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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질병일 수도 있습니다.
속 썩이는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평생 해결되지 않는 가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라면서 왜 이 말뚝을 안 뽑아 주십니까?"
2. 기도의 좌절: 세 번의 간구와 거절 (8절)
바울은 이 가시를 없애달라고 **"세 번 주께 간구"**했습니다.
여기서 '세 번'은 횟수가 아니라,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셨던 것과 같은 **'처절한 사생결단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응답이 무엇입니까? "No(안 된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충격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병을 고쳐주지 않으셨습니다. 가시를 그대로 두셨습니다.
우리는 "병이 낫는 것"이 은혜라고 배웠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은혜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문제 해결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은혜가 떠난 것입니까?
3. 은혜의 재정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9절 상반)
바로 그 절망의 순간,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여기서 '족하다'는 헬라어 **'아르케이(arkei)'**는 **'방어하기에 충분하다', '견뎌내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바울아, 가시를 뽑아주는 것이 은혜가 아니다. 그 가시에 찔리면서도 쓰러지지 않도록 내가 너를 붙들고 있는 것, 그것이 진짜 은혜다."
왜 주셨는가? (7절):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바울이 너무 큰 계시를 받았기에, 그가 교만해져서 지옥에 갈까 봐, 하나님은 가시라는 **'거룩한 안전벨트'**를 채우신 것입니다.
은혜의 신비: 가시가 없었다면 바울은 교만해서 망했을 것입니다. 가시 때문에 그는 매일 무릎 꿇었고, 매일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가시는 저주가 아니라, 그를 살리는 가장 강력한 은혜의 장치였습니다.
4. 약함의 미학: 능력이 머무는 텐트 (9절 하반)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기독교의 역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Dynamis)은 우리가 강할 때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약합니다"라고 항복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머물게 하려 함(episkēnoō)'**이라는 단어는 **'장막(텐트)을 치다'**는 뜻입니다.
내가 강하면 내 자아의 텐트가 쳐집니다. 예수님이 들어오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약해져서 내 텐트가 찢어지면, 그 틈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들어와 텐트를 치십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깨닫고 소리칩니다. "그러므로 내가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9절)
그는 이제 병 낫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픈 것을 자랑합니다. 약하기 때문에 주님이 나를 떠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목회적 결론 및 성도를 향한 선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을 찌르는 가시는 무엇입니까?
남들이 볼 때는 불행이고, 저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 때문에 밤마다 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 가시는 여러분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교만하지 않게 하려는 하나님의 안전장치입니다. 여러분이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더 강하게 붙들고 계십니다.
환경이 변하는 것만이 기적이 아닙니다. 가시가 박힌 채로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큰 기적입니다.
가시를 뽑아달라고만 떼쓰지 마십시오. 이미 여러분에게 주어진 은혜는 충분합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여러분의 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담기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오늘, 가시를 품은 장미처럼, 아픔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는 성숙한 은혜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