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고생이 많아요.
원고 2편 추가 제출하니 필요한대로 하세요. 문예진흥기금은 페이지수가 많은 것은 괜찮은데 모자라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참고 하세요.
연말연시 잘들 보내세요.
꽃 뜨락
따가운 가을 햇볕 내리쬐는 마당 고추 멍석 주위에 고추잠자리가 곡마단 단원처럼 공중회전을 하며 묘기를 펼친다. 이에 뒤질세라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들도 춤사위를 벌인다. 주위에서는 해바라기, 과꽃, 백일홍, 채송화도 살랑살랑 몸을 흔들며 행복한 미소를 보낸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시골집 뜨락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어 있었다. 어머니를 비롯해 오빠들까지 모두 꽃을 좋아해 주위에서 꽃집이라 부를 정도로 많은 꽃을 가꾸었다. 아기자기한 사랑이 속살거리는 꽃 뜨락이 놀이터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꽃이 없으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듯이 내겐 꽃이나 식물이 많아야 부자가 된 것 같고 행복하다.
많은 철학자가 행복한 삶을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다. 내가 꿈꾸는 삶은 돈도 명예도 아닌 한적한 시골의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에서 온갖 화초를 기르며, 꽃 속에 묻혀 사는 것이다. 가끔은 도시생활에 지친 친구들이나 옛날 동료들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마음의 고향,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사랑과 우정이 넘치는 집, 조금 욕심을 부린다면 가족들이 먹는 채소 정도는 길러 먹을 수 있는 텃밭이 있으면 최상이다.
그래 오래전부터 퇴직 후의 삶을 위해 야생화 등 각종 화초를 하나둘씩 사들였다. 꽃 하나 살 때마다 행복이라는 벽돌을 차곡차곡 쌓는 마음 때문인지 할머님까지 4대가 살았지만 언제나 하하 호호였다. 할머님 어머님이 하늘나라로 가시고 남편과 아이들이 아파트로 이사하기를 원했지만, 수많은 화분 때문에 엄두도 못 내었다. 재테크도 할 줄 몰라 한집에서 26년을 살았더니 그동안 몇 번의 대수선을 하였으나 또 수리할 때가 되었다.
대수선이라 수선비가 만만치 않아 고민하니 남편과 아이들이 이참에 아파트로 이사하자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따르기로 했다. 그동안 하나 둘 준비 하였던 귀한 나무와 꽃들을 거의 버려둔 채 눈물을 머금고 이사하였다.
단독주택에 살다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하니 깔끔하고 잘 정돈된 데다 작지만, 실내화단도 두 개나 있어 그런대로 만족했다. 꽃을 워낙 좋아해 또 한둘 사들이다 보니 300여 개가 넘었다. 야생화는 햇볕도 좋아야 하는지만 눈, 비, 바람을 맞히며 바깥에서 키워야 하는데 아파트 안에서 키우니 사는 것보다 죽어 나가는 것이 더 많아 마음이 매우 아팠다.
당장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고 싶지만,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다쳐 몇 년 고생 하고 나니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목발을 짚어보니 단독주택보다는 그래도 아파트가 편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꽃을 키우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공허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걱정되었다.
생각다 못해 한적한 시골은 아니지만,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꽃도 기르고 채소도 기르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딸아이가 카페를 운영한다고 하니 그 옆에서 꽃을 기르며 취미생활도 하고 카페를 찾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면 좋을 것 같았다.
평생 바쁘게 살다 퇴직 후 자유를 만끽하는 여유로운 생활을 몇 년 해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와 달리 이젠 100세 시대인 만큼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발이 되어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청년(靑年)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면 수입의 크기와 상관없이 매일 아침 눈을 떠서 할 일이 있어야 한다. 본인의 취미와 특기를 살릴 수 있는 것이라면 금상첨화인데 내겐 꽃 농사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모작이다.
꽃 기르는 것을 생업으로 한다면 힘이 들겠지만, 놀이한다 생각하면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허리를 펴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하늘을 보고 뜨락에 핀 꽃을 바라보면 행복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세포 하나하나에 퍼져 나갈 것만 같아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나는 100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의 저자 엠마뉘엘 수녀는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탄탄하고 오래가는 사랑은 자기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랑으로 같이 행복해야 한다고 했다. 꽃 가꾸는 것이야말로 나도 행복하고 보는 사람도 행복하게 하는 같이 행복이란 생각이 든다.
