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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이육사’의 수사법 구현 양상 연구(3)*
- 「絶頂」의 재창작과 ‘강철로 된 무지개’를 중심으로
박성준
<국문 초록>
앨런 튜링 이후,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인공지능 연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화두였다. 이는 현재 한국에서 문학 창작 AI 아트랩(ArtLab.)과 SIA의 등장으로 “기계는 창작할 수 있는가”로 변주되어 다시 호명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많은 양의 말뭉치 학습을 통해 모델링된 SIA가 “시적인 것”과 “非시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는지 하는 판단하는 여부는 향후 ‘문학 창작 AI’의 미래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사전 학습 모델링을 통한 ‘문학 창작 AI’ 제작은 시간과 자본의 측면에서 접근성과 범용성이 제한되고, 또 계속해서 대화형 인공지능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까닭에 또 다른 방향에서의 문학교육·창작을 위한 AI 활용방안이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ChatGPT의 인컨텍스트 러닝 방법론 접근을 통해 최소한의 학습으로 대화형 인공지능의 시적 재현 가능성을 타진한다. 특히, 한국 근대 시인의 전기적 사실과 한국 근·현대시에서 추출한 시적 수사 구문을 통해 단순 사전적 의미 해석만으로는 재현이 어려운 시적 수사법(은유·상징·역설·반어)의 분석 및 창작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육사의 작품 「絶頂」 재창작 및 ‘강철로 된 무지개’의 상징·역설·반어적 측면에 대한 이해 능력을 고찰한다. 이는 ‘AI 이육사’ 뿐만 아닌, 이후 문학 창작·교육 측면에서의 초거대 언어모델 기반 대화형 인공지능의 활용법 제언이 될 것이다.
주제어: 이육사, 대화형 인공지능, 챗지피티, 인공지능 창작물, 시적 수사법, 역설, 반어
Ⅰ. 문제 제기
앨런 튜링이 제언한 흉내 게임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증명하기 위한 설계였다. 이른바 “튜링 테스트”의 목적은 기계가 출력해내는 결괏값이 인간의 사고에 가닿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환원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기계는 오랫동안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고, 통과하더라도 그것이 완벽한 ‘통과’인가에 대한 의문을 피할 수도 없었다. 2014년 영국 레딩 대학의 AI ‘유진 구스트만’, 2016년 싱가포르 나딘 공과대학의 AI ‘나딘’ 등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주장한 바 있으나, 성공률이나 범용성의 측면에서 저마다의 한계를 노출한 바 있다. 초거대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한 ChatGPT와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ChatGPT를 비롯한 인공지능의 튜링 테스트 통과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이견이 발생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생각’에 대해서도 이견이 갈리고 있는 지금, 과연 우리 앞에 놓인 인공지능의 ‘문예 창작’은 어떠한 의미를 지닐 것인가.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고전 시가·하이쿠·소네트 등 외재적 형식의 지닌 작품들을 틀에 맞게 AI가 창작해내는 시도들은 여러 차례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의 성과 또한 괄목할 만한 수준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형식의 현대시를 창작하고자 하는 시도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이루어지고 있는 전망이다.
이러한 가운데, 인공지능을 활용한 한국 현대시 창작의 주목할 만한 결과를 낸 사례는 아트랩(Art Lab.)과 SIA이다. 특히 SIA는 시집 시를 쓰는 이유(리멘워커, 2022.)의 출간을 통해 인공지능에 의한 시 창작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닐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그간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만 인식되었던 문예(시) 창작의 지위를 기계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SIA가 이전까지의 창작 AI에 비해 더 자연스러운 결과물을 출력할 수 있었던 이유는 KoGPT를 경유했기 때문이다. KoGPT는 60억 개의 파라미터를 활용하는 초거대 언어 모델 GPT-3를 한국어로 교육한 모델인데다가, 이전 창작 AI보다 월등히 많은 수인 1만 2천여 편의 시편을 교육·모델링하여 시 창작에 특화를 시켰기 때문에, 시를 쓰는 이유와 같은 결과물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즉 SIA의 성과는 언어 모델 기능의 성장과 막대한 연산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기술력 등장에 힘입은 결과였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는 점은 ‘AI 시인’의 창작된 시편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에 관한 논의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위해서는 ‘AI 시인’의 시적 수사법 구현 양상에 관한 보다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수사법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의 창작과 독해에 있어 시학의 토대이자 시론의 매우 주요한 위치를 점유해온 영역이다. “서로 결속하고 길항하는” 문법으로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가 언어로 이루어져 있되 언어의 일반 규칙과는 다른 규칙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시적 수사’는 시 문법의 새로운 규칙을 구축하는 도구로 기능하는 셈이다.
원론적으로 시 문법의 창출은 시어와 시어, 인식과 인식의 배치 상태를 통해 실현된다. 다시 말하면 언어를 결정하는 ‘선택’, 그리고 그 언어와 다른 언어를 결속시켜 의미를 생성하는 ‘결합’의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선택은 “「유사한」 여러 단어 중에서 한 단어가 선별”되는 방식이며, 결합은 “「인접한」 구문적 요소와 연결”되는 방식이다. 이런 측면에서, 유사성과 인접성은 시적 수사가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가 된다. 물론 여기서의 유사성 또한, 다시 한번 “동일성”과 “이질성”으로 분리해서 개념화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물이 유사성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인다는 것은 “두 사물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며, 이와 같은 관점에서 유사성이란 “차이나는 것의 동일시 혹은 동일한 것의 분화”라고 이해될 수 있다.
