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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장『장길산(張吉山)』 Ⅰ. 서론(序論) 황석영 작가님의 대하소설 『장길산』은 역사 기록 속에 단편적으로만 남아 있던 '장길산'이라는 인물을 작가가 찾아내어,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당대 조선 사회의 격변기를 장강대하처럼 펼쳐낸 작품입니다. (황석영 저) 숙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천노(賤奴)의 아들로 태어나 광대가 되었다가 의적이 된 장길산의 삶을 중심으로, 봉건 체제가 동요하고 신분 질서가 문란해지기 시작하던 조선 후기 민중들의 참담한 생활과 저항을 생생하게 복원합니다. 『장길산』은 단순한 역사 소설을 넘어, 노비, 광대, 농민, 상인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통해 당시 사회의 변화상과 민중사를 총체적으로 그려내며,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 미륵보살의 용화세계를 꿈꾸었던 민중들의 간절한 염원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장길산』이 다루는 역사적 배경과 인물, 민중운동의 양상, 그리고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의도와 문학적 특징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Ⅱ. 본론(본론) 『장길산』은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주인공 장길산의 삶과 당시 민중들의 저항을 입체적으로 그려냅니다. 첫째, 주인공 장길산의 성장과 활빈행. 천노의 아들로 태어나 광대 마을에서 자란 장길산은 총명하고 힘센 젊은이로 성장하며 현실의 모순에 눈을 뜹니다. 그는 같은 광대인 이갑송, 상단 행수 박대근 등 다양한 인물들과 의형제를 맺고, 옥중 체험을 통해 새로운 삶을 다짐합니다. 금강산에서 운부대사를 만나 입산수도를 마친 후, 여러 두령들과 함께 녹림당을 조직하여 본격적인 활빈행(活貧行)을 시작합니다. 부패한 지배 계층에 맞서 민중을 돕는 의적 활동은 작품의 중심 서사를 이루며, 그의 실천력은 점차 민중에게로 확대됩니다. 둘째, 격변하는 시대상과 민중운동의 양상. 『장길산』의 배경인 17세기 말 숙종 시대는 신분제의 동요와 해체가 심화되고, 상업 및 민간 수공업이 발달하는 등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겪던 시기입니다. 작가는 노비, 광대, 농민, 상인 등 다양한 민중들의 삶과 함께 검계, 살주계 사건, 미륵 신앙 운동 등 당대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저항들을 작품 속에 녹여냈습니다. 이러한 민중운동들은 때로는 과격하거나 신비주의적인 성격을 띠기도 하지만,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갈망했던 민중들의 간절한 꿈을 보여줍니다. 셋째, 작가의 역사 인식과 문학적 시도. 황석영 작가는 『장길산』을 통해 '현대의 전사(前史)'로서 민중적인 근대사를 복원하고자 했습니다. 1970년대 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후기 조선 사회의 변화상을 민중의 시각에서 재현하고, 역사 기록에서 사라진 장길산이라는 인물을 통해 민중 저항의 역사를 재창조하려 했습니다. 특히 장길산이 다른 민중운동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모습을 통해 '민중의 진정한 신뢰가 뒷받침된 사회변혁 운동 노선'을 주장하며, 이를 '오늘날 민중운동과 연결되는 역사와 문학의 접점'으로 제시합니다. 또한, 『토지』와 유사하게 토의 구조, 판소리 양식, 일대기 구조 변형 등 한국 고유의 문학 전통을 현대적으로 수용하고, 풍부한 방언과 속담을 사용하여 작품에 생생한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장길산』은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된 '열린 장르'이자 '총괄체 소설'로 평가받습니다. Ⅲ. 결론(結論) 황석영 작가님의 『장길산』은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의적 장길산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격동기의 민중사를 복원하고 재창조한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천노에서 의적으로 성장한 장길산의 삶과 그의 활빈행은 당대 민중들의 고통스러운 현실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염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작가는 다양한 민중 계층과 저항 운동의 양상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체험된 역사'로서의 민중사를 복원했습니다. 또한 한국 고유의 문학 양식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풍부한 언어 표현을 사용하여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높였습니다. 