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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야벳족 함족 셈족 구분법>의 줄거리:
셈족 함족 야벳족의 가장 단순하고 보편적인 구분법은 아마 피부색일 것입니다. 함족속은 흑인이고 야벳은 백인이며 황색인은 셈족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셈족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구원사의 주역들이 출생하는 혈맥으로 인정 됩니다. 그럼 마르틴 루터 킹 목사님은 저주 받은 함족입니까? 그렇지 아니하면 성경의 셈 함 야벳에 대한 언급은 그저 현실적인 의미가 전혀 없는 한 낱 전설이나 신화에 불과합니까? 셈 함 야벳 구분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야벳족 함족 셈족 구분법
(창10:1~32)
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2.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3.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4.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5.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1~5절까지는 야벳 족속의 족보, 그리고 6절부터 20절까지는 함 족속의 족보가 나오고, 21절부터 마지막까지는 셈 족속의 족보가 나옵니다.
이러한 족보를 중심으로 <야벳족, 함족, 셈족 구분법>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야벳족, 함족, 셈족 구분법’
대충으로 밖에는 생각을 못하겠어요. 족보에 나오는 이름 하나하나가 지역의 이름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지역을 다 따져서 할 수 있는 여력도 시간도 없습니다.
그동안 셈, 함, 야벳이라는 노아의 세 아들들로 분류되는 종족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지식이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것이 뭡니까?
셈족은 근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함족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흑인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야벳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아리안족이라든지 인도 게르만족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조상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렇게 해서 가장 보편적인 구분법은 피부색으로 셈족은 황색인, 야벳은 백인, 함족은 흑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이렇게만 보면 성경에 셈과 함과 야벳이라는 세 아들의 이름이 나오고, 그들이 대홍수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노아의 아들들이었고 그들로부터 인류가 다시금 새롭게 번져 나가는데, 이렇게 흑인, 백인, 황인 이런 식으로 이해를 해버리면 셈, 함, 야벳이라는 이름과 그 족보가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흑인이니까 함족 아닙니까?
그런데 함족속이 앞장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노아에 의해서 저주를 받습니다.
오늘 족보에도 가나안이 등장합니다만, 함과 그 아들 가나안이 함께 저주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러면 흑인들은 함의 족속으로 저주받은 자들입니까? 이렇게 적용할 수가 없는 거예요.
유대인 600만을 죽인 히틀러는 야벳족속인데, 성경에서는 셈과 야벳이 공조를 취하면서 같이 나타납니다. 같은 행동을 공통적으로 취하면서 복을 받아요.
오늘 본문에서도 21절에 보면 제일 맏형인 셈을 마지막에 소개하면서 뭐라고 하느냐?
야벳의 형 셈이라고 부릅니다.
함의 형이기도 하지만 함의 형이라고는 안 하고, 야벳의 형이라고 해서 같이 가는데 유대인은 셈족이고, 독일 사람은 야벳족이라면 독일사람 히틀러가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형 계열의 셈족인 유대인들을 600만이나 잡아 죽여요.
그러니까 셈, 함, 야벳이라는 족보가 성경에 쓰여 있지만, 우리가 그 족보가 뜻하는 바를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힘드니까 이 족보의 의미가 없어져버려요. 적용이 불가능하니까 전설이나 신화처럼 취급을 해버린다든지, 아니면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메시지가 전혀 없는 본문으로 간과해버리기가 쉬운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적어도 우리의 입장은 우리에게 신약 성경이 주어졌다는 것을 부인한 채로 구약을 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마치 신약이 안 주어졌다고 가정하고 구약을 볼 수는 없는 것이잖아요.
신약에 의해서 접하게 된 영적 세계에서 이 본문을 보면 셈과 함과 야벳이 역사적인 인물들이었고 이 족보가 역사적인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의미를 띤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전까지 창세기 11장까지의 내용들은 전부 역사적인 사실들이거든요.
그런데 역사적인 사실들을 역사학적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들을 영적인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비유와 상징과 영적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없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닌데, 있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들어서 비유적, 상징적, 영적 의미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셈과 함과 야벳은 오늘날에도 분명한 구분이 가능한 거예요.
어떻게 가능하냐?
셈, 함, 야벳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지금 9장까지 다 이야기가 됐어요.
