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20 16:16:11
오일장이 서는 시골 장터에서 고무신을 만났다
미니어처 같이 한뼘도 안되는 크기에 앙증맞은 아기용 신이어서 더 눈길이 갔다
얼마만에 본 고무신인지 어슴프레 아련한 기억에
나는 오랜지기를 만난듯 호들갑스럽게 다가갔다
언제나 함께 했던 지난 것들을 만나면 뭉클한 마음이 든다
펌프물이나 수도가에 쪼그리고 앉아 수세미에 비누를 묻혀
때 묻은 흰 고무신 구석구석을 문질러 닦아 물 빠지라며 엎어 놓는 일이
예전엔 일과 중 하나였다
정갈한 하얀 고무신을 보며 그 사람에 얌전함의 척도를 재기도 했었다
가난한 시절 물에 빨기만 하면 다시 새 신이 되는 고무신은
질기기도 하고 실용적이여서 집집마다 애용했을 것 같다
냇가에서 송사리 몇 마리 잡아 고무신에 어항처럼 담았다
누가 많이 잡았나 친구와 경쟁하며 고무신에서 헤엄쳐 노는 고기를 세었다
어릴 적 마루 밑 어른들이 벗어놓은 커다란 고무신을 허락도 없이
작은 발로 들이 밀어 넣어 질질 끌고 다녔다
제 발에 턱도 없이 커다란 신발을 걸치고 급하게 걸을라치면
돛 단배처럼 큰 신발이 맞지 않으니 걸리적거려 마음과는 다르게 빨리 걸어지지 않는다
걸음은 불편했지만 어른 고무신 신는것이 그 때는 그리도 재미있는지
그러다 종종 넘어져 무릎이 까지기도 했었다
세상을 스스로 등지는 자살하는 이들은
거의가 신발을 나란히 벗어 놓고 두고 떠난다고 한다
바다에 몸을 던지며 모래사장에 신었던 신발을 벗어놓고
목을 맨 사람은 그 아래 신발을 벗어 둔다
다른 세상에 신을 벗고 들어 가는것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모른다
하지만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은 채 생활 하는 입식 문화의 나라 사람들은 같은 경우 평소처럼 신발을 벗어 놓고 가는 일이 없다 한다
예전 우스개 소리로 처음 서울 올라온 촌로가 신발을 벗고 택시를 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처럼 우리나라 사람은 저승 갈때도 신발을 벗고 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로 가지런히 신을 벗어 놓는 의식을 한다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세상을 하직하면서 남은 자들에게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무언의 마지막 징표인지도 모르겠다
시신을 찾지 못하면 벗어 놓은 신발로 그것을 대신하기도 한다
처녀시절 애 끓는 사랑에 앓다가 자살한 친구도 예의 신던 구두를 벗어두고 갔다
고향 미호천이 흐르는 곳에 화장해 재를 뿌렸는데
그녀가 남긴 고운 색의 하이힐을 부모님이 안고 통곡을 했다 한다
풍수인테리어상 현관은 먼지 없이 정리하고 신발들은 가지런히 잘 정돈해놓아야
그 집안 대주의 일도 잘 풀리는거라 한다
그런데 요즈음 신발장은 이멜다여사가 울고 갈 만큼
갖가지 종류의 신발들로 넘쳐나고 정리하는 사람은 의례껏 나 혼자이다
그래서 자칫 방치하면 금방 현관이 어지럽게 된다
귀찮을땐 흐트러진 신발정리하는 로보트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처럼 풍요로워졌는데 오랜만에 장터에서 만난 예전 뽀얀 고무신이 내게는
나이키 매장에서 요즘 최신 디자인의 신발을 만난것 보다 훨씬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신으면 허전하리 만큼 옭죄는것 없고 편안함을 주는 느낌
밟아도 구겨지지 않고 요란한 소리도 없이 잡초처럼 질겼던 고무신
한 가족처럼 익숙한 늘상 집에서 보던 신발이었다
세수를 말갛게 하고 하얗게 반겨주는 변함없고 낯익은 얼굴을 한
정든 고향친구처럼 흰 고무신이 사뭇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