위 도식을 경유해보면, 은유의 도식은 원관념(A)과 보조관념(B)의 병렬(A+B), 비교(A:B), 중첩(A=B)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은유로 카테고리화할 수 있으나 유사성에 있어서 이질성과 동일성의 비율에 차이를 갖는다. 라캉에 따르면 이질성과 동일성의 틈새가 낳는 긴장 관계는 은유를 성립시키는 조건이기도 하지만, 도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과도한 이질성과 동일성은 그 구절을 “非시적인 것”으로 전락시킬 위험을 갖는다. 다만 같은 과정에서 두 대상 사이의 관계가 더 이상 대상 자체의 것에 기반하지 않고 외부적 맥락의 개념에서 비유가 성립될 경우, 우리는 그것을 “상관 혹은 조응의 관계”로 이해하거나 혹은 ‘환유’로 인식할 수 있다. 즉 환유로 묶여 기능하는 두 대상은 서로가 갖는 의미적인 면에서 동일성이 완전히 부재하며, 인접성의 원리로만 조응되는 관계를 갖는다. 다만 해당 구문의 서술자 혹은 독자가 두 대상을 접하고 반사적으로 떠올린 연상에 의해 비유의 기능을 창출하게 되는 것뿐이다. 반대로 제유의 경우에는 내포의 방향성을 갖는다. 환유의 성립에 있어 동일성의 부재가 전제된다면, 제유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되어 있음을 전제한다. 제유의 과정을 통해 시인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대상으로 언술(구체화)하거나 개별적이고 좁은 범위의 대상을 상위 범주로 격상시켜 언술(일반화)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학 일반론의 차원에서 수사학의 개념을 인공지능은 충분히 학습하고 있는 것일까. 주지하듯, 수사법을 배제하고 시를 해석하기란 곤란할 뿐만 아니라, 그 해석의 신뢰성을 담보하기조차 어렵다. 이는 ChatGPT 등 대화형 인공지능의 문학 분석이 최소한도의 범용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시적 수사법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당위로 작용하기도 한다. 상술하였듯 ChatGPT의 사전 학습 모델링과 관련된 자료는 일절 공개되어 있지 않으므로, ‘AI 시인’이 창출한 시편들의 ‘미적 형상화’ 정도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시적 수사법에 대한 지식 확인이 우선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전 학습이 이뤄진 경우, 해당 개념이 적용된 작품 창작과는 별도로 준비한 예시 작품을 입력하여 실제 수사법을 활용하여 텍스트 분석이 가능한지 또한 확인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본 연구에서 특정하고 있는 ‘AI 이육사’의 구현을 위해서는 이육사가 구사하고 있는 시적 수사를 얼마나 이해하고, 또 얼마나 재현(모방)하고 있는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육사의 시편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시적 수사법은 상징이기 때문에,
이육사의 시에서 시대적 맥락과 교차하는 상징 시어들을 어느 정도 ‘AI 이육사’가 인지하고 있는지 파악해야만, 향후 AI의 새로운 모작에 대한 미적 가치 평가 또한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絶頂」에서 ‘강철로 된 무지개’로 특정되는 역설의 양상을 시적 수사의 관점에서 고찰하여, 인공지능을 활용한 이육사 교육의 초석을 마련하고자 한다.
Ⅱ. ‘AI 이육사’의 수사법 이해도와 구현 가능성
주지하듯 이육사의 시편에서 주로 활용되는 시적 수사법은 ‘상징’이 중심이다. 그 밖에도 그의 시에서 메타포, 환유, 역설 등이 전유되고 있는 양상이지만, 시어의 상징적 맥락에서 그 의미망을 파악하는 것이 역사주의적 담화 구축에서 매우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육사의 시편은 “작위적인 구성력”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과 동시에, 수사적 차원을 넘어 “의도(intent)의 차원”으로 이해하려는 비평들이 다수를 차지해왔다.
가령 이육사의 작품이 전통적 시조 작법에 입각한 상징적 수사법을 통해 “고향상실의 현실과 낙원회복 의식”을 그려내고 있다는 시선이나 “시대적 현실에 처절하게 맞서서 행동”했다는 시선 역시 공존했다는 것은 그의 시를 시대적 맥락에서 파악하려는 남한문학사 내의 정치적·관행적 비평관이 투사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육사 시의 선행연구에서 강하게 부각되었던 공간 기표에 관한 해석 또한 그의 토대 사상이나, 기저의 의식 세계, 시어의 인식론 등에 관한 범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껏 이육사의 시를 시적 수사로 검토했던 연구들은 수사학적 범주를 넘어서 의미론적 해석을 함께 교차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이육사의 수사적 파악은 한국시사의 개념화된 ‘목표 영역’에 잘 들어맞는 기표의 재현 관계로 이해하려는 관행이 앞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육사 시에서 ‘당대 미적 정합성’이 아닌 전대적 관점에서의 미적 형상화 양태의 해명에 관해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많다.
본 연구는 위와 같은 선행연구의 관점에 동의하면서도, ChatGPT를 활용한 수사적 의미 고찰이 범용성을 기반하고 있다는 데에서 수사적 미의식 고찰에 유의미한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가정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육사의 작품이 “당대적 미적 측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음을 전제하고, 초거대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한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가 이육사의 시적 특질을 재현한 ‘AI 이육사’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집중적으로 검토하고자 하는 것은 대화형 인공지능의 시적 수사법 재현 가능성이며, 이를 위해 적절한 단계를 설정하여, ChatGPT에 이육사 작품 일부를 교육하는 것을 선행한다. 그리고 은유·상징·역설의 관점에서 ChatGPT 출력 및 그 활용방안을 고찰하고자 한다. 연구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 사전교육이 부재한 상태로 이육사 작품 2편 입력 및 은유 분석
⒝ 사전 교육이 실시된 상태로 동일 작품 입력 및 은유 분석
⒞ 이육사 대표작 5편을 입력하고, 시대적 현실이 드러난 공간 기표의 의미망 분석
⒟ 역설·반어 분석 가능 여부 확인과 창작 시 비평
⒠ ChatGPT의 이육사 시적 수사법 재현 가능성 확인
(1) ChatGPT의 은유·상징의 해석 능력;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잃어진 故鄕」
우선 ChatGPT가 이육사 시의 은유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는 ChatGPT의 은유·제유·환유·상징 등에 대한 범용적인 사전 지식을 교육하고, 부분적으로 이를 적용·재현할 수 있는가에 관한 확인 과정을 거친다. 이는 ChatGPT가 사전 교육 없이도 이육사 시편을 시적 수사의 측면에서 충분히 분석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여, 본고의 논의가 당위성을 갖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해당 작업에서 입력한 작품은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와 「잃어진 故鄕」이며, 작품의 현대어 역은 박현수의 작업을 참고했다. 인용문은 논고의 분량상 불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 인용하였다.(이후 동일)
이 두 시는 각각 다른 주제와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시적 수사법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
이 시는 반복, 상징, 은유 등의 수사법을 사용합니다.
-상징: 별은 여기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별은 희망, 미래, 새로운 시작 등을 상징하며, 이 시에서는 새로운 지구,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은유: 이 시에서는 별을 가지는 것을 지구를 가지는 것에 비유합니다. 이는 우리가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가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 "잃어진 故鄕"
이 시는 비유, 상징, 암시 등의 수사법을 사용합니다.
-비유: 제비를 통해 시인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비유합니다. 제비의 여정은 시인의 고향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대변합니다.
-상징: 제비는 여기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제비는 고향을 잃은 이들의 상징이며, 그들의 슬픔과 그리움을 대표합니다.