9장까지의 맥락에서 기준을 찾아낼 수 있고, 그 기준을 가지고 셈, 함, 야벳을 가려낼 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구원 받을 자이고, 누가 함족속이 되어서 저주 받을 자인지를 얼마든지 구분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나는 셈이냐? 함이냐? 야벳이냐?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인지 구분해 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라고 성경이 대홍수까지의 이야기를 9장까지 마치고, 무지개 언약을 이야기하면서 지금 족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제 무지개 언약까지 마친 이 상태에서, 너희가 셈족인지 야벳족속인지 함족속인지 스스로 구분해 보라고 이 이야기를 성경이 우리에게 과제로 던져주고 있는 것이죠.
자, 그런데 우리가 이 세 종족을 구분하기 위해서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세 종족이 놓인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그 공통분모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인간관이에요.
셈족이든 함족이든 야벳족이든 그들이 인간인 한에는 그들을 보시는 공통된 하나님의 인간관이 있는데 바로 죄 덩어리라는 것입니다.
이게 변해왔어요. 세 번째 단계예요.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존재가 사람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려고 지으셨는데 영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는 존재인 육체가 되었어요.
말할 줄 아는 지정의를 가지고 있는 고깃덩어리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이에요, 우리가 보는 관점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 이웃을 고깃덩어리로 볼 수 없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보신다는 거예요.
일고의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었으므로 홍수를 통해서 쓸어버렸습니다.
홍수가 지났다고 인간이 달라진 것은 아닌데, 타락의 원인인 원죄를 그대로 품고 있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이 인간관을 바꾸십니다.
이제는 인간을 인격적 상대자로 다시 자리에 올려놓는데, 대신에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죄 덩어리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 덩어리로 태어나는 거예요.
오늘 족보에서 이름이 쭉 나열 되는데, 이 족보는 뭘 뜻하느냐?
줄줄이 죄 덩어리의 출생을 보여준다는 거예요.
제가 영락교회의 부목사로 있을 때에, 맡았던 교구가 하도 초상이 많이 나니까, 목사님들이 붙여줬던 별명이 줄초상목사예요. 사람이 죽는 일이 줄줄이 이어서 나가는 것처럼, 죄 덩어리들이 줄줄이 출생하는 것을 오늘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 덩어리들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인간관을 공통분모로 놓고, 이제 셈과 함과 야벳족속이 갈라지는 거예요.
자, 그러면 이제 셈족은 도대체 누구냐?
오늘 본문에 셈의 족보가 쭉 나오지만, 결국은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로 이어지는 족보를 말하기 위한 의도가 깊이 깔려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셈족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딱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복의 근원이 되는 자들인데, 복의 근원이 되는 자들인 셈족의 유전자를 어떻게 구분하느냐?
아기가 태어나서 돌이 되면 돌잡이를 하잖아요.
책, 붓, 쌀, 돈 놓고…
책하고 붓을 잡으면 학자가 되어서 벼슬할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하고, 곡식하고 돈을 잡으면 부자가 될 것 같다는 식으로…
요즘은 바뀌었어요.
청진기 놓고, 축구공이나 야구공 놓고, 마이크 놓고 합니다.
마이크는 매스컴을 탄다는 유명 인사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적으로 보면 셈족과 야벳족과 함족을 구분하고, 그 유전자를 찾기 위해서 한 가지 더 놓아야 할 것이 뭐냐 하면 십자가를 놓아야 된다는 됩니다.
그러면 셈족의 유전자를 받은 셈족의 후계자들은 반드시 십자가를 쥐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이 땅에 죄 덩어리로 태어난 것을 아는 거예요. 그게 언제인지는 몰라요.
돌잡이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니까, 꼭 한 살 때 그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생의 구간 동안에 언제든지 자기가 완전히 죄인이라는 것과 죄 덩어리로 태어났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야기한 대로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죄 중에 잉태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확신하는 자들이, 바로 셈족의 유전자를 타고난 자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의 이 땅에서의 인생의 모토가 무엇이겠습니까?
국민교육헌장에서 나오는 대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으니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이렇게 인생을 바라봅니까? 아닙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통해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보겠다고 생각합니까? 이건 셈족이 아니에요.
그럼 누가 셈족입니까? 딱 한 마디로 규정 될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시면서 마지막에 가르쳐주신 간구의 구절이 무엇이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내가 죄 덩어리로 태어난 것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 코앞에 닥친 당면한 과제는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셈족이에요.
그 악이 뭡니까?
