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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 교수의 한국어문화문법
1. 갈등(葛藤)과 해결(解決)
갈등(葛藤)이라는 단어는 ‘칡넝쿨 갈(葛)’ 자와 ‘등나무 등(藤)’ 자가 합쳐진 말이다. 이 식물들은 모두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는 것들이다. 무엇인가를 감고 올라가야 하는데, 칡은 오른쪽으로 돌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고 돌아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므로 둘이 엉키면 도저히 풀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1.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 또는 그런 상태, 2. 소설이나 희곡에서, 등장인물 사이에 일어나는 대립과 충돌, 또는 등장인물과 환경 사이의 모순과 대립을 이루는 말, 3. 두 가지 이상 상반되는 요구나 욕구, 기회 또는 목표에 직면했을 때 선택을 하지 못하고 괴로워함. 도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한편 해결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해결(解決)은 “1. 제기된 문제를 해명하거나 얽힌 일을 잘 처리함, 2. 안 어울림을 어울림으로 이끎. 또는 그런 일”이라고 나타나 있다. ‘해(풀다 解)’ 자를 살펴보면 소(우 牛)를 칼(도 刀)로 뿔(갈 角)에서부터 하나씩 분리하는 것을 말한다. 대충 나누는 것이 아니라 뿔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것을 해(解)라고 한다. 그러므로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하나씩 문제가 되는 부분을 풀어 헤쳐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해결’의 예문으로는 “친구 간에 생긴 갈등의 해결은 당사자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 혹은 “모든 일이 척척 해결되다.” 등이 있다.
2. 갈매기살과 감자탕 이야기
‘갈매기살’은 돼지고기 중에서 횡격막(가로막)과 간에 붙어있는 부위를 일컫는다. 우리말로 ‘간막이살’이라고 했다. 간막이살이든 칸막이살이든 발음하기도 어렵고 많은 사람들의 귀에 갈매기가 익은 터라 갈매기살로 굳어버렸다. <백과사전>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돼지고기의 한 부위를 가리키는 말로써, 본래는 ‘간막이살’이 맞는 말이다. 횡격막과 간 사이에 붙어있는 살점으로, 간(間)을 막고 있다고 해서 ‘간막이살’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뱃속을 가로로 막고 있다고 해서 ‘가로막살’이라고도 부른다.” 이 살은 허파 아래로 비스듬히 걸쳐진 힘살막으로, 숨 쉴 때마다 위아래로 오르내린다. (이재운 외, <우리말 1000가지>) 그러니까 횡격막 주변에 붙어있는 살이다. ‘간막이살〉갈매기살’로 변한 것이다.
감자탕은 감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감자탕에는 감자가 없어도 된다. 원래는 감자가 아니라 ‘간자(間子)’라고 한다. ‘간자’는 등뼈에서 살을 발라내고 남아있는 살코기를 말한다. 뼈 사이에 붙어있는 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뼈를 푹 고아 살과 분리하기 쉽도록 해서 먹는 음식이다. 원래는 ‘간자탕’이었는데,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감자와 발음이 유사하여 감자탕이라고 일컫게 된 것이다. 감자탕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돼지 뼈에 감자, 들깨, 파, 마늘 따위의 양념을 넣어 끓인 찌개”라고 나타나 있는데, 감자가 없어도 감자탕은 성립한다. 간자(間子)가 주재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많이 듣고 기억하는 것으로 편하게 발음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변한 것 중 대표적인 것이 감자탕이다.
3. ‘개평’과 ‘타짜’
개평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노름이나 내기 따위에서 남이 가지게 된 몫에서 조금 얻어 가지는 것”이라고 나타나 있다. 2006년에 영화 <타짜>가 568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손지호, <지금 우리말 글>) 그래서 그 후부터 ‘타짜’라는 단어가 국립국어원 웹사전에 올라와서 표제어가 된 적이 있다. ‘타짜’는 ‘달인(達人 :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 널리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달자(達字)에서 유래했다. (손지호, 위의 책)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쓰다가 없어진 것을 영화에서 부활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 노름판에서 사용하던 단어가 영화를 통해서 우리말에 다시 부활한 것이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는 단어다.
과거에는 개평이라는 용어도 없었다. 옛날 사전(1938년 조선어사전)에는 가평이라는 용어로 나타나 있다. “노름판에서 구경꾼에게 주는 돈이나 물건”이라는 뜻을 쓰였다. (조항범, <그런 우리말은 없다>) 그러다가 1948년에 <조선말큰사전>에서 ‘개평’을 표준어로 인정하고 ‘가평’은 방언으로 삼았다. 그러니까 근본이 없는 단어를 ‘서울 사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이므로 표준어를 삼은 것이다.
