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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별에게 가는 길
影園 / 김인희
시간은 하얀 눈을 품은 계절의 깊은 골짜기에 다다릅니다. 그 계절에 눈이 내리는 것이 특별할 것도 아닐 터인데 환호성을 지르면서 현관문 여닫기를 수차례 반복합니다. 캄캄한 밤에 내리는 눈을 보기 위하여 시선을 멀리 가로등을 향하여 고정합니다. 가로등 불빛도 추위에 떨고 있는 한밤중에 보랏빛 실루엣으로 내리는 눈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마당에 서서 두 팔을 벌리고 빙그르르 돌았더니 오른쪽 뺨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집니다. 목덜미에 앉은 눈송이를 느낍니다. 팔목에 머무르는 찰나의 몸짓을 느낍니다. 눈은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설레게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별나라에도 눈이 내리는지 궁금합니다. 열다섯 살 소녀가 한 권의 시집을 품에 안고 동시에 만난 시인은 별이었습니다. 시인은 소녀가 문학을 알기 전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소녀는 시가 무엇인지 모르고 시집을 읽었습니다. 소녀가 시집 속에서 ‘별’을 찾았을 때 가을밤 소녀의 마당에 하늘의 별이 일제히 쏟아졌습니다. 시인은 그렇게 소녀의 영혼에 각인된 별이 되었습니다.
소녀가 성장하여 꽃다운 시절을 지내는 동안에 한시도 별을 잊지 않았습니다. 별을 만난 것처럼 책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문학의 블랙홀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갈 때도 그 별 하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문학의 궤도를 돌고 돌아 시인이라는 관을 쓰던 날부터 별이 되고 싶은 꿈을 꾸었습니다. 작은 빛일지라도 순수하고 따뜻하게 빛나는 별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별이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숙맥처럼 살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대차대조를 하지 못합니다. 손익을 계산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시인은 단어 하나에도 전율할 수 있는 영혼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별의 위치에 다다를 수 있는 사람만이 시를 써야 하고 시인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가져야 한다는 믿음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어쩌면 그 별을 찾아 나선 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세파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몸부림친 날들과 세상의 이익을 멀찌감치 밀어내려고 입술 깨물던 순간들은 스스로 채찍질하던 가혹한 시간이었습니다. 별을 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얻을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맞바꾸었습니다. 애써 오솔길로 자신의 등을 떠미는 다짐들은 별을 향하여 길을 나선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알고 있습니다. 짐승의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와 달리 얼어 죽을지언정 산정 높이 올라가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수시로 생각합니다. 더러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역사 속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지금 그런 사람들이 있듯이 미래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산정에 오른 표범의 경지에 다다르고 싶습니다. 그곳이 별들이 빛나는 성지가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반듯하게 걸어왔다고 자신합니다. 한 점의 흠과 티 없이 순수한 열정으로 호흡하면서 왔습니다. 이만치 왔어도 별에게 가는 길이 아스라이 멀기만 합니다. 별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 팔을 걷어 올립니다.
별을 찾기 위해 주어진 시간 내내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별이 머물렀던 공간을 샅샅이 헤맬 것입니다. 별이 머물렀던 시간을 타임머신 타고 달려갈 것입니다. 별의 여정을 쫓아 북간도에서 후쿠오카까지 시공간을 함께할 것입니다. 별의 유소년기를 더듬고 청년기를 찾을 것입니다. 나약한 내가 기울어가는 조국의 지축을 온몸으로 떠받치던 시인의 절규를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나의 문학의 여정은 별에서 출발하여 별에 귀착하는 운명의 궤도인가 합니다. 문학의 하늘에 그 별 하나 띄우고 그 별에 연을 묶고 따라 돌면서 별이 되도록 하늘이 미리 정해 준 노선이라고 믿습니다. 그 별을 찾아 나서겠다고 작정하니 그 운명이 더 깊게 다가옵니다.
나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에 말하겠습니다.
그 별의 빛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말하겠습니다.
그 별이 얼마나 순수한 향기를 간직했었는지 말하겠습니다.