요즈음은 모든 것이 감사하다. 사소한 일에도 감사가 넘치면 행복은 계속해서 그곳에 둥지를 튼다더니 아침마다 꽃 뜨락으로 출근하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화분 몇 개 가져다 놓았을 뿐 아직 심어놓은 것은 별로 없는데도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한 게 편안하다. 자갈밭은 아니지만, 중장비로 두 번이나 갈아엎었는데도 또다시 풀이 무성하다. 잡초는 어찌 그리도 잘 크는지 도저히 걷잡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무엇을 심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달콤한 흥분에 사로잡힌다.
감나무, 블루베리, 왕보리수나무, 매실나무를 비롯한 유실수와 목백일홍, 가침박달, 벚꽃 등 꽃나무 그리고 비비추, 봉선화, 분홍나비바늘꽃, 국화 등 야생화를 비롯해 오이, 상추, 호박, 토마토, 고추 등 채소를 심을 생각에 벌써 설렌다. 한적한 들길을 가다가도 청초하게 피어있는 한 무더기 들꽃을 보고도 행복한데 내가 직접 가꾸고 보살핀다면 사랑스러워 더 행복할 것이다.
할 일이 있으니 퇴직 후 나태해졌던 마음이 다시 조여지는 것이 1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행복하려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나무를 심고, 꽃 심고, 잡초 뽑는 등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들이라 몸은 고달픈데도 마음은 여유롭고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 구름 사이로 얼핏 보이는 태양처럼 밝음과 환희, 활력과 생기가 용솟음친다.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욕심을 내려놓고 소유보다 존재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고 본다. 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생각하고 만족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닌가.
꿈을 그리고 또 그리다 보면, 결국 이루어진다더니 규모는 작지만 머지않아 꿈을 이루게 되었다. 인생이모작을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꽃 뜨락에서 보낸다는 생각만으로도 흐뭇하고 행복하다. 행복이란 일과 취미가 적당히 조화된 속에 존재하는 삶의 향기이며, 예술처럼 아름다운 삶의 즐거움이란 생각을 해본다.
내가 그린 자화상
처음 낳았을 때는 참으로 예뻤는데 삼칠일이 지나고부터 미워졌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어머니 말씀으론 갓난아기를 두고 예쁘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해서 삼신할머니가 노하신 거란다.
우리 형제자매는 사남사녀로 팔 남매인데 남자들은 아버지를 닮아 피부도 하얄 뿐만 아니라 곱상하고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는데, 여자들은 여동생을 제외하고는 어머니 아버지 열성인자만 닮아 예쁜 것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여동생은 키도 크고 피부도 백옥같이 하얀데다 얼굴도 곱상하여 누구나 탐을 낼 정도로 예뻤다. 나는 키도 작고 피부색은 누런데다 얼굴까지 작아 미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은 체중이 많이 늘어 얼굴도 커지고 전체적으로 살집이 두둑하지만, 예전에는 체신은 작은데 코와 입이 참으로 컸다. 코에 동글동글 살집이 두둑하니 더 커 보였다. 눈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눈썹이 일자로 진해 여성스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가족들은 늘 네가 최고라고 용기와 사랑을 주었다.
동생보다 조금 약하게 태어났을 뿐인데 애처로워 보였던지 오빠와 언니들은 동생보다 어린애 취급을 하며 공주처럼 떠받들었다. 여동생에게는 밭을 매라 소죽을 끓이라 하면서도 내가 하려고 하면 너는 들어가서 쉬라고 얼씬도 못 하게 하여 늘 동생에게 미안했었다.
어려서부터 예쁘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코가 동글동글하여 복 있게 생겼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코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나로서는 놀림을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선 ‘귀 잘생긴 거지는 있어도 코 잘생긴 거지는 없다.’ 라는 속언이 있다며, 사람들에게 귀염받고 잘살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사람은 얼굴이 좀 못생겼어도 밝게 웃는 표정을 해야 복이 들어오니 늘 밝은 표정을 지으라고 하셨다.