4. 결혼과 함진아비
결혼이라는 말은 “혼인을 맺다.”는 뜻이다. 한자로 신랑 집을 혼(婚)이라 하고 처나 처가를 (姻)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혼인을 맺는 것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으로 상당히 중대한 일이다. 보통은 여자 입에 가서 저녁 무렵에 혼례를 치르기 때문에 ‘계집 녀(女)에 저물 혼(昏)’자를 합하여 쓴다. 혼인(婚姻)을 저녁에 하는 것은 아들을 낳아야 하는 의무와 관련이 있다. 아들을 낳을 수 있는 날짜는 신부의 모친이 알고 있다. 그래서 신부의 생리 후 5일이 되는 날 저녁에 혼례를 치른다. 그래서 신방에 들고 다음 날 새벽 인시(寅時)에 아들 만드는 작업(?)을 한다. 그래서 장인 집에 가서 혼례를 치르기 때문에 ‘장가(장인집)’고 표현한다. 시집가는 것은 ‘시댁에 간다’는 말이다.
혼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함을 팔고 사야 한다. 그래서 함진아비가 동원되고 동네방네 소리 지르며 “함 사세요!”라고 외친다. 하지만 본래 함을 질 수 있는 것은 ‘아들 낳은 사람’만 자격이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백부(伯父 큰아버지)가 함을 지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함을 지고 가면서 오징어를 얼굴에 붙이고 숯을 칠하는 등 험상궂게 하고 가는 것은 사악한 귀신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요즘은 마부가 있고, 함진사람이 말을 흉내 내고 있지만 이러한 행위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함진아비’라는 말은 ‘함지다’의 관형사형 ‘함진’과 명사 아비(부 父)가 결합된 어형이다. (조항범, <우리말 어원이야기>)
5. ‘고려(高麗)’와 ‘이조(李朝)’
과거 중국에서는 고려의 왕을 ‘황제’라 칭했다. 문서를 작성할 때도 “귀국의 황제”라는 표현을 써서 우리 고려가 중국의 속국이 아니라 엄연히 독립된 황제국임을 밝혔다. 일제강점기하에 역사를 연구한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접어두고 마치 중국의 속국인 것처럼 풀이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황제 밑에 있는 제후를 왕이라고 칭한다. 세종대왕께서 “나라의 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고 하고 주석에 “중국은 황제가 계신 곳”이라고 해놓았다. 우리 스스로 제후국가임을 인정한 말이다.
고려 시대에도 우리나라를 황제국이라고 하면서 ‘왕씨 고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왕건이 세운 고려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성계가 세운 조선을 ‘이씨 조선’이라고 해서 나라를 격하시키는 것은 아니다. 세종대왕이 명나라를 중국이라고 표현한 것은 글자가 소통되지 않는 것에 대할 표현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본인들이 ‘이씨 조선’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나라 이름 앞에 개국조의 성이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과거에 흔히 있었던 일이라는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조선상고사를 읽고 흡수하던 시절에는 신채호 선생의 발로 쓴 역사와 그의 혜안에 눈길을 떼지 못하고 읽었지만 돌아보면 그의 학설이 모두 맞는 것만은 아니었다. 중국에서도 당나라를 세운 이연(李淵)의 성을 따서 ‘이당(李唐)’이라고 하였고, 송나라도 조광윤(趙匡胤)이 세운 까닭으로 ‘조송(趙宋)’이라고 불렀다. (장진항, <위의 책>)
6. 껍질과 껍데기
‘껍질’은 “1. 딱딱하지 않은 물체의 겉을 싸고 있는 물질의 막, 2. 알맹이가 빠져서 속이 비거나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나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원자 구조를 나타내는 모델에서, 원자핵 주변의 거의 같은 에너지를 가지는 전자 궤도의 모임”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원래는 ‘딱딱하지 않은, 물체의 거죽을 싸고 있는 물질의 켜’를 이르는 말이다. 나무껍질과 같은 것을 나타낸다.
‘껍데기’는 ‘달걀이나 조개 같은 것의 겉을 싹 있는 단단한 물질’을 이르는 말이다. 껍데기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1. 달걀이나 조개 같은 것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 2. 거짓이나 가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속에 무엇이 들어갈 수 있게 만든 물건”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면서 예문으로 ‘조개껍데기’를 들어 놓았다. 조개의 부드러운 살을 감싸고 있는 것은 껍데기라고 한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노래 부를 때 “조개껍데기 묶어······”라고 해야 한다.
