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방조제 주변의 호흡이 느린 여행기 2 - 비응항, 선유도
여행 이튿날. 느즈막이 일어나 밖을 내다봤다. 세상에! 해가 났다. 2박3일 여행 내내 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하기에 따라 내가 나한테서 선물을 받기도 한다. 오늘은 친구가 어제 제안한 선유도행 유람선을 타기로 한 날이다. 나는 배를 탈 때마다 배멀미로 고생하는 편이라 주저했지만 본인도 처음 가본다며 선한 웃음을 짓는데 찬물 끼얹을 정도는 아닌지라 그러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초록손이. 무섭단다. 혼자 빠질테니 함께 다녀오라고 한다. 왜냐고 물으니 세월호처럼 뒤집힐까봐 그런단다. 헐~!
내가 말했다. 첫째, 세월호사건 발생 원인인 구조적 모순이야 박's장막에 막혀 손도 대지 못하고 있지만 또 터질까봐 잡도리는 단단히 해놔서 잠깐은 안전할거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둘째, 배가 뒤집어지면 수영 못하는 나야 "어푸어푸, 헙, 꼴깍" 하면 그만이지만 당신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옴빡 뒤집어쓰고 살아야 한다. 그러니 어쩔거냐고 묻기도 전에 "같이 있는데 낫겠네" 한다. "Hurrrrrrah! I did it !!!!!!!!!!!"
비응항 어시장건물 '회뜰날' 식당. 해물순두부 짱! 하얀비닐 수십 겹을 호치키스로 박아놨다. 노동절감 노하우!
어제 자알먹은 남자와 쫄쫄굶은 여자는 '아점'을 챙기러 비응항 근처로 갔다. 숙취도 있고하니 시원한 해장국을 먹고싶은데 초록손이는 선지해장, 콩나물해장, 뼈다귀해장 다 못먹는다. 그저 초록손이가 좋아하는 식당에 해장국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의외로 간단히 해결됐다. 해물순두부가 답이다.
이 대목에서 나도 맛집포스팅 좀 해봐야겠다. 감동해서다. 비응항 어시장건물에 있는 '회뜰날'에서 먹을 수 있다. 맛은 시원깔끔하다. 값은 8,000원으로 천원 정도 세다싶지만 들어간 해물 생각하면 싼 편이다. 원하는대로 해주지만 왕 대접은 안해주는 서비스가 딱 맘에 든다. 너무 다가오면 부담된다. 너무 다가오는 백화점이 싫고 알아서 고르라는 마트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렇다. 대형 윈도우 밖으로 보이는 비응항이 입맛을 돋운다. 평점 별 4.5개. 사진은.... (에고~)
철없는 토끼풀에서 눈 뗄 줄 모르는 강원도 촌놈이 찍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잘 먹고나니 보이는 것이 많아졌다. 편의점에 물만 부으면 마실 수 있는 커피가 다양하다는 것도 봤고, 우리 동네에서는 흔적조차 사라진 토끼풀이 저렇게 꽃피우고 있는 것도 봤다. "여긴 초가을이여~" 그러고보니 선유도 유람선 타는 곳이 바로 옆에 있는 것도 알았고, 약속 시간이 5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
선유도행 유람선을 탔다. 바람은 잔잔하고 햇살은 잔물결에서 부딪혀 갈 곳 몰라한다. 다행이다. 멀리 보이는 둑이 새만금방조제다. 갈 곳 몰라하는 게 또 있다. 작은 어선 한 척. 작아서인지 잔물결에도 흔들림이 크게 느껴진다. 외로워 보이지만 독보적인 존재감이 느껴진다. 주체성은 외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걸까?
딱 한 마리의 갈매기가 항구에서부터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아, 새우깡. 새우깡을 쫒아오는거다. 한 마리가 쫒아오는 것이 수십 마리가 쫒아올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다수가 극성이라면 단수는 열정? 다수가 '유원지에서 보게 되는 단체 스포츠패션 맨&우먼'이라면 단수는 '갓길 따라 묵묵히 걷는 1인' 고립은 싫지만 외로움은 좋다. 자신을 찾을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선유도 선착장에서 도착, 배멀미에 구부정한 자세로 섬에 올랐다. 먹거리장터의 왁자함과 순환버스 탈 사람 부르는 소리가 제일 먼저 반기는데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대나무숲이다. 내 로망은 집 뒤에 대나무숲, 집 앞에 감나무 한 그루였는데.... 어쩌다 추운 강원도에 자리잡는 바람에 가까이 할 수 없어 더욱 아쉬운 것이 이 둘이다. 감나무 한 그루를 단독 비닐하우스 만들어 키워볼까 한 적도 있다.
"섬이 넓어요. 걸어서는 거의 못봐요. 얼른 순환버스 타세요. 5,000원 받아요. 자전거도 5,000원이어요. 다 보고 가셔야죠. 어서 오세요"
사람마다 여행의 의미는 다르다. 일상을 벗어나려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려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짜릿함(!)을 찾아서 .... 나에게 여행의 의미는? 낯선 곳에 잠시나마 익숙해지면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할 수 있어서다. 보다 많은 곳을 주마간산 식으로 섭렵하는 방식으로는 어렵다. 소비에 기대는 방식으로도 어렵다. 천천히, 외롭게 그리고 가까이 해야 가능하다. 천천히 걸어서 섬 중심부를 향했다.
여행 - 김무언
사람들은 외로울 때 자신만의 세계를 상상하고 그것에 깊이 빠져들어 열정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한다.
또한 자아를 찾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끝없는 방황을 하며 고뇌하고 기도하기를 반복한다. (...)
그의 그림속에는 유난히 넓은 여백이 많이 보이는데 비어 있음은 떠남과 고독, 그리고 채워질 희망을 말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화랑미술제 2012 © 갤러리 몽마르트르, 화랑협회)
첫댓글 한마리의 갈매기를 보고 혼자 먹이를 꿋꿋이 찾으려는 의지(?)라고 해야하나..멋져 보여요 ㅎㅎ 저 갈매기를 보면서 조나단 리빙스턴이 생각났어요..아저씨가 아까 왜 갈매기의 꿈 책을 찾으셨는지 알 것 같고요 ㅋㅋ 아저씨는 이것 땜에 찾으신게 아닐라나..? ㅋㅋ
천천히 외롭게 여행을 하다보면 많은 것을 보게 되는것 같아요.저는 주마간산식 여행자에 소비에 많이 기대게 되는데...
여행자의 클라스도 있나ㅋㅋ
요즘 책도 주마간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렇게 여행을 다닐 때도 주마간산을 하지 말아야겠네요. ㅎㅎ 저도 순민이 형처럼 짧은 시간에 무조건 많은 것을 보려고만 하는데... 생각을 좀 바꿔야겠어요! ㅠㅠ
여행을 할땐 혼자가 가장 좋을 것 같아요..전 항상 옆에 누군가가 있길 바랬었는데..
그렇게 여행을 하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고 힐링이 될 것 같아요~
남부와 중부는 확실히 다른르네요.ㅎㅎ
빠르게 풍경만 보는 것보다는 천천히 즐기면서 하는 여행이 좋은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