『장길산』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넘어, 오늘날에도 사회의 모순에 맞서 인간적인 삶과 정의를 추구하는 '민중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자,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Ⅳ. 감상(感想) 및 해석(解釋) 『장길산』에 대한 글을 읽으며 느껴지는 감상(感想)은 역사 기록에 짧게 언급된 인물을 이렇게 생생하고 방대한 서사로 되살려낸 작가의 상상력과 집념에 대한 경이로움입니다. 특히 공식적인 역사 기록이 아닌, 민중들의 구전 속에 남아있던 인물에 주목하여 민중의 시각에서 역사를 재구성하려 했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이는 역사가 승리자나 지배층만의 기록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저항 속에도 존재함을 보여주는 강력한 시도로 해석됩니다. 장길산이 단순히 무력적인 영웅이 아니라, 다른 저항 세력의 한계를 비판하며 민중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변혁을 꿈꾸는 모습은 그의 고뇌와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또한 판소리나 고전 산문 같은 전통적인 이야기 방식을 작품 속에 녹여내고 방언을 살려낸 점은, 『장길산』이 단순히 역사 소설을 넘어 우리의 문화적 뿌리와 정신을 담아낸 작품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합니다. 이 작품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고, 진정한 변화와 저항의 의미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고 해석합니다. |
| <줄거리> 『장길산(張吉山)』의 <장길산>과 역사 황석영의 <장길산>은 「한국일보」에 1974년 7월 21일부터 연재를 시작하여 두 번의 연재 중단이 있기는 했지만 1984년 7월 5일 총 2,092회로 막을 내리기까지 근 10년 가까이 신문에 연재되었다. 그 후 1984년 현암사에서 전 10권으로 출간되었고, 이후 출판사를 옮겨 1995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상당한 첨삭이 이루어진 개정판이 나왔고, 2005년에 12권으로 새롭게 단장되어 출간되었다. 황석영의 <장길산>은 발표 이후 해방 이후 남한에서 창작된 역사 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받아 왔다. 그리하여 식민지 시대 최고의 역사 소설인 홍명희의 『임꺽정(林巨正)』의 뒤를 잇는 작품으로, 나아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이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이야기한 3대 도적, 홍길동과 임꺽정을 거쳐 <장길산>이 소설화됨으로써 허균의 「홍길동전」, 홍명희의 「임꺽정」과 함께 황석영의 <장길산>은 3대 의적 소설의 하나로 불리게 되었다. (p.234) |
| <장길산>은 제목대로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장길산>이라는 인물을 작가가 찾아내어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시대적 변화를 장강대하(長江大河)처럼 엮어 놓은 장편 역사 소설(歷史小說)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은 주인공 <장길산>의 형상에서 일차적으로 규정된다. 천노(天怒)의 소생인 그가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의지를 키워 나가는 과정,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녹림당(綠林黨)을 조직하여 지배계층에 대항하는 활빈행(活貧行)의 모습, 그리고 그러한 집단의 실천력이 점차 민중에게로 확대되는 사회적 과정이 바로 작품의 기본 골격이다. 여기에 노비 · 광대 · 농민 · 창기· 광부 등 후반기로 접어든 조선시대의 수많은 민중을 작중인물로 한데 묶어 그들의 참담한 생활, 그리고 상인 세력의 부상과 중인층의 성장, 기층민의 신분 해방 운동과 미륵신앙 등을 통해 신분 체계가 문란해지고 봉건 체제가 서서히 동요 · 해체되기 시작하는 격변기의 사회상과 민중사를 복원하였다. 한마디로 <장길산>이라는 역사 인물을 중심으로 검계(劍契)와 살주계(殺主契) 사건, 녹림당(綠林黨) 이야기를 통해 미륵보살의 용화세계(龍華世界)를 꿈꾸는 의적 집단의 활동을 축으로 당시 민중의 고통스러운 삶의 실상을 드러내는 한편, 미륵보살의 세계를 갈망하며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민중의 간절한 꿈을 문학적으로 창조해 낸 것이다. 사실 <장길산>은 오랫동안 자료 속에 묻혀 있었던 인물이었다. 연산군 때 실제로 충청 · 강원 일대의 도적이었던 홍길동과 명종 때의 도적이던 임꺽정은 토포(討捕)되어 관의 '정식기록(正式記錄)'에 남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끝내 잡히지 않았던 <장길산>은 남겨진 기록의 내용만으로도 매우 특이하다. 