이 두 시는 각각 다른 수사법을 사용하여 감정과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시의 의미와 감정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밑줄 강조 인용자)
기존 이육사 연구에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를 “개체적인 자아”의 “이상적 세계로 무한히 확대”로 이해되거나, “별을 노래하는 행위”가 “다른 세계로의 열림을 상징하는 행위태”로 분석되었던 것을 고려할 때, “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작을 위해 나아”가야 함을 은유한다는 ㉠의 분석은 다소 표면적이고, 범용한 해석에 머무르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잃어진 故鄕」에 대한 “고향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대변”한다는 분석 역시, 기존 연구에서는 “그곳에 푸른 하늘이 열리면/어쩌면 네 새고장도 될 법 하이.”라는 구절에 주목하여 이육사가 “고향 상실감”을 극복하고 “‘새 고장’을 삶의 터전”으로 삼을 수 있다는 입장을 정위하였다는 분석과 비교한다면, 비평적 관점에서 ChatGPT의 접근이 일반론적인 층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ChatGPT가 출력한 두 시편에 대한 분석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의 범주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결괏값이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ChatGPT가 해당 시편의 창작자인 이육사에 대해 교육받은 바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이육사의 시편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육사라는 인물과 더불어 1930년대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 또한 중대한 역할을 할 부분으로 보이는데, 이 또한 전혀 교육된 바가 없다는 점이 적용된 것이다. 즉 시인 혹은 시대적 배경과 작품 사이의 관계성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ChatGPT의 출력물은 시편 문면에만 머물고 있음이 해명된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출력한 각각의 은유와 상징이라는 기표마저도 시의 본질적 의미를 꿰뚫지 못하고 있는 교양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육사의 전기적 사실 정보를 입력한 후 다시 같은 시 두 편에 대한 분석을 요청하면 결괏값은 다음과 같다.
1.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
상징: ‘별’은 새로운 희망, 미래, 또는 독립된 국가를 상징할 수 있습니다. ‘지구'는 현실의 세계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의미하며, 새로운 희망이나 바람을 갖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합니다.
대조: “설움밖에 잃을 것도 없는 낡은 이 땅”과 “한 개의 새로운 地球” 사이에 대조가 있습니다. 여기서 ‘낡은 이 땅’은 식민지 시대의 조선을 의미하며, ‘새로운 지구’는 독립된 미래의 조선을 상징합니다.
2. 잃어진 故鄕(고향)
비유: “저 높은 재 위에 흰 구름 한조각”에서 구름이 제비의 고향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제비의 고향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높고 아름다운 곳임을 암시합니다.
상징: “두날개가 촉촉이 젖겠구나”에서 ‘날개’는 제비의 자유와 움직임을 상징하며, ‘촉촉이 젖다'는 제비의 슬픔과 그리움을 나타냅니다.
(밑줄 강조 인용자)
밑줄로 강조 인용한 바와 같이,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에 대한 분석은 사전 학습 내용을 입력하기 전보다 조금 더 ‘이육사론’에 가까워진 모습을 보인다. 특히 주요 상징어인 “별”을 분석한 내용을 살펴보면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가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야 함”과 같은 일반론적 해석에서, “새로운 희망, 미래, 또는 독립된 국가”와 같은 시대적 상징 해석으로 구체화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지구”라는 공간 시어에 관해서도 “식민지 시대의 조선”, “독립된 미래의 조선” 등으로 인지하기 시작했으며, 이육사의 전기적 사실과 당대 시대 상황 등을 고려한 포괄적인 답변을 생성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잃어진 故鄕」에서는 특이점을 살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앞서 “제비는 고향을 잃은 이들의 상징이며, 그들의 슬픔과 그리움을 대변”한다고 분석했던 것에 비해 더 소략해진 상황이다. 이전 요청에서 ChatGPT가 “잃어진 고향”이라는 제목과 “제비”의 상관관계를 맥락화하여 이해했던 것과 달리, 전기적 내용 학습 이후에는 입력된 내용과 시의 상관관계에 조금 더 비중을 두고 분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두날개”라는 시어를 “제비의 자유와 움직임”이라고 해석하는 것 또한 어디로부터의 자유인지 문맥화되지 않은 모습이다. 전기적 사실을 경유했다면, ‘일제강점기로부터의 조국의 자유’ 정도로 상징 해석이 진행되어야 하지만, 질문을 거듭하더라도 그와 같은 상징 맥락을 ChatGPT가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다시 말해, 해당 과정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ChatGPT는 임의로 주어진 작품에 대해서 일반론 층위의 수사적 분석을 생성할 수 있다. ②은유·제유·환유·상징 등의 개념이 사전 교육되어 있으며, ‘시적 수사법’과 같이 포괄적인 단어를 통해 요청하더라도 세분화하여 답변할 수 있다. 그리고 ③시인에 대한 사전적 정보를 학습시킬 경우 시 분석에 해당 정보를 적용시킬 수 있으나, 문면에서의 이해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즉 시대적 상징 기표의 의미를 해석하는 경우도 있고,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여기서 ④ 모든 과정은 할루시네이션 현상 발생의 위험을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ChatGPT의 시 작품 분석과 교육된 전기적 사실 정보의 적용 여부를 확인한 결과, 의도된 방향성에 맞게 기능했지만 프롬프팅 결괏값은 부분적인 성공과 실패를 모두 나타내고 있었다. 아울러 이 프롬프팅 과정은 ‘미적 창작품의 생산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일차적 요건을 충족한 것에 불과하다. 1장에서 정의한 바와 같이 개별 시인에 대한 심층적 분석과 상징·역설·반어 등의 시적 표현을 재현하는 실험과정이 이어져야만, ‘AI 이육사’의 재현 가능성을 더욱 명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 ChatGPT의 상징 시어 이해도: 「靑葡萄」, 「江건너간노래」, 「꽃」, 「廣野」, 「絶頂」
주지하듯, 공간 시어의 빈번한 사용은 이육사 시의 형성 원리의 큰 특징 중 하나다. 고향·북방·이국 등 여러 작품이 공유하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골방·도시·공원 등 개별 작품에서도 단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간 기표의 상징들이 빈번하게 구축되고 있다. 선행연구에서, 이육사의 공간 시어들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시대적 상황과 강력히 연관되어 해석되고 있었는데, 이는 이육사 시편이 그려내는 공간 기표가 “지속적이고 견고”하게 “그의 세계를 질서화”하고 있으며 이육사의 시적 발화 자체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화에 기반하기보다는 공간이라는 “대타화된 대상에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육사의 시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각 시어에 대한 분석을 넘어 ‘시대적 현실’을 드러내고 있는 공간 기표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ChatGPT의 이 같은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본고는 상술한 바와 같이 이육사의 대표작 5편(「靑葡萄」, 「江건너간노래」, 「꽃」, 「廣野」, 「絶頂」)을 입력하고 이에 대한 상징·공간 기표 분석을 요청했다. 해당 분석이 이루어진 세션은 2장의 (1)절과 동일한 프롬프팅 환경에 더해 대표시를 교육한 상태로 조성되었다.
