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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뉴스앤조이에 실린 기사를 그대로 복사하여 옮긴 것이다.
이 글에 대한 내 생각은 빨간 색으로 삽입하고자 한다.
그리고 아랫부분에 평소의 생각이기도 했지만 이 기사로 야기된 것들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보려고 한다.
이러는 이유는 아래 읽다 보면 나온다.
글의 출처: http://m.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26574
(아래의 글을 읽기 전에 기사 본문 전체를 한 번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신진화론·동성애 반대' 온누리교회 교사 지침 논란
우종학 교수 "과학 통해 밝혀진 우주·지구 역사 수용하면 주일학교 교사 못 하나"
이용필 기자 기사승인 2020.02.10 18:39:42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 차세대사역본부가 올해 초 발표한 '행복한 부서를 위한 바른 교사 되기' 지침서가 소셜미디어상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지침서에는 교회 교사의 자격·구분·의무 등이 적혀 있다. 등록 교인, 세례 교인으로서 신입 교사 교육을 수료한 사람이 온누리교회 교사가 될 수 있다. 정교사·부교사·헬퍼로 구분된다. 의무항목을 보면, 성경 1독과 큐티를 해야 한다. 온누리교회가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김태영 총회장)이 발표한 이단 규정도 준수해야 한다. 신천지 등 이단 관련 단체 활동과 교회가 허가하지 않은 성경 공부, 활동을 하면 안 된다. (여기까지는 논란될 게 없다. 한 교회의 자체적인 규정이며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자진하여 당 교회의 교사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논란이 된 부분은 그다음에 나오는 조건인 '유신진화론 반대'와 '동성애 반대'이다.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할 때 생명체에 진화할 수 있는 능력을 줬으며, 진화를 거쳐 지금의 다양한 생명체가 생겨났다는 가설이다. (여기서 기자는 유신진화론이 가설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진리가 아닌, 가설!) 교회학교 교사가 되려면 사실상 유사 과학으로 분류되는 창조과학을 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과학은 유사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과학과신학의대화 대표 우종학 교수(서울대)는 2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온누리교회 교회학교 교사 지침서와 관련해 유감의 뜻을 밝혔다. (우종학 교수는 어떤 사람인가? 서울대 교수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하나, 그의 신앙 입장은 어떤 것인가? 그가 대표하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라는 이름은 그럴싸하지만 그는 크리스천 과학자인가,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과학에 대한 그의 이해는 어떤 것이며, 창조론을 주장하는 교계의 신조에 대한 그의 의견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부터의 그의 논조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에 따라서 교회가 신조를 지킴에 있어서 이 사람의 말을 참고할 가치가 있을 것인가가 판가름 날 것이다.) 그는 "진화를 수용한다는 이유로 교사 자격을 박탈하는 일을 넘어, 이제는 진화를 반대한다고 서약서까지 제출해야 교사로 세운다고 한다. 과학 지식을 거부한다고 밝혀야,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반대한다고 서약해야, 주일학교 교사를 시킨다면 그 주일학교는 과연 누구를 위한 주일학교가 되는 것이냐"고 썼다. (이 대목은 과학의 영역을 어디까지 인정하느냐는 논쟁이 관련되어 있다. 내용으로 보아 우종학은 신앙인들은 결코 현재의 과학이 주장하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는 논조로, 과학이 신앙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도대체 당키나 한 말인가? 게다가 진화론이 과학?)