역모에 가담까지 하다가 어느 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설적 존재와 같다. <장길산> 일당의 활약에 관해서는 『숙종실록(肅宗實錄)』과 죄인들에 대한 공초기록(公抄記錄)인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중 『이영창등추안(李榮昌等推案)』에 부분적으로 언급되어 있으며, 『성호사설(星湖僿說)』,『임꺽정조(林巨正條)』에도 그에 관한 풍문이 조금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런 기록 속에 <장길산>은 관의 기찰에 포착되고 나서도 20여 년 동안 활동했으며, 노비에서 광대로, 그리고 구월산의 화적으로, 나중에는 마상에 의거한 상단으로, 드디어는 산간의 미륵 승병들과 결탁하고 조정에서 물러난 남인 선비 세력들에 줄을 대어 '병자역란(丙子逆亂)'이라는 역성혁명에까지 가담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p.235) |
| 작가는 오래전에 <장길산>이 사라진 뒤에도 그에 관한 소문이 민중들의 구전을 통하여 끊임없이 전해졌다는 점을 주목하여 민중 전설의 민족적 대서사화(大敍事化)를 시도한 것이다. 사실 <장길산>이 주로 활약했던 17세기 말은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사회적으로도 일대 전환기로서, 조선 후기 민중운동의 동향을 예감케 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빈발했던 시기였다. 작가는 이러한 여러 사건을 하나의 줄거리로 통합 함으로써 당대 민중운동의 실상을 폭넓게 그려 내는 중심 고리로 <장길산>을 역사에서 다시 살려낸 것이다. 그리하여 <장길산>은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길산은 구월산 재인(才人) 마을에서 총명하고 날렵하며 힘센 젊은 광대로 성장한다. 길산은 같은 광대로 힘이 장사인 이갑송(李甲松)과 함께 해주의 간악한 장사치인 신복동 패를 혼내 주고, 송도 상단의 행수이며 의리의 사나이인 박대근을 알게 된다. 그를 위해 갑송과 함께 신복동 패를 징치(懲治)한 후 달아나다가 혼자 붙잡혀 사형수가 되어 처형의 날만 기다린다. 때마침 길산은 해주 감영 옥의 회자수 망나니로 전락해 겨우 목숨을 이어가던 우대용을 만나고 박대근의 도움을 얻어 탈옥할 기회를 찾다 마침내 탈옥에 성공한다. 옥중 체험을 통해 길산은 현실의 모순에 새롭게 눈을 뜨고 앞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 갈 것을 다짐한다. 길산의 혼인식에서 박대근, 마감동, 우대용 외에도 장연의 소금장수 출신 역사(力士) 강선홍, 버림받은 선비 출신 학자로 구월산 녹림당 패거리가 된 김기, 구월산 화적 오만석 등이 모여 형제의 의를 맺는다. 길산은 생각하는 바가 있어 금강산에 은거하여 전국의 승려와 천민 세력을 모으고 있는 운부대사를 찾아 떠난다. 마침내 운부대사의 문하에서 입산수도를 마치고 돌아온 길산은 여러 두령과 함께 활빈행을 결의한다. 그리하여 작품의 후반부인 <잠행>에서부터 <장길산> 무리는 활빈도로 자처하며 본격적인 의적 활동을 대대적으로 벌여나간다. 그런데 <잠행>의 후반부에서는 작품의 주류를 이루는 <장길산> 일당의 활빈도와는 별도로, 검계와 살주계 조직의 활동이 흥미진진하게 다루어졌다. 제4부 <역모>에서는 검계 · 살주계의 잔여 세력과 <장길산> 휘하의 활빈도가 승려세력과 합류하여 미륵신앙의 이념 아래 '역성혁명과 입국'을 추진한 이른바 미륵 신앙사건이 묘사되고 있다. (p.236) |
| 그리고 미륵신앙사건이 <장길산>의 활빈도가 관련된 첫번째 역모사건이라 ‘정진인’을 추대하여 입국하려던 승려들의 거사 계획은 그들이 가담한 두 번 역모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작품 속에서 <장길산>은 이상과 같은 일련의 사회변혁운동에 빠짐없이 관여하면서도, 자신이 주도한 활빈행을 제외한 여타의 민중운동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작가의 전망은 무엇보다 또 이러한 <장길산>의 비판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가령 검계·살주계의 활동에 대해서는 대중으로부터 고립된 민중운동상의 과격노선을 암암리에 비판하고, 승리 여환 등이 주도한 미륵신앙사건에 대해서는 신비적이고 비합리적인 요소를 거사에 이용하려 한 점을 비판하면서, 민중의 진정한 신뢰가 뒷받침된 사회변혁 운동 노선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장길산>의 면모는 곧바로 오늘의 민중운동과 연출되는 역사와 문학의 접점이다. 한편 작가가 의도했던 작품의 또 다른 핵심은 '현대의 전사(前史)'로서 민중적인 근대사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작가는 <장길산>」의 창작 의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분단된 나라의 과도적 시대의 작가로서 나는 칠십년대에 비롯되었던 민중이라는 개념의 실체를 찾아서, 자생적인 근대화의 원류(原流)에 닿을 것을 바라면서 민중사라는 장강(長江)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던 셈이다. (황석영, 『<장길산>(張吉山)』)과의 10년」, 『한국일보』 1984.7.6.) 1970년대 사학계의 풍부한 연구 성과를 활용하여 "자생적인 근대화의 원류에 해당하는 후기 조선 사회의 새로운 변화상을 민중사로 생생하게 재현해 보이겠다는 작가적 야심과 다른 한편 광대 출신의 의적 <장길산>의 역모사건(逆謀事件)이라는 매우 특이한 소재를 살려 민중의 저항 속에 담긴 역사의 꿈을 펼쳐 보이겠다는 작가의 문제의식이 <<장길산>>의 서사를 형성하는 두 동력인 셈이다. “가짜 <장길산>이 살해되는 장면까지를 계산한다면, 『<장길산>』은 17세기 말엽 숙종 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679년(숙종 5)부터 1699년(숙종 25)까지의 20년 사실 「서장」에 묘사된 『<장길산>』의 탄생 장면을 제외한다면, 그리고 종장(章)에 간을 직접적인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 (p.237) |