① 「靑葡萄」: 이육사의 “靑葡萄” 시는 시인의 고향과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한 작품입니다. 장소 시어로는 "내 고장", "이 마을", "하늘 밑 푸른 바다"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시인의 고향과 전통, 그리고 해방과 독립을 향한 바라던 희망을 나타냅니다. 상징적인 시어로는 "청포도", "흰 돛단배", "靑袍"가 있습니다. 청포도는 미완성의 상태와 희망을, 흰 돛단배는 바다를 통한 변화와 희망을, 그리고 "靑袍"는 시대의 지도자나 독립운동가를 상징합니다.
② 「江건너간노래」: 이육사의 “江건너간노래”는 그의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 작품입니다. "압내江"은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 아래의 한국을 상징하며, 강은 국경이자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江건너"는 멀리 떨어진 곳을 지칭, 독립을 향한 간절한 바램을 표현합니다. "沙漠"은 국가의 독립을 향한 끝없는 투쟁의 상징으로 보여집니다. 상징 시어로 "달"은 순수한 사랑과 바램을 나타내며, "제비"는 새로운 시작과 기대감을 표현합니다. "눈물 먹은 별들"은 고통 가운데의 희망을 의미합니다. "무지개"은 변화와 희망의 상징입니다.
③ 「꽃」: 이육사가 살던 시대상이 드러나는 장소 시어로 "北쪽 「툰드라」"는 북쪽의 극한 환경을 의미하는 툰드라 지역을 가리킵니다. 조선의 북쪽 지역이나, 더 광범위하게는 북방 지역의 현실과 환경을 상기시킬 수 있습니다. 상징(symbol) 시어로는 "꽃"이 이 시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꽃은 생명력, 희망, 미래, 또는 변하지 않는 진실성을 상징합니다. 여러 환경에서도 꽃이 지속적으로 피는 모습은 한국민족의 불굴의 정신이나 희망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제비떼"는 매년 봄과 가을에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변화와 재생, 그리고 끊임없는 생명의 순환을 상징합니다. "나비"는 변화와 전환, 재생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꽃과 함께 나비가 표현되는 것은 자연의 순환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④ 「曠野」: 이육사의 시 “曠野”는 시대와 자연의 깊은 흐름을 표현합니다. 시에서는 "까마득한 날"과 "하늘이 처음 열리는" 태초의 모습을 통해 과거의 먼 시점을 상징하며, "모든 山脉들이 바다를 戀慕해"와 같은 구절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풍경과 인간의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끊임없는 光陰"은 시간의 무한한 흐름을, "부지런한 季節"은 자연의 주기와 변화를 상징합니다. 특히 "梅花香氣"는 매화의 순수한 향기를 통해 아름다움을, "白馬타고 오는 超人"은 미래의 희망과 이상향을 상징하며, 이육사의 깊은 묵상과 그의 꿈꾸는 세상을 짙게 그려냅니다.
⑤ 「絶頂」: 이육사의 "絶頂"은 일제 식민지 지배 아래 조선 국민의 희망과 절망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매운 季節의 채찍에 갈겨"는 일제의 억압을 상징하며, "北方으로 휩쓸려오다"는 그로 인한 고통과 절망을 의미합니다.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는 위험한 상황을, "강철로 된 무지개"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상황을 상징합니다. "무지개"는 보통 희망을 상징하는데, 이것이 "강철로" 만들어져 있어서 절망적인 상황과 희망이 교차되어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상술하였듯이, 이육사 시편에서 시적 수사로서 상징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다. 당대 함께 동인 활동을 했던 윤곤강의 지적에서처럼 이육사의 시편은 “用語에 어색한 곳”이 빈번하게 드러나기도 해서, 후대 연구자들의 혼란을 가중시켰고, 이러한 혼란은 “언어의 물질성보다는 의도의 관념성을 높이” 평가하는 관점으로 귀결되어왔다. 즉 시편 그 자체의 형성 원리보다 이육사 개인의 삶이 투사되어 시를 해석하는 관행이 형성되었으며, 그 가운데 “수사적 특성을 작품을 통해 확인”함으로써 이육사 시의 난해한 상징성을 해명해왔다. 즉 상징 개념에 대한 명료화는 몇몇 “성공적인 육사시의 경우”를 제외하면 “명확하지 않은 표현”이 종종 발견되는 특징을 여전히 공유하고 있으며, 이육사 시편의 명징한 해석을 위해서는 이육사 시의 상징 기표의 기저 의미를 선행하여 탐구해야만 한다.
시 문학 일반론을 경유하자면 상징은 비유와 유사하면서도 이질적인 성격을 지닌 수사법으로써, 부재하는 원관념의 위치를 보조관념을 통해 발견하는 것을 기본적인 원리로 삼는다. 이는 필연적으로 상징의 수사학에서 “감춤과 드러냄의 양면성”을 갖추게 하는 특징으로 작용되며, 시 문면에서는 “일대다의 연상적 유추”를 유도하게 함으로써 인식의 확장을 구축한다. 지금까지의 이육사 선행연구 중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시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북방·이국·고향 등의 공간 기표나 ‘무지개’의 상징 기표 등을 이육사가 겪었던 시대적 격랑이나 사명, 경험 등과 연관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다수 발견되고 있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미루어볼 때, 「靑葡萄」에 대한 ChatGPT의 분석은 매우 아쉬운 수준에 머문다. 일반적으로 「靑葡萄」는 “청포도가 익는 풍요로운 시간대”가 왔을 때 찾아올 “청포를 입은 손님”에 대한 절실한 기다림으로 분석되는 작품이다. 해당 작품의 해석에서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은 고향에 대한 회복 의지와 “청포”를 입고 찾아올 고달픈 손님에 대한 정결한 기다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시편이 설정하고 있는 시간대는 ‘청포도’가 익는 “칠월”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ChatGPT의 해석에서는 작품 내부 시간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손님”의 의미가 일반론적·일차원적 해석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靑葡萄」 해석에 비하면 「江건너간노래」의 해석은 한결 일반적인 이육사 시편 분석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이는 「靑葡萄」의 주된 시적 서사가 현재가 아닌 미래의 시점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 문제로 파악할 수 있다. 반면 「江건너간노래」가 설정하는 시적 공간은 시간에 대한 언급보다는 강을 사이로 두고 단절된 두 장소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상징어 “노래”는 “집조차 없”는 곳을 떠나 “떨어져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어디멘가”로 떠나고 있다는 비교적 단일하고 일방향적인 서사 구조를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강건너”가 독립을 위한 바람을 표현한다는 ChatGPT의 분석은 이육사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 적절한 해석이라 볼 수 있다. 아울러 집도 없는 곳을 떠나 강을 건너간 노래가 죽음의 위험을 불사하는 “사막”에 가닿는 이미지로 운용된 점을 “독립을 향한 끝없는 투쟁”으로로 이해한 ChatGPT의 해석 또한 충분히 정확한 해석으로 보인다. 그러나 “달”, “제비”, “눈물 먹은 별”에 대한 설명은 이육사 시편의 개별적인 시어에 대한 해석이라기보다는 기존에 모델링되었던 “달”, “제비”, “별”의 일반적인 시적 용법에 기댄 해석으로 판단된다. 특히 “제비”와 “별”의 경우가 그러한데, 먼저 「江건너간노래」에서 “제비”는 시어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래”의 속성을 나타내는 비유일 뿐이다. 그러므로 “제비”보다는 “노래”에 대한 해석이 제시되었어야 할 것인데, ChatGPT는 이 시편에서 비유관계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별”은 “눈물 먹은” 상태로 수사되고 있으므로, 그 해석은 “고통 가운데의 희망”보다는 ‘고통을 받는 민중’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자면, ChatGPT는 「靑葡萄」와 「江건너간노래」에 있어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靑葡萄」의 경우 시적 주체가 설정하고 있는 시간적인 배경을 인지하지 못해 주요한 관계 구조인 “손님”과 “나” 사이의 “간절한 기다림”에 대한 해석이 조야하였고, 「江건너간노래」의 경우에는 주체가 머무는 곳과 강 건너의 공간적 차이를 인지하는 것은 가능했으나 해당 작품에서 활용된 시어의 상징적 의미 고찰이 명확하지 않았다. 시편 내에서 시인이 구축한 상징 이미지와 사전에 모델링된 같은 단어의 상징적 의미 사이에서 할루시네이션이 발생하면서 시어 해석에 오류가 발생한 결괏값을 제시한 것이다.
