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륜지대사
만물이 새롭게 싹트고 화사한 기운이 온 산하를 감싸면서 청춘 남녀들 결혼 시즌이 다가온다. 예부터 결혼을 ‘인륜지대사’라고 한 것은, 인륜은 사람들끼리 만들어 가는 일이고, 천륜은 하늘에서 주어지는 운명이라고 할 때 사람으로서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덕목이 혼례임을 알 수 있다.
작년 6․25, 우린 민족으로서는 잊을 수 없는 바로 그날에 딸아이가 스물여덟의 꽃다운 나이로 두 살 위의 사위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을 올리고 두 달 후에 사위 직장을 따라 미국 뉴저지로 훌쩍 떠난 지 벌써 일 년이 지나고, 사위가 한국에 출장 오는 일이 있어서 딸도 함께 잠시 귀국하게 되어 감격의 해후(邂逅)를 하게 되었다. 미국에 갈 때 070 인터넷 전화를 개통하여 나간 덕분에 무료 통화를 거의 매일 딸과 엄마가 주고받고 있지만,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것은 남다른 감회가 있는 것 같다.
아내는 딸과 사위를 마중하러 세 시간도 더 걸리는 공항에 나간다고 들떠 있다. 교통편이 좋아 어련히 알아서 잘 오련만,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결혼을 하자마자 이역만리로 훌쩍 떠나 버려 신혼 생활을 눈으로 직접 볼 수가 없었기에, 전화기를 통해 듣는 목소리만으로는 안심이 안 되었으리라. 스마트폰, SNS를 통해 살아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글로 실시간 보고는 있지만. 정작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를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기에 만나서 조용히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기도 하다.
일 년 전 결혼식 광경이 눈에 선하다. 딸과 사위는 대학 시절 같은 교회에 다니며 오랫동안 같이 활동도 하면서 알고 지내던 사이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를 다니다 보니 결혼식에는 꽃다운 청춘 남녀들이 백 명도 훨씬 넘게 하객으로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다. 혼주로서,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로서 내심 걱정이 되는 것은 너무 많은 눈물이 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목사님의 ‘신부 입장!’ 소리에 팔짱을 낀 딸과 함께 반주에 맞추어 입장하는데, 순간 지나온 날들이 뇌리를 스치며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결혼한 이듬해 태어난 딸은 우리 부부에게 가슴 벅찬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 자라면서 엄마의 갖은 솜씨로 뜨개질한 옷을 만들어 입히고, 머리카락은 예쁘게 땋아 온갖 종류의 머리핀으로 꾸며서 밖에 나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허리 숙여 볼도 만져 주면서 한마디씩 하고 지나가곤 했었다.
이 좋은 날에,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얼굴 근육이 긴장되는 느낌이다. 하객들이 기립하여 웃음으로, 박수로,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 미래 사위를 포옹하고 딸의 손을 건넨다. 주례하시는 목사님은 평소에 우리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해 주시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엄숙한 주례사가 아닌 조금은 익살스럽고 코믹한 주례를 진행하다 보니 결혼식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딸의 얼굴을 보니 평소에도 잘 웃어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는데, 연신 웃고 있었다. 그냥 살짝 미소 짓는 게 아니라,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얼굴 가득히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옛날에 신부가 너무 웃으면 흉이 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렇게 웃는 딸의 모습이 결혼식 분위기를 축제의 분위기로 만들어 주었고, 그런 딸의 모습을 결혼식 내내 지켜보는 나도 마음이 흐뭇하고 기뻤다. 아마, 결혼을 축하 해주기 위해 바쁜 일 잠시 미루고 먼 길 오신 친지들도 흐뭇했으리라. 우려하던 눈물은 찾아볼 수 없었고,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웃었던 기억이 좋은 추억으로 기억의 한 언저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 년 만에 만나는 딸과 사위를 포옹했다. 먼 이국 땅에서 다급한 소식 없이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대견하고 반가워서 꼭 안아 주었다.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들 같은 사위를 한 명 얻는다고 해서, 요즘 신혼부부들은 아들보다는 딸 낳기를 더 소원한다고 한다. 일 년 전 결혼식장에서 사위를 포옹하던 그 느낌과 일 년 만에 만나서 진짜 내 식구로서 포옹하는 느낌이 다른 것 같다. 딸이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감자옹심이’를 먹기 위해 시장 어귀에 있는 소문난 식당에 들어갔다.
