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 장애인의 날을 맞으며
2001-04
환 상 통(幻像痛)
박 병 민 목사(새터공동체)
한쪽 다리를 잃은 친구에게, 여러 친구들이 찾아보았다. 그 때에 그는 밝았다. 여러 경과(經過)의 말을 들려주던 중, 그는 몸의 어느 부위를 잃게 되었을 때에 겪게 된다는 “환상통(幻像痛)”이라는 낮 모르는 말을 꺼내어 말했다. 몸의 한 부분을 잃었다는 상실감(喪失感)을 처음에는 실감하여 느끼지 못하고, 다른 편의 다리와 똑같이 있는 줄로 여겨지다가, 실재로는 없는 것을 차츰 알아가며 큰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아픔을 말하는 것이라 하였다.
나는 이중성(二重性)을 지니고 다닌다. 장애인이면서 그것을 잊고, 그렇지 않다는 듯이 환상 또는 착각 속에 산다. 그것은 내가 나의 생활을 채 기억하기도 전인 어릴 적부터 장애인이었기에 그럴 것이다. 바로 세월이 약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의 배려 속에 앞으로 잘 걸어왔기 때문에 또한 그럴 것이다. 일상적으로 잘 걷는다. 아니 어쩌면 걷기를 좋아라 하기까지 한다. 험한 곳이 아니라면 오르내리기도 예사로 여기고 다닌다. 그런데 오래 전에 대학생 장애인 써클 모임인 다코스 모임에 가 뵐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사람들이 나눈 이야기를 지금껏 기억한다. 이야기 중 어느 장애인이, 장애가 아주 적어 보이는 마주 대한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도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이었다. 이 물음에 대해서 그는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으나, 그는 그 자신도 “장애인”이라고 말하였다. 그가 장애인으로 자처(自處)할 수 있었음은, 그것으로 인해서 그의 자존감(自尊感)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옷을 맞추어 입을 때이면, 왼쪽 소매와 바지의 왼쪽 길이를 조금 짧게 하여 주기를 부탁한다.
장애인들도, 세상(世相) 곧 세태(世態)가 살판나는 세상(世上)이 되어서 그 가운데에 쉽사리 들어서서 살수 있어야겠다. 말을 하자면 지금에 이르기까지 장애인들이, 이 발전 된 사회라고 하는 시절을 살아가면서 세상(世相)에서 살기에는 어려웠다. 말처럼 사람과 서로가 되어서 살기에는 쉽지 않았다. 전에 선배님은 다음과 같은 일을 제안해 왔다. 집 밖을 쉽게 나서지 못하고 안에서만 살고있는 재가장애인(在家障碍人)을 찾아가, 그들을 집밖의 사회(社會)로 나서게 하는 일이 막상 필요한 일로 보여지니 그러한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말하였다. 여럿이 사는 세상은 여러 형태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어야 하겠다. 낮은 소리로, 누누이 하는 말을 하고싶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이사야 40:4). 계층(階層)보다는 평평(平平)하게들 사는 것이 좋다. 사람들의 생각이 층(層)이 아닌 다방면(多方面)을 이루고 있다고들 여겨 갔으면 한다. 그러면 장애인들도 다니기에 편리하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층계(層階)를 밟고 올라설 수 있다하여 2층에 사는 것이 부담스럽다. 우리 공동체도 여러 형태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상생(相生)이라는 말처럼 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곳의 사람들은 이곳에만 있지 말고 어느 때가 이르면 공동체 밖으로 나가서 무리들과 같이 더 큰 무리를 지어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곳은 사람들이 자유로이 들러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면 그지없는 곳을 이루게 될 것이다.
나는 시각장애인이면서, 지체장애인이다. 말하자면 중복장애인이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해보고자 한다. 장애인에게는 집 밖을 나선다 할지라도 온통 낮선 곳이다. 시각장애인은 더욱 그렇다. 교통신호등의 벨소리와 그리고 간혹 어느 길가와 일부 건물 안에 점자보도블럭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제대로 없다. 걷지 못하는 분이 휠체어를 탔을 경우, 우러러 보이는 건물은 높은 계층(階層)을 이룬 사람들의 곳인지, 사람들이 오르고 있는 층계(層階)를 바라만 보고있어야 한다. 계단 계단으로 된 높은 곳이 많아서 못 오르는 장애인이 많고, 낮은 곳이라 하더라도, 요즈음의 집문턱 보다도 높아 걸리는 턱도 많다. 겨우 누구의 도움으로 오르면 이 후에 계단을 내려가게 될 일을 미리부터 걱정해야 한다. 무거운 몸을 밖으로 내보내기가 짐스럽다.