| 그래서 이 작품에는 17세기 말 조선의 사회상이 풍부하게 묘사되어 있다. 『<장길산>』의 직접 무대가 되는 숙종조(肅宗朝)의 가장 큰 변화는 지방 향시와 대처 저자의 발생이다. 화폐가 전국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데 따른 상업의 발달상과 청과 국교를 맺은 이래 증대일로에 있던 대청 사무역 그리고 광산의 개발과 광공업의 발전, 채취 산삼에서 인삼 재배로의 전환, 무기와 사기 제조 같은 민간 수공업의 성장, 이앙모식 농사작법의 발전, 개간지 확대, 민속연회의 출현 등 경제적 사회문화적 발달상이 실로 풍부하다. 아울러 일부 양반이 몰락하고 서민 부자가 출현하는 등 봉건적인 신분 질서가 동요함에 따라 도망 노비가 증가하는 등 신분층의 분해가 심화(深化)되면서 민중들의 계급적 각성이 고조되어 가는 양상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또 가장 혹심한 흉년으로 알려진 '팔년 왕가뭄'을 두 번씩이나 겪으면서 인구의 절반쯤이 죽는 재해까지 겪음으로써 더욱 극심해진 사회적 갈등상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장길산>에 묘사된 전반적인 사회현실은 사회 전반에 걸쳐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전이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어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앞선 시대상이다. 무엇보다 작품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경순이 경영하는 사요(私窯)의 실태에 대한 묘사라든가 한양성 내외의 번영상 등은 대체로 18세기 후반 이후로 보아야 할 것들이다. 그뿐 아니라 봉건적인 신분질서의 해체 또한 시대적으로 훨씬 앞서 있다. 하지만 작가 자신도 그 점을 잘 알면서도 소설 속에서는 <장길산>과 18세기를 결합시켰다. 실제 역사와 구별되는 '역사소설'로서 『<장길산>』이 갖는 역사적 상상력과 문학적 변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회상에 대한 형상화는 기본적으로 조선 후기 사회경제사에 대한 1970년대의 연구성과에 크게 기대고 있다. 그리고 이들 연구가 17세기보다는 18세기에 훨씬 풍성한 성과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인 만큼 『<장길산>』은 자연스럽게 시대적 한계를 함께 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장길산>』의 이러한 문학적 변용은 민중 전설의 민족 서사로의 확산이자 민중사의 재창안이다. 작가는 주어진 역사의 실재자료를 새로운 눈으로 재해석하여 다양하게 활용하였다. 무엇보다 정치권력에서 소외된 민중을 주체로 하여 민중의 눈에서 소설을 써나가려 했다. 이에 따라 작가는 조선 후기의 민란이나 소요 등을 진압하는 관변의 입장이 아니라 이에 저항하는 입장에 서서 모든 것을 새롭게 형상화하고자 했다. 숙종 대에서 영조, 정조대에 이르기까지 민란과 역도는 지역에 따라서 다양한 차이를 보이면서도 대개 이념적으로는 한 궤로 꿸 수 있다. (p.238) |
| 백성들의 변혁 이념들은 무가나 민담, 전설 또는 민중 연회 그리고 야사에 수없이 등장하며, '정 진인설', '홍 도령설' 등의 참설 뒤에는 미륵과 개벽으로 표현되는 역성혁명의 사상이 있고, 그것은 동학에 와서 집대성되었다. 따라서 지배층의 의식과 문자로 잘 정리된 자료도 일차로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민담 · 전설 · 무가 · 민요 등의 구비문학, 야사, 백성의 그림, 백성의 글, 백성의 연회, 각 지방마을의 풍속지리(風俗地理) 등이다. 그 점에서 『<장길산>』은 1970년대에 들어 활발해진 민중운동사 연구와 함께 노비문서, 호적문서, 토지대장, 민요나 민담의 재해석 등을 통해 새로 태어난 인물이자 새로운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작가는 관변사료에 흉악한 도적패로 기록된 <장길산> 일당 빈민들을 구제하고 탐관오리를 징치하는 의적 활빈도로 환골탈태시켰을 뿐 아니라, 왕권 탈취를 노린 황당무계한 음모로만 기록된 미륵신앙사건 등을 종교적 성격을 띤 민중혁명운동으로 승화시켰다. 예컨대 제3부 <잠행>에서 검계 · 살주계 사건과 관련하여 산지니와 그의 사촌누님인 과부 석씨(昔氏) 간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대목은 『조야회동(朝野會通)』에 실린 극히 단편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p.239) |
