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때의 내영을 부어 주리라. 욜 2:28-32
요엘서를 쓴 선지자 요엘은 남 왕국 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자이며 BC.830년경에 기록했다. 요엘(Joel) 선지자의 이름 뜻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며. 그의 아버지 이름이 1장 1절에 ‘브두엘’(Pethuel)이고. 그 뜻은 “여호와의 신실하심”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의 뜻을 보니 이 가정은 이름이 뜻하는 대로 하나님을 잘 믿는 신실한 가정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런 가정에서 요엘을 부르셔서 그 시대의 선지자로 쓰셨다. 남 왕국의 제 8대 임금이었던 요아스(BC835-896)왕 당시에 유다에는 전대미문의 엄청난 메뚜기 재앙이 일어났다.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그 메뚜기 재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장차 임할 것을, 요엘서의 서두에 경고하신다. 메뚜기 재앙은 밀밭과 포도원과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의 잎과 열매를 초토화 시켰다. 석류나무, 대추나무, 사과나무를 비롯하여 열매 맺는 모든 나무들이 다 시들었다.
그 당시의 실상을 요엘 1장 12절 끝에 보면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1장 11절에 보면,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 곡할지어다.”라고 하였다. 시대가 얼마나 황폐하여 졌는지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욜1:5)라고 했다.
여호와의 전에 드릴 소제와 전제인 곡물과 포도주를 구하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밭이 황무해지고 토지는 마르고 곡식을 떨어지고 새 포도주는 말라 버리고 기름도 다 하였다. 이렇게 참담한 시대에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게 하셨다.
요엘서를 처음부터 읽어 보면 메뚜기 재앙의 원인이 그냥 살다 우연히 경험하는 자연재해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남 왕국 유다 백성들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라 하신다. 그러니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민족으로 돌이키라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가 마지막 날들입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남종과 여종들, 자녀들은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노인들은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들은 이상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첫째 : 장래의 일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28절)
만민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그 후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표현은 앞으로 일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막연한 사건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미래의 어느 날, 하나님의 영이 만민에게 부어질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만민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모든 육체를 뜻합니다. 미래의 어느 날 연약하고 무기력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강력한 영이 임합니다. 여기서 만민이라는 말은 믿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곧이어 나오는 문장에서 '너희 자녀들', '너희 늙은이', 그리고 '너희 젊은이',를 지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행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그 결과로 '장래 일', '꿈', 그리고 '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들이 예언하고, 꿈을 꾸고, 환상을 볼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뜻을 달리 표현한 것입니다. 즉 어떤이들은 꿈으로, 환상으로, 예언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수단들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주님의 공동체가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하나님과 깊이 사귀게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영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그랬고, 사사들이 그랬고, 선지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특권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는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요엘의 예언의 성취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의 성령이 주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 여호와의 날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31절)
요엘서의 핵심주제는 여호와의 날입니다. 여호와의 날이라는 구약성경 전체에 16번이 언급됩니다. 16번 모두 예언서 안에서만 발견됩니다. 그런데 그 말이 요엘서에 5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엘서에 나오는 5번의 여호와의 날 가운데 3번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날(1:15, 2:1, 11)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두 번은 이방에 대한 심판(2:31, 3:14)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날은 두 가지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요엘은 전반부에서는 여호와의 날을 이스라엘의 삼판의 날로, 후반부에서는 이방인의 심판, 곧 이스라엘의 구원의 날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어떤 이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이며 또 어떤 이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심판은 근본적으로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의 날로, 또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과 신원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그렇게 둘로 갈라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요엘에 의하면 그것은 철저한 회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철저한 회개를 드린 것(2:12-14)에 대해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로 응답해주시기 때문입니다.(18) 이스라엘의 참된 회개로 인해 여호와의 날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요엘에 의하면 철저한 회개만이 여호와의 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근본적으로 철저한 심판의 날입니다.
그런데 그 심판의 날이 참된 회개, 철저한 회개를 통해 은혜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간단히 회개의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죄인이며 그것을 회개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회개의 참 의미는 죄 가운데 태어나서 세상의 방법을 따라 죄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이제 하나님의 영을 받아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방법에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 구원을 얻음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32절)
요엘은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발생할 일을 보여줍니다. 하늘에서는 해와 달이 핏빛으로 변하고 땅에는 피와 불기둥과 연기 기둥이 임합니다.
참혹한 전쟁이나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재난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엘은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사건들을 '이적(모페트)'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이적'으로 번역되었지만 이 낱말은 일상적인 것을 완전히 벗어난 상황을 가리키는 것으로 징조 혹은 표징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사건들은 단순한 이적이나 자연재해가 아닌 특정 사실을 상징하는 징조입니다.
여호와의 날, 곧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가리키는 징조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그런 징조가 나타날 때 이스라엘은 두 가지 사람으로 나뉠 것입니다.
참된 회개를 통해 여호와의 은혜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그것은 기쁨의 호칭일 것이며, 반대인 사람은 절대로 여호와를 부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부른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예배를 의미합니다. 단지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리고 오로지 여호와만을 예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때로는 신앙이 다른 이방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종국에는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고난을 거친 후에 반드시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그를 구원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구원과 축복은 역설적으로 고난의 길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심오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을 친히 감당하시고 이제 그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녀로 삼으시고 땅에서 천국으로 주소부터 이동하시고(엡1:20)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 하십니다. 지금도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신실하게 고수한 사람들에게는 고난이 멸망이 아니라 구원의 징조이자 구원에 이르는 관문이 되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