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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권을 보좌하던 문무신 초상화
의정전을 돌아서면 독서당(讀書堂) 건물이 나온다. 이곳은 손권이 개인적인 사색이나 독서를 하던 곳으로 피서지답게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벽면에는 손견과 손책 그리고 손권으로 이어지는 오나라 왕가의 가계도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아울러 다른쪽 벽면에는 손권을 보좌하던 신하들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 피서궁
▶ 피서궁 내부
그 뒤로 연회를 즐기던 피서궁이 자리 잡고 있다. 손권의 왕좌를 중심으로 연회석이 배치돼 있다.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의 전통악기인 편경과 비슷한 동종이라는 악기도 같이 보존돼 있다. 당시 원형 그대로 발굴된 진품은 박물관으로 옮기고 복제품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무창루(武昌樓)
피서궁 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5층 누각 무창루(武昌樓)가 나온다. 1층과 3층, 5층 누각 전면에는 목궁오초(目窮吳楚), 기장동서(氣壯東西), 무창루(武昌樓)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원래는 봉화대가 있던 곳이었으나 세월에 따라 모양이 변해오다 2003년 지금의 화려한 누각으로 변신했는데 아래 기단 높이가 옛 봉화대 높이란다. 서산 정상의 높이는 해발 170m 남짓하지만 주변지형이 낮아 사방으로 창장과 어저우 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쉽게도 무창루 곳곳에 낙서투성이다. 허술한 관리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 피서궁 전경
피서궁의 목조로 지은 옛 건물들은 세월의 풍파 속에 모두 사라졌다. 지금의 건물은 흰개미들이 워낙 기승이라 아예 시멘트로 지었다고 한다. 아무리 피해가 심하다고 하지만 역사적 고증 없이 시멘트로 지었다는 이들의 편한 생각이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30분이다. 천천히 걸어 서산공원을 둘러보는데 거의 3시간 반이 걸린 셈이다.
서산공원을 걸어 내려와 서산공원 입구 맞은편 시내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손권광장으로 간다. 손권광장은 어저우 시내 쪽 창장(양쯔강)변에 조성된 수변공원 앞에 조성된 광장으로 시내버스로 10분 정도 걸린다.
▶ 수변공원
어저우는 오나라의 수도답게 시민들도 손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최근 들어 대대적인 오왕고도(吳王古都)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그 첫 번째 공사가 창장을 따라 조성되고 있는 수변공원이다.
▶ 손권광장 조형물
▶ 손권광장의 손권 석상
손권광장은 20m의 손권 동상을 중심으로 강변을 따라 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슬비가 내리는 손권광장엔 강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어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손권석상만이 나를 맞이하고 있다. 왼손에 칼을 들고 오른손을 벌리고 서 있는데 듣던 대로 코가 서양 사람처럼 높고 눈이 부리부리한 것이 위압감을 주는 인상이다.
▶ 관음정(觀音亭)
▶ 관음정(觀音亭) 표석
손권광장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뿌연 안개 속에 장강을 오르내리는 배들이 바쁜 가운데 돌섬 위로 우뚝 서 있는 만리장강제일각(萬里長江第一閣, 길고 긴 장강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란 관음정(觀音亭)이 눈에 들어온다. 손권이 처음 어저우를 방문했을 때 관음정이 들어서 있는 돌섬에 용이 꿈틀거리고 멀리 피서정이 있는 서산에는 봉황이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여 이곳은 왕이 머무를 곳이라며 건업(建業)에서 이곳으로 도읍지를 옮겼다고 한다.
▶ 어저우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부조
손권광장에서 성 모양으로 만든 제방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강을 따라 수변공원이 조성돼 있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수변공원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걷기 좋도록 돌로 만든 난간과 보도로 만들어져 산책하기엔 좋은 것 같다. 수변공원 곳곳엔 어저우의 역사와 문화를 석조 벽에 부조로 새겨 놓았지만 어저우 역사까지 공부하지 않은 나에겐 다른 곳과 다름없는 조형물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여행이란 참 어렵다. 내가 만나는 곳의 역사나 지리, 문화를 다 알 수도 없고 그냥 지나치려니 뭔가 섭섭하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모르니 그냥 지나칠 수 밖에. 그래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개략적인 설명이라도 해 놓은 안내판이라도 설치해 놓는 게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은 아직 역사나 문화에 대한 하드웨어에만 집중할 뿐 소프트웨어에 대해선 신경을 못 쓰는 것 같다.
수변공원 제방 위 공원에는 누각들이 대여섯 채가 보이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비와 바람으로 더 이상 돌아보기 어렵다. 벌써 시계도 오후 4시가 까까워진다. 서산공원에서 이곳으로 올 때 탄 시내버스를 타려고 버스터미널 쪽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시내버스가 이곳으로 오지 않는다. 물어 볼 사람도 없고 해서 반대편 정류장으로 건너가 상점에서 물어보니 버스터미널로 가려면 이곳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서산시장 앞에서 내려 걸어야 한단다.
