석용 장군이 불렀던 격중가입니다
가을바람 소슬(秋風蕭瑟)하니
영웅(英雄)이 때를 만남(得意時)이라
장사(壯士)가 없을 소냐(업실 손야)?
구름같이(갓치) 모여(모야)든다
어화 우리 장사(壯士)들아
격중가(激衆歌)를 불러 보세(불러 보새)
한양성중(漢陽城中) 바라보니(바래보니)
원수(寃讎) 놈이 왜(倭)놈이요
원수(寃讎) 놈이 간신(奸臣)이라
삼천리(三千里) 우리 강산(江山)
오백년(五百年) 우리 종사(宗祀) 어찌(엇지)할까(가)
아마도 의병(義兵)을 일으켜(이러낵켜)
왜(倭)놈을 쫓아(쪼차)내고
간신(奸臣)을 타살(打殺)하여(야)
우리 금상(今上:임금) 봉안(奉安)하고
우리 백성 보전(百姓保全)하여
삼각산(三角山)이 숫돌 되고
한강수(漢江水) 띠 되도록
즐(질)기고 놀아 보세(새)
우리 대한(大韓) 만만세(萬萬歲
2019년 2월 25 일에
진관 시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