나는 자신만만합니다. 그 별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듯 나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렵니다. 한 줄 시구에 혼신을 녹여 나의 인격을 담으렵니다. 나는 품위를 잃지 않는 글을 쓰겠노라 약속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 별처럼 빛나는 시를 쓰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향기로운 시를 쓰겠습니다.
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목전에서 감사합니다. 별을 만날 설렘으로 일 년 내내 행복할 자신이 있습니다. 별의 고통과 슬픔 앞에서도 울지 않을 것입니다. 별이여!
2. 서재에서
影園 / 김인희
이른 아침 휴대전화 알람이 달콤한 잠을 깨운다. 간밤에 일정이 없는 토요일을 확인한 후 늦잠을 자겠다고 단단히 벼른 나를 무색하게 한다. 나는 얄미운 휴대전화를 베개 밑에 놓고 돌아누워 잠을 청하지만 허사다. 나는 이내 토요일 늦잠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나는 거실에 앉아 황금 같은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하고 이궁리 저궁리하다가 무릎을 탁~~ 치면서 묘안을 낚아챘다. 나는 서재 정리를 미루고 있었다. 학기 중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큰일이었다. 책꽂이에 분류하지 않은 채 쌓여있는 A4 용지를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우선 A4 용지 크기 상자를 몇 개 준비했다. 상자의 모서리에 박스 테이프를 덧붙여서 단단하게 고정했다. 상자마다 강의자료, 문학자료, 역사자료, 논문자료, 시낭송 자료 등 이름표를 붙이고 낱낱이 분류해서 방을 찾아 주었다. 큰 상자 하나를 따로 마련한 후 쓸모없는 자료는 폐지로 분류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음악을 들으면서 자료를 분류하는 내내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했다. 어떤 자료는 소중하여 다시 한번 쓰다듬고 제 방을 찾아 주었고 어떤 자료는 일순의 망설임도 없이 폐지 상자로 던지는 것이었다. 나는 몇 시간 내내 꼼짝하지 않고 정리한 후 산뜻하게 바뀐 책꽂이를 보면서 만족했다. 나는 물 한 잔을 마시고 바로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의 자리를 바꾸기로 했다. 당장 필요한 책들은 내가 의자에 앉아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두었다. 내 필요에 따라 책은 가깝게 또는 멀리 자리를 잡았다.
서재의 한쪽 벽면을 책으로 가득 채운 책꽂이 앞에 큰 책상이 놓여있다. 책상 위에 노트북은 언제든지 내가 작업할 수 있도록 대기 중이다. 내가 책상을 앞에 두고 앉으면 맞은편에 화장대가 있다. 화장대의 큰 거울 속 한 여인이 책상에 앉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태세다. 그 화장대 위에는 화장대 거울만큼 크기의 겨울 사진이 걸려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 내내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 있는지 자문하곤 했다. 사계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하는 내게 흰 눈이 쌓인 겨울 풍경이 시선에 들어올 때 황홀하여 온몸을 전율한다.
큰 책상이 간직한 에피소드가 있다. 딸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책상을 새로 들였다. 내가 가구점에서 제일 큰 책상을 선택했을 때 가족들은 손사래 치면서 만류했다. 이유가 분분했다. 아빠는 작은 집에 비해 책상이 너무 크다고 했다. 당사자인 딸은 책상이 학생이 사용하기에 너무 커서 부담스럽다고 했다. 중학생이었던 아들은 엄마가 욕심이 많아서 무엇이든지 큰 것만 좋아한다고 너스레를 떨어서 모두 폭소했다. 그때 큰 책상을 고집하는 나를 아무도 이기지 못했다.
그 책상이 지금은 서재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나의 예견이 적중했다.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 나의 서재에 큰 책상을 들여놓고 당당하게 일을 하겠다고 꿈을 꾸었다. 그 꿈이 현실이 되었고 나는 날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환희의 찬양을 부르고 있다.