반면 「꽃」에서는 “툰드라”라는 공간의 장소성에 주목하여 “극한의 환경”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조선의 북쪽” 혹은 “북방 지역의 현실과 환경”이라는 실제적 의미를 모두 고찰해냈다. 즉 입체적 측면에서의 시 해석을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프롬프트를 통해 입력된 이육사의 전기적 정보와, 사전에 모델링된 “툰드라”라는 지형 정보, 1930년대 조선의 시대상을 바탕으로 「꽃」을 해석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이와 더불어, 중심 시어인 “꽃” 역시 “나비”와 함께 해석되며 작품에서 맺고 있는 시어 간의 관계성에 관해 명확하게 해석하고 있음이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꽃」에 대한 해석은 앞서 제시된 「靑葡萄」, 「江건너간노래」에 비해 실제 해석과 치명적으로 괴리되는 부분이 비교적 적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작품의 중심 공간인 ‘툰드라’와 “꽃” 사이의 관계성을 일진보해서 해명하지 못했던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상기된 작품 분석과 비교해 「曠野」에 대한 ChatGPT의 분석은 상당히 세밀하다고 판단된다. “원시성과 신성성”을 지닌 공간인 “광야”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은 제시되지 않았으나, 시편 내부에서 작용되는 ‘시간성’을 적절히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광야’라는 공간이 형성된 “까마득한 날”의 과거부터 “끊임없는 광음”과 “부지런한 계절”을 거쳐, 미래에 마주하게 될 “白馬타고 올 超人”에 대한 주요 인과성을 확연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각 시어의 의미망까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또한 시어 “超人”이 갖는 “미래의 희망과 이상향”의 상징성을 “이육사의 깊은 묵상과 그가 꿈꾸는 세상”으로 연결짓는 것 역시, 성공적인 인컨텍스트 러닝 결괏값으로 이해할 수 있다.
끝으로 「絶頂」에 대한 분석 역시 올바른 인컨텍스트 러닝에 의한 출력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육사 특유의 “비동일화의 역동적 주체형태”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해, 작품 내에서의 주체를 “탄압받는 조선 민중”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조선의 시대상을 바탕으로 각각의 시구를 자연스럽게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강철로 된 무지개”에 대해 “절망과 희망이 교차되고 있다”라고 해석하는 대목은 ChatGPT가 역설·반어의 측면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 관해, 일말의 가능성을 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상술한 이육사 대표 시 5편에 대한 ChatGPT의 분석을 종합해볼 때, 중심 서사 자체를 명확히 정의하지 못했던 「靑葡萄」를 제외한다면, 대체적으로 교육 텍스트의 부족으로 인한 오류가 눈에 띄었다. 특히 「江건너간노래」에서 발생한 할루시네이션 현상은 시적 맥락보다 사전 모델링된 시어의 의미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꽃」, 「曠野」, 「絶頂」 등의 작품 분석에서 제시된 시적 접근은 다소 우수한 측면을 보였다. 이 시편들에서는 세 개의 요소(입력된 프롬프트·모델링된 사전 지식·셀프 어텐션)을 통한 문맥 파악이라는 인컨텍스트 러닝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가능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曠野」의 “초인”이 갖는 이상성·상징성과 이육사의 삶을 연계하여 분석한 것은 제한된 정보 입력만으로도 ChatGPT가 개별 시인에 대한 시적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는 여지를 보인 사례였다. 다시 말해, ‘AI 이육사’의 은유나 상징 시어의 이해도를 토대로 시적 수사법을 구사하는 생성문학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것이다.
Ⅲ. ‘AI 이육사’의 역설·반어 이해와 수사법 재현
상술한 바와 같이, ‘AI 이육사’가 실현되려면 은유, 상징 등의 시적 수사만큼이나 ChatGPT가 역설과 반어의 맥락 또한 이해하고 있었어야 한다. 예컨대 앞장에서 검토했던 「絶頂」의 시구 ‘강철로 된 무지개’는 기존 연구에서도 “죽음과 삶, 부정과 긍정의 의미가 융합되어 견고하게 굳어”진 강철과 “황홀하고 따뜻하고 밝은” 무지개의 역설적·반어적 결합으로 이해된다. 이는 ChatGPT가 분석한 것과 같이 “절망적인 상황과 희망이 교차되어 있다는 의미”와도 상통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江건너간노래」에서 “무지개”라는 시어는 “변화와 희망의 상징”한다는 결괏값을 도출하며, 비평적 의미 차원에서는 역부족인 해석을 전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AI 이육사’의 시 출력물과 수사법이 활용된 시 구절을 검토함으로써 ‘AI 이육사’의 실현 가능성을 전망해보자.