내 마음이 하나님 이외의 이 땅에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그 어떤 것들에게 마음이 달라붙어서 그것으로부터 생각하고 그것으로부터 행동하는 거예요.
내가 자식에게 달라붙어서 화가 납니까? 악을 행하는 겁니다.
공부 잘하는 자식에게 달라붙어서 기쁩니까? 악을 행하는 겁니다.
기뻐도 악을 행하는 것이고, 걱정해도 악을 행하는 것이고, 근심해도 악을 행하는 거예요.
마음이 사업에 붙어 있고 돈에 붙어 있어서 돈 없으면 걱정합니까? 걱정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겁니다.
왜 돈 없는 상태로부터 생각과 행동이 나옵니까? 그게 악이라는 거예요.
꼭 돈을 도둑질해야 악인 것이 아니라, 돈 없다고 걱정하는 것이 악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피조물로써 하나님이 내게 없다는 것을 걱정해야 되는 것이지, 이 땅에 태어나서 왜 돈이 없다고 걱정해요? 이게 말이 됩니까?
자식이 잘못됐다고 왜 걱정해요? 내가 하나님의 자식으로 잘못된 것을 걱정해야지.
다 악인 거예요.
나라를 위해서 애국심을 발동해요? 악입니다. 분명히 악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나라를 위한 일을 할 수 있어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셈족은 압니다. 내가 말 하려고 하고, 내가 움직이려고 하고, 내가 행동하려고 하면 하나님 이외에 마음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말과 행동이 나오려고 한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그래서 제발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려서 내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하는 것들에 대해 죽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게 아브라함의 생애였고, 이게 노아의 생애였고, 이게 바로 아벨의 생애였습니다. 이게 바로 셈족이라는 거예요.
그들의 과제는 다른 게 아니고 어떻게 하나님으로 사느냐?
그래서 돌잡이에서 십자가를 붙잡는다니까요.
왜냐하면 자기가 죄 덩어리로 태어난 것을 아니까.
십자가를 붙잡으면 마음이 이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생은 끝납니다. 거기서 그걸 성공이라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 남은 육체의 인생은 정말로 하나님께서 해나가시는 것이에요.
이 수준을 가야 여러분이 진짜 복음의 진수를 느끼고 행복하고 기쁠 수 있는데, 임계점이 있어서 임계점까지 도달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붙잡고 마음이 이 세상에 붙는 것을 자꾸 끊어내려고 하는 이 싸움을 해야 합니다.
셈족의 모토는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게 인생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른 곳에 빼앗기지 않는 것 이것이 성공이에요. 그래서 십자가를 붙잡는 것이죠. 셈의 유전자가 있으면 반드시 십자가를 붙잡게 돼 있습니다. 십자가를 전해도 전해도 붙잡지 않는다면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죠.
자, 그러면 함족은 누구입니까?
오늘 8, 9절에 보면 함의 자손 중에서 “용감한 사냥꾼 니므롯”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니므롯’이라는 이름 자체가 ‘적대자, 폭군’ 이런 의미가 들어있어요.
9절에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라고 말한 것의 의미가 깊습니다.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도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해 놓은 70인역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용감한 사냥꾼’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주 이게 묘하죠? 두 절 들어가 있는데.
왜 사냥꾼이라고 했습니까?
죄가 뭐예요? 화살이 과녁을 빗나간 것이 죄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대적하는 용감한 사냥꾼’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겠습니까?
마음의 화살이 여호와께 적중하지 않는 거예요. 이 세상의 돈에 가서 적중합니다.
그런데 용감해서 압제자이고 폭군의 자리에까지 선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비뚤어진 과녁을 향했는데 성공한다는 겁니다.
돈 벌려고 마음먹어서 돈 많이 번거예요. 정치하려고 마음먹고 대통령 되는 거예요. 학문에 뜻을 두었는데 세계적인 학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 등 돌린 채로.
이게 바로 니므롯이고 함족속이에요.
내가 죄 덩어리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모르거나 하는 상태에서 이 땅에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귀에 들리는 목표를 향해 매진해서 이루어가는 자들이 니므롯이고 함족속이라는 겁니다.
이들에게 적용되는 말, 이들의 모토가 뭡니까?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통해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자. 긍정의 힘을 통하여 형통하는 삶을 살자.’ 이게 바로 함 족속에 해당되는 삶이라는 겁니다.
