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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별장...저도 답사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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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운항코스 및 요금 | 저도코스:선착장-한하리죠트-거가대교3주탑-저도(1.30)-거가대교2주탑-대죽도,중죽도-궁농선착장 운항시간: 1회 10:20/2회 14:20 (2시간30분) 운항요일: 월화수목금토일 ( 월요일과 목요일은 입도 금지) 요금: 예약18,000원/현장21,000원 ∵ 거제시민15,000원 입도일시: 2019.9.16.~11.30/ 2020.3.1.~7.6) ※ 예약폭주로 1주일 전에 예약바람. |
예약 | 예약센터 : 거제저도유람선실시간예약센터 (www.jeodoticket.com ) 전화예약 : 055-638-2432 ※ 주의 : 입도 3일전에 예약, 성명,주소,생년월일 |
대통령 별장 저도 답사
우리나라 대통령 별장은 이승만대통령 시절에는 강원도 화진포(1954~1961)에 김일성 별장이 있는 바로 옆에 있다. 그리고 해군통제부내에 (유형문화제제265호) 있으며, 다른 하나는 제주국립목장(1957년 등록문화제 제113호)1983.3.12.에는 전두환대통령이 청남대를 준공하여 역대 대통령의 별장이 되었으며, 거제도 장목면에 위치한 저도는 1972년 박정희대통령이 별장을 만들어 이용하여 오다가 올해 일반에게 일부 개방하게 되었다. 2019년 9월17일~11.30까지 개방된 저도 별장은 지금까지 약3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장목면 궁농항에서 출항하여 별장(1시간30분)을 둘러 돌아오는데 약 2시간 30분이 걸린다.
11월29일 거제시문화해설사 심화과정10명과 함께 저도 탐사에 나셨다. 10시20분에 출항하는 선착장에는 9시40분부터 분주하다. 사전 예약된 300여명은 승선신고서를 쓰기에 바쁘다. 더디어 뚜우우 소리와 함께 궁농항을 출항한다.
바로 앞에는 한하리죠트가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10여분 항해를 하여 거가대교 3주탑 밑으로 지나간다.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는 2010년 완공되어 2시간 이상 걸리던 시간이 30분 거리로 가까워졌다. 3주탑이 있는 사장교 밑으로 간다. 더디어 47년만에 개통된 별장에 들어셨다. 부산 다니면서 수없이 본 저도이나 실제로 발을 디디니 감개가 무량하다.
간이 골프장옆으로 조금가노라니 해군콘도가 보인다.
상당히 큰 것으로 보아 해군 장성급 뿐만아니라 영간급까지도 이용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마져 든다.
산길을 조금 오르니 전망대가 보인다. 부산 신항과 거가대교 사장교가 보인다.
다시 조금가노라니 포대가 보이고 탄약고도 보인다. 지심도 것과 비슷해 보인다.
다시 숲길을 돌아가니 400년된 소나무(곰솔) 한그루가 보인다.
다시 숲길을 가노라니 인공림으로 삼나무와 편백 그리고 아왜나무 등이 보인다. 30~40분 만에 연리지가 있는 골프장에 도착했다. 연리지 두 나무는 참나무와 물푸레나무이다. 연리지(連理枝,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것). 모두 들 한 컷, 두 컷!!!
3홀짜리 골프장을 돌아오니 박정희 가족들이 즐겨 찾았던 인공 해수욕장이 나온다. 육여사가 돌아간후 박정희대통령이 저도 별장을 찾을 때면 예뿐아가씨가 동행했다고 하네요???
바닷가에서 박근혜가 남긴 글씨를 써 본다. “ 저도의 추억”
1시간30분 동안 대통령 별장 저도 관광을 마치고 유람선 선상에서 오늘을 회상해 본다. 사실인즉 관광지로서는 별다른 매력이 없다. 전두환대통령은 조성한 청남대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으나 여기는 그렇지 못하다.
그냥 해산물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러니 특별한 시설이 없다. 한가지 머리에 남는 것이있다면 47년간 일반인에게 숨겨져 있던 장소를 공개한다는 것, 그것뿐이다. 어떤 이는 공개 안한 것만 못하다는 말까지 한다.