주류 과학은 부정한 채 창조과학에 매달리는 온누리교회를 거듭 비판했다. (주류 과학, 좋은 말이다. 요는 주류과학이 절대과학-진리-이냐 하는 것이다. 더구나 창조/진화 논쟁에 있어서... 특히 우종학이 자신을 기독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우 교수는 "온누리교회는 여전히 창조과학을 전파하고 있다. 지구 나이가 1만 년밖에 되지 않았고, 지구가 생성된 후에 태양이 만들어졌다는 허황된 가르침을 교회에서 가르친다. (창조과학이라는 것은 지구나이 일만 년, 지구 후에 태양이라고 주장하(는지도 모르겠지만)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게 마련인데 그중 한두 가지로 전체를 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논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고자 하는 저급한 판짜기, framing에 불과하다.) 그것은 복음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복음을 망치는 지름길이다"(위에서 이 사람의 종교향배가 어떤 것인가 물었지만 이 말에 의하면 자신이 복음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즉 기독인으로서의 창조론 비판인 셈이다.)며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지식을 성경을 근거로 반대하면 성경의 권위를 세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성경을 우습게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이 된다"고 꼬집었다. (우선 위의 일부 내용으로 보아 우종학은 자신이 복음수호자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 이런 논지를 전개하는 것으로 보고.... 이 대목, 성경을 근거로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지식을 반대한다는 것은 성경을 우습게 만드는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라고 했는데... 신앙인이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지식에 의해서 사는 것인가?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지식이 이 세상에 있나? 진화론이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지식인가? 위에서 기자는 유신진화론이 가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가설일까? 유신이 가설인가, 진화론이 가설인가? 그런데 그 가설은 여기에 와서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고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진리가 된 것인가?)
우종학 교수는 △과학을 통해 밝혀진 자연사, 즉 우주·지구·생명의 역사를 수용하면 주일학교 교사를 할 수 없나 (우주, 지구, 생명의 자연사를 과학이 다 밝혀냈나?) △중고등학교 과학 과목에서 배우는 내용을 수용하고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고백하면 교사의 자격이 없나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과학과목의 범위가 무언가? 식물의 광합성, 물질의 관성, 혹은 만유인력 등인가, 아니면 만물은 우연에 의해 무생물에서 생물이 발생했다는 진화론인가?) △온누리교회 목회자들은 진화를 수용한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가짜로 보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질문에 물론 어리석은 대답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질문에 대해서 각자의 생각을 가질 수는 있을 것이지만 “내 생각에는” 원칙적으로 올바른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궁극적으로 진짜 가짜를 가려내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니라 최종적 심판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만일 질문자가 그런 사실을 안다면 이런 질문을 온누리교회 목회자들에게 물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온누리)은 다만 최종심판자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신념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다.)
온누리교회에 12년간 출석했다는 한 교인도 페이스북에 비판의 글을 올렸다. (온누리교회에 12년 참석한 교인이라는 것이 이 문제의 향방을 저울질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신분확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기자에게 묻는 것임.) 그는 "'유신진화론반대'를 말하지만 결국 원하는 건 '창조과학 찬성'이다. 요즘도 창조과학을 진리라 믿고 붙잡고 있는 모습이 너무 딱하다. (문장 중에 “요즘도”라는 말은 요즘같이 과학이 만사를 주장하는 시대에... 라는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절대 진리, 혹은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인가?) 또 창조과학을 반대한다고 유신진화론을 찬성할 거라는 가정도 웃기다. (물론 창조과학을 반대하면서 유신진화론도 반대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 잡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러나 현실은 성경적 창조냐, 과학의 진화냐의 논쟁이다.) 창조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헛소리를 하는지, 유신진화론은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지식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문장은 창조과학을 “헛소리”로, 유신진화론은 “지식”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 말을 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중대한 자격요건이라 말할 수 없는” 12년 성도의 입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자는 이 사람의 말을 비평 없이 기재하고 있다.)
이번 일과 관련해 온누리교회 측은 말을 아꼈다. 교회 관계자는 2월 1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차세대 부서가 담당인데, 인터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짧게 말했다. 전화번호를 남기고 연락을 기다렸으나, 교회 측은 연락이 없었다. (말을 아낀다, 인터뷰가 어렵다, 연락이 없었다 등, 기자의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온누리교회는 이상의 규정을 자체적으로 실행하고는 있지만 대외적, 투쟁적으로 주장하고 전파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닌 것이다. 논쟁을 피하기 원할 뿐.)