| 그 기록에서는 "광주(廣州)에 한 과부가 있어 피란(避亂)하는 노상에서 일곱 적한(賊漢)에게 잡혀 겁간(劫姦)을 당했는데, 적당(敵黨)을 잡고 보니 그 하나가 과부(寡婦)의 서얼(庶孼) 사촌(四寸)으로 검계(契)의 당원이었다"라고 하여 매우 흉악한 사건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런데 작가는 그와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정반대로 해석하여 대단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민중의 사랑 이야기로 탈바꿈시켰다. (p.240) 『<장길산>』의 형상화 전략과 미학성 작가는 매우 시적인 장산곶 매의 애처로운 죽음을 읊은 '프롤로그'와 운주사의 천불천탑(千佛天塔) 전설을 다룬 '에필로그' 사이에다 열두 마당으로 이루어진 장엄한 대서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았다. '장산곶 매'의 애처로운 죽음을 읊은 프롤로그와 운주사의 와불이 닭이 울기 전에 비탈길 위에 처박히는 안타까운 에필로그는 작품세계를 압축적으로 환기하는 문학적 상징 장치이다. ‘장산곶 매’ 전설은 장수의 비극적 운명을 환기하는 것으로 작품 전체에 비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것은 시대적 운명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북성과 산지니와 같은 천민들의 행동에도 되풀이해서 나타나는 모티프이다. 이들은 모두 미륵이 나타나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면서 죽어 간다. 그렇게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언젠가 미륵 세상은 반드시 올 것이며, 또 끝없는 투쟁이야말로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 주는 깨달음이라고 들려준다. <장길산>」의 밑바닥에 흐르는 이러한 에토스는 우리 민족의 전 역사를 통해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미래불(未來佛) 미륵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일종의 한국적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듯 열두 마당 속에는 한반도 전체를 무대로 수많은 인물이 치고받는 무협활극이 있고, 천출(賤出) 백성들이 개인적인 원한이나 사리사욕을 딛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일어서는 아름다운 인간 드라마들로 출렁인다. 또 젊은 남녀들의 사랑도 있나니 길산과 묘옥, 여환스님과 원향 등의 애틋한 사랑이 서사의 한 축을 꿰고 있는가 하면 저자바닥의 왈짜 무뢰배들어 엮어 내는 온갖 욕망들의 난장 또한 질펀하다. (p.240) |
| 무엇보다도 그런 모든 이야기를 주도하는 인물의 형상이 다채롭다. 묘옥과 그녀를 사랑하는 이경순을 제외한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숙종 때의 공안(公案)에 기록된 실존 이름들이긴 하지만 작가의 손에 의해 비로소 산 육체를 얻게 된 듯 하나같이 개성적이다. 그리하여 '민중(民衆)'이란 글자의 뜻처럼 무리의 형상도 뛰어나다. 하나하나의 인물에 세세한 관심과 개성을 부여하여 그러한 무리가 자연스런 꽃 무더기를 이루듯 민중의 형상을 뚜렷하게 역사화하였다. 물론 <장길산>을 대표적인 주인공이자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그리고 있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하나하나가 다 매력적인 영웅이며 또 주인공이다. 읽다 보면 <장길산>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궁금할 정도로 개별적인 서사의 이야기들로 작품의 속살이 풍요롭다. 물론 개별 인물의 구체적 형상을 비교해 보면 때로 매우 상반된 방식의 형상화가 작동되기도 한다. <장길산>에서 민중적 전형으로서 비교적 잘 형상화된 인물이라면 뚝심 좋고 단순 소박한 성품을 지닌 소금장수 강선홍이나 도망 노비의 자식으로 재빠르고 영리한 좀도적 강말득, 또 사당패의 모갑이로 나중에 <장길산> 일당을 배신하여 관군의 앞잡이가 되는 고달근, 그리고 송도의 이름난 건달로서 가짜 금부도사 노릇을 하여 <장길산>과 우대용의 탈옥을 돕는 이학선과 같은 인물들이다. 그런 반면 주인공을 위시한 주요 등장인물들은 상대적으로 지식인에 가까울 정도로 이념형 인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가령 <장길산>은 제1부 <광대>에서 매처럼 날래고 차돌같이 단단한 장정으로 그려진다. 작가의 주관적인 설명이 아니라 그들의 외모와 언행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를 통해 생생하게 형상화하였다. 그런데 옥살이를 하면서 각성한 이후의 <장길산>은 완벽한 이념적 인간형으로 새로이 주조되어 철저하게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이분화된 <장길산>의 형상화는 기타 여러 등장인물에서도 그 성격과 역할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되어 개성화된다. 그런데 이런 인물 형상에서 뜻밖에도 중요한 인물이 최형기다. <장길산>에서 극적 효과가 극대화되는 순간은 민중 세력과 지배권력 간의 직접적인 투쟁의 순간이다. 물론 <장길산>이 그의 출중한 무예를 인정받게 되면서 도적의 우두머리가 되는 과정과 해서지방(海西地方)의 도적들을 차례로 휘하에 거느리게 되는 결투의 과정도 아주 흥미롭다. (p.241) |