이왕에 개방하려고 하면 전면 개방도 하고 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저도에서 촬영...저도와 중죽도의 2주탑 하유전망대에서 촬영...3주탑-저도-2주탑
~~~~~~~~~~~~~~~~~~~~~~~~~~~~~~~~~~~~~~~~~~~~~~~~~~~~~~~~~~~~~~~~~~~~~~~ 선상에서 푸념???
대한민국, 코리아 지금 경제적으로 세계 12위권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불행의 연속이다. 찬란한 역사와 문화가 있는 나라, 예의가 있으며 정이 있는 나라로 세계인의 부러움을 독차지했으나 언제부턴가 서로 비방하며 상대방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 있다.
뭐, 보수니, 진보니 하는 무리들이다.
군사문화가 날개를 펴던 70년대~ 90년대에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상대방을 비방하지는 않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쌍칼을 휘두를 때도 이렇게 하지는 않았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나 경제를 하는 사람이나 지금 우리들이 처한 현실에는 관심이 없다.
인터넷이란 요물로 상대방을 비방하고,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나라를 이끌어 갈 정치가도 없고 현자(賢者)도 없다. 오직 인터넷과 휴대폰만 있다.
남편은 이웃집 개만치도 여기지 않고 선생님은 이웃집 아저씨가 된지 오래다... 경제도 안 좋고, 정치도 안 좋고, 사회환경도 안 좋고 모두가 안 좋다
TV는 눈만 뜨면 노래관련 프로그램, 먹걸이, 건강, 히히덕거리는 프로... 도대체 국민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는 어디에서 하는지?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어떤 제작자에게 왜 이런 프로를 합니까 물어보니 시청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이게 말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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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猪島) 이야기
*위 치: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 산 88-1 번지 *면 적: 434,181 ㎡ (13,1,340평) *용도: 대통령 별장 (청해대) < 저도 연혁 > *1920년 이전 : 2만여평의 농경지에 50여가구 살았음. *1920 년 일본 통신소 및 탄약고로 사용 *1950 년 주한연합군 탄약고로 사용됨 *1954 년 해군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휴양지로 활용 *1972 년 대통령 별장(청해대)로 공식지정 *1975 년 행정구역이 거제군에서 진해시로 편입됨 *1993 년1 993/11/19 대통령영 제14006호에 의거 진해시에서 거제시로 환원됨 *1993.11.19. 대통령별장 해제(김영삼대통령) 2008년 대통령별장 다시 지정 1999~2019년 저도 거제시 반환운동 2019년 9.17 일반인에게 일부 공개( 2019.9.17.부터 1년간)
< 저도 이야기>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에 속해있던 저도는 군사적 요충지로 섬의 관리와 대통령 경호 때문에 1975년 진해시로 편입되어 해군통제부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장목면 유호리 주민들은 한때 저도일대의 어업권 행사제재. 생활불편 등 수난을 겪었으며 특히 지난 70년대 중반, 박정희 전대통령이 이 곳 별장을 사용할 때는 유호리 일대의 야간통행 금지, 등화관제 실시 등 주민생활에 큰 불편을 주어왔다. 이에 따라 거제시민들은 그간 수차례에 걸쳐 저도의 거제시 반환을 요구하는 한편 저도의 거제권 관광개발계획에 포함, 개발이 가능토록 시설물과 관리권을 지방자치단체로의 이양을 촉구해왔으며 마침내 지난 93년11월에는 대통령령 제14006호로 저도는 행정구역을 진해시에서 거제시로 환원 조치하였으나 현재까지 국방부소유, 국유지로 해군통제부가 관리하며 주민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 섬 안에는 2만여 평의 전답이 있고 물이 좋아 50여 가구가 살던 곳이었다. 농사가 얼마나 잘되었으며 이웃 유호마을에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한일합방 후 일본사람들이 해군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탄약고와 대공포 진지로 사용하였다.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 1941.12.8-1945.8.15)발발하자 군사기지를 가덕도 청송으로 옮겨갔다. 저도는 일본군 상사가 지키고 있었으며 하유 송씨 형제는 이때부터 드나들기 시작했다. 해방이 되자 송씨 형제가 관리하다가 1972년 대통령 별장으로 공식 지정되자 1973.7.20 쫒겨나고 말았다. 이승만 이후 역대 대통령 여름이면 이곳을 찾았으나 이승만대통령과 김영삼대통령은 이곳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
특히 박정희대통령은 이곳을 좋아해서 일 년에 3-4번은 찾았으며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도 이곳을 자주 찾았으며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큰딸 근혜와 지만군과 장모 등이 와서 보통 10-15일정도 머물다가 가곤했다고 한다. 근년에 와서 거제시가 저도 반환을 위해 다방면으로 힘을 기울이는 것에 반발해 이제는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군인들도 많이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없을 때는 우리나라 육.해.공군의 장성들이 휴가를 즐기는 것으로 사료된다. 이런 여러 상황으로 볼 때 저도의 거제시 반환은 당분간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승만대통령의 낚시이야기: 구전에 의하면 이승만대통령이 하계휴가를 오면 아무 에게도 얘기 않고 조그마한 낚시 배에 노인한분과 낚시를 즐겼으며, 잠수부(모구리)가 고기를 끼워주었다는 구전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라고 함.