온누리교회 한 장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창조론은 온누리교회 교육목표라며 이해를 구했다. 그는 "우리 교회 방침은 창조론에 입각해 아이들의 신앙을 키우는 것이다. 이재훈 목사님은 창조론을 굉장히 강조하신다. 나도 과학을 전공했지만,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창조론을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교회 초대 12가정이 대개 창조론자들이었다. 우리 교회에서 창조론은 생명이다"고 언급했다. (이 장로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과 과학을 정죄하고 배척하는 자세를 피하고 자신들이 신조를 지키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한다. 사실 신조를 지킴에 있어서 기자와 외인의 의견에 흔들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언론의 횡포(가 있을 수 있다고 봄.)에 시달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느껴진다. 게다가 자신이 과학자지만 자신의 과학에 대한 인식에 따르면 과학자의 지식과 양심으로서도 창조론을 부인할 수 없다는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나 자신의 창조론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물론 위의 기사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글이 두서가 없을 거 같아서 각 소제목을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기사에 대한 나의 견해를 피력하는 이유
기독교 신앙, 믿음, 종교는 무엇인가?
나는 창조론자다.
과학은 무엇인가?
진화론이 허구인 명백한 증거는...
과학 자체에 관하여...
창조론과 대홍수에 관하여...
창조와 과학은 동행인가 반목인가?
과학, 혹은 교육체계의 음모에 대하여...
진화론의 폐단과 창조론의 중요성...
신앙과 정치세력의 관계
논쟁에 있어서 부분적 결함으로 인한 문제와 나의 창조론
온누리교회의 교사임명 조건에 대하여...
뉴스앤조이, 그리고 한국교계에 대하여...
이 기사에 대한 나의 견해를 피력하는 이유
내 글을 읽고 믿지 않던 분이 크리스천이 되기로 작정한다면 무엇을 더 바라랴마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더욱 확실한 믿음을 갖기를 원하는 분들이 있다면...
진화론자들의 이론을 추종하지 않지만 반박하지 못해서 망설이거나 괴로워하거나 답답해하는 분들이 있다면...
힘을 내시라는 의미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 사랑의 하늘 아버지시며, 우리에게 주신 성경은 그분의 뜻과 섭리를 우리에게 충분하게 알려주고 있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하며...
기독교 신앙, 믿음, 종교는 무엇인가?
원래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부여된 신성(神性, divine nature,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하여 그 뿌리를 찾아 귀의(歸依)하고자 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기독교의 신앙은 근본(진리)이 무엇인가 찾고자 하는 노력 가운데, 근본(Logos)으로서 우리에게 오신 (성육신, incarnation)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께 귀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내려오신 진리의 실상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다.
이 성경은 본래 과학이나 역사학습서의 모습을 취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현세에 매여 다 보지 못하는 신적 영역으로서의 시간과 공간의 범위를 우리들에게 암시하고 있으며 그 속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적나라한 모습과 마땅히 알고 믿고 행해야 할 지침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 말씀(성경) 속에는 인간이 물을 수 있는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이 들어있음이니 문제는 그 질문을 물을 수 있고 그 답을 말씀 가운데서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성경의 내용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공부하고, 더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다면 우리는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최대한 그 대답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며, 언젠가는 거울로 보는 희미한 진리가 아닌,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처럼 더 확실한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창조론자다.
그래서 나는 과학이라는 이름을 앞세우는 진화론을 배척한다.
진화론을 배척하기 때문에 창조론자를 자칭하는 것이다.
이 둘은 필연적으로 함께할 수 없다.
다만, 이 명제의 의미를 오해하지 않으려면 아래의 글들을 다 읽어야 할 것이다.
진화론을 배척하는 것이 과학의 기능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과학은 무엇인가?
반복된 실험으로 동일한 결과를 얻음으로 증명된 사실이 과학이다.
진화론이 과학인가?
과학으로서의 증거를 가지고 있나?
Biogenesis, 생물발생설.
그 설은 말한다.
무생물에서 생물이 비롯될 수 없음을...
진화론자들이 무생물에서 생물을 만들기 전에는 진화론을 과학이라 말할 수 없다.