복이란 말은 흔히 ‘아주 좋은 운수’,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이란 뜻으로 풀이되고 있으며, 사람의 생김새, 얼굴 모습, 또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의 성격과 운명, 수명 따위를 판단하는 일이 바로 ‘관상’이다. 삼국시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전해지는 관상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가장 활발하게 유행하며 관상학으로 발전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도 관상을 믿고 있고, 관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 더군다나 지난해 ‘관상’이라는 영화가 흥행몰이하면서 관상 보는 법, 최고의 관상 그리고 성공할 관상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성형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좋은 짝을 만나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그에 적합한 관상으로 성형 수술을 하는 등 좋은 관상이 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렇듯 시대를 불문하고 관상은 은연중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하나의 풍습이 되었다.
좋은 관상은 전체적으로 풍겨오는 이미지나 느낌, 인상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목구비 각각이 최고의 관상, 성공할 관상을 가지고 있다 해도 전체적인 조화나 흐름에 맞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좋은 관상이 아니란다. 그리고 좋은 관상은 그만큼 좋은 인생을 살 기회가 있다는 의미이지 무조건적인 불변의 진리는 아니라고 한다. 관상이 좋다고 하여 자신을 방치하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독이 될 것 같다.
여자의 관상으로는 대체로 날카롭지 않은 인상에 웃음과 푸근함이 느껴지는 동그스름한 콧날과 턱 등이 복 있는 관상이라고 한다. 특히 코는 적당한 길이의 굴곡 없이 매끈하고 콧구멍이 보이지 않는 코가 좋은 관상이란다. 높이도 적당하면 질병 걱정 없이 편안한 일생을 보내고 코끝이 크고 콧방울이 두툼하면 남편 복이 있는 관상이란다. 예쁘지는 않았어도 이와 비슷한 관상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잘 살겠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여고 다닐 때 친구와 중앙공원 옆을 지나는데 관상 보는 사람이 있었다. 재미삼아 보았더니 날씬하고 예쁜 친구한테는 나 홀로 연인이고, 내게는 만인의 연인이라고 하면서 부자로 잘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도 이상해서 혹시 바꾸어 말씀하신 것 아니냐고 했더니 사실이란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어르신의 말씀이 맞았다. 그 친구는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남편의 사랑만 받을 것이고, 나는 정년퇴직까지 하였으니 경제적으로 도움도 되었겠지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만인의 연인이었다.
부자는 아니지만, 가족들의 사랑은 물론 40여 년 공직생활 하는 동안 선후배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것을 보면 특히 인복이 많았던 것 같다. 형제자매들은 이순이 넘은 지금까지도 간장, 고추장은 물론 김장김치까지 잊지 않고 해주신다. 40여 년 공직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던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보살펴준 형제들의 도움과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남편, 엄마의 손길이 부족해도 잘 자라준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공직생활 하는 동안 직장상사나 선후배의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40여 년 전에는 여성공무원도 몇 명 되지도 않았지만, 본청 및 지역교육청에는 더더욱 없었다. 있어도 중요업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허드렛일만 시켰다. 그때 지역교육청 예산과 심사분석, 보안업무. 인사업무까지 주시는 아주 혁신적인 생각을 하는 상사를 만난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교육청뿐만 아니라 부임해 가는 곳마다 직원들이 한 가족처럼 따뜻하게 보살펴 주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직장 일에 충실할 수 있었다.
덕분에 포상이나 승진에서 여성공무원으로서는 늘 선두를 달렸으며, 관운까지 있어 부족한 점이 많은데도 충청북도교육청 개청 이후 여성공무원으로서는 첫 번째 사무관과 서기관, 그리고 도교육청 과장까지 하여 여성공무원들의 선망대상이 되었다. 이는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직장 선후배와 형제자매들의 믿음과 사랑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옛말에 수상보다는 관상, 관상보다는 심상이라 했다. 행운을 부르는 관상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삶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태어날 때의 얼굴은 부모님이 주시지만, 불혹 이후의 얼굴은 자기 자신이 만든다는 말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