| 그러나 역사적 의미를 띠면서 극적 효과가 한껏 고양되는 장면은 무엇보다도 지배세력과의 치열한 싸움을 그린 대목이다. 이런 의미에서 포도청 종사관 최형기는 <장길산>, 박대근과 더불어 이 소설의 역할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지배권력 진영중에서 가장 밀도 있게 형상화된 유일한 인물이면서, 또 가장 극적인 대결이 이루어지는 순간마다 등장하는 인물이다. 형상화에서도 최형기가 <장길산>보다도 더욱 생동감 있다. <장길산>이 어느 정도 신화적인 분위기로 그려진 반면, 최형기는 철저하게 형실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가 비록 지배 세력의 편에 서 있지만 그 또한 크게 보아서 민중에 속한다. 미천한 출신으로서 신분 상승을 꾀하는 큰 배포와 재능을 겸비한 한량이었다. 그래서 최형기는 결코 피상적으로 파악되는 지배계층의 완고함이나 반역사성을 드러내는 관념적 인물이 아니다. 사실 <장길산>에서 최형기가 등장하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최형기가 등장하는 순간이야말로 소설의 서사적 국면과 역사적 갈등이 가장 선명해진다. 소설적 흥미 또한 이때 최고조로 상승한다. 최형기가 검계와 살주계를 진압하는 과정과 그가 <장길산>의 일당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벌이는 마감동과의 결투, 그리고 마지막 <장길산>과의 결투 장면은 극적 긴장과 박진감이 최고조로 상승하는 절정의 대목이다. 그것의 역사적 의미는 자명하다. 민중세계의 성장과 지배계층이 맞는 위기, 그리고 이 저항과 탄압의 투쟁에서 민중세계의 실질적인 승리가 그것이다. 마감동올 어렵사리 죽이고 나서 검술에서는 이겼지만 싸움에서는 졌다는 스스로의 탄식이나, 마침내 <장길산> 앞에 무릎을 꿇고 죽어가는 최형기의 형상이야말로 '<장길산>』의 형상화 전략이 보여주는 한 특징이다. 매우 구체적인 무술싸움 장면을 통해 역사적 의미를 극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수법이야말로 문학이 구사하는 독특한 미학적 효과이기 때문이다. 우교어락(牛矯魚樂) 즉 즐거움 속에 가르침이 있다는 옛말처럼 작가는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한 감각적 장면을 즐겨 묘사하면서 그 속에 남다른 의미를 결부시키는 양공적인 형상화 전략을 능란하게 구사하였다. 사실 <장길산>은 우리 소설 가운데 조선의 검법을 가장 상세하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검법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빼어난 구성력 그리고 묘사력은 싸움 장면 하나하나를 한 편의 완벽한 클럽 저작물로 만들어 냈다. (p.242) |
| 더군다나 검법의 고수들이 펼치는 몸놀림과 칼놀림은 군더더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미학으로 채색되어 있어 독자를 황홀경 실체체로 포획한다.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그 형상이 때로 탐미적일 정도로 미학준비기도 하고, 때로 상상 이상으로 순수하게 윤리화되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악마적이라고 할 정도로 질퍽하기도 하는 등 실로 다채롭다. 가령 감송과 도화 이에서 살인으로까지 치닫는 도화살의 운명, 어비장의 아내와 홍천수가 펼치고 할 수 있는 무녀 원향과 승려 여환의 참으로 애절하면서 신비로운 운명적는 거침없는 상소리와 노골적인 육정의 잔치에서부터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한 사랑 등등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이야기는 길산과 묘옥의 사랑이다. 굿이 벌어 하는 날 밤에 작은 소나무 밑에서 길산과 묘옥, 이들 청춘 남녀가 벌이는 사랑의 홀경을 작가는 허리잡이춤에서 취발이의 난무로 변하는' 춤사위의 신명으로 훑어낸다. 풋풋하고 생명력 넘치는 그들의 살섞임이 4.4조의 판소리 가락에 실려 명실덩실 춤을 추는 것이다. 그러나 청춘의 뜨겁고도 짧은 사랑 뒤에 운명은 가통하여 갑작스러운 이별과 긴 기다림, 우연한 만남 그리고 영원한 이별로 이어지는 그들의 사랑길은 지평선처럼 아스라하다. 그런데 거기에 또 한 사람의 운명적 사랑이 겹쳐진다. 거울같이 투명한 이경순의 사랑이 그런 아픔과 그리움을 또 운명처럼 끌어안고 함께 간다. 그런데 거기 대 또한 겹의 사랑이 칼날처럼 아프게 스친다. 황순원의 단편 「독 짓는 영감의 주인공을 닮은 늙은 광대 손돌이다. 묘옥을 남몰래 사랑했던 그는 집과 육신을 함께 불태움으로써 완벽하게 소멸하는 하나의 점이다. 미륵도들의 거사 계획이 탄로나 체포되기 직전에 일시 피신한 여환과 원향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을 나누는 장면이라든가, 관의 습격으로 처자식과 생이 말한 길산이 마찬가지로 남편을 잃은 묘옥과 산사에서 마지막 해후를 하는 장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애정 심리를 다분히 현대화하여 묘사하기를 또 즐긴다. 특히 길산과 묘옥의 사랑에서, 창기 출신의 가련한 여인으로 묘옥을 설정한 점이라든가, 이중의 삼각관계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기만 하는 그들의 기구한 운명이라든가. (p.243) |