세상에 계층(階層)을 떠오르게 하는 무슨무슨 층의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말고, 다양한 형태를 일컫는 다방면의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중국에서는 아파트를 층집이라고 말한단다. 장소가 허락된다면 층층으로된 층집을 이루어 살지 말고, 장애인들이 가고 오는데 불편하지 않게 여러 무리가 평평한데서 서로를 이루며 사는 게 어떻겠는가? 바라기는 일반인들의 바뀌어진 생각들 속으로 몸을 옮겨가며 나다닐 수 있는 곳들이 많아져서, 장애인들 스스로 순간순간 생각하기를 내가 장애인이었던가? 하는 장애를 잊고 환상(幻像) 속에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공동체 이야기
새로 만든 길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이르려면 마을 초등학교 정문 앞 도로의 건너편에서 또한 다리를 건너 산길로 300여 미터 올라가야 한다. 개울 다리를 건너서면 집이 하나 마주쳐 온다. 얼마 전에까지 그 집의 이름은 촌가(村家)였다. 노부부께서 그 이름 아래에서 식당(食堂)을 운영하였다. 듣는 바로는 그 노부부는 대전의 한밭식당을 하시다가 이 곳에 오셔서 계속해서 그 일을 하시는 듯 싶다. 우리 집에 오르려면, 그 집 오른쪽 담 옆으로 뻗은 길로 곧바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들은 마을에 내려가고, 집에 오르면서 그 댁 어른들을 자주 대했다. 먼저 자리를 하고 살아오신 그 분들이 나중에 들어선 우리들에게 잘 대해 주셨다. 작년 봄볕이 들 무렵, 집에 들어서는 먼 거리의 길을 자갈길로 만들려고 할 때에, 그 집 마당 귀퉁이에 많은 자갈돌을 쌓아놓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셨다. 우리집 큰 아이와 그 집 어른들의 손자 아이와도 같은 또래라서 자연스럽게 처와 그 식당집 아이 엄마와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큰 아이와 그 집 아이가 초등학교에 같이 입학하여 다니게 되는 올해에, 그 분들은 그 집을 그만 비우고 마을 안쪽으로 이사를 들어가 사시게 되었다. 실은 그 집이 그 분들에게는 세 들어서 살아온 집이었던 것이다. 그 집을 비워주고, 또 계속해서 들어오고 하는 일이 있기 전에, 들어오실 집 주인께서 우리 집에 오셨었다. 저 앞집에 다시 오게되는 집주인 아무아무게라고 말하였다. 조립식 건축업을 하는 분이라고 이야기를 하기에, 우리집을 보면서 마음이 열려 집처럼 가볍게 말을 나누었다. 여러 해 전에 그 곳에 터를 잡았을 때에, 그 집 주변의 전답(田畓)을 가진 마을 분들이 자신을 홀대하며 터 문제로 텃세를 부리다시피 했다는 말까지 들려주었다. 그래서 과장된 생각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왈가왈부(曰可曰否) 터 싸움까지 되었던 것 같다. 그 가정이 제집을 찾아 들어오신 것이다.
지나치며 볼 때에, 그 분들은 오자마자 집을 거반 새로이 치장하고, 수리하다 시피 하였다. 여러날 후에. 그전 번에 이어서 그 집 주인은 나에게 왔다. 길을 새로 둘러서 내주겠다는 말을 하고 갔다. 그러고 간 며칠 후 우리와 마을 분들이 농사일로 오가는 밤나무골 입구의 길옆으로 훤칠하게 긴 쇠기둥을 박아 세워놓았다. 측량사를 대동하여 그 분의 터를 바로잡아서 넓혀 확정(廓正)한 것 같았다. 그렇게 따지자면 산으로 오르는 입구의 길이 없어지게 될 판이었다. 지나다니는 나에게는 그 서있는 붉은색 쇠기둥이 유난히 곧고, 높아 보였다. 어느 날인가는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길을 비좁게 하고, 집마당을 넓혀가고 있었다. 길은 외돌아지면서 좁혀지고 말았다. 아래 밭에서 길의 반을 내어놓으라는 표시이기도 하였다.
지금 길은 그 주변 분들의 힘이 모아져 새로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굽어진 길이 되었고, 내리막길이 되었다. 전부터 사용되던 길이 아닌 곳이 길이 되었다. 새 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새로 만들어 가는 길이 그 옛길만 못할 때가 많다.
공 동 체 소 식
☻ 새터 공동체 가족
문창수
정무래
박종만
어귀녀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새터 공동체에서는 거처를 정하지 못하는 노인, 장애인 분들을 모시고자 합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대전성남교회안수집사회.주원교회.박종만.맹영호.왕지교회.진수정.금산군새마을부녀회.판암제일교회.어귀녀.예수마을.대덕교회.대전서노회.박정도.이원교회.권용춘.서누가.삼광교회학생회(서태식).김기홍.김성두.전장호.임찬양.한삼천교회.옥천동부교회.이광승(김미경).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박종덕.영광영성원(김은희).일양교회.이종국.유인숙.채윤기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