7. 노인 냄새와 암내
냄새란 “1.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 2. 어떠한 일을 알아차릴 수 있는 낌새나 어떤 일이 일어날 조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어원은 자동사인 ‘나다’로, 이것을 사동 접미사 ‘-이’가 붙어 ‘나이다→내다’가 되었고, 그 명사 파생형이 ‘내음’이 되었다. 오는날 ‘꽃내음’ 등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내음’ 뒤에 ‘모양새’, ‘낌새’ 등에 있는, 꼴을 뜻하는 접미사 ‘-새’가 붙어 ‘내음새’가 되었고, 이게 줄어든 게 ‘냄새’다.
노인 냄새는 노인에게서 나는 노인 특유의 채취를 의미하는 말이다. 중국에선 노인미(老人味)라, 일본에서는 가령취(加齡臭)라고도 하는데, 나이(齡) 먹어서(加) 나는 냄새(臭)란 뜻으로 굳이 설명을 하자면 묘하게 쏘는 냄새로 보면 된다.
8.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
‘다른 것’은 다양한 것의 한 부분으로 틀린 것이 아니다. ‘틀린 것’은 옳은 것의 상대어로 잘못된 것을 말한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의 의견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문화의 세계가 그렇다.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여성들이 많아서 다양한 성격과 특징을 내재하고 살아간다. 그들만의 세계가 있고, 그것은 다양함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행동이 다르니까 ‘틀린 것’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필자가 어려서 가래떡을 간장에 찍어 먹었더니 서울에서 온 4촌이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조청이나 설탕을 찍어 먹는 그들에게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던 것이다. 복숭아를 소금에 찍어 먹는 베트남 여성이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문화가 틀린 것은 아니다.
1+1을 3이라고 하면 틀린 것이지만, 너와 내가 생각이 다른 것은 다양성의 하나이지 ‘틀린 생각’이 아니다.
9. 단군의 비밀
우리의 옛문헌을 보아도 단군을 檀君과 壇君으로 표기하고 있음을 볼 때 단군이 우리 고유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용한 글자가 두 종류임은 그것이 외래어를 한자로 표기한 가차문자임을 나타낸다.
결국, 당고르는 당골(귀신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로 바뀌었고, 다시 당골은 단골(늘 정해놓고 거래를 하는 곳, 늘 정해 놓고 거래를 하는 손님)으로 변하였다. 당골님은 집에 자주 오는 귀한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당골을 글자로 표기해야 하는데 국자(한글)가 없던 시절인지라 한자를 차용하여 표기하다보니 학자에 따라서 혹자는 檀君이라 쓰고 혹자는 壇君이라고 썼다. 터키, 몽골 등 퉁구스어 계통의 언어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하늘의 위대한 자손이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위대한 인물(무당, 巫堂)’로 바뀌었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제사장의 권위는 위정자와 일치한다. 제정일치의 시대였기에 제사장이 곧 위정자가 된다. 그래서 단군이 고조선을 세워서 초대 임금이 되었다. 단군은 실제로 제사장을 뜻하는 보통명사였다.
동일한 발상으로 ‘화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유신시대 군사문화의 유산으로 우리는 화랑이라고 하면 젊은 군인집단을 생각한다. 교과서에 실려있는 화랑을 보면 ‘화랑 관창’, ‘화랑 원술랑’, ‘화랑 사다함’, ‘화랑 김유신’ 등 전쟁에 공훈을 세운 인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신라에서 생불(?)로 추앙받았던 화랑은 남랑, 술랑, 안상, 영랑 등의 사선(四仙)이다. 이드이 노다 가면 ‘사선대’라 칭하고 영랑이 놀다 가면 ‘영랑호, 영랑재’ 등을 이름을 붙였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신라의 유명인들은 거의 이 무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들이 흔히 하던 욕 중에 “이 화랭이 새끼야!(이 화랑의 자식아! → 이 무당 새끼야!)”라는 욕이 있다. 이렇게 보면 화랑 또한 무당이다.
10. 대구(對句)와 대꾸
天高日月明(천고일월명) 하늘이 높으니 해와 달이 밝고
地厚草木生(지후초목생) 땅이 두터우니 풀과 나무가 자라도다.