가설, 즉 추측(hypothesis)일 뿐.
무생물에서 시작하여 인간까지의 진화를 과학적 사실이라고 말하려면 무생물에서 생물을 만들어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 생물이 변하고 변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물론 같은 종의 한계 안에서 변하는 모습은 관찰된다.
그러나 그건 무(無에)서 유(有)로의 생성, 무생물에서 생물로의 탄생, 한 종류에서 다른 종류로의 종간(種間)진화가 아니라 종내(種內)에서 발생하는 적응(adaptation)의 과정일 뿐이다.
진화론이 허구인 명백한 증거는...
무생물에서 생물이 나올 수 없다는 것.
각 종간의 중간체 존재의 흔적이 없다는 것.
현재 진화가 진행되고 있는 증거가 없다는 것 등이다.
과학 자체에 관하여...
과학은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다.
과학이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과학이 모든 사물과 사상의 전지전능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 나아가 인간 주도의 모든 행위들은 그 전지전능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창조론과 대홍수, 그리고 그랜드캐년에 관하여...
창조론을 논할 때 대홍수가 거의 반드시 거론된다. 마치 그 두 가지가 하나이듯...
진화론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내세우기 위해서는 진화가 가능한 상상할 수 없는, 그래서 검증도 할 수 없는 길고도 긴 세월이 필요한 것이다.
우주와 물질의 연대측정의 허구성 혹은 진실성 까지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맡기기로 하고...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면 홍수에 의한 지형 형성에 관한 것이다.
일단, 지상의 대부분 주된 지형은 물속에서, 물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는 거다.
여기까지는 진화론자들이나 과학자들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렇게 지형이 이뤄지기에 얼마만의 세월이 흘렀느냐에 따라서 견해가 달라진다.
진화론자들은 길고도 긴 세월을 주장하며 이것은 자신들의 진화론 주장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니 이해관계가 어울린다 하겠다.
하지만 진짜 그랬을까?
세속 과학자들, 즉 불신 지질학자들은 흐르는 콜로라도 강물에 의해 일 년에 종이 한 장의 두께만큼 깎여 내려가면서 277마일(446km)의 그랜드캐년이 10-18마일(16-29km)의 폭, 1마일여(1851m)의 깊이로 이뤄지기 까지 오륙백만 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보는 것이다.
그 세월에 반복된 침수에 의해 열 개의 층이 쌓였으며 거기서 발견되는 화석들이 진화의 증거라고 말한다. (나의 표현이 아주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육백만 년 동안 홍수, 지진, 화산 등의 격변적인 기후현상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조건에서 하는 말이다.
소위 말해서 동일지형변형설... 오늘날 관찰 가능한 변화가 오랜 과거 전부터 변함없이 반복되었다는...
성경은 노아시대에 지구(地球)적 홍수가 있었다고 말해주고 있다.
이것이 사실일까, 아니면 거짓일까?
결국 증거가 분명해도 믿기 나름이긴 하겠지만 세계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는 전(全) 지구적 홍수설화는 지구적 홍수를 증명해줄 뿐 아니라 수백만 년을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풀지 못하는 지형의 특징들은 지구 전체를 뒤덮은 홍수가 아니라면 해명될 수가 없는 현상인 것이다.
예를 들면 1.2 Billion Years of Great Disconformity 등... (궁금하신 분들은 간단히 검색해보시길...)
화석들을 보더라도 그 화석이 오랜 세월이 아닌, 오랜 세월에 걸쳐서는 그냥 까마귀에게 먹혀버리거나 썩거나 삭아버리고 말지 화석으로 보전되기나 하려나? 순식간에 이뤄진 것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랜드캐년도 그렇다.
(어쩌다 나는 그랜드캐년 바로 옆 동네에 살게 되어 횟수도 모를 만큼 많이 방문했다.)
층이 없는 바닥을 Vishnu Basement Rocks라고 하고 그 위에 열 개의 층이 쌓여있는데...