서재 한쪽에 있었던 이동식 옷걸이를 다른 방으로 옮겼다. 책상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이 시선을 빼앗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옷걸이를 보고 눈을 흘기고 그를 서재에서 추방하리라 다짐했다. 그를 다른 방에 감금하고 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말끔하게 가라앉듯 통쾌했다. 내가 출퇴근 때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한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독백하면서 내린 중대한 결정이었다.
나는 서재를 정리하면서 이어령 선생을 생각했다. TV의 한 채널에서 이어령 선생을 만나 대담하듯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어령 선생께서 시한부 판정을 받고 의료치료를 거부하고 지낼 때였다. 이어령 선생은 몇 명의 독자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듯 당신의 일화를 전해주었다. TV를 통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선생의 안색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TV 방송이 종영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령 선생께서는 별이 되었다. 그 감동을 쉽게 잊을 수 없어서 나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을 품에 안고 지냈다. 많은 사람이 세기에 한 번 날 수 있을까 하는 지성이라고 했다.
한 번은 선생께서 당신의 서재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선생의 서재에 있는 책상은 무척 길었다. 책상에 컴퓨터가 세 개 이상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어령 선생께서 그 책상을 종횡으로 움직이면서 “내 책상이 말이었어. 몽골의 초원을 달리는 칭기즈칸의 말이었단 말이야. 나는 이 책상에서 글을 쓰고 작업을 하고 무수한 일을 했어. 내 책상은 말이었고 내가 여기 앉아 일하는 동안 나는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었지.”라고 말하는 동안 선생의 심장이 뜨겁게 뛰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서재를 정리한 후 책상 앞에 앉아 이어령 선생을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책상이 나에게 말이 될 수 있을까를 가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책상 앞에 앉아 2023년 계획을 세우고 주먹을 힘주어 쥔다. 올해 나에게 새로운 기관에서 중책을 위촉했고 나 스스로 부여한 과업 또한 만만치 않다. 나에게 맡겨진 달란트가 여러 개다. 나는 모든 일에 매사 신실하게 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살얼음판을 걷듯 걸음을 옮긴다.
내가 기필코 해야 할 위대한 일, 그것에 방점을 찍는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말고삐를 바투 쥐듯 노트북을 켠다. 나의 2023년은 하늘이 쏟아붓는 축복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3. 꽃은 떨어지고
影圓 / 김인희
This, too, shall pass away! 이 또한 지나가리라. 요즘 기도문을 읊조리듯 무시로 내뱉는 말이다. 얼마만큼이라고 정해진 시간이 흘러야 한다면 그 시간만큼 뭉텅 잘라 버리고 싶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출근길에 자동차를 운전하여 지나치면서 가녀린 가지 끝에 선홍빛 핏방울을 달고 있는 꽃봉오리가 통통하게 부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는 그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고 전율하며 몸살을 앓았을 것이다. 그 언저리에 작은 바람이 스치기라도 할라치면 진저리치면서 눈을 감아버렸을 것이다. 차마 눈뜨고 새 생명의 탄생을 볼 수 없었으리라. 그 꽃잎이 하나씩 개화할 때마다 별이 뜨는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낮이나 밤이나 헤실헤실 웃고 있었을 나였다.
그 꽃이 일제히 절정을 이루었다가 어느 날 미풍에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의 마음은 굳은 바위였다. 휜 눈이 내리는 양 하얗게 낙화하는 모습이 눈이 부셔 외면하였을 뿐 눈물이 나지 않았다. 길섶에 노란 민들레가 군락을 이루어 피었다가 하얗게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는 모습도 무덤덤하게 스치고 말았다. 그 옆에 앉아 휴대전화를 열어 사진을 찍고 꽃잎의 속살을 어루만지면서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던 내가 아니었던가. 무엇이 나의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었을까. 나는 치유의 방법을 찾아 방황하고 있었다.