위와 같이 앞뒤의 문장이 같은 리듬으로 이루게 하는 것을 대구(對句) 혹은 대우법(對偶法), 대유법(代喩法), 병려법(騈儷法), 대치법(對峙法), 균형법(均衡法)이라고도 한다.)이라고 한다. 한시의 리듬을 맞추는 데는 대구만 한 것이 없다. 특히 율시에서는 반드시 대구를 이루어야 할 정도로 규정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이러한 것은 한국어 문장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위와 같은 문장이 바로 대구로 이루어진 것이다. 현대시에서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그런데 문제는 한시에서의 대구법이 중요한 시의 법칙인 것에 반해 우리말의 ‘대꾸’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유래는 한시 작법에서 왔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꾸’라는 말은 “남의 말을 듣고 그대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자기의 의사를 나타냄. 또는 그 말”이 되어버렸다. 본뜻은 좋은 의미로 리듬을 타는 문장을 이루는데, 다시 우리말이 되면서 어조가 ‘대꾸’로 강해졌고, 그 이미도 주로 나쁜 뜻으로만 쓰인다. 예문을 보아도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사사건건이 말대꾸냐?”(<표준한국어대사전> 예문 활용), “차라리 가만히 있을 것이지 무슨 장한 일이라고 말대꾸는 말대꾸냐.”(최인호 <처세술개론>에서 재인용)와 같이 말대답하는 것으로만 쓰인다.
11. 돼지 막창이 뭐여?
이순신(1545~1598) 장군의 시조에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청구영언>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많은 독자들이 ‘애’가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흔히 ‘애가 탄다’, ‘애간장이 녹는다’, ‘애를 석인다’ 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여기서 ‘애’라고 하는 것은 ‘창자’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창자를 끊는 것 같은 아픔이 전해진다는 뜻이다. ‘애를 끊는 것 같은 아픔’이 있으니 우국의 충심이 이보다 강할 수는 없다.
막창은 어디를 일컫는 말일까? 역시 사전에 의하면 소나 양 같이 되새김질하는 동물의 네 번째 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양, 벌집위, 천엽 이어 맨 마지막 위를 주로 고길 이를 때 쓰는 말로 ‘홍창’이라고 한다. 결국 막창도 양고기(소의 위장)와 비슷한 부위인데, 제일 끝에 있는 네 번째 밥통의 고기인 것이다. 흔히 ‘막창’이라고 하면 제일 끝에 있는 창자를 생각하여 항문 부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돼지는 되새김질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막창이 없다.
12. 등목과 등멱
‘멱’은 “냇물이나 강물에 몸을 담그고 씻거나 노는 행위”를 말한다. 필자 나름대로 정의를 한다면 팬티를 벗고 노는 것은 ‘멱’이고, 수영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수영장에서 폼나게 자유형, 배영 등을 즐기면 ‘수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수영의 사전적 정의로는 “1. 물속에서 헤엄침, 2. 물속에서 헤엄치는 실력을 겨루는 운동 경기”를 말하지만 생활 속에서 우리가 흔히 아는 정의로 말하는 것이 더 정겹다.
흔히 등목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사전적으로는 “팔다리를 뻗고 바닥에 엎드린 사람의 등에 물을 끼얹어, 몸을 씻고 더위를 식혀주는 일”을 말한다. 원래 한자로 목(沐)은 ‘머리감는 것’을 말하고, 욕(浴)은 ‘몸을 씻는 것’을 말한다. 합치면 목욕이 된다. 즉 “머리 감고 몸을 씻는 일이 목욕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등목이라고 하는 말은 원래 바른 표현은 아니었다. 등에 물을 끼얹는데 머리 감을 목(沐)자를 쓰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것을 다시 ‘등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등물이라는 말도 사전에는 “바닥에 엎드려서 허리에서부터 목까지를 물로 씻는 일”이라고 되어 있으니 등목과 같은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목물’이라고도 한다. 목물은 “1. 바닥에 엎드려서 허리에서부터 목까지를 물로 씻는 일, 2. 사람의 목에까지 닿을 만한 깊은 물”을 말한다. 그러니까 등목, 등물, 목물이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닌 이음동의어임을 알 수 있다.
등멱이라는 말이 있다. ‘멱’은 “냇물이나 강물에 몸을 담그고 씻거나 노는 행위”다. 그러므로 등에 물을 뿌리며 노는 행위에 가장 가까운 말은 ‘등멱’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어휘구조상 어울리는 단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멱을 사전에서 찾으면 “1. ‘목물’의 비표준어, 2. 목물(바닥에 엎드려서 허리에서부터 목까지를 물로 씻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표준어는 ‘목물’이고 등멱은 비표준어다.