▶ 아파트에도 오왕(吳王)이란 이름을 사용한다
어저우 고성 흔적은 도심의 상업지구 가운데 오왕성유지(吳王城遺止)라는 기념물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당시 고성은 토성이라 지금은 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대신 당시 방어를 위해 창장과 연결해 해자로 사용됐던 호수 난후(南湖)가 유일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도 상업적인 목적인지는 몰라도 곳곳에 오왕(吳王)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건물이나 가게 등이 눈에 띤다.
짧은 일정과 비 때문에 오나라박물관 등 어저우를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이제 우창으로 돌아가야 한다. 버스터미널에서 16시30분 버스를 타고 우창으로 돌아온다. 우창역 인근에서 버스를 내려 내일 츠비(赤壁)로 가는 기차표(특쾌, 잉쭤, 1人/18.5元)를 사 호텔로 돌아온다.
▶ 황학루<퍼 온 사진>
▶ 출입구가 닫혀 멀리서 바라본 황학루
호텔에 작은 배낭마저 내려놓고 시내버스로 우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랜드마크인 황학루(黃鶴樓)로 향한다. 황학루는 처음 형주(荊州)성을 뺏은 오왕 손권이 촉(蜀)과 싸우기 위해 서산 서쪽 기슭에 쌓은 망루였으나 당, 송 시대를 지나며 시인묵객들의 풍류를 위한 누각으로 변해 점점 화려해지고 규모도 커졌는데 현재 황학루는 청나라 말 화재로 소실된 건축양식을 되살려 1984년 재건축한 것으로 당시는 목재 건물이라 전소되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지붕 꼭대기를 장식하며 피뢰침 역할을 하던 고동정만이 유일하게 남아 남쪽 정원을 장식하고 있으며 현재 위치도 창장대교를 세우기 위해 원래 위치인 강변에서 1km나 뒤로 물러나 있는 황학루는 높이 무려 55.47m에 이르는 중국에서 가장 높은 누각으로 지붕과 각 층의 처마 위에는 노란색 유리 기와를 얹었고 72개의 커다란 원형 기둥이 받치고 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신분을 감춘 중국의 8대 신선 중 한 명인 여동빈이 신분을 감춘 자신에게 1년씩이나 공짜 술을 베푼 술장수 신 씨를 위해 학 벽화를 그려 주면서 박수를 치면 이 학이 밖으로 나와 춤을 출 것이라고 말한다. 덕분에 많은 돈을 번 신 씨는 다시 돌아온 여동빈이 그 학을 타고 떠나자 그를 기리기 위해 이곳에 황학루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황학루는 수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찾아 수려한 경치를 노래했지만 정작 황학루를 대표하는 시는 최호(崔顥)의 등황학루(登黃鶴樓)다. 이곳을 찾은 이백에게 주변사람들이 황학루의 아름다움을 칭송할 시를 부탁했다. 이백은 이곳에서 창강을 바라보며 시상에 젖어있다 최호의 시 등황학루를 보고 ‘더 이상 무슨 말로 황학루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겠느냐?’며 붓을 놓았다고 한다. 그 후 최호의 시는 황학루를 대표하는 시가 됐고, 최호의 명성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등황학루(登黃鶴樓) - 최호(崔顥) 昔人已乘黃鶴去 (석인이승황학거) 옛 사람 황학 타고 이미 가버려 此地空餘黃鶴樓 (차지공여황학루) 땅에는 쓸쓸히 황학루만 남았네. 黃鶴一去不復返 (황학일거불부반) 한번 간 황학은 다시 오지 않고 白雲千載空悠悠 (백운천재공유유) 흰 구름 천 년을 유유히 떠 있네. 晴川歷歷漢陽樹 (청천력력한양수) 개인 날 강에 뚜렷한 나무 그늘 春草處處鸚鵡洲 (춘초처처앵무주) 앵무주에는 봄풀들만 무성하네. 日暮鄕關何處是 (일모향관하처시) 해는 저무는데 고향은 어디인가 煙波江上使人愁 (연파강상사인수) 강의 물안개에 시름만 깊어지네. |
▶ 불 꺼진 황학루
이런 황학루의 야경과 황학루에 올라 우한 시내와 창장의 야경을 구경하려 했던 나의 욕심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황학루 관람시간이 끝났고 야간 관람은 없어 입구에서 닭 쫓던 개 신세로 멀끔히 황학루만 바라본다. 가이드북에서 휘황찬란하게 불 켜진 황학루 사진과 황학루를 소개하는 글만 보고 정작 관람시간을 체크하지 못한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항상 최선의 준비를 한다고 하지만 내가 이런 실수를 할 줄 이야! 아내에게 잔득 기대감을 심어줬는데 “미안하다.”고 하니 아내가 “어떻게 국내도 아닌 외국 여행을 하면서 모든 걸 다 알 수 있어? 그냥 바람 쐬러 나왔다고 생각하고 호텔로 돌아가죠.”라고 나를 감싸 준다.
▶ 안개 속의 창장
아쉬움을 뒤로 하고 창장대교로 향한다. 안개가 자욱한 창장대교 남단에선 강 너머 한커우(漢口)의 야경은커녕 창장을 오르내리는 배들의 불빛마저 희미하다. 오늘 저녁일정을 접고 호텔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