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과몰입이라 글 길어...)
그러면 이제 얘네 둘이 결혼을 하는데 둘 다 결혼 자체에는 크게 불만 없음
근데 른 저렇게 생겨놓고 ㅈㄴ 나긋하고 다정해야 함..
다른 커플들 하는 거 은근 다 함
결혼하기 전에 몇 번 만나서 데이트 하는데 식당도 예약해놓고 분위기 좋은 데서 차도 마시고 가끔 별 이유 없이 연락해서 드라이브도 가고 그러다가 어느 날 야경 죽이는 데서 슬쩍 반지 꺼냄
생각보다 날짜가 빠르게 정해져서 이른 감이 있지만 프로포즈도 없이 결혼하는 건 좀 그렇지 않냐면서 조용한데 또 약간 맹숭맹숭하게 멘트 치고 직접 반지 끼워줌
근데 반지 사이즈 딱 맞고 평소 스타일에서 과하게 튀지 않지만 또 아예 무난하지도 않은 그런 디자인으로 딱 봐도 고심해서 고른 티가 남
결혼 준비에서 걸리는 거 없음 집에 신경 많이 쓰는 왼이 하자는 대로 거의 다 진행됨
거의 우리 공주 하고 싶은 거 다 하란 식
가끔 만나면 자기가 너무 바빠서 혼자 준비 다 하게 해서 미안하다면서 맛있는 거 먹이고 신혼여행 갈 때 들고 가자고 신상 가방 같은 거나 사들고 옴
그러고 예복 보러 가면 또 엄청 다정하게 웃으면서 너무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줌 꼭 진짜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결혼하게 되는데
막상 결혼하고 나서도 이게 정략결혼인지 연애결혼인지 헷갈림
웬만한 부부들이랑 다를 것도 없음
그냥 밥 먹다가 캠핑 가고 싶단 얘기 나오면 주말에 시간 빼서 놀러 가는 거임
남들이 보면 부부보단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처럼 보이겠지 왜냐면 스킨쉽 1도 없음
진짜 그냥 야무지게 놀다 옴
근데 서로 멀리 안 떨어짐
집에서도 방 같이 쓰고 놀러가도 방 하나 잡음
각자 집안에 일 있으면 여느 부부들처럼 같이 참석해서 꼰대들 잔소리도 나란히 듣고 적당히 실드도 쳐주고 그래라
부부들이 쓰는 언어도 별로 낯간지럽지 않게 받아들임
이쯤 되면 왼이 슬슬 헷갈림 이 형 진짜 나 좀 좋아하나?
왜냐면
둘 중에 각자 집안에 더 잘하는 사람? 른임
왼 집안 꼰대밭이라 만날 때마다 2세 얘기 꺼내는데 고작 몇 살 많은 것도 짬이라고 능숙하게 받아침
집에 가는 길에 왼이 미안하다 해도 그냥 웃고 넘김
둘 중에 기념일 더 잘 챙기는 사람? 이것도 른
솔직히 사랑해서 결혼한 건 아니니까 서로가 서로한테 큰 기대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바라지도 않았는데 그날 른이 선물이랑 꽃다발 사왔음
왼은 선물보다 꽃 때문에 더 심란함
보통 선물은 친구한테도 줄 수 있지만 꽃?? 꽃은 특별한 사이에나 주고 받는 거 아니었어?
본인은 본인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꽃 주는 거 평생 본 적도 없음
그래서 계속 꽃 만지작거리다가 아 우리 이렇게 계속 부부로 사는 건가부다 모 나쁘지 않을지도? 열렬히 사랑해서 만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도 괜찮고 몇 달 살아 보니까 제법 잘 맞기도 하고.... 그런 사고 과정을 거쳐 처음으로 스킨쉽 시도함
그러면 처음엔 좀 당황하던 른도 의외로 자연스럽게 받아줌 그리고 더더욱 확신을 가지게 된 왼
무슨 확신이냐면 우리 둘은 부부 땅땅땅
이대로 모든 게 괜찮은 것 같음 다 잘 맞음
그렇게 알콩달콩(?) 한두 달 더 살다가 명절 지나고 또 집안에서 애 얘기 나오면 말 나온 김에 생각이나 해볼까 싶은 왼이 집에 가는 길에 물어보겠지
형은 아이 생각 있어? 그러면 운전하던 른이 별 동요도 없이 별로? 이런다
그러면 왼은 또 좀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어
왜냐면 왼은 른이 좀 이상적인 가정?을 꿈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결혼 전부터 모든 게 정석코스였으니까
부부라면 이렇게! 같은 책 한 권 써도 될 사람인데 애는 별로? 뭐 본인은 상관 없지만.. 집안 어른들은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지지 아이 얘기가 안 나올 리는 없을 테니 미리 입이라도 맞춰두자 하는 마음으로 왜? 물어보는데 이때 른이 그런다
애 있으면 헤어질 때 번거롭지 않을까
....? ㅁㅓㄹㅏ고.....?