<표1> ChatGPT의 시 출력물 1
은유 | |
㉠-1 | ㉠-2 |
무정한 바람의 흔적 속에서 한줄기 무지개는 꿈틀대며 살아나 그것은 고통의 色彩가 아닐까?// 그 무지개는 강철과 같은 의지, 타오르는 햇빛 아래서도 사라지지 않는 계절의 중간, 내 마음의 音色을 노래하노라. | 하늘을 향해 눈을 뜨니 한 줄기 무지개가 끝없이 그어져 그 색에 물들은 우리의 시간,// 희미한 희망을 담아 대지에 그린 선 변함없는 비후의 선물이 아닐까, 어제의 울음 속에 숨겨진 오늘의 미소로. |
상징 | |
㉡-1 | ㉡-2 |
남쪽에서 오는 청춘의 바람이 가슴에 맺힌 얼음을 녹이니, 푸른 강물 위에 무지개가 걸리네.// 모래 위에 발자국 남기며 걸어가는 청년들아, 그 무지개를 따라 독립의 노래 부르리라. |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빗방울이 내리는 청록의 저편, 무지개가 언덕 위로 솟아오른다.// 바람은 잔잔히 불며, 물결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무지개 아래, 우리의 꿈이 흘러간다. |
<표1>은 이육사 시의 스타일 모방하여 ChatGPT로 출력한 결과물이다. 시어 “무지개” 사용을 전제로 했으며, “은유 수사법을 활용할 것”(㉠-1, 2), “상징 수사법을 활용할 것”(㉡-1, 2)과 같은 요청을 덧붙여 정리한 시편이다. 우선 ㉠에서는 “한줄기 무지개”(원관념)-“고통의 色彩”(보조관념), “무지개”(원관념)-“강철과 같은 의지”(보조관념), “무지개”(원관념)-“계절의 중간”(보조관념), “한 줄기 무지개”(원관념)-“비후의 선물”(보조관념) 등의 은유 표현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결괏값은 ChatGPT가 비유법을 활용하여 구문을 출력할 수 있으며,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 또한 이해하고 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즉 대화형AI는 교육의 질적 차원에 따라 시적 메타포를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방증이다. 아울러 내용적 차원에
입력된 요청은 다음과 같다.
㉠ | ㉡ |
다음 조건에 맞는 시를 창작해 줘. 1) 이육사의 시 스타일을 따라 할 것. 2) 은유(metaphor)의 기법을 활용할 것. (시에서 metaphor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말 것) 3) "무지개"라는 시어를 포함할 것. | 다음 조건에 맞는 시를 창작해 줘. 1) 이육사의 시 스타일을 따라 할 것. 2) 상징(symbol)의 기법을 활용할 것. (시에서 symbol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말 것) 3) "무지개"라는 시어를 포함할 것. |
“비후”는 ChatGPT가 생성한 단어로, “비가 내리고 난 후”를 표현하고자 했으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다.(ChatGPT는 “"비후의 선물"이란 구절에서 "비후"는 ‘비가 오고 난 후'를 의미합니다.”로 답변하였다.)
서도 ‘무지개’를 수식할 때 “꿈틀대며 살아나”든가, “타오르는 햇빛 아래서도 사라지지 않는”과 같은 구문들을 활용하여 이육사의 대표작품 5편에서 드러나고 있는 비장·고결·저항 의지 등을 형상화해내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적절한 프롬프팅만으로도 이육사 시적 특징을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한편 상징 시어 출력 요청에서도, “푸른 강물 위에 무지개가 걸리네”, “그 무지개를 따라 독립의 노래 부르리라”, “무지개가 언덕 위로 솟아오른다”, “무지개 아래, 우리의 꿈이 흘러간다” 등의 구절에서 상징의 수사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구문들은 전체적으로 ‘억압을 받는 상황에서의 희망·이정표’로서 “무지개”가 기능한다는 의미역을 공유한다. 더 자세히 분석하자면, ㉡-1의 1연에서 “남쪽”이라는 공간에서 온 “청춘의 바람”에 의해 “가슴에 맺힌 얼음”이 녹는다는 정황이 확인되는데, 이는 「靑葡萄」(“고달픈 몸”↔“손님”)나 「꽃」(“툰드라”↔“꽃”), 「曠野」(“눈”↔“초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고통의 시간을 인내한 후 찾아올 미래’를 동일하게 상징한다. 이러한 국면에서 ‘희망’과 ‘염원’에 대한 상징으로 “무지개”라는 시어가 활용되고 있다. 이 또한 “은쟁반”·“모시수건”(「靑葡萄」), “꽃 맹아리”(「꽃」), “가난한 노래의 씨”(「曠野」) 등과 같은 미래 전망의 희망적 기표 또한 기존 이육사 대표작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시적 상징으로 동류 관계를 맺고 있다.㉡-2에서도 “무지개”가 “빗방울이 흩날리는 청록의 저편”에 떠오르는 정황이 구축되는데, 여기서 무지개가 떠오르는 “동쪽 하늘”은 새 아침이 오는 방향으로 새 시대에 염원하는 희망적 기표로 읽힌다. 지금은 “빗방울”이 “청록”의 빛깔로 동쪽 하늘과 주체 사이를 유리시키고 있으나, 언젠가 새 아침이 오면, 이 단절의 시간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무지개”가 현실과 동경 사이의 교각 역할을 하는 상징어로 기능하는 것이다.
즉 시인에 대한 간단한 전기적 사실과 대표작에 대한 입력이 전제된 상태에서 ChatGPT에 명확한 창작 방향을 지시해서 요청할 경우, 은유와 상징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이육사 시의 재현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출력된 결괏값이 이육사의 고결한 시 정신이 담겨 있다거나 이육사가 살아 있는 것처럼 뛰어난 미학적 성취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어디까지나 이 시편들은 모작의 차원에서 기획된 출력물이라는 것이고, ChatGPT가 사전 학습 모델링을 통해 은유와 상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틀을 습득했다는 검증 과정에서 유의미한 결괏값일 뿐이다. 즉 적어도 기계적인 출력이 아니라, 수사법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이다.
그렇다면 이육사 시편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역설의 재현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본 과정은 한국 근·현대시 전반에서 추출한 대표적인 역설·반어 구절을 입력하고, 이후 역설·반어 구절을 출력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ChatGPT가 은유와 상징을 넘어, 역설을 구사할 수 있는가 검증하는 과정이다.
