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힘내, 그리고 미안해!!!
김규진
99881234, 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 이틀 아프다가 삼일 째 되는 죽는다는 말이다. 최근 백세 시대에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바램이 담긴 유행어다. 어머님이 지난 1월에 4개월 부족한 99세에 소천하셨다. 비록 요양원에 6년간 의탁하시다가 돌아가셨지만, 며칠 간 산소포화도가 부족한 증상을 보이다가 새벽에 잠이 드신 채 운명하셨다. 흔이들 말하는 호상이었다.
삼일 간 상을 치룬 후 엄마 유품도 가져오고, 1월달 요양원비 정산을 위해 요양원을 찾았다. 그런데 원장이 요양원비 정산은 셋째 누님이 하신다고 하니 안해도 된다고 하였다. 아니다 그래도 내가 마무리 할테니 정산내용을 달라고 했더니, 원장은 계속 쭈뼛거리기만 했다. 분명 그간 요양원비에 무슨 문제가 있는게 분명했다. 왜 그러시냐며 계속 추궁을 하니, 원장은 한참 망설이다가 한 장의 서류를 출력해 주었다.
서류를 보면서 놀라기도 했지만 어리둥절 하기도 했다. 지불되지 않은 요양원비가 740만원이나 되었다. 그동안 요양원비는 2남 4녀인 6형제가 매달 동일한 금액을 부담하였고, 공동 계좌와 요양원비는 셋째 누님이 관리 해왔다. 얼마 안되는 어머님의 노인연금 통장까지 말이다. 원장은 미납 사정을 들어 준 본인의 잘못도 있다고 난감해 하면서도, 누나의 어려운 사정을 들어 줄 수 밖에 없었다고 하소연 하였다.
사실 원장님의 따님이 내가 활동하는 독서모임 회원이기에 알고 지내 온 지인이기도 하다. 회원의 소개로 어머님이 요양원에 들어가시는 계기가 되었고, 그런 인연 때문에 누나의 사정을 거절 할 수 가 없었던 것이다. 유독 우리 어머님 요양비만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확인하기도 했다. 어찌 생각하면 관리부실로 눈 덩이처럼 많이 체납된 요양원비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오랜기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용인해 준 원장님의 따듯한 인정이 너무나 고맙기도 하였다.
동행한 아내는 '어쩜 그럴 수 있지 엄마 연금까지, 다른 시누이들(특히 둘째, 막내 누나)알면, 돈을 유용한 사실에 노발대발, 난리 부르스 칠 텐데, 어쩌면 좋아, '라며 덩달아 자기가 더 난리부르스를 쳤다. "누나가 장사하는데 많이 힘든가 보네" 라는 내 말에는 "누나가 저지른 일이니 누나가 수습할 일이니까 당신 행여나 책임 질 생각 마세요" 라며 나의 판단을 꼼작 못하게 한 방을 날렸다. 아내에게는 알았다고 하면서 다른 형제들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그날은 발길을 돌렸다.
누나는 셋쩨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 간다는 옛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인성의 소유자다. 오빠, 언니와 동생들에게 벌어지는 대소사를 늘 챙기고, 살아 생전 엄마도 제일 좋아하셨다. 그런데 남편과 큰 딸이 장애인이고, 아들은 마흔 줄 가까이 백수다. 직장을 퇴직하고 조그만 치킨 집을 운영하지만 경제라는 큰 짐이 모두 다 누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재료와 가격인상은 손님 발길을 잡아두고, 몇달 전에는 가게 안에 도둑이 들어 보안 관련 리모델링을 하느라 허리가 휘청거렸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며칠 동안 잠도 오지 않고, 출근을 해도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잠 못드는 밤 환영 속에 엄마가 나타나 말씀하셨다. '아들, 엄마 마음 알지? 현명한 판단 해줄거라 엄마는 믿는다.'라고...
다음 날 원장님과 점심을 같이 하면서 요양원비 전부를 이체했다. 아내와 누나에게는 꼭 비밀로 해달라는 당부와 함께 누나에게는 미납 금액 독촉은 하지말고, 요양원비 내는 데로 나한테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원장님의 환한 미소를 뒤로 하고 돌아 오는 길에 핸드폰 속 엄마 사진을 보며 말했다. '엄마! 나 잘했지? 그런데 누나한테 요양원비 해결했으니 이제 걱정 말라는 전화는 못했어. 미안해' 돌아와서 마시는 커피 향이 유독 찐하게 느끼면서, 막혔던 쳇기가 가신 듯 심신이 평온해졌다.
어머님은 막내아들 정년 퇴직 5개월 전에 돌아가셨다. 아직 현직 신분인 덕분에 적지 않은 부조금이 들어왔기에 어렵지 않게 손님들을 잘 접대했고, 형제들 간에 싸움도 없었으며 아버님 산소 이장과 더불어 부부 합동 납골당에 모셨다. 누나의 어려운 상황을 알게 되고 요양원비도 순조롭게 해결했다. 이 모든게 형제간 우애를 지키려 했던 어머님의 마지막 바램 아니었을까? '누나, 요양원에서 그 동안 보내 온 돈이 2백만원이야. 아직 540만원이 더 남았지만 난 괜찮아, 누나 힘내, 그리고 미안해! 오늘 저녁엔 치맥하러 갈께'
첫댓글 자녀간의 우애와 화합은 부모의 가장 큰 바람이겠지요. 어려운 상황에도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님을 챙겨 주셨던, 누나의 딱한 사정을 걱정하시고 배려해 주신 마음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처럼 요양원 원장님의 따뜻한 마음도 느껴집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기 어려울거라는 짐작도 되고요. 김규진 선생님의 큰 마음으로 인해 여러 사람이 편해질 수 있었겠습니다. 어머님께서도 편안하실거라 믿습니다. 누나의 삶이 더욱 안전한 생활로 변해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에피소드
어미님께서 6년간 요양원에서 지내셨지만 백수를 누리시고 살다 가신 아름다운 삶을 사셨습니다. 여건 상 어머님을 자식들이 직접 모시지 못하고 요양원 에서 생활하실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한 책임감, 죄송함 등을 감안해서 6형제가 요양원 비용을 공동 부담하기로 합의해서 진행해 왔으나 어머님의 요양원 비용이 장기간 체납되어 있다는 사실에 황망함을 금하고 있는 형제분들의 마음에 공감합니다. 많은 금액이 체납되었음에도 따뜻한 마음으로 배려해준 요양원 원장님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까지 문제가 될 만큼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원장님의 관리 문제도 지적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째 따님의 어려운 가정 환경에 대한 글을 읽어가면서 목이 울컥했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형제들간에 좀더 소통하고 나눔을 가졌드라면 좋았을 것을... 6형제 중 정말 어렵게 가족을 돌보며 힘겹게 가장 역할을 다하고 있는 세째 따님이 형제들이 보내준 어머니의 요양비용까지도 체불하고 우선 본인을 위해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듣고 성찰하고 화합하는 내용으로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