이게 무슨 소리야 누가 누구랑 헤어져 이게 머선 말이고 상태 된 왼이 멍때리다가 형 나랑 헤어질 거야...? 하면 른이 또 그 빌어먹게 다정한 얼굴로
내가 헤어진다기보단..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이지랄;;
진짜 어이가 없어서 왼이 따지면 한 마디도 안 져야 됨
아니 무슨 이혼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일이야?;
ㄴ 결혼도 그렇게 했잖아
그럼 그동안 왜 부부처럼 굴었어?
ㄴ 부부니까..?
암튼 이딴 과정을 거치고 현타 거하게 맞은 왼이 이혼하자고 하자.. 그래서 결국 그렇게 이혼하게 되는 거지...
근데 그거 알지... 정략결혼은 이혼하고부터가 진짜다.....
이혼했는데도 자꾸 어디선가 얼굴 보게 되는 둘
여기가 무슨 할리우드입니까?
ㄴ 원래 썰은 그런 맛입니다
존나 둘 다 얼굴 멀끔해가지고
요지랄로 마주치게 되면;;; 존나 짱나는 거임
아 싀바 담부턴 이딴 데 안 온다 진짜... 하는 왼이랑
음 역시 잘생기긴 했네 이딴 생각이나 하는 른을 내가 조와해
문제는 이러다가 부득이하게 말 섞을 일 생기면 서로 으르렁거리지도 않음
둘은 모르지만 둘이 붙을 때 생기는 묘하게 친근하고 말랑한 분위기가 남아 있어야 함
아무튼 이런 식으로 내가 이혼한 전남편 얼굴 여기저기서 보는 것까지 익숙해져야 하나 금수저 인생 쉽지 않네 생각할 때쯤
어느 날 무심코 티비 틀었는데
뉴스에서 이딴 장면이나 봐 버려라
존나 뭐 기업 비리든 뭐든 빵빵 터져라
뉴스고 신문이고 른네 집안 얘기로 도배돼라
그리고 중요한 건 른이 억울해야 함
그러면 왼은 줜ㄴㄴ나 짱나고 빡치고 속이 타들어감
애초에 결혼 이혼이 기업끼리 모종의 이유로 진행된 거니까 왼네 집이라고 엮여 있어서 이상할 거 없지
암튼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전화하면 또 개짜증나게 다정한 목소리로 어, 민규야. 하고 전화 받아서 열받게 만들어라
왜 열받는지는 모르겠는데 목소리 딱 들으면 쫄쫄 굶었구나 싶은 게 고작 1년 남짓 살고도 부부였다고 그게 훤히 보이니까 무시하지도 못하겠고 솔직히 전화도 왜 했는지 모르겠는데 다른 게 아니라 밥은 먹여야 할 것 같아서 자기도 모르게 밥이나 먹자고 해 버리라구
이때 당연히 거절해야 됨
그리고
왼은 그 거절에 좀 충격받아야 함
생각해보니까 이 남자가 자기 말에 싫다 안된다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음
가뜩이나 머리도 복잡해죽겠는데 뭐가 안돼 안되긴;; 형 너 어디냐고 왜 나랑 밥 안 먹는데 물어보면 른이 잠깐 침묵하다가 그러는 거지
민규야. 우리가 밥을 왜 같이 먹어.
이래서 이제 왼은 꼭지가 도는 거지... 아니 밥도 같이 못 먹어?? 너랑 나랑 1년을 한 이불 덮고 살았는데!!!! 심지어 우리 같이 잤잖아!!! 좋다매!!!!!
개열받아 아무튼 저 형은 말 한 마디 하는 것마다 다 열받아 뭐가 그렇게 다 괜찮고 주어진 대로 사는 건지 모르겠어 살면서 보니까 막상 명예욕 이런 것도 없어 보이더만 집안에서 시키는 건 왜 다 하고 앉았어?? 결혼도 하라니까 하고 이혼도 하자니까 하고 너는 니 인생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냐?
신문에서 니 이름 볼 때마다 내 심장이 다 철렁하는데 야 내가 니 걱정을 해서 그런 게 아니고!!!
아무튼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널 사랑한 것도 아닌데
난 그냥 니가 밥은 먹었으면 좋겠다는 거야 아무도 안 챙겨주면 수시로 굶으니까
근데 내가 이런 걱정하는 게 좀 이상한가?
남들이 보면 웃길 것 같아?
너도 이런 내가 웃기고 성가시고 그래?
나는 그래 내가 웃겨
내가 왜 이렇게까지 애가 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한 것도 아닌데
이런 게 좋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