| 그리고 끊임없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심리를 표현하는 작가의 센티멘탈하고 감각적인 문체 등은 1970년대에 유행하던 감각적인 대중 연애소설 봄을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무술 장면 역시 1960, 1970년대에 대중 독서계를 휩쓴 무협 소설류의 성행과 무관치 않을 터이다. 그러나 이 또한 당대의 대중문화적 요소까지 활용하는 작가의 적극적인 대중 차체로 볼 수 있을 터. 기존 소설과 다르게 그것을 달리 기능케 하는 작가의 남다른 문학적 수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이 구사하여 그것이 현대적인 것과 합치되도록 시도하였다. 물론 인물과 사건 등이 서사의 중심축을 이루므로 행동과 장면에 대한 묘사가 가장 많고, 그에 따 그런데 작가는 <장길산>에서 전통적인 형상화 방식이나 문제 등을 가능한 한 한국적 형상화 방법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가령 제1부 <광대>의 서장 '노상'에서는 도주하던 만삭의 여종이 예성강 벽란 나루에서 광대패의 도움으로 추쇄를 벗어나 길산을 낳고 죽는 과정이 매우 입체적인 묘사를 통해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녀가 광대 장충에게 자신의 기구한 내력을 토로하는 대목이라든가, 장충이 산고로 죽은 그녀의 아기를 양자로 삼아 키우는 대목 등은 작가의 요약과 설명으로 간단히 처리한다. 이처럼 특정한 장면에서도 다양한 형상화 방법이 구사되듯이 전체적으로 보면 극적 형상화 방법과 함께 작가의 직접적인 설명이나 편집자적 논평 등이 두루두루 섞여 있는 것이 <장길산>의 한 특징이다. 실제로 <장길산>에는 어떤 대상이나 인물 · 사건의 추이에 대한 작가의 설명도 빈번하게 나올 뿐 아니라 때로 작가가 적극적으로 교훈적 논평을 가하기도 하고, 또 작가를 대변하는 작중인물을 통해 웅변조로 직설적인 내용을 토로하는 방식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제3부 <잠행>에서 <장길산>이 자비령 녹림당의 산채를 점령한 뒤 도도한 웅변으로 두목 최흥복을 설득하는 장면은 그 좋은 예이다. 작가는 ‘쉬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 주는 옛날 이야기책 투’를 의도적으로 많이 구사하였다. 설명 위주의 빠른 진행으로 스토리를 전개시켜 나가면서 사건의 기복을 극대화하여 되풀이하는 ‘옛 이야기책’ 서술 수법이 그것이다. 거기다가 탈춤 · 꼭두각시 · 민요 · 무가 등 조선시대의 민속예술을 원형 그대로 소개하기도 한다. (p.244) |
| 작가 스스로 우리 것과 서구형의 문장이 혼합된 ‘트기’라고 말하듯이 현대적인 문장에다 구전적 전통이나 군담소설의 전통을 부분부분 실어서 오히려 옛 맛을 자연스럽게 부각하는 기법의 효과가 뜻밖에 독창적이다. 우리 고유의 토속어나 속담, 판소리 가락 등을 어휘나 문장에서 의식적으로 구사한 결과 주로 에피소드를 이루는 민담이나 대화 속에서 등장하는 속담, 일반 민중들의 풍습의 재현 등과 결합하여 전반적으로 현대적인 문체인데도 마치 당대의 군담소설이나 영웅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같은 문체의 다양한 맛은 흔히 구체적인 역사의 본질과는 무관하게 그저 고풍스러운 관용어 방언 · 고어 등의 모방에만 힘쓰는 '사이비 역사주의'와는 충분히 구별되는 <장길산> 만의 문체적 특징이다. (p.245) |
| <장길산>의 문학사적 위치와 특징 <장길산>의 문학사적 위치는 한마디로 홍명희의 '임꺽정의 뒤를 이으면서도 그것과 구별되는 소설사적 특징에 있다고 할 것이다. 조선시대 의적의 활약상이라는 소재면에서 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삶을 통해서 역사의 움직임을 파악하고자 하는 민중 주체의 역사관에서, 그리고 당시의 풍속과 사회상을 광범하고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리얼리즘의 정신과 수법 등에서 『<장길산>」은 「임꺽정」을 쉽사리 연상시킨다. 사실 근대문학이 시작된 이후 우리의 역사소설은 왕조사 중심의 낭만주의적 작품이 일반적이었다. 이광수, 김동인, 현진건, 박종화 등 우리 역사소설 작가의 태반이 거기에 해당된다. 이들 작품은 대체로 최상류층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궁중비사나 지배층 내부의 암투를 그리거나, 또 과거의 역사를 신비롭게 윤색함으로써 현실 도피적인 홍미만을 추구하는 '야담' 적인 경향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맞서 민중사 중심의 리얼리즘 역사소설을 지향하는 것으로는 홍명희의 「임꺽정이 거의 유일했다. 「임꺽정」은 백정 출신의 도적을 중심으로 하여 민중의 삶과 투쟁을 주로 그리면서, 그 시대의 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매우 충실하게 재현한 작품이다. <장길산>』도 「임꺽정」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의 각종 세태와 풍속 등을 폭넓게 묘사하는 가운데 당시 민중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재현하였다. 