13. 말, 말, 말
“라테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젊은이들의 은어가 있다.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를 꼰대집단으로 매도할 때 즐겨 쓰는 용어인데, “나 때는 마리야.”라고 하면서 젊은이들을 훈계하려고만 하는 기성세대를 비웃는 말이다.
“라테는 말이야. 최순실의 딸을 말 몇 필로 감옥에 넣고 중학교 졸업생으로 만들었어.”
“라테는 말이야. 포르쉐(포르테의 상징이 ‘말’이다.)를 선물로 ㄹ받았떠.”
“라테는 말이야. 말이 많으면 공산당이라고 했어.”
“라테는 말이야. 참! 할 말이 없네.”
연합뉴스에 의하면 박영수 특별검사는 “포르쉐 무상제공 의혹에 대해서는 렌트비를 지급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경찰에 입건된 이모 검사를 김씨에게 소개해 준 것에 도의적 책임을 직 이날 특검에서 물러났다. (연합뉴스 7월 7일)
권익위는 특검이 검사와 같거나 준용되는 직무· 권한 · 의무를 지니는 점, 임용 · 자격 · 직무범위 · 보수 · 신분보장 등에 있어 검사나 판사에 준하도록 규정하는 점, 벌칙 적용 시엔 공무원으로 의제되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세계일보> 7월 17일자 참조)
공자는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다(政者 正也).”라고 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기본이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이름을 바르게 해야 한다.(正名)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세상(君君臣臣父父子子)이 바른 세상이다. 검사는 검사답고, 정치인은 정치인다운 세상이 그립다.
14. 며느리와 사위
과거에는 며느리에 대한 표현으로 좋은 것이 별로 없었다.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발톱 등을 보아도 며느리에 대한 의미가 그리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며늘/미늘’ 등의 단어가 ‘남편에 더부살이하여 기생(寄生)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보는 견해도 많다. 한편 15세기의 문헌에 ‘메나리’라는 것도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메+나리’라고 해서 ‘메(제삿밥)를 나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백문식,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 옛문헌을 보면 “면ᄂᆞᆯ(자부(子婦) : 며ᄂᆞᆯ이 ᄃᆞ와야 (월인천강지고 36)”라고 나타나 있다. ‘며’와 ‘날’의 합성어로 보는 견해가 있다. 여기서 ‘며날’은 “며=며, 먿=머슴의 먿”과 같이 어근이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고 ‘ᄂᆞᇁ’은 ‘나, 너, 누’와 같은 어근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여러 가지 워원이 있지만 아직도 정설은 없다. 다만 ‘며느리’라는 단어가 현대어에서는 썩 좋은 의미와 결합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들에게 ‘기생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리 무시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사위’라는 말은 과거 ‘데릴사위’라는 말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데릴사위는 데리고 온 사위를 의미한다. 한자로는 예서(預壻), 초서(招壻) 등으로 쓰였다. 데릴사위나 더불사위는 최근에 된 말이며, 이보다 앞서 ‘민사위’나 ‘ᄃᆞ린사회’라는 말이 쓰였다. ‘민사위’는 민며느리와 같이 ‘밀다(미리 정하다)’라는 동사에서 관형사형으로 쓰인 것이다. 그러므로 ‘민사위’란 ‘미리 정해놓은 사위’라는 뜻이다. ‘ᄃᆞ린사회’는 ‘ᄃᆞ린+사회’의 형식으로 된 합성어다. ‘ᄃᆞ린’은 ‘ᄃᆞ리다(데리다)’의 어근이 관형사형으로 변한 것으로 ‘처가에서 데리고 온 사위(혹은 처가에ㅐ서 거느린 사위)’라는 뜻인데, 18섹 이후 문헌에는 보이지 않는다.(조항범, 우리말 어원이야기)
<계림유사>에 의하면 ‘사회(沙會) 서(壻)’라고 나타나 있고, <훈몽자회>에도 ‘사회(壻)’라고 나타나 있으니 과거에도 사회라고 불렀던 것이 맞다고 본다. 여기서 ‘회(會)’는 ‘사니히(男)(<훈몽자회>17), 갓나히(女)(<훈몽자회>25), 안해(妻), <한청문감>, <소학언해>)’ 등에 나타나는 ‘히, 해’와 같이 사람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에서 발췌함)
그러므로 ‘사회(沙會)’라는 단어는 ‘사+회’의 합성어인데, ‘사’는 ‘살다, 사람’등의 어근이고, ‘회(會)’는 ‘사나히, 갓나히, 남해’등에서 보이는 ‘사람을 의미하는 접미사’로 본다. 그렇다면 ‘사위’라는 말은 결국‘같이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아들이나 다를 바가 없는 식구가 되었다.