(위에 언급한 1.2 Billion이란 바로 그 최저지반과 첫 번째 퇴적층 사이에 12억년의 세월이 빈다는 이론이다. 과학적 이론에 의하면...)
어떻게 수백만 년 동안 일정한 지질이 각각 일정하게 (층 사이에 계곡이나 산 등의 굴곡도 없이) 층을 이뤄 마치 시루떡처럼 쌓일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거기 묻힌 화석들이 어떤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를 삼키다가 화석이 된 것도 있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화석이 되었다는 것인가?
그러나 전 지구적 대홍수의 사건을 인정한다면 이 모든 문제들은 물론 기타 지질학적 수수께끼들이 명쾌하게 설명된다.
예를 들자면, 물속에서 여러 종류의 돌과 흙들이 섞여서(저탁류라고 부르는 듯) 일정방향으로 흐르다보면 각 입자와 무게별로 종류들끼리 모이고 그것이 가라앉아 여러 층의 퇴적물을 동시에 만들어낸다는 것이 모형실험으로도 증명이 되었으며...
대형 호수에서 둑이 터져 물이 흐를 때 순식간에 지형이 변화된다는 것...
화산 등의 격변적 자연현상으로 인해서 불과 일이 주 안에 엄청난 지형변화가 생긴 적이 있었다는 것 등... (1980, 82년 워싱턴주 스캐매니아 카운티에 위치한 Mount St. Helen의 화산폭발의 경우)
물고기, 조개들의 화석이 일정방향(물 흐르던)으로 정렬되었다는 것 등...
노아의 홍수, 그리고 그랜드캐년의 지형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일까?
우선 진화론자들의 오랜 세월 이론과 동일지형변형설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것이며...
그럼으로 오랜 세월이 필요한 진화론의 허구를 드러내며...
성경에서 그렇게 자세히 구체적으로 홍수를 기록해줌으로써 성경의 권위를 증명해주며...
성경의 다른 기록, 즉 하나님의 창조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다 이뤄졌다는 신앙을 공고히 해준다는 것이다.
나는 진화론이건, 유신진화론이건, 종간 진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굳이 정죄하거나 비판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믿는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사실 매사가 자신의 신, 불신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의 노력이 상대방에게는 오만과 배타로 보일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진화론/창조론의 선택으로 인한 각자의 결과는 각자가 책임지게 된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진화론 교육으로 인하여 성경의 기록들이 여타의 설화처럼 취급됨으로써 발생하는 신앙이반의 현상이 이미 뚜렷하다는 것이다.
나는 또한 과학을 신앙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나 진화 친화적인 기독인들이 창조과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말들을 들을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실례로, 나는 꽤 유력해 보이는 기독교 인사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분명히 두 번 이상 들었다.
과학과 이성을 무시하는 (무식)자들이 그랜드캐년 한 번 다녀왔다고 문자적 창조론을 주장하고 있다... 는 투의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창조론자들에게 근본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으로 유추할 수 있는 혐오, 분리, 정죄를 일삼는 사람들과 한 보따리로 취급하더라는 것이다.
근본주의라는 것은 그 안에도 다양성이 있거니와 당연히 좋은 의미도 있는 것인데 이런 판짜기에서는 무식과 맹신, 배타와 증오, 또는 정죄 등의 부정적 의미로 싸잡아버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면에서의 논쟁에서도 가장 저급하게 사용되는 판짜기의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 면에서는 동성애 문제가 더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대신, 따로 기회에 따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글을 씀에 있어서 나는 가능하다면 성경구절을 인용하지 않고 논리를 전개하고자 했으나 이 한 가지만 언급하고 싶다. (구체적 성구는 열거하지 않겠다. 아는 사람은 알 테니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권위를 증명하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다.
예수님은 요나의 경험을 토대로 십자가의 죽음을 예시하셨다.
또한 바울도 말하기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나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했다.
그리스도가 죽으신 십자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믿고 구원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맹신이라고 불리는 그런 수준의 단순구조일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혜와 지식은 이 세상의 지혜와 지식으로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에서의 지식과 지혜는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다.