유일한 탈출구는 일이었다. 나는 일속으로 자신을 떠밀고 있다. 대학원 과제에 매달리면서 휴식을 누리고 있다. 사무실 책상에 쌓여있는 업무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나를 자유롭게 한다고 믿고 있다. 나는 가사에 매달리면서 미간을 찌푸리는 대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묶었던 오랏줄에서 풀려나는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하는 것이다. 늦은 시간에 노트북을 켜고 일을 만들어하고 있다. 나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는 통로를 차단하고 자신의 내면을 파내고 일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마치 살아있는 무엇을 파내고 텅 빈 곳에 지푸라기를 채우고 있는 듯 서글프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나의 실체는 간곳없이 사라지고 허깨비만 남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다. 나는 스스로 박제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착하게 살고 따뜻하게 지내겠다고 고백했던 일이 허사가 되었다. 내가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핀 언행심사와 상관없이 휘몰아친 폭풍우에 쓰러지고 말았다. 순백의 하얀 드레스에 끼얹은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어쩔 줄을 몰라 당황하면서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하늘을 볼 수 없을 만큼 절망에 갇혀있었다. 한 편의 글을 쓰다가 원고지를 찢어버리듯 노트북을 덮어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바쁜 일 속에서 잠시 먼 하늘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흔들면서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요즈음 사람들이 박장대소할 때 한없이 우울하다가 슬픈 뉴스를 들으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내 모습이 서글프다.
악몽이었다. 그토록 참담한 일이 현실일 리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여정에서 무슨 잘못을 했던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 있었던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더듬으면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하는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조차도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내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감추지 못해 누군가 슬퍼할 때 웃었을까. 누군가 기쁨의 순간을 눈물로 덮어버렸을까. 샅샅이 찾아 용서를 구하고 잘못을 사과하면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나는 실낱같은 끈을 혼신을 다하여 붙들고 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는 사랑을 간구하고 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나의 슬픔이 기쁨으로 승화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고 있다. 흰 눈보다 더 순결한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 별을 볼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몸서리칠 일이다. 큰 산을 넘고자 16권의 대하소설 『토지(土地)』를 다시 정독하고 있다. 악은 악 스스로 멸망한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악이 기세등등하게 선을 짓밟도록 잠시 허용하지만 그 악을 몇 배로 처참하게 넘어뜨리면서 일말의 측은지심조차 가질 수 없게 하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면서 위로를 받았다. 악한 자가 내뱉은 악한 언어는 스스로 판 구덩이가 되고 종국에는 악한 자가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매장되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 선한 것이었다면 달콤한 열매를 맺고 악한 것이었다면 흉측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나는 성인이 된 자녀들에게 ‘너희들이 무심코 하는 언어는 날개를 달고 있다. 너희들 입을 떠나면 날아가서 누군가의 가슴에 내려앉고 더러는 꽃잎 위에 앉을 것이다. 밤하늘 별에게 도달할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전달할 때 수없이 곱씹어 삼가면서 전달해야 한다. 어쩌다 화가 나고 불만이 있을 때는 눈을 감고 참아라. 참는 순간에 바보가 되는 것 같아 견딜 수 없더라도 다시 인내해야 한다. 언어는 인격이다. 너희들의 언어가 너희들의 품격을 드러낸다.’라고 전해주었다.
나는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나서 툭툭 털고 가던 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절망의 순간을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라고 치부하기로 한다.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여정에서 터널을 만나면 자동차의 등을 켜고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밝은 곳으로 나오는 것처럼 통과하면 되는 것이라고 자위한다. 내가 넘어질 때 목격한 사람들 앞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지만 내가 변함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별을 노래하고 따뜻하고 착한 글을 쓰면서 극복한다면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나는 마음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먼지를 닦아낸다. 나의 하늘에 뜬 별은 더 영롱하게 빛날 것이다. 꽃이 떨어진 자리마다 열매를 맺고 달콤하게 익어갈 것이다.
첫댓글 수필은 붓가는 데로 쓰는 글
정직한 선비의 글
하여 독자는 없고 작자만 자신의 글을 읽게 되는 경우가 ..
일기와는 구분 되는 콩트 닮은 이야기꾼의 글 이 많이 읽힙니다.
대부분 아호나 필명 보다는 1인칭 "나" 가 화자이며 주인공입니다
단편소설의 추상성이 돋보입니다
국장님 !
화자를 1인칭으로 수정하여 편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