15. ‘미신(迷信)’과 ‘민속(民俗)’
미신(迷信)이란 말은 “1.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여겨지는 믿음. 또는 그런 믿음을 가지는 것. 2. 과학적 · 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음. 또는 그런 일”을 일컫는 말이다.
한편 민속(民俗)이라는 말은 “민간 생활과 결부된 신앙, 습관, 전설, 기술, 전승문화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참으로 여기서도 그 경계가 모호하다. 삼신할머니한테 비손하는 행위는 민속인가, 미신인가? 첫 월급 탔다고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사다 드리는 것은 또 무엇인가? 왜 하필이면 빨간 내복을 사다 드려야 하는가? 필자가 좋아하는 가수 장민호 군도 트로트 경선에 나갈 때 “빨간 빤스(?)를 입고 나갔다.”고 자백(?)한 적이 있다.
16. 보랏빛 엽서와 핑크빛 향기
우리말의 사이시옷은 정말로 헷갈린다. 더군다나 유행하는 노래에서 맞춤법이 틀린 것이 나오면 모든 사람들이 다 틀리게 된다. 필자가 좋아하는 ‘바램’이라는 노래도 ‘바람’이라고 써야 한다고 얼마 전에 언급한 적이 있다. ‘보랏빛 엽서’도 그렇다. 사이시옷의 규정에 대해 자세히 적어보기로 한다.
1.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합성어에서 ‘사이시옷’을 첨가한다.(예 : 고깃국, 북엇국, 등굣길 등)
2. 한자어는 다음의 6가지를 제외하고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다.(곳간, 셋방, 찻간, 툇간, 횟수를 제외하고는 ‘소수점, 허점, 초점, 이점, 대가’ 등과 같이 써야 한다.)
3. 발음이 ‘ㄴ’ 혹은 ‘ㄴㄴ’을 소리나면 사이시옷을 적용한다. (예 : 콧날, 아랫니, 툇마루 등)
4. 외국어와 한국의 결합에는 사이시옷을 적용하지 않는다. (예 : 핑크빛, 핏자집)
5. 순우리말과 한자어의 결합에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경우’에 사이시옷을 붙인다. (예 : 귓병, 샛강, 머릿방, 햇수, 콧병 등)
6. 뒷말의 첫소리에 ‘ㄴ, ㅁ’ 앞에서 ‘ㄴ’소리가 덧나는 경우에도 사이시옷을 붙인다. (예 : 곗날, 제삿날, 훗날, 양칫물 등)
7. ‘순우리말+순우리말’이면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경우 사이시옷을 붙인다. (예 : 고랫제, 댓가지, 못자리, 보랏빛 등)
그러니까 보랏빛이 되는 경우는 순우리말의 결합에서 뒷말이 된소리 발음 도기 때문에 사이시옷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쉽다.
핑크빛의 경우는 영어와 우리말이 합성된 것이기 때문에 사이시옷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핑큿빛이라고 쓰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핏자집도 피잣집이라고 쓰면 안 되는 것이다.
17. 부인(夫人)과 부인(婦人)의 유래 찾기
우리말에 ‘영부인(令夫人)’이라는 개념이 있다.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 ‘영부인’이다. 대통령의 부인을 영부인으로 부르는 것으로 오해한 사람들이 많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요즘은 사전에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나타나 있다. 예문으로는, “역대 대통령의 영부인의 위상과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다른 사람의 부인을 높여 이르는 말인 영부인이 한 개인에게 특수화되어 쓰이는 현상은 잘못된 것이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와 같다.