십자가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를 따르는 발걸음의 목적지는 그저 다가올 죽음의 세계를 회피할 수 있는 상상(想像) 속의 낙원이 아닌, 영원한 시공간 속에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실재(實在)의 왕국인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그 왕국의 실체를 지금 당장 모두 완벽하게 알고 경험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야말로 그 문턱에 들어가는 첫걸음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인 것이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창조론을 따르는 사람들을 당신들의 기준과 언어로써 “조롱”하지 말아달라는 거다.
그 조롱은 바로 당신 자신들을 향한 자신의 조롱이 될 수 있음이다.
창조와 과학은 동행인가 반목인가?
창조론자든, 과학최우선주의자든, 결국 그들의 자신과 상대에 대한 이해에 따라서 동행, 혹은 반목하게 될 것이다.
나는 창조론자로서 과학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적, 거의 절대시되는 폐단이 발견되곤 하지만, 공헌을 결코 부인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나는 끝없는 탐구 끝에 창조론자들이 등한시하는 질문들을 물어대는 그들의 지적능력과 노력과 공헌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창조의 진리를 가졌다고 말하면서 과연 그들에 버금가는 나름의 노력의 책임을 느끼고나 있는 것인지 싶으면 그들에게 부끄러울 정도다.
창조론자라 해서 과학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라고 해서 과학을 절대시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어떤 창조론자는 반복해서 과학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한다.
“진정한 과학은 우리 기독신앙의 친구다”라고...
진화론이 허구라는 것, 혹은 최소한 과학이 아닌 추측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증명해줄 수 있는 것은 순수하고 솔직한 과학자들이 아니겠는가!
물리(物理)는 물질의 존재와 품성과 기능의 이치다.
과학은 이를 찾아 규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부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인간의 과학도 한계가 있으며 과학이 규명하는 물리는 사실일지라도 그 범위와 한계에 있어서 완벽하지 않다.
그렇다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물리가 우주만물, 특히 창조론자인 나에게는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우주만물의 이치에 도달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 하나님의 창조원칙을 하나님의 물리(物理, God's Physics)라고 부른다.
그 물리의 모든 것을 내가 다 알 수 없는 것은 자명하지만 나는 최소한 그 물리의 법칙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물리의 법칙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짐작하고 있다.
생명(生命)이다.
그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성경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 특히 천하 과학을 경륜하는 천재들은 경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질문들을 묻곤 한다.
누가 과연 그 질문들에 대하여 궁극적인 대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그들보다 평범한 삶을 살는지 모르지만 진리를 가진 자로서의 넉넉함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맹신이 아니라, 그 어느 이성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지혜와 지식의 세계가 단순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담겨있다는 것을 그저 느낌으로 만족한다.
과학, 혹은 교육체계의 음모에 대하여...
과학은 그 한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과학의 주체가 되는 인간의 근본적인 결함으로 인하여 그 음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과학의 전도자인 공적 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공적 교육의 목적은 전인교육(全人敎育)을 표방하지만 결국 그 사회의 “바람직한” 구성원을 만들어내고자 함이다.
공산국가는 공산국가의 구성원을,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구성원을 만들고자 한다.
(기독인이라면 미국 공교육의 목적은 세계정부의 시민 양성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종말적 세계정부....)
다시 말해서 공교육, 그리고 그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사교육들도 교육주체의 의도, 혹은 음모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교육기관에서의 언어(言語)와 수리(數理) 등, 삶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교육은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교육주체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생산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교육주체의 음모, 그것을 인식하고 대비하지 못한다면 결국은 교육주체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과학과 교육에는 반드시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최대한 자유인으로서 살기 원한다면 역기능, 혹은 음모가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그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연관된 이야기가 다음 항목으로 이어질 것이다.
진화론의 폐단과 창조론의 중요성...
