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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람푸 시장 상인들
사원을 나와 길 건너 방람푸 시장으로 간다. 이 시장은 카오산 로드 옆에 위치한 시장으로 수퍼마켓과 옷을 파는 가게, 식당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교복, 청바지를 파는 가게가 많아 보인다. 살 것도 볼 것도 없어 그냥 시장을 지나쳐 G.H로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한 다음 에어컨을 켜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 쪽포차나 식당에 진열된 해산물 재료들
▶ 쪽포차나 식당 주변 모습
▶ 게 커리 복음(뿌팡퐁 커리)
▶ 싱하 맥주와 쪽포차나 주인 아저씨
오후 7시. 아침에 길잡이가 카오산에 오면 꼭 먹어 봐야 한다고 알려 준 "게 커리"를 먹으러 G.H를 나선다. 사실 난 "게 커리"를 "개 커리"로 잘못 알아 들어 태국 사람들도 개고기를 먹는다고는 하지만 또 나도 개고기를 즐기기는 하지만 "방콕까지 와서 굳이 찾아 다니며 개고기를 먹어야 하나?" 하는 망설임도 있었으나 아들이 한 번 먹어 보자고 하기에 저녁식사로 결정한 것이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식당에 도착해서도 이름은 맞는 것 같은 데 식당 앞에 진열된 음식 재료들 중 개고기가 보이지 않아 아들에게 "여기가 아닌 가 봐. 개고기가 없잖아?" 했더니 아들 녀석 갑자기 배를 잡고 웃으며 "아빠! 개가 아니고 바다에서 나는 게!"라고 한다. 나도 그 때서야 "오해의 끝은 어딘가? 괜히 방콕까지 와 개고기 먹을 걱정을 했으니..."란 생각이 들며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치앙라이에서 트래킹 시 Elephant Feed를 사라고 할 때 사서 코끼리 주라는 뜻을 사서 내가 먹으라고 하는 줄 오해를 해 아들 녀석에게 핀잔을 당한 게 어제인데 오늘 또 개와 게를 잘못 알아들어 핀잔을 당하다니!!! 아들과 내가 식당 주변에서 이러고 웃고 있을 때 식당 주인이 나타나더니 "케 거리! 맛 있어요!!" 하면서 자리를 권한다. 그 때서야 다시 지도를 확인해 보니 길잡이가 일러 준 "JOKPHOCHNA"라고 쓰여진 간판이 눈에 보인다. 오늘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이고 그 동안에 잘 따라 와 준 아들이 고맙기도 해 아들이 원하는 게 커리 볶음(뿌 팟 퐁커리<Pu Phat Phong Kari>:280batt)과 닭고기를 코코넛과 우유 국물에 삶은 카우 똠 까이(120batt), 싱하맥주 2병(120batt)를 주문한다. 주방에서는 남자요리사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흐르는 땀을 닦아 가며 가스 불판에서 프라이 팬과 씨름을 하고 있고 여자 요리사는 밥과 탕 담당인지 몇 개의 솥과 씨름하고 있다. 식당 앞 전시대에는 새우, 게, 민어, 각종 조개 등 해산물이 얼음과 함께 진열되어 손님을 부르고 있다. 식당 안은 워낙 유명한 집이라 손님들로 꽉 차 있고 도로 한쪽에도 야외탁자와 의자를 놓고 영업을 하고 있다.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연신 지나가는 손님을 가게 안으로 안내하고 주인집 아주머니는 계산대 앞에서 음식값 계산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태국이나 라오스 공히 음식을 주문할 때 맥주를 시키면 음식과 같이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맥주 먼저 가져다 준다. 음식은 한참을 기다려야 나오는데 차갑던 맥주는 점점 따뜻해져 맛이 없어지니 안주나 음식보다 먼저 맥주를 마실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론 음식이 나오면 맥주를 시켜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먼저 나온 카우 똠 까이는 맛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뭘 넣었는지 시큼한 맛이 나지만 여행지 음식에 잘 적응하는 우리는 거의 국물조차 다 먹는다. 게 커리는 매콤하면서도 게 살이 많아 한국 사람들의 입 맛에도 맞을 것 같고 특히 소주와 함께 먹으면 좋을 듯하다.