< 역사속의 저도>
저도, ‘악수들이 염소를 잡아먹어’
예부터 저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은 함경남도 영흥군, 강원도 통천군, 황해도 은율군, 마산 돝섬, 그리고 거제를 포함해 총 5개 지역에서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황해도 은율군의 저도는 목장이었고, 함남 영흥군의 저도는 유명한 굴 생산 어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거제 장목면 유호리에 속해 있는 저도는 어떤 곳일까. 한자말 그대로 저도는 돼지(猪)들을 집단으로 방목했던 곳일까.
하지만 이 섬은 이름과 달리 조선시대부터 염소들을 방목했던 곳은 아닐까.『조선왕조실록』성종실록을 보면 저도에 염소를 방목한 것을 알 수 있다. 1474년(성종 5) 4월 1일(을묘) 경상도 점마별감(慶尙道 點馬別監, 각 목장의 말들을 점고하는 관리) 이수치(李壽稚)가 병조에 올린 글을 보면 자세한 내막을 담고 있다.
이수치는 “칠원현(漆原縣, 지금의 마산시)의 저도(猪島)는 사면이 모두 바다입니다. 그러나 동북쪽은 육지와의 거리가 겨우 1백 보(步)이므로 악수(惡獸)들이 넘어 들어와서 방목(放牧)하는 염소를 잡아먹습니다.” 라고 보고했다. 또한 그는 “(악수)의 그 피해가 적지 않으니, 비록 농사철이라 하더라도 군사를 동원하여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성현(固城縣)의 가조도(加造島)는 바다 가운데에 있으므로 옛날에 목마(牧馬)하는 장소로 삼았습니다. 그러니 저도의 염소를 이곳으로 옮겨서 여기에서 방목(放牧)하도록 하고 부근의 거제 현령(巨濟縣令)으로 하여금 감목(監牧)하게 하소서.”라고 성종에게 간청하였다.
여기서 이수치가 말하는 ‘악수(惡獸)’는 무엇을 뜻할까. 2004년 9월에 통영시 한산면 소재 용초도와 추봉도 등에 멧돼지들이 출몰하여 피해를 입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아마도 육지에 있던 멧돼지들이 저도에 들어와 염소들을 잡아먹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수치가 말하는 ‘악수’는 바로 멧돼지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저도는 성종 전후로 염소를 방목하던 곳이며, 멧돼지의 습격으로 가까운 가조도에 염소들을 옮겨갔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저도는 1769년부터 저도방(坊)으로 있다가, 1914년 9월 1일에 마산부(지금의 마산시)로 편입되었다.
< 러시아와 일본이 탐낸 저도>
근대에 들어와 저도는 군사적 요충지로 급부상하게 된다. 러시아와 일본은 거제도와 마산을 놓고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었다. 1893년 이후 러시아는 거제도를 비롯한 주변 섬들을 정찰하고 군사시설 지역을 선택하고자 율구미(마산의 남쪽지역)를 조차지로 선택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러시아의 율구미 조차하지 못하도록 한국정부를 압박하여 성공하였다. 그 이후 1904년 9월 4일 일제는 저도와 가조도를 군용지로 삼겠다고 한국정부에 요구하기에 이른다. 일제의 기밀(제39호, 재일마산영사관)자료를 보면, 1905년 1월 17일 마산소재 일본영사는 육군대신에게 군함선용 석탄적취장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하였다.