미국의 교육역사를 돌이켜보면, (이것은 미국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의 과학교육체계를 함께 하는 모든 나라에도 해당될 것이다.) 그것이 진심이건 아니면 문화적인 경향성이건 기독교를 표방하는 미국과 미국 교육의 정체성에 반대하여 무신론적인 교육을 통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말살하고자 하는 무신론자들의 강력한 음모가 개재(介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존재와 품성과 역사(役事)에 근거한 것이니만치 그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말살해야만 자신들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는 반(反)기독교세력들이 진화론을 마치 과학으로 증명된 진리인양 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그들의 노력은 성공하였으며 그 결과, 기독교가정에서 태어나 신앙생활을 하던 후세대의 80-90%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신앙을 떠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볼 때 위에서 언급한 미국이 개국으로부터 지켜왔다고 하는 건국이념으로서의 기독교신앙이라는 것이 일말이나마 있었다면 나는 그것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에 충성하는 구체적인 신앙의 발로에서라기보다 그저 자신들의 국가체제를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문화적 선택이 아니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러므로 진화론의 허구를 무너뜨리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역사를 나타내는 말씀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귀중하게 중요한 방편으로서 창조과학의 역할은 매우 지대한 것이다.
사실, 진화론이 과학적인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닌 만치 많은 과학자들이 실제로는 진화론이 가설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진화론을 부인하지 않는 것일까?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떤 창세론을 택해야 할 것인가?
어차피 존재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대, 그리고 그 속을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성경은 깨끗하게 그 만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에 의헤서 존재하게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어느 누구든지 창조론을 인정한다면 두세 가지 선택의 여지가 주어질 것이다.
이 모든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볼 때 완전한 정보와 능력을 가진 창조자가 있음에 틀림없음을 그냥 시인하거나... (실제로 이런 과학자들이 존재한다.)
그 창조자가 단순 에너지로서의 창조의 기원이 된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해주는 것처럼, 지음 받은 창조자의 의도에 따라 피차간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양하며 복을 누리는 사랑의 법칙에 따라 살거나...
그 사랑의 법칙에 살려다보니 자신의 욕망과 욕심과 교만의 성취가 방해되어 창조자의 기대를 거부하고 제멋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은 신(信), 혹은 불신(不信)이라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며 또한 이에는 그에 따른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신앙과 정치세력의 관계
신앙을 지킴에 있어서 정치세력을 포함하는 외부세력의 역할은 어떤 것이 있을까?
기독교국가.
국가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기독교신앙을 법으로 정하며 그 정신에 입각하여 통치행위를 하는 국가가 기독교국가일 것이다.
실제로 역사 속에 많은 국가들이 특정종교를 국교로 삼고 통치했고 그것은 지금도 일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인은 정치세력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할까?
그 자세한 내용은 차치하기로 하고 결론으로 요약하고자 한다면...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킴에 있어서 시민, 즉 주권자, 혹은 유권자, 나아가서는 정치가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지만 결국 정치세력과 결탁해서는 안 된다.
많은 정치세력들은 종교와의 결탁, 혹은 야합을 통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동기를 성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들의 근본 동기가 불순한 만큼 결코 장기적으로 진리에 근거한 결과를 얻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런 교계 세력도 결국은 타협과 야합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내 신앙은 내가 지켜야 하고 내 자식은 내가 가르쳐야 한다는 거다.
물론 교회는 확장된 신앙공동체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을 감당해야 한다.
논쟁에 있어서 부분적 결함으로 인한 문제와 나의 창조론
신앙과 과학, 창조와 진화를 논함에 있어서 논리 전개가 충분히 포괄적이고 공평해야 하겠지만 논자(論者)의 생태적 결함으로 인하여 표현과 이해에 오류가 생길 수 있음은 주제 불문 피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방법론에서 발생하는 문제인 셈이다.
진화론자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내가 굳이 말할 필요 없을 것이고...
과학자들도 과학에 대해서 얼마나 신뢰하며, 과학으로 접근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도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토론의 방법론적 과오를 최소화하기를 원하는 한편, 나의 창조론을 요약하기로 한다.