▶ 카오산로드의 밤거리
▶ 카오산로드의 이모저모
배를 채운 아들과 난 카오산 로드로 향한다. 방람푸 시장에서부터 관광객들과 시민, 노점상으로 걷기가 힘들 정도로 혼잡하다. 카오산 로드엔 전세계 배낭여행자들이 모인다. 태국 방콕 카오산로드, 인도 델리 빠하르간지, 베트남 하노이 팜응우라우 거리, 중국 윈난성 쿤밍…. 배낭 하나 둘러메고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여행자들은 여기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정보를 얻고, 다음 여행지로 떠난다. 말 그대로 '배낭여행자의 거리'다. 여행잡지『트래블』에는《배낭여행자 거리는 인도 빠하르간지에서 시작됐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의 히피와 여행자들은 '동양의 도(道)'를 찾아 인도로 왔다. 거리에서 잠을 자고, 구걸로 밥을 먹으면서도 마음 속엔 행복이 가득한 인도 사람들. 서구 여행자들은 여기서 '유토피아'를 발견했다. 그들은 델리 중앙역 뒤 시장통인 빠하르간지의 값싼 숙소에서 잠을 자고, 물건을 사고, 여행했다. 여행자들의 입맛에 맞춘 식당이 생겨났고, 여행사가 들어섰다. 1970년대, '인도마저 오염됐다'고 느낀 여행자들은 태국 카오산 로드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숙소와 식당은 저렴했고, 관광 필수코스인 왕궁과 박물관은 지척이었다. 시장에선 무엇이든 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카오산 로드는 '배낭여행자의 메카'로 군림하고 있다. 카오산 로드뿐 아니다. 베트남에도, 네팔에도, 인도네시아에도, 배낭여행자들이 휩쓸고 가는 곳마다 '배낭여행자의 거리'가 생겨났다.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근처. 방 값이 싸고 시장이 가까운 곳. 물가가 싼 곳. 영어가 가능한 곳. 내국인보다 여행자가 많은 곳. 바다 건너 어디에선가 온 이국의 친구들과 '배낭여행자'라는 공감대 하나로 맥주잔을 부딪치는 곳. 오늘도 그 곳에는 배낭을 멘 젊은이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카오산 로드는 전 세계 배낭여행자의 천국이자 베이스 캠프다. 300m도 안 되는 시장 골목 중 이 곳만큼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은 없다. 세계를 떠도는 배낭 여행자는 누구나 한 번쯤 거쳐 간다. 제 키만한 배낭을 짊어진 여행자들은 방람푸, 카오산 로드 입구에서 버스를 내린다. 카오산 로드는 짜크라퐁 로드에서 타니오 로드까지 수직으로 뻗어 있는 골목길. 여행자들에겐 카오산 로드와 평행하게 뻗어 있는 람부뜨리 로드, 카오산 위쪽의 파아팃 로드까지가 모두 '카오산'으로 통한다. 값싼 숙소와 식당, 여행사가 밀집한 곳이다. 카오산에 발을 디딘 순간이 한낮이라면, 그저 여행자들이 몰려다니는 시장 통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후 5시 카오산 로드 입구에 차량 통제 칸막이가 세워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카오산 로드' 이정표 뒤 '걸리 버스 터번'에 네온사인이 들어오는 때부터, 카오산은 배낭여행자의 해방구로 변신한다. 거리엔 포장마차 노점상들이 몰려나와 팟타이(태국식 볶음국수)와 카오팟(볶음밥)을 볶아낸다. 레게 머리를 늘어뜨린 여행자들은 'starfucks'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맥주병을 손에 들고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술집에서는 유럽 축구 방송을 중계하고, '아무거나 다 팝니다(we sell everything)'란 간판을 단 헌책 방에는 남들이 쓰다 판 여행 가이드북을 사려는 여행자들로 붐빈다. 카오산 로드가 배낭여행자의 거리로 떠오른 것은 1970년대 초 만 해도 방콕 사람들조차 찾지 않는 '슬럼가'에 가까웠다.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은 값싼 숙소를 찾아 카오산 로드로 모여들었다. 하룻밤 방 값이 겨우 100바트(2,500원). 하루 방콕관광 필수코스인 왕궁, 박물관, 왓포 등이 걸어서 15분 거리. 시장이 가까워 먹을 거리와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좋았다. 