<표2> ChatGPT의 시 출력물 2
역설 | |
㉢-1 | ㉢-2 |
바다는 땅을 갈망하며, 무한한 파도를 던져온다. 산은 하늘을 향해 솟아나면서, 딥디딘 깊이로 뿌리를 내린다. | 잠들어 있지만 꿈은 깨어 있고, 목마른 물고기가 하늘을 수영한다. 여름의 추위, 겨울의 더위 속에서, 세상은 모순의 무늬를 살며 숨쉬어간다. |
반어 | |
㉣-1 | ㉡-2 |
밝은 별들 아래 어두운 밤이여, 어찌 그토록 무거운 빛을 지고 있나? | 꽃들이 웃으며 눈물을 흘리네, 사랑의 노래가 슬픔의 어조로 불려지다. |
위의 인용표는 은유과 상징의 교육 틀에서와 같은 방식이나 특정 시인의 스타일의 제한 없이 창작시를 요청한 것이다. 다시 말해, 역설과 반어를 교육하되 특정 시인의 스타일이 아닌, 역설·반어를 이해하고 있는 ChatGPT의 창작시를 통해 수사법 이해도를 검토하는 과정이다. 먼저 역설의 재현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1, ㉢-2를 살펴보자. 가령 ㉢-1은 “땅”을 갈망하는 “바다”, “뿌리”를 내리는 “산”이 주된 시적 대상으로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어들이 역설적 표현의 대상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바다는 땅을 갈망하며”와 같은 구절은 단지 주체에 인격을 부여하는 방식에 불과하며, “산”이 “하늘을 향해 솟아”난다는 것 역시 단순히 자연물의 역동적 묘사를 기술해낸 수준으로밖에 독해되지 않는다. 그 반면에 ㉢-2에서 확인되는 “잠들어 있지만 꿈은 깨어 있고”든가, “목마른 물고기가 하늘을 수영한다”, “여름의 추위”, “겨울의 더위” 등과 같은 모순적인 표현들은 역설적 수사법을 활용하고 있다고 판단할 만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역설적 시어들은 “세상은 모순의 무늬를 살며 숨쉬어간다.”라는 마지막 구절과 결합하며, 이 세계를 살아내는 주체들의 모순적 삶의 면모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형상화된다. 물론 ㉢-2를 실제 작품으로 인식하고 비평한다면, 표현이 조야하고 수사법도 단순 나열·대비 구조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리고 전달하려는 메시지 역시 추상적인 수준에서 형성되는 데 그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의 재현 가능성 검증 측면에서는 본고의 목적에 따라 일정 수준 목표에 도달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반어는 전혀 다른 국면에 놓여 있었다. ChatGPT 스스로가 “반어(irony)는 말의 표면적인 의미와 반대되는 또는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답변했음에도 불구하고, ㉣-1, ㉣-2의 두 구절 모두 “별”과 “밤”, “무거운”과 “빛”, “웃으며”와 “눈물”, “사랑의 노래”와 “슬픔의 어조” 등 두 단어의 표면적인 의미가 대조되는 단순한 형태의 반어만을 출력해냈다. 이는 ChatGPT가 반어의 사전적 의미는 이해하고 있으나, 아직 맥락과 정황에 따라 반어적 서술까지 접근·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예컨대 「진달래꽃」의 구절(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에 대해서 ChatGPT는 다음과 같은 해석을 출력한다. “사람이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표현할 때, 그 사람의 떠나는 것에 대해 슬퍼하겠다는 것은 예상되지 않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먼 훗날」(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ChatGPT는 「먼 훗날」을 해석하면서 “오늘도, 어제도 잊지 않았다는 표현과는 대조적으로 먼 훗날에야 잊었다는 것은 예상과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다시 말해, 보내지 않겠다는 것과 잊지 않겠다는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ChatGPT는 반어적 표현에 대한 해석·이해가 아직 불완전하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ChatGPT는 이육사의 은유·상징·역설 표현을 이해하고 재현할 수 있는 생성형AI 기술로 판단된다. 그러나 대화형 인공지능의 모델링 한계로 인해 반어의 이해·재현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본 연구의 최종 목적인 ‘ChatGPT의 이육사 시 재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앞 장에서 기술한 것과 같이, 은유·상징·역설의 측면에서 검증하기 위해 ⒠단계를 진행하고자 한다. 물론 ⒠단계는 이전 단계를 거치며 포맷된 상황에서 진행한다. 이육사의 전기적 사실과 대표작 5편, 그리고 한국 근·현대시에서 추출한 반어·역설 표현을 학습한 ChatGPT에게 이육사 시 스타일과 시적 수사법 재현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를 비평적 측면에서 분석한다면, 최종적으로는 ‘AI 이육사’ 혹은 AI를 통해 재현한 시인의 창작적·교육적 활용 가능성을 전망해볼 수 있을 것이다.
북풍의 노래에 휘둘리는 날,
끝없는 하늘은 도태된 시간처럼 파랗게 펼쳐져.
높은 봉우리 위, 잠들지 않은 별들의 숲,
그림자로만 이루어진 꽃들이 피어온다.
바람이 주는 상처는 자유의 가격,
가슴 속, 끝없는 바다는 건조한 사막으로 변한다.
불타는 얼음처럼 내려앉은 감정,
영원한 순간에 잠시의 영원을 찾는다.
불가능한 꿈의 끝에서, 가능성의 시작을 보며,
태양 아래, 달빛만이 내 희망의 빛이다.