모든 만물은 창조주 하나님의 선한 의도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다.
인간의 역사는 6000-7000년 정도 될 것이라 믿는다. (이것도 인구수 증가를 수학적으로 계산해봤을 때 나오는 숫자이기도 하다.)
즉, 지금까지의 인류의 역사가 측정할 수 없는 오랜 세월도 아니며 예수님이 다시 돌아오시는 그 날도 측정할 수 없는 오랜 세월 후의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홍수는 성경의 기록 그대로 이뤄졌으며 그 물리적 증거는 세계 도처에 산재한다.
위에 언급되지 않은 나의 생각, 혹은 창조론의 많은 분파나 이론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상이면 충분하다고 보고 나의 제한된 지식에 의한 불필요한 논쟁을 예방하고자 이 이상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이는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로써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온누리교회의 교사임명 조건에 대하여...
위의 기사에서 기자는 온누리교회의 정책을 드러내고 이에 대한 우종학, 그리고 12년차 교인의 의견과 더불어 교회 한 장로의 의견을 보도하였다.
논조, 각 의견의 분량 배정, 혹은 시세에 비하여 볼 때 교회의 정책을 비판의 대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온누리교회는 교사를 임명함에 있어서 자신들의 신앙고백에 근거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그들의 조건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외부인들은 그 조건들의 외형적 열거만으로 그들의 신앙과 행습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교회가 그런 조건을 내세우는 데 있어서는 그 교회의 역사와 특징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생각이라고 한다면 성경 1독을 하지 않거나 못한, 혹은 경건의 시간을 갖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을 성도취급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창조론에 동의하지 않고 동성애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이 있다 없다 단언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다른 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교사는 징집이 아니라 자원이다.
본인들이 그 교회 교사의 사명을 다하고자 한다면, 그 조건도 존중해야 할 것이다.
12년 성도는 자원하고 싶었는데 그런 조건들 때문에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원의 가능성도 없으면서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 것은, 교회의 정책에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의 정책이 얼마나 성경적인가에 따른 문제이긴 하겠지만 차라리 자신이 용납할 수 있을 정도로 타협하거나 규정이 없는 교회에 다닐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뉴스앤조이, 그리고 한국교계에 대하여...
나에게는 뉴스앤조이라는 기독교 언론매체에 대하여 비평할만한 충분한 자료는 없다.
나는 다만 일부 교회가 세속주의, 물량주의, 교권주의에 빠져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그를 개선해보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기독언론과 필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만, 요즘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 가운데서 언론을 포함하는 교계가 창조론과 진화론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나름의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미 위의 기사에 대한 나의 반응을 통해서 나타난 바 있겠지만, 편 가르기, 틀(판)짜기 등의 논쟁 가운데 노출되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눈에 뜨이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소위 매우 고무적이고 진취적인 신진 교계 인사들이 “어떻게 과학에서 가르치는 (진화론을 포함하는) 내용들을 부인할 수 있느냐..”라는 틀로 창조론, 혹은 창조론자들을 상대불가족(相對不可族), 편파적인 분리주의자, 오만한 고집쟁이들로 매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창조론자들 중에서도 세부사항에 있어서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 많은 다양성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그도 불완전한 인간들의 이해와 표현의 한계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그 부분적인, 때로는 부족한, 혹은 잘못된 일부의 현상들을 가지고 전체를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논쟁을 공정하게 하자는 거다.
나는 이미 위에서 진화론의 허구성과 창조론의 진리를 선택한 나의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결국 나의 어떤 논쟁이 일부 혹은 전체 진화론자들의 생각을 바꾸리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이 내 기대대로 하시는 분은 아니다.)
다만 일반 성도들이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자신들과 동의하지 않는다고 손가락질을 하고 각종 혐오적인 딱지를 붙이는 (naming) 진화론자들의 농간에 흔들리지 말고 성경의 진리에 더욱 근면하고 겸손하게 천착(穿鑿)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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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에 관한 뉴스앤조이에 실린 기사 비평 20200211.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