거기다 방콕은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 동남아 각지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거쳐 갈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여행자가 늘어나면서 여행사와 각종 부대시설이 속속 들어섰다. 카오산 로드에는 배낭여행자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다. 값싼 숙소, 여행자 입맛에 맞춘 식당은 기본. 저녁에만 펼쳐지는 노점에서는 가짜 국제 학생증과 운전면허증을 만들어 준다. '불법'인 것이 분명한 복제영화 CD들은 3장에 100바트다. 장기 여행자들을 위한 세탁 서비스는 1㎏에 30바트(약 1,000원). 골목 귀퉁이에 놓여 있는 저울은 빨랫감 무게를 달기 위한 것. 포장마차를 개조한 헌 책방에는 여행자들이 쓰던 중고 가이드북들이 얌전히 꽂혀 있고, 누군가 입다 판 옷들도 즐비하다. '아무 거나 다 팝니다'가 있다면 '아무 거나 다 삽니다(we buy everything)'도 있는 법. 장기 여행자들이 배낭의 짐을 덜어 놓고 갈 수 있는 가게들이다. 길거리 여행사들은 가까운 칸차나부리, 아유타야뿐 아니라 라오스, 캄보디아 항공편까지 판다. 흥정만 잘하면 버스 값보다 싸게 여행상품을 살 수도 있다. 카오산로드 좌우의 건물은 대개 1층은 식당 또는 가게, 2층부터는 숙소 형태다. 건물 앞엔 노점이 줄을 서고, 노점 앞엔 여행자가 물결을 이룬다. 노점 팟타이 한 그릇이 단돈 20바트(약 700원). 바나나를 넣은 인도식 팬케잌 로띠, 샐러드 쏭땀, 흰죽 란쪽부터 벌레 튀김까지 없는 게 없다. 빈 라덴과 부시의 얼굴 밑에 '두 명의 테러리스트(Two Terrors)'라고 쓰고, 맥도널드 로고 밑에 'Mc Shit'라고 써 놓은 티셔츠도 낯설지 않다. 밤이 깊어지면 불붙은 봉을 돌리는 '불 쇼'가 펼쳐지고, 풍선을 가득 단 툭툭(오토바이를 개량한 탈 것)이 지나다닌다. 한밤중엔 코끼리가 나타나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는다. 새벽 1시. 상가들이 문을 닫으면 여행자들은 파아팃 로드로 옮겨간다. 길에 돗자리를 펼쳐 놓고 트럭에서 파는 '양동이 칵테일'을 마신다. 매일의 '축제'는 새벽 3시까지 이어진다. 오늘도 배낭을 짊어진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은 가방을 채우러, 마음을 채우러 카오산 로드로 몰려 들고 있다. 카오산 로드에는 늦게 도착해 아직 배낭을 멘 배낭족, 노점에서 볶음국수, 꼬치 등을 사 들고 다니며 먹는 사람들, 술집에서 느긋하게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길 거리 여기저기를 힐끔거리며 구경을 하는 사람들 등 관광객들과 호객꾼들로 어지럽고 옷, 가방, 배낭, 악세서리, 술과 음식 등을 파는 상점들, 숙박업소, 노천 안마소, 각종 음식을 파는 노점, 몬도가네를 연상케 하는 각종 곤충과 곤충 애벌레를 파는 노점, 의자 하나를 놓고 머리를 따 주거나 헤나 문신을 그려 주는 일인 가게, 신분증 각종 증명서를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곳, 점을 봐 주는 곳 등등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것 같다. 굴뚝없는 수출산업으로 고용 창출이 많은 해외 여행객 유치를 위해서라도 용산 미군기지가 이전하는 이태원을 카오산 로드처럼 전 세계 배낭여행자의 거리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카오산 로드 끝 대학생 열댓 명이 기부금을 모으고 있는데 이 곳에 외국인들이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태국어가 아닌 영어로 쓴 플래카드를 걸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의 눈에는 책상 위에 놓인 기부금 함을 제외하면 어떤 목적으로 어디에 쓰일 기부금인가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거리엔 하나 둘 술에 취한 여행자들이 맥주 병을 입에 댄 채 흐느적거리고 있고 호객꾼들의 호객 행위는 점점 노골적이 되어 가고 있다. 카오산 로드의 불빛도 흔들리는 것 같다.
G.H 앞 편의점에서 소시지와 맥주를 사 숙소로 돌아 온다. 샤워를 마친 후 이번 여행이 힘들었지만 무사히 그리고 재미있게 마친 것을 자축하며 "도전하는 자 만이 얻을 수 있고, 용기있는 자만이 쟁취할 수 있다."는 나의 여행 철학을 아들에게 들려 준다. 참으로 길고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