셈 족속은 이 땅에서 뭘 하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는 죄 덩어리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쨌든 악으로부터 구해지는 것이 필승의 과제인줄 알고, 날마다 돌잡이에서 십자가 붙잡듯이 셈 유전자의 티를 내는 겁니다. 오늘 하루도 악에서 구해지는 것이 삶의 목적이에요.
그렇게 내가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당신의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이 땅에서 펼쳐나가시는 것이고, 그 일은 내 일이 아닙니다.
내 일은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고 악에서 구해지는 것이 내 일이에요.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을 잘 이해하세요.
흑인 중에서도 영적인 의미의 셈족이 있고, 야벳족이 있고, 함족이 있고, 백인 중에서도 셈족이 있고 야벳족이 있고, 함족이 있고, 황인 중에서도 셈족이 있고, 야벳족이 있고, 함족이 다 있습니다.
육체적인 차원, 인종학적 차원, 문화적인 차원에서의 구분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영적인 유전자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벳족속은 뭡니까?
오늘 재미있는 것이 순서가 셈, 함, 야벳인데 야벳을 제일 먼저 이야기해요.
왜 야벳을 제일 먼저 이야기했을까요?
왜냐하면 야벳족속이 하나님의 구원사의 궁극적인 목표지점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야벳족속은 앞장에서도 아버지가 벌거벗었을 때에 셈과 야벳이 같이 움직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21절에 셈을 뭐라고 하냐면 야벳의 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함의 형이기도 한데 야벳의 형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아주 독특한 관계가 형성 되는데 영적인 의미에서 야벳이 누구냐?
야벳이 구원사의 마지막 귀결이고 마지막 목표점입니다.
셈족인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잖아요.
복의 근원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복의 통로가 된 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복의 근원이 주인공입니까? 복의 근원을 통해서 복을 받아 누리는 자가 주인공입니까? 결과적으로는 복을 받아 누리는 자가 주인공이죠.
그러니까 셈이 복의 근원이라면, 야벳은 복의 근원인 형을 통하여서 복을 받아 누리는 자들 입니다. 쉽게 말해서 십자가 복음을 쥐는 자들이 셈족입니다. 이들이 복의 근원이에요. 이들이 십자가를 전합니다. 십자가를 전했을 때에 그걸 받아들이는 자가 야벳족속이에요. 야벳족속이 받아서 십자가에서 약속된 모든 복을 누립니다. 그리고 나면 그 야벳족속은 또 내가 받은 십자가를 전합니다. 야벳족속은 셈족이 되어서 다른 야벳족속을 향해서 가는 거예요.
신약 성경적으로 말하면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전해지며 교회가 생겼다가 핍박당하고 흩어지면서부터 이방인을 향하게 되잖아요? 이 이방인들 중에서 십자가를 받아들일 자들이 야벳족속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또 다시 다른 야벳족속을 찾아서 나갑니다. 그러면 그들이 또 셈족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야벳족속과 셈족은 묶어서 생각할 수 있고, 공통적인 유전자가 있는 것입니다.
함족과 구분되는 유전자인데 함족의 유전자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셈족과 야벳족의 유전자는 죄 덩어리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 땅에서 살면서 악에서 구해지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가 내 성공이 되는 거예요.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이기신 그 주님의 십자가가 바로 나의 성공이 되고, 하늘에 하나님이 계신 것 자체가 내 성공이 되고 내 형통이 되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지요?
이걸 체험하셔야 복음을 받은 자가 되는 겁니다.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사실 자체가 내 성공이에요.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는데, 그것 자체가 이미 더 이상 필요 없는 내 지상에서의 성공입니다.
왜?
악에 대한 승리이고, 죄에 대한 승리이니까.
이게 피부로 느껴져야 돼요. 그래서 이 완벽한 승리 때문에 입이 함박꽃처럼 벌어져서 살아야 돼요. 그게 셈족속이고 야벳족속입니다.
나는 셈 족속이냐? 야벳 족속이냐? 함 족속이냐?
함족속이 아니라면 야벳이었다가 셈족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였고, 이제 또한 내게 셈족의 유전자가 활동하면서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죄 덩어리로 태어나서 죄 덩어리임을 알고 악에서 구해지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유일한 성공임을 깨닫고 살아가는 셈과 야벳의 자손이 우리 자신들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 주시고, 다시는 함족 같이 살아가는 어리석음이 나타나지 않도록 저희를 권면에 권면을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내가 죄덩어리임을 알게 하시고 또한 십자가보혈로 정케 하신 주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