그런데 임꺽정』에 비해 <장길산>의 확연한 특징은 뚜렷한 전망에 있다. <장길산> 일당은 활빈도를 자처하고 명실상부한 의적활동을 전개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봉건왕조를 타도하고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이상 국가를 수립할 계획까지 추진하였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백성들을 규합하기 위해 미륵신앙이라는 민중적 유토피아까지 내세웠다. 한마디로 홍명희는 「임꺽정」을 통해 철저한 사실주의 정신으로 과거의 역사자체에만 집중했으나, 황석영은 <장길산>에서 리얼리즘에 기반하되 오늘의 문제의식을 전면화시켜 전망을 강조한 이념형 역사 소설의 면모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었다. 작가는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관한 기록'에의 도전으로서 '우리 시대를 상징화하고 싶다'라고 그 의도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장길산>은 ‘역사적 알레고리를 통해서 쓴 1970년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1970년대, 1980년대 전개된 진보적인 사회운동, 그리고 그 바탕을 이룬 치열한 역사의식이 이 작품을 있게 한 원동력이며, 그래서 1970, 1980년대 군사 독재 시기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과 그럼에도 거기에 굴복할 수 없는 민중의 삶과 꿈을 반영하고 있는 현대의 소설이기도 하다. (p.246) |
| 물론 주인공 <장길산>을 지나치게 이상화한 결과 당대의 주요 사회변혁운동들이 재닌 한계를 모조리 꿰뚫어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대안으로 민중과의 굳건한 것을 적극 주장하는 지극히 영웅화된 인물로 만들고 말았다. <장길산>뿐 아니 박대근 역시 상인으로서 시대적 한계를 초월한 진보적 의식의 소유자로 만들 유래 위에서, 민중이 일체의 차별로부터 해방되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진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중요한 사상적 의미는 민중의 삶 오랫동안 역사화된 미륵사상의 현재화이다. 단순한 현대적 시각의 투영 아니라 역사와 문화유산 속에서 재발견된 과거의 혜안으로 과거와 오늘을 동 세척 안고자 하는 민중적 문명관의 적극적인 투영이다. 이 점은 당대의 민중운 돌아가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그 이후의 역사에 면면히 이어지기에 본질적으로 원의 역사가 아니라는 작가의 낙관적인 역사의식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창가의 낙관주의는 주인공 <장길산>이 끝내 잡히지 않은 채 종적이 묘연해진 것으로 처리된 작품의 말미에서 절정에 달한다. 승려들의 거사사건에 연루된 사실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장길산>은 관의 추적을 벗어나 더욱 맹렬히 환빈행을 이며, 심지어 사방에서 <장길산>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조정에서는 궁여지책으로 그에 관한 소문이 가장 빈번한 황해도 봉산의 장터에서 무고한 광대 한 사람 콜라 타살하고는 드디어 <장길산>을 처단했다고 선전함으로써 가까스로 민심을 수습한다. 그런데 바로 그날 장터에 있던 한 아이가 죽은 광대의 피묻은 취발말을 집어들었으니, 그가 바로 후에 봉산탈춤을 중흥시켰다는 인물이다. 그는 아니라 이어지는 에필로그 운주사 전설도 주목된다. 반란에 실패하여 천반에 숨어 살던 노비들이 천불천탑을 하룻밤에 세우면 새 세상이 온다는 계시 권력을 다해 일을 하던 중, 이를 견디지 못한 한 노비가 "닭이 울었다"라고 거짓 외쳐 손을 놓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나 그날밤 미륵상이 되기 위해 사방에서 몰려오던 바위들은 그 자리에 넘어지면서도 머리를 계곡 쪽으로 향하였으나, 이는 먼 훗날에라도 다시 일어서 미륵상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247) 작가는 <장길산>의 운명을 봉산탈춤의 전승에 관한 전설과 연결시킴으로써 광대 1개의 그의 예술이 후대의 탈춤에 계승되어 영원히 살아있음을 은유하는 동시 운주사 전설을 통해서 '미륵의 세상'을 이룩하고자 싸웠던 <장길산>의 염원이 후대의 민주운동에 계승되어 언젠가는 실현하는 점을 환기하고 있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우리의 전사를 발견하는 한 역사 발전의 힘은 불행한 역사의 그늘에 묻혀 있을지언정 결로 소멸하지는 않는다 할 역사 속에서 스스로 나아갈 힘을 발견하고 그 힘을 활성화하는 일이야말로 중요한 역사적 과제라는 것, 황석영이 <장길산>에서 수행하고자 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p.247) |

첫댓글
동서양문학고전산책(3-1)
<과제명>
교재와 강의 8~15장을 공부한 후, 여기에서 소개된 작품들 중 자유롭게 두 편을 골라 정독합니다.
이후 각 작품의 줄거리 요약(A4지 1쪽), 본인의 감상과 해석(A4지 1쪽)으로 과제물을 작성합니다.
(분량 A4지 총 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