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최씨가 중국 청하최씨(淸河崔氏) 후손이란 주장은 여러 문헌에서 발견되는데 대표적 사례로 1805년(순조 5) 녹동서원에서 발간한 『연촌유사』<선생출처사적>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세상에 전해 오기를 선생(연촌공)의 선조는 당나라 청하에서 바다를 건너와서 완산에서 정착하여 살았다. 완산의 속호[1]를 객산이라고 하는 것은 그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영인}
<선생출처사적>은 연촌공[2]이 벼슬에 나가고 물러나서 은거한 사적을 기록한 글인데, 연촌공을 소개하면서 조상에 관해 언급한 내용이다.
이른바 청하최씨론은 문성공계 가문에서 많이 발견되지만, 입증할 만한 증거는 찾을 수 없다. 추정하건대 가문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중국에서 이른바 사해대성(四海大姓)으로 일컬어지는 저성(著姓) 청하최씨를 끌어다가 견강부회(牽强附會)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하최씨를 끌어다가 가문을 꾸미는데 활용한 사례는 전주최씨뿐만 아니고 거의 모든 최씨가문에서 발견된다.
조선은 물론 고려시대에도 최씨는 모두 청하최씨와 연결하여 명예롭게 만들려고 했는데, 경주최씨 최승로(崔承老, 927~989)는 청하후(淸河侯), 최항(崔沆)은 청하현개국자(淸河縣開國子), 수원최씨 최사위(崔士威, 961~1041)도 청하현개국남(淸河縣開國男)으로 책봉된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혈통과 무관하게 자신의 성씨를 중국 청하최씨와 연결 지으려고 하는 것을 통해 청하최씨를 크게 동경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각주 ------------------
[1] 俗號. 속되게 부르는 이름. 보통 사람이 아무렇게나 부르는 이름.
[2] 烟村公. 최덕지(崔德之, 1384~1455). 문성공계 중랑장공파 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