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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이 십자가 처형은 어떻게 나에게 실제가 됩니까? 존 오웬은 이것이 오직 '성령의 연합(Union) 사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강해합니다. 성령은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그리스도의 육신이 찢기실 때, 영적인 신비 속에서 우리의 '옛 사람(부패한 자아)'을 그 십자가에 함께 묶어 완벽하게 사형 집행을 완수하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아니면 십자가는 그저 역사적 사건에 머물 뿐, 나의 자아를 깨뜨리는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3. 절대 의존의 신비: '빈 그릇(Empty Vessel)'의 영성
자아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것은 심리적인 자학이나 염세주의적 자기 비하를 뜻하지 않습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자아 처형의 진정한 목적을 '절대 의존'이라는 위대한 신학적 원리로 승화시킵니다.
그리스도인이 거룩해지는 과정은 내면의 힘을 길러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힘이 완전히 고갈되어 영적인 '빈 그릇(Empty Vessel)'이 되는 과정입니다.
성령은 우리 자신을 독립적으로 강한 존재로 만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한순간도 그리스도 없이는 살 수 없는 철저한 무능력자임을 깨닫게 하시고, 매 순간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부터 생명력(수액)을 공급받지 않으면 말라죽을 수밖에 없는 포도나무 가지의 위치로 우리를 낮추십니다.
자아의 죽음이란 곧 자기 의존(Self-reliance)의 죽음이며, 그리스도 의존(Christ-reliance)의 장엄한 부활입니다.
4. 지속적인 십자가 내어드림 (Yielding to the Cross)
칭의의 십자가는 단번에 완성되었지만, 성화의 삶에 있어서 자아의 십자가 처형은 매일, 매 순간 지속되어야 하는 역동적인 순종의 과정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싱클레어 퍼거슨은 성령 충만을 '나침반'에 비유합니다. 나침반의 바늘이 언제나 북쪽을 향하듯, 성령은 언제나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향하게 하십니다. 혈기가 올라올 때, 교만이 고개를 들 때, 내 공로를 주장하고 싶을 때, 참된 성도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여 그 자아의 충동을 십자가의 사형 틀에 능동적으로 내어주는(Yielding) 자입니다.
내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의 의지를 성령께 온전히 굴복(Surrender)시킬 뿐이며, 내 안의 자아를 죽이시는 분은 오직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5. 제19강 결론: 자아의 죽음 끝에 피어나는 부활의 생명
목사님, 많은 성도들이 자아를 죽이는 십자가의 길을 두려워합니다. 자아가 죽으면 나의 존재 전체가 소멸하고 불행해질 것이라는 사탄의 거짓말 때문입니다.
그러나 앤드류 머레이는 영광스럽게 선포합니다. "자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내 안에서 폭발하는 찬란한 시작이다."
나의 얄팍한 지혜, 나의 불완전한 사랑, 나의 무력한 의지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비로소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무한한 지혜, 그리스도의 아가페 사랑, 그리스도의 전능하신 권능이 내 삶을 온전히 통치하시며 흘러넘치게 됩니다. 이것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기독교 성화의 궁극적인 절정이자, 율법주의의 멍에를 벗어버린 참된 자유의 삶입니다.
(제20강 예고: 드디어 오늘 목표하신 20강, '율법의 마침 - 성령 안에서 누리는 참된 복음적 자유의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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