- AI 이육사, 「絶頂」
인용한 「絶頂」은 ‘AI 이육사’가 창작한 시편이다. 먼저 “북풍의 노래”, “별들의 숲”, “바람이 주는 상처는 자유의 가격”, “달빛만이 내 희망의 빛” 등은 은유법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풍”이나 “자유” 등의 시어는 이육사의 시편에서 자주 활용되는 북방 공간이나 일제에 대한 저항 의지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 “북풍”, “하늘”, “봉우리”, “별”, “꽃”, “바람”, “바다”, “사막”, “얼음”, “꿈”, “태양”, “달빛” 등의 시어들도 일제 치하의 현실태를 상징한다거나 새로운 미래에 대한 염원의 상징 기표로 기능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니 이 시어들은 현실 속의 고통스러운 상황(북풍, 꽃, 바람, 사막, 얼음, 태양)이나 주체가 위치한 현실 공간(하늘, 봉우리, 바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별, 꿈, 달빛) 등으로 구분해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아울러 “그림자들로만 이루어진 꽃들”이라든가, “끝없는 바다는 건조한 사막으로 변한다”, “불타는 얼음”, “영원한 순간에 잠시의 영원을 찾는다”, “태양 아래, 달빛” 등은 모순 형용으로서 역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구문들이다. 출력된 시의 문면들에 드러난 수사법으로 보았을 때, 은유나 상징 표현은 시어의 측면에서 이육사 풍의 느낌을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역설적 표현들은 시의 미학성을 끌어 올리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絶頂」에서 구축된 시적 서사를 정리하여 비평해보면, 화자는 북방의 외딴곳에 산봉우리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바람”을 맞는다. 이때 “도태된 시간처럼” 파란 하늘은 이내 곧 “별들의 숲”으로 캄캄해지고, “그림자로만 이루어진 꽃들이” 다가오는 것만 같은 불안함을 느낀다. 여기서 불안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다. 화자가 딛고 있는 지형적 위치에서는 상승/고조된 국면이지만, 화자의 내면 심사에서는 ‘바다가 사막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것’만 같은 하강된 정동이라서, 앞으로 화자는 어떤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할지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처지에서의 불안이다. 그러니 “불타는 얼름처럼” 감정을 내려앉고, “불가능한 꿈의 끝”에서 “달빛”만을 기다려 희망을 갈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 아래, 달빛”이란 가능하지 않을 현실을 더욱 냉철하게 표식하는 희망일 뿐, 화자는 다시 “북풍”에 “휘둘리는” 절정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해당 작품은 의미가 불명확한 문장(“영원한 순간에 잠시의 영원을 찾는다”)이나 명료하지 못한 은유(“바람이 주는 상처는 자유의 가격”), 협소한 인과 구조(“불가능한 꿈의 끝”) 등에 더해 조야한 표현, 단순 나열·대조에 불과한 수식, 추상적인 메시지와 같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은유와 상징, 역설 등의 측면에서 이육사 시편의 수사법을 수렴하여 이육사 「絶頂」의 모작을 출력했다는 사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기존 연구사를 경유해서 살펴보더라도, 화자는 ‘봉우리’와 ‘사막’과 같은 지형감을 통해 이육사의 시적 정동을 유사하게 구축한다. “가장 극한적인 순간”에 처해 있음에도 ‘가능성의 시작’을 발견함으로써 “정신은 가장 맑고 숭고한 상태”에 다다른다거나 “달빛”이라는 희망을 통해 “억압적 사회에 대한 부정(否定)의식”을 나타내고 있다고 이해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용 시에 대한 비평은 이육사의 본래 시편 「絶頂」에 대한 해석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방향일 수 있다. 그리고 생과 사를 가름하는 ‘절정’의 유사 정황에서 두 시편은 전혀 다른 전망을 가시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고쳐 디딜 곳조차 없”는 ‘절정’의 상태에서, 이육사는 주지하듯 “눈 감아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고 진술했다. 그 반면에, ‘AI 이육사’는 그래도 희망의 가능성을 찾겠다고 화자의 의지를 “희망의 빛”으로 전면화하는 등 화해의 정서를 드러낸다. 다시 말해 ‘AI 이육사’가 현실과의 대결 상태를 지속하지 않고 ‘완성형 전망’을 호출해내고 있었다면, 실제 이육사는 현실(“겨울”)을 횡단하는 비극적 황홀의 정서로 ‘강철로 된 무지개’를 호명했던 셈이다.
그러니 이육사 시 「絶頂」의 미적 특징은 이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역설적 구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생성형AI가 수사법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무지개’라는 시어를 포함하는 시적 구문을 만들어 보더라도, 혹은 ‘절정’을 제목으로 시 창작을 프롬프팅하더라도, 실제 이육사의 시 정신에 가까운 결과물을 기대한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가설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육사의 시를 재음미하고, 이육사 시편에 나타난 수사학이나 시론적 난제를 재고찰하는 과정에서 유의미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었다. 아울러 시학의 교육적 활용도 측면에서도 뛰어난 제재가 될 수 있음을 충분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Ⅳ. 결론
ChatGPT의 문학적 이해·창작·재현의 과정을 통해 본고가 확인하고자 한 내용은 ‘대화형 인공지능의 시적 수사법 이해 및 재현 가능성’이었다. 시어와 시어, 인식과 인식의 배치 상태를 통해 실현되는 시 문법의 창출은 언어를 결정하는 ‘선택’과 언어 간의 ‘결합’의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대화형 인공지능이 이와 같은 선택과 결합의 구조를 이해하고 실현할 수 있는지 해명할 수 있어야만, 이들이 창출한 시편들의 ‘미적 형상화’ 관계를 검토할 수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튜링 테스트’는 인간에게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진 첫 신호탄이었다. 이 화두가 던져진 이후 70년이 흐른 지금, 인간은 ‘인간처럼(Human-like)’ 보이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심지어 인간이 쓴 것처럼 보이는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데 이르렀다. 본 연구는 아트랩, SIA 등 현재의 인공지능의 문예 창작 성능이 이전 버전들보다 더 나은 수준의 문학 작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상용화된 ChatGPT를 프로세스로 문예 창작의 범용성에 대해 검토해 나갔다. 그리고 초거대 언어 모델의 단기적 문맥 파악을 활용하는 인컨텍스트 러닝 방법론을 통해, 과연 대화형 인공지능이 간단한 정보 입력만으로도 문학적인 이해나 창작, 재현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고자 다음과 같은 기획을 추진해나갔다.
먼저, 사전 교육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육사 작품 2편을 입력하고 이에 대한 은유 분석을 시도하였으며, 교육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동일 작품을 입력하고 및 은유 분석을 실행해 양자 간의 비교 검토를 거쳤다. 그리고 이육사 대표작 5편을 입력하여 ChatGPT가 시대적 현실이 드러난 공간 기표의 의미망 분석할 수 있는지 확인함과 동시에, 역설·반어의 분석 가능 여부 확인하고 이런 수사법 구현을 비평이나 해설 차원이 아닌 창작 시에서도 가능한지 검토해보았다. 그리고 종국에는 ChatGPT의 이육사 시적 수사법 재현 가능성을 인공지능이 창작한 시편을 통해 확인하고자 했다.
그 결과 역설과 반어를 포함한 시 창작에서 역설의 시적 운용은 나름의 가능성을 보였으나, 반어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ChatGPT는 은유·상징·역설을 이해하고 활용·재현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능했으나, 반어의 구현은 어려움을 보였다. 그 때문에 최종적으로 추출한 ‘AI 이육사’의 「絶頂」의 미적 성취도도 모작의 수준에서 크게 상회할 수 없는 결괏값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실험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은 ‘AI의 창작물은 아직 미진하다’라는 결론으로만 정리되지는 않는다. 비극적 황홀의 정서로 “강철로 된 무지개”를 호명했던 실제 이육사와는 달리 ‘완성형 전망’을 호출하는 등 ‘AI 이육사’의 시편은 나름 흥미로운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수사 시학적 차원에는 문명 상 큰 손색이 없는 산출물을 출력해내기도 했다는 점에 다시금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물론 ‘AI 이육사’의 모작은 의미가 불명확한 문장과 명료하지 못한 은유, 협소한 인과 구조와 조야한 표현 등 실제 이육사 시편과 일대일로 대응·비교하기에는 분명히 허무맹랑한 지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 연구를 통해 ‘AI 이육사’(혹은 같은 방식으로 학습된 ‘AI 시인’)가 이육사의 시를 재음미하고 이육사 시편에 나타난 수사학이나 시론적 난제를 재고찰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는 점, 나아가 향후 시 창작·비평 교육의 활용 측면에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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