그의 보고서에는“저도는 바다 멀리 있는 땅으로 외국인의 매도를 허용할 수 없다” 말하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의 이유를 열거했다. 1905년 3월 30일 일제는 저도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을 강제로 퇴거명령을 내리는 공문을 하달하고 즉시 실행에 옮긴다고 한국정부에 통보하였다. 당시 일본군이 작성한 저도의 거주한 사람들과 재산정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05년 3월말 현재 저도에 거주한 인원은 총60명이며, 보상비는 1천122원16전을 논밭을 구입하는데 사용했다. 이어서 일제는 저도 중앙 지점에 신호소를 설치했다. 또한 1912년에는 전등기관실을 만들어 전등을 설치하였고, 1917년에는 포대관측소 2곳을 설치했다. 1920년 8월에 포대 2곳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이 섬에는 제2 감수위사(監守衛舍)와 감시위병소를 각각 설치하였는데, 전체면적 70평에 위에 관사 15평으로 각각 2동을 건축하였으며, 별도의 화약고도 신축하였다. 두 건물은 목조구조물로 주변에 별도의 정원도 만들었다. 1923년에는 계선장(부두)을 만들어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었다.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가덕도와 거제도 등지는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고자 새롭게 포대와 진지(陣地)를 신축하였다. 이에 저도는 전신망과 전등 시설 등을 교체하였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았다.
<대통령 별장으로 그리고 지금은>
해방 이후 저도는 대통령의 별장으로 변모한다. 저도는 일본군 포대와 막사 등을 개축하여 청해대(靑海臺)를 신축하였다. 이곳은 1954년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휴양지로 활용된 이후 1972년 대통령 별장으로 공식 지정됐으나, 1993년 대통령 별장에서 해제돼 현재는 국방부가 소유, 관리하고 있다. 일명 '바다의 청와대'로 불리는 청해대는 연면적 170여평인 본관 건물을 중심으로 섬 주변에는 8개 동의 수행원 및 경호원 숙소, 막사 등이 있고 주변에 9홀 규모의 골프장, 전망대, 대한민국 지도와 태극 문양을 본뜬 연못 등이 있다. 연못은 일제 때 만들었던 것을 개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도, 자유롭게 볼 수 없을까>
예부터 저도 주변의 바다는 매우 깊고 다양한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래서 저도어장은 조선시대부터 명례궁에서 관리하던 어장 중 하나로 꼽혔다. 또한 시대에 따라 달라진 섬의 역사적 가치를 볼 때 매우 중요하였다. 현재 국방부 소유로 넘어가 군인들의 휴양지로 활용되고 있다고 하니, 역사적으로 군사지역인가 싶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이 자유롭게 역사 답사지로 개방되고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면 더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혹여나 자치단체에서 저도를 놓고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면 훼손될 가능성이 높으니, 차라리 그대로 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언제 우리가 자유롭게 저도로 답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오욕의 역사를 품고 있는 저도는 오늘도 바다 한 가운데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저도의 전설
저도란 지명이 생긴 전설은 옛날에는 저도를 학섬(鶴島)이라 했는데 태초에 태평양 바다쪽에서 큰 구렁이가 개구리를 잡아먹기 위해서 쫒아오고 있었다. 마친 이를 본 학섬이 돼지로 변하여 구렁이를 물어 죽었다. 그 구렁이가 죽어서 사근도가 사근도(蛇筋島) 개구리는 지쳐서 죽어 망와도(亡蛙島)도가 되었다고 한다. 학섬은 그 후 부터 돝(猪)섬이라 하여 저도(猪島)라 저도라 하였다.
또 다른 전설은 태초에 저도 섬이 구렁이가 되어 사근도의 뱀과 망와도의 개구리를 잡아먹으려 가는데, 서로 쫒고 쫒기는 것을 본 유호마을 여인이 놀라서 고함을 치는 바람에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저도 추억의 시... 박정희 (생략) 1975년 8월 9일 저도에서 ( 박대통령이 여름휴가 중에 육여사를 그리며 쓴 일기장 속의 詩)
제보자: 하유 송달섭 (옛날 저도 관리자) 참고자료: 거제도 이야기 100선 (거제문화원)> , 환상의 섬 거제도(이승철), 거제지명총람(거제문화원), 환상의 섬 거제(홈피) ,거제시지, 장목면지, 거제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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