부인(夫人)이라는 단어는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고, 부인(婦人)이라는 말은 ‘결혼한 여자’를 일컫는다. 물론 남의 부인이 되려면 결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자로 썼을 때 각각의 의미는 다르다. 이에 대한 글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주례(周禮)>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 의하면 ‘천자가 임명한 제후의 아내는 부인(夫人), 제후가 임명하는 대부의 아내는 유인(孺人)이며, 그 아래의 무사집단을 구성하는 사(士 : 선비라는 뜻 외에 무사, 군사라는 의미도 있음)의 아내는 부인(婦人)이며, 벼슬이 없는 서민의 아내는 처’(妻)이다. (이재운의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잡학사전>에서 발췌함) 그러므로 부인(夫人)과 부인(婦人)은 의미상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다가 나중에 황실에서도 부인(夫人)이라는 용어를 통용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정1품과 종1품 관리의 아내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정2품과 종2품의 아내는 정부인(貞夫人), 정3품의 아내는 숙부인(淑夫人), 종3품의 아내는 숙인(淑人)으로 분화되었다. 4품의 아내는 영인(令人), 5품의 아내는 공인(恭人), 6품의 아내는 의인(宜人), 품의 아내는 안인(安人), 8품의 아내는 단인(端人), 9품의 아내는 유인(孺人)이다. (위의 책 참조)
결혼한 여인을 칭할 때는 부인(婦人)만 쓰는 것이 맞고, 부인(夫人)은 직급을 이르는 말인 만큼 현대사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영부인(令夫人)은 ‘다른 사람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니 바르게 사용하도록 해야겠다.
18. 섣달, 설, 살
섣달 그믐을 일컬어 ‘까치설’이라고 한다. 이에 관해서는 과거에 ‘ᄋᆞ찬설(이른설)’에서 유래했다고 정리해 놓은 것이 있으니 여기선 생략하기로 하고, 섣달의 개념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섣달’은 ‘설이 드는 달’이라는 것에서 유래했다. (이재운,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잡학사전>) 이에 관해서는 많은 유래와 이야기가 전하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면 과거에는 12월에 설날이 들어 있었던 것이 맞다. 왜냐하면 동지가 ‘새로운 해’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동양에는 자신의 생년에 맞는 띠가 있다. 올해는 ‘소띠해’이다. 그중에 흰 소의 해라고 하지만 색깔의 개념은 후에 삽입한 것이고 중요한 것은 ‘소의 해’라는 것이다. 바로 이 해가 바뀌는 시점이 ‘동지’이기 때문에 음력 설날이 들어가 있는 달이 섣달이 맞다. 양력으로는 1월 1일생이 소띠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도 과거에 논한 바가 있다. 실제로 띠는 동지에 시작하기 때문에 양력 1월 1일생은 보통 그때에 해당된다. 혹자는 음력 1월 1일이 띠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은 동지에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설이 드는 달 (설달에서 ‘ㄷ’으로 받침이 변한 것)에서 섣달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설과 살은 어원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자. 사실 ‘설’이나 ‘살’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말은 모음의 변화로 약간의 의미변화를 주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남다’와 ‘넘다’, ‘늙다’와 ‘낡다’ 등과 같다. 남는 것이 넘는 것이고, 늙은 것이나 낡은 것이나 어원은 같은데 약간의 의미의 변화를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살’과 ‘설’은 동일한 어원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시작은 무엇일까?
우선 ‘설’은 ‘정월 초하루’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양의 최대의 명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입춘을 제일로 삼는 나라도 있지만,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서는 아직도 설이 최대의 명절임을 알 수 있다. 한자로 원단(元旦)이라고 한다. <삼강행실도>에 “설이어든 가을에 못올 적에”라는 구절이 보인다. 여기서 설은 ‘새해아침(단旦)’의 뜻이다. 또한 ‘나이(세歲)’를 의미하는 것으로 <월인석보, 1459>에 “그 아기 닐굽 설 머거 아비 보라 니거지라.”라는 글에서 나타난다. 그러니까 ‘설’의 뜻에는 ‘원단(元旦)’과 ‘나이(歲)’의 의미가 다 들어있다.
그러니까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모음의 변이가 일어나서 ‘설’과 ‘살’로 분화되었다 ‘살’의 원래의 의미는 ‘태양’의 뜻이 있었다. ‘햇살’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일본어 ‘sara(空, 天)’의 어원이 우리말 ‘살’에 있다고 한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그러므로 ‘살’도 어원은 ‘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몬다. 우리가 ‘닷새(五日)’, ‘엿새(六日)’의 ‘새’는 ‘사이’가 준말이고, “삳〉사리〉사이〉새”로 변화(서정범, <위의 책>)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다.
참고로 “설을 쇠다.”에서 ‘쇠다’의 어간 ‘쇠’도 비슷한 어원을 지니고 있다. ‘쇠다’는 “설, 생일, 명절 같은 기념일을 맞이하여 지내다.”라는 의미가 있다.