일 년 전 신혼여행을 다녀온 딸과 사위에게 한마디 해 준 게 생각이 났다. 뜬금없이 ‘서로 포기해라’는 말을 했었다. 눈이 동그래져 놀란 듯이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서로 포기하라는 것은 서로가 상대방을 자기 뜻에 맞추려고 하는 것을 포기하라는 거야. 서로가 인정해 주고 기다려 주어라. 아빠 엄마가 살아 보니, 고쳐지지 않고 부부싸움만 하게 되더라. 그러다 보면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게 인생이더라”. 식당에 자리를 앉자마자 나는 일 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어때, 포기하며 살았나?” 잠시 아이들은 말없이 웃고만 있다. 힘든 시간들이 왜 없었겠나, 그렇지만 엄마와 매일 통화를 하는 딸도 그렇고, 사위도 잘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은 일생에 두 번 태어난다고 한다. 한번은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이고, 또 한번은 결혼을 통하여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30년 가까이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오던 두 선남선녀가 만나서 한몸이 되어 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모험 중에서도 엄청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두 사람의 행동 양식이 맞기 보다는 안 맞는 게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될 듯 싶다.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것은 선택의 권한이 없지만, 두 번째 태어나는 결혼은 본인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책임도 함께 따르게 마련이다.
수많은 결혼식에 참석해서 듣는 주례사 중에서 나에게 결혼관으로 자리매김한 한 마디가 있다. “결혼은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행복을 위한 예식입니다. 어려울 때나, 기쁠 때나 상대방의 행복을 먼저 생각한다면 평생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불행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행복을 찾아 떠나는 멀고도 긴 여행의 시작이 결혼이다.
요즈음 결혼하는 10쌍 중에서 4쌍이 이혼한다고 한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세태다. 이혼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좋아서 결혼했건만 살아 보니 그게 아니란다.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했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행복은 국어사전에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이라고 나와 있다. 상대방이 행복하지 않은데 과연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아기의 천진난만한 웃음 속에서 행복을 맛보지 않았나, 밤새워 잠 못 이루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는 수고 후에야 아기는 웃을 수 있지 않나. 나의 행복 조건 첫 번째는 상대방의 행복이란 것을 먼 인생길 살아오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무지개를 손아귀에 넣지 못한 것에 불평하지 말고 무지개를 바라보며 꿈을 꾸는 동심을 잡은 것에 행복의 나래를 펼 수는 없을까.
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 하는 말이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다. 결혼이 사람들의 대사(大事)가 아닌, 아주 흔한 소사(小事)가 된 것이 어제오늘이 아니다. 사회의 기반이 되는 가정이 쉽게 무너지는데 이 사회가 과연 온전하게 가고 있는 것일까. 그러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또 어떤가.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끔찍한 범죄의 이면에는 어린 시절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결과가 대부분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딸과 사위에게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오랜 역사 속에서 결혼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인식하여 ‘인륜지대사’라고 했듯이, 그 뜻을 소중하게 여겨 먼 인생 여정 가운데 고비가 닥칠 때마다 힘을 합해 슬기롭게 극복하며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뿐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 딸과 사위에게․․․.
121205
첫댓글
합니다.
청아함과 순백의 자태의 따님과
'인륜지대사'
아려하고 어여쁜 따님의 결혼을
주어진 사명을 다하면
보람찬 삶이 이루어지리라 믿어요.
‘서로 포기해라’ 좋은 말씀입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역지사지 정신을 지니고 살면 행복하죠
늠름하고 현명한 사위님의 모습이
수필의 결정체로 그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