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해설 (20)
※ 제2장은 『대전가톨릭대학교 ‘복음의 기쁨’ 학술 세미나』 (2014. 5. 10.) 때에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이 발표하신 내용을, 저자의 동의를 얻어 옮겨 싣습니다.
II. 사목 일꾼들이 겪게 되는 유혹들
1) 선교 영성의 과제에 대한 응답(78-80항)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 사람이 기쁘지 않을 때(기쁜 모습이 드러나지 않을 때), 그에게 선교가 기쁨이 되지 않을 때 그들에게 복음화는 억지로 하는 일이 되고 그들은 그 일에 “거의 힘을 쏟지 않고 매우 한정된 시간만 할애하게” 된다(79항). 열정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의 선교 열정을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80항).
2) 이기적인 나태는 안 된다(81-83항)
교황님은 “언제나 문제는 과도한 활동이 아니라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는 활동, 곧 적절한 동기가 없고 영성이 스며들지 못하여 즐겁게 수행되지 못하는 활동입니다.”(82항)라고 말씀하신다. 상당히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글자 그대로, 진정한 의미의 ‘복음 선포’로서 수행할 때에는, 그것이 참으로 내가 기뻐하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이 될 때에는, 우리의 일은 몸을 피곤하게 할 수는 있어도 나태 특히 영적인 나태에 빠지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영적으로 생기에 넘치게 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기쁘게 하던 일들이 어느새 타성에 젖기 시작하고 복음의 기쁨이 없이 하나의 ‘일’이 되기 시작할 때 그 일이 무의미해지고 나태해지며, 우리의 사목이나 사도직은 그저 기계가 수행하는 일과 같아진다. 더 심해지면 환멸과 실망, 슬픔에 빠지고 만다. “복음화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83항). 한 마디 덧붙인다면, 복음화가 기쁨을 잃어버릴 때 그 복음화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이 거기에 복음이 있지 않다는 것을 놀랄 만큼 정확히 감지하기 때문이다. “복음화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83항).
3) 무익한 비관주의는 안 된다(84-86항)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없고, 부활 신앙이 있어야 할 까닭도 없다. 물론 세상은 그 기쁜 소식을 믿기 힘들어한다. 그렇다고 해서 복음의 기쁨이 빛을 잃을 수 있는가? 예수님은 왜 죽음까지 거치시고 부활하셔야 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복음의 기쁨이 이 세상의 어떤 악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스스로 내려오셨더라면, 복음의 기쁨은 죽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피해갔을 것이다.
“세상의 악이 그리고 교회의 악이 우리의 헌신과 열정을 줄이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84항). 세상의 악을 보면, 과연 저 앞에서 복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의심하게 된다. 교회의 악, 내 공동체의 악을 보면, 아무리 기쁜 소식을 말해도 세상은 우리를 신뢰하지 않고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것 같다. 이러한 의심들은 “자기중심적인 신뢰 부족의 산물”(85항)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 복음의 기쁨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근거하므로, 세상과 교회의 어떤 악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간직할 것이다. 신앙이 박해의 대상 또는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린 세상에는, 희망의 증인들이 필요하다. 모세처럼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을 자신의 삶으로 가리켜 주는”(86항) 사람들이 필요하다(히브리서 11장을 읽어보기 바란다). “희망을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