19. ‘심금(心琴)’과 ‘지음(知音)’
가슴을 울리는 노래를 들으면 흔히 “심금을 울린다.”라고 한다. 심금을 울린다는 뜻은 “다른 사람의 감동적인 행적을 보거나 듣거나 읽을 때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마음의 울림”을 일컫는다. 이 ‘심금(心琴)’이라는 단어는 불경에서 유래한 말이다.
『불경』에 보면 <거문고의 비유>가 잇다. 부처님의 제장 중에 스로오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르고자 했다. 그러나 고행을 통한 수행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깨달음의 길이 보이지 않자 스로오나는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고 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를 본 부처님이 그에게 ‘거문고의 비유’를 설했다. “스로오나야, 거문고를 타본 일이 있느냐?” “예.” “거문고의 줄이 팽팽해야 소리가 곱더냐?” “아닙니다.” “그렇다. 스로오나야, 거문고의 줄은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늘어지지도 않아야 고운 소리가 난다. 그렇듯 수행이 너무 강하면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하면 게을러진다. 수행은 알맞게 해야 몸과 마음이 어울려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니라.” 마음의 거문고인 심금(心琴)을 울린다는 말이 바로 이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이재운 외, <우리말 1000>에서 재인용)
예문으로는
♧ 특히 신원이 확인된 한국전 · 베트남전 전사자 등의 5만 4457개 묘소 앞에는 고인에 대한 애틋한 정이 묻어나는 추모석이 적지 않아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 우경은 남다른 시풍으로 심금을 울리는 시를 썼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한편 거문고와 관련된 것으로는 지음(知音)이라는 단어도 있다. 물론 중국에 거문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악기의 일종이므로 동일하게 보면 된다. 특히 유명한 이야기로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는 고사가 있다. 여기서 유래한 것이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인 뜻으로는 “1. 음악의 곡조를 잘 앎, 2. 새나 짐승의 소리를 가려 잘 알아들음, 3.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이르는 말”이다. 그중 우리는 자기를 알아주는 벗으로 많이 인용하고 있다. 그 유래를 먼저 보자.
「백아는 거문고를 잘 연주했고 종자기(鍾子期)는 (백아의 연주를) 잘 감상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탈 때 그 뜻이 높은 산에 있으면 종자기는 “훌륭하다. 우뚝 솟은 그 느낌이 태산 같구나.”라고 했고, 그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종자기는 “멋있다. 넘칠 듯이 흘러가는 그 느낌은 마치 강과 같군.”이라고 했다 백아가 뜻하는 바를 종자기는 다 알아맞혔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더 이상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知音)이 없다고 말하고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종신토록 연주하지 않았다.」≪열자(列子) <탕문(湯問≫ 여기에서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막역한 친구’를 뜻하는 ‘지음(知音)’도 유래했다. (김성일, <고사성어대사전>)
20. 어르고 달래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어러두고
서동이를
밤에 몰래 안고 간대요
위의 글에서 ‘남 몰래 어러두고’라는 말은 한자로 하면 ‘사통(私通)한다’는 말이다. 즉 “남들 몰래 서동이와 정을 통하고 있다.”는 말이니 임금이 좋아할 리가 없다. 여기서 유래한 것이 ‘어르다’이다. 흔히 ‘어르고 달래다’라고 하면 “몸을 움직여 주거나 또는 무엇을 보여 주거나 들려주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거나 기쁘게 하여 주다.”로 알고 있다. 혹은 “사람이나 짐승을 놀리며 장난하다. 어떤 일을 하도록 사람을 구슬리다.”정도롤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성적인 교류를 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말로 ‘계집어르다’라는 말은 ‘장가들가(장인집에 들어가다. 예전엔 데릴사위제도로 사위가 장인집에 들어갔기 때문에 장가드는 것이다.)’라는 뜻이고, ‘남진어르다’라는 말은 ‘시집가다(여자가 시댁에 들어가다. 여자가 혼인하여 남의 아내가 되다.)’라는 뜻이며, ‘겨집어리’라는 말은 ‘다른 여자와 정을 통하다’는 뜻이다. 이 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르다’라는 말이 ‘혼인하다’라는 말로 알기 쉬운데, 사실은 ‘성행위를 하다’라는 말이다. ‘얼레리 꼴레리’도 여기서 나왔다는 것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어르다’에서 파생된 단어가 ‘어른(나이가 들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름답다’는 ‘어른답다’에서 파생된 말로 “성숙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다.”의 의미였다. 그래서 ‘아름답다’라는 표현은 어린아이에게는 쓸 수 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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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종 편집 단계에서